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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93화 (93/223)

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93화

풀리지 않았던 수수께끼 (2)

그 의미심장하고 기묘한 목소리에, 남작은 자신이 아직 제대로 인사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조차 잊은 채로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에게 바쁜 시기에 잘 왔다며 대답해 줄 만큼 착한 인물이 이곳에 있을 리 있겠느냐마는.

“그럼 신성제국에 대한 보고를 이어 가도록.”

아무렴 나는 조지를 바라보며 턱짓했다.

그러자 조지는 눈썹을 들썩거리며 다시 입을 열기 시작했다.

“어쨌든 결론은 요약하자면 그겁니다. 예정에도 없던 인력이 들어왔다는 점. 그것도 꽤나 많이…… 말이지요.”

“결국은 치료사제들을 어떻게 이용해 먹느냐가 중요하겠군.”

“뭐, 그렇게 되겠죠.”

나는 가볍게 턱을 쓰다듬으며 상념에 빠졌다.

본래 저들에게 요구했던 치료사제의 목적은, 결국 전략적인 운용을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연방제국과의 전쟁에서 요긴하게 사용될 회복 병력.

하지만 저들이 이렇게 앞서 보내 주었는데, 그것을 방치하거나 허투루 사용한다면 분명 낭비겠지.

그렇다면…….

“그들이 언제쯤 도착한다고 했지?”

“연락이 들어온 시간과 거리를 생각하면 아마도 2주는 걸릴 겁니다.”

“2주라…….”

……재미있는 생각이 떠오르는 것 같기도 하군.

손가락으로 의자 팔걸이의 첨단을 천천히 두드리던 나는 그렇게 자리에서 일어나며 입술을 비틀었다.

“그때까지 준비나 하고 있도록 하지.”

아무래도 일을 도와줄 소중한 일손도 복귀했으니까 말이야.

달력을 바라보던 내 시선은 이윽고 어리둥절해 하는 비도르 남작에게 닿았다.

* * *

에스테반의 수도로 입성하는 치료사제들은 기이한 분위기 같은 것을 느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왕성으로 향하는 자신들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모습으로부터였다.

그것은 외지인들의 의문스런 행렬을 발견한 경계심도 아니었고, 의구심조차도 아니었다.

성국이 아닌 이상에야 이렇듯 많은 수의 사제를 보는 일이 흔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웅성웅성-

그리고 그 기이한 분위기는 왕성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점차 더욱 짙어져 갔다.

그래. 그것은 결코 정상적인 반응이 아니었다. 그 기묘한 사실을 눈치챈 것은, 행렬의 가장 선두를 이끌던 대사제 역시 마찬가지였다.

‘환영?’

마차 안에서도 충분히 느껴졌다. 그것은 자신들의 존재가, 신성제국의 사제들이란 이들이 에스테반에 명백한 도움이 될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시선이었다.

그 외에 어떠한 이변도 없을 거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는 시선.

어느새 이 행렬에 의구심을 품게 된 것은, 도리어 자신들이 된 채였다. 분명 에스테반의 왕실 측에는 아직 제대로 된 소식을 전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하건만…….

“혹 성녀님께서 치료사제 파견 소식을 알리셨습니까?”

대사제가 조심스레 물었다. 만약 가능성이 있다면 그것이 가장 유력했기에.

하지만 성녀는 창밖을 바라보던 천진난만한 표정 그대로 고개를 내저었다.

“응? 아니?”

“그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다는 말씀이시지요.”

“응.”

“……그렇다면 가능성은 하나밖에 없겠군요.”

……1왕자인가.

대사제의 눈이 진중하게 굳었다.

사제를 파견했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이런 일을 할 사람이라고는, 그가 아는 한 알렌 에스테반, 그밖에 없었다.

이유를 짐작하기는 어려웠으나, 아마도 그가 백성들에게 모종의 목적을 가지고 치료사제의 방문 소식을 퍼뜨린 것이 틀림없었다.

적어도 대사제가 확신하는 선에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한데 어째서 이런 일을 벌였지?’

근본적인 의문이었다. 이렇게 해서 그에게 생기는 이득이 있단 말인가?

아니, 이득이 없진 않겠지.

당장 함께한 사제들의 상기된 표정이 그것을 증명해 주고 있으니까.

하지만 단순히 환영하는 모습을 보여 주어 호감을 산다기에는 너무 단순한 행동양식이었다. 이미 신성철과 연방제국이라는 두 요소 탓에 꼼짝할 수 없이 묶여 버린 두 국가 간의 관계를 생각하면 더욱 그랬다.

그렇다면 그 이상으로, 1왕자라는 남자가 노리는 것이 무언가 있다는 소리인데…….

‘……답답하군.’

도무지 그가 노리는 바를 알지 못하니 그저 답답할 따름이었다. 마치 이전 회담 때에 그러했던 것처럼, 시작도 전부터 말려들어 버렸다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더 갑갑한 사실은, 이번 방문이 저번처럼 강압적인 위치에서 행해진 일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오히려 명백한 협력 관계의 입장.

하물며 모순적이게도 그 주도권조차 약소국인 에스테반에 있었다.

자신들의 교묘한 위치와 신성철이라는 무기를 이용한 완벽한 처세술 덕분이었다.

‘후, 신성철을 담보로 잡은 이상,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일이긴 했으나…….’

때문에 왕성에 가까워질수록 대사제의 속은 타들어만 갔다.

‘그래도 이번에는 부디 생각한 대로 되었으면 좋겠으련만…….’

다만 그렇게 씁쓸한 표정을 감추면서 말이다.

그때, 그런 대사제의 옆에서 묵직한 누군가의 음성이 들려왔다.

“가르덴 대사제님,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롤랑 경.”

대사제가 고개를 돌려 마차 옆자리에 앉은 호위 기사를 바라보았다.

조금의 틈도 용납하지 않는 철저한 중무장. 그리고 태양 빛이 닿을 때마다 번쩍이는 은빛의 갑주.

그것은 성국이 자랑하는 근위 기사단, 팔라딘의 용태였다.

“모든 것은 성국의 뜻대로 될 것입니다.”

성국의 팔라딘 롤랑.

투구 사이로 드러난 그의 눈은 번뜩이고 있었다.

* * *

“뭇 기사들의 이정표이자 에스테반 왕국을 이끄시는 국왕 전하께 인사드리옵니다.”

“다시금 에스테반에 온 것을 환영하네, 대사제. 자리에 앉도록.”

“환영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고리타분한 인사가 끝나고 가르덴 대사제가 아버님의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이전에 배교를 논하던 그 날카로운 분위기와는 정반대의, 편안하고 차분한 공기였다.

실제로 그때와는 달리, 이번 만남은 아버님의 집무실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지극히 사적이면서 친밀해졌다는 소리다.

“그래. 그대가 데리고 온 사제들은 편히 쉬고 있는가?”

“예, 전하. 그 하해와 같은 마음씨로 별궁을 내주신 덕에, 오랜 발걸음에 지친 사제들의 여독도 충분히 풀리고 있사옵니다.”

“……그렇군.”

물론, 그렇다 해도 이건 ‘그’ 지독한 원리주의자인 가르덴 대사제와의 만남이다. 답답했으면 답답했지 마냥 편안하지만은 않을 것이 분명하리라.

“커흠!”

아버님도 그 꺼림칙한 낌새를 느끼셨는지, 곧장 내게 눈짓하시며 대화의 주체를 일임하셨다.

쉽게 말해, 골치 아픈 상황을 내게 넘기셨다.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천천히 운을 띄웠다.

“우선 상황에 대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은데.”

“예, 1왕자 전하. 그럼 말씀드리겠습니다.”

대사제는 짧게 숨을 들이마신 이후에 상황을 간략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신성제국의 대사제들이 치료사제를 파견차며 조언한 일부터, 교황이 이를 받아들인 일. 그리고 이후 국경지대에서 성녀와 합류한 일까지.

“그렇군.”

……뭐, 양반은 못 되는군.

역시나 짐작했던 그대로의 상황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다만 그것이 ‘침을 바르는 것’이 아닌 신성제국의 ‘선행’으로서 포장되었다는 점은 웃지 못할 이야기였고.

“그래서 자네가 그 사제들의 신변을 인도하기 위해 끌고 왔다는 말이군.”

“그렇습니다.”

“좋아, 그 부분은 대충 알겠다.”

미리 알고 있던 부분을 확인하는 차원의 질의응답이었다. 그리고 그건, 그다음 질문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면, 신성제국의 교황께서는 그들이 어디에 배치되기를 바라고 계시지? 왕궁? 다른 대도시? 북방이나 빈민가? 그것도 아니면…… 전장?”

마지막 말에는 살짝 움찔한 대사제였으나, 그는 이내 표정을 다잡고는 신중하게 답하기 시작했다.

“현재 왕도에 도착한 치료사제들은 어디까지나 에스테반에 도움을 드리고자 파견한 이들입니다. 그런 이들의 배치를 성국이 결정한다는 말은, 감히 가당치 않는다 말씀드리겠습니다.”

“무얼 그렇게 어렵게 말하지? 알아서 쓰라고 하면 될 것을.”

“…….”

나는 조금은 당황한 듯한 가르덴 대사제의 모습에 피식 실소를 흘렸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아버님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 나갔다.

“나쁘지 않은 기회입니다. 아버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음, 다행히 올겨울에는 야만족의 습격이 없지 않았느냐? 그러니 추운 날씨에 골병이 든 이들을 위주로라도 치료해 나가면 될 것 같구나.”

“흠, 별다른 일이 없었으니 의원처럼 주요 도시들에 배치하자는 말씀이시군요.”

“그래.”

확실히 지금으로선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서 각 지역에 상비시키는 것 정도였다.

그것도 나쁜 것은 아니지마는…… 결국 당장에 큰 도움은 되지 못한다는 소리다.

물론.

‘그런 식으로 평범히 활용하다 끝낼 생각은 없지.’

이미 그 이외의 다른 활용 방안이 있었다.

나는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는 가볍게 입을 열었다.

“별다른 일이 없다면 당장 그들에게 쓸모를 만들어 주면 되는 것이 아닙니까?”

“……뭐라?”

“…….”

평온하게 내던져진 그 한마디에, 아버님과 대사제의 얼굴이 조금 굳었다.

“알렌 에스테반. 설마, 지금 전쟁이라도 일으키자는 말이더냐?”

전쟁…… 전쟁이라…….

아까 대사제와의 대화에서 전장을 언급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신 모양이다.

“그것도 나쁘지는 않겠지만, 아쉽게도 저는 그들을 ‘써야만’ 하는 그런 일을 만들자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음? 두 말이 다른 뜻이더냐?”

“물론입니다.”

의문을 표하시는 아버님의 눈빛에 의구심이 가득했다.

이에 나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며 설명을 덧붙였다.

“쓸모…… 그것은 그들이 이제부터 ‘해야 할’ 일이 따로 있다는 것을 말한 거였습니다. 치료사제로서 할 수 있는, 그리고 해야만 하는 일거리를 말이죠.”

“해야만 하는 일거리라…… 대체 무엇을 말하는지 감이 안 잡히는구나. 그들이 각 지역에 상주하는 것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거늘, 그 이상의 것이 있단 말이냐?”

“이를테면 이런 것이겠지요.”

에스테반의 지도를 꺼내 든 내 손가락이 천천히 움직여, 동부의 어딘가에 자리한 어느 산골을 짚었다.

다만 거기가 어디인지는 대사제는 물론이고 국왕인 아버님께서도 아는 바가 없으셨는지, 그저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를 바라보셨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긋이 짚은 그곳은 그저 녹색으로 가득한 산맥의 정중앙이었다.

하도 깊은 곳이기에 정말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뭐, 정말로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곳에는 가론 마을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가론 마을?”

“동부의 화전민들이 모여 만들어진 마을입니다. 인구가 백 명이 채 되지 않을 테니, 모르시는 것도 당연하지요.”

“화전민 마을이라고?”

“…….”

아버님의 눈매가 좁혀지셨다. 마치 너는 그런 것을 어찌 알고 있느냐고 여쭈어보시는 듯한 눈빛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시선에 개의치 않으며 계속해서 할 말을 이어 갔다.

“기왕이면 이곳에 성국에서 온 치료사제들을 전부 배치하지요.”

“전부? 그런 곳에 전부를 말이냐?”

“…….”

그저 담담하게. 그러나 조금은 충격적일 법한 말을 꺼내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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