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94화
풀리지 않았던 수수께끼 (3)
“……허어.”
역시나 아버님께서는 눈을 지그시 감으시며 침묵하셨다.
이름조차 들어 보지 못한 화전민 마을에 치료사제를 배치하자니!
심지어 이번에 온 인원 모두를?
게다가, 이런 곳에서 그들이 따로 해야 할 일이 있다고?
……지금껏 그래 왔던 것처럼 그 내용은 너무도 기이하고 의뭉스러웠던 것이다.
그리고 그에 대한 반응은, 결국 옆에서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대사제에게서 터져 나왔다.
“전하, 성국의 치료사제를 그런 곳에 두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처우입니다.”
“분명 신성제국에서는 이번 일에 대해선 신경 쓰지 않겠다고 말한 걸로 기억하는데…… 내 말이 틀렸나?”
“하지만…… 그렇다 해도, 그들은 성국의 사제들입니다. 그들을 작은 화전민 마을에 몽땅 보내 두겠다니…… 그건, 방치하겠다는 말씀이나 다름이 없잖사옵니까? 기본적인 처우를 신경 쓰지 않을 이유는 없습니다.”
“방치라…….”
대사제는 그렇게 단호하게 말하고는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사제를 대표하는 입장으로서 절대 물러설 수는 없다는 듯이.
그 얼굴을 보니 대충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겠군.
내가 말했던 ‘쓸모’. 그것이 당장 급한 일도 없는 그들을 허투루 대하는 것으로 에스테반이 지난 일에 대한 보복이라도 하는 거라 지레짐작한 모양이리라.
혹은 그들에게 치욕을 줌으로써 생긴 불만으로 거래를 파탄 내려 한다 여길 수도 있겠군.
어차피 자기네들이 거절할 수 없으리라는 사정을 이해한 다음에 내리는 갑질이라 여긴 건가?
뭐…….
물론, 당연한 말이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만의 꽉 막힌 망상일 뿐이다.
“가론 마을에 치료사제를 파견하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다.”
“전하께서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그 연유를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좋아, 그렇다면 답해 주지.
난 그의 질문에 폭탄과 같은 답을 내려 주었다.
“그곳에서 얼마 지나지 않아 전염병이 발생할 것이기 때문이지.”
“……!”
대사제는 깜짝 놀라며 눈을 크게 떴다. 하지만 그 말을 곱씹은 뒤에는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발생한 것도 아니고 발생할 것이라 하셨습니까?”
“그래.”
나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게 입꼬리를 비틀며 말했다.
“전염병의 예방과 원인 확인을 위해 치료사제들을 보내겠다. 만일 타국의 전염병 확산을 막는다면, 그건 신성제국으로써도 나쁜 것이 없는 일일 테지. 그렇지 않나?”
“……아직 근본적인 문제를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곳에 정녕 전염병의 전조가 있었습니까?”
“아니.”
“…….”
그러자 대사제의 굳은 표정이 더욱 무겁게 변모했다. 그 기다란 수염과 머리카락에 뒤섞여 있는 꼴은 참으로 가관이었다.
하지만 나로서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전염병이 확산 되는 것이 미래의 일이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그래. 가론 마을이라는 곳에서 감염병이 발생하는 것은, 보다 나중의 일이었다.
시기로 따지자면 대략 2년 후의 이야기다.
그럼에도 내가 지금 이 시점에 치료사제를 보내고자 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그 병의 원인이, 지금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나는 팔짱을 끼며 여유롭게 말을 이어 나갔다.
“어쨌든 전염병과 관련된 내용은 치료사제라는 인력이 남을 때에 처리하는 것이 좋겠지. 아버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허가한다.”
“예, 잘 생각하셨습니다.”
“구, 국왕 전하.”
그리고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 돌아온 대답에 대사제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로서는 이 일련의 상황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으리라.
하지만 도리어 아버님께서는 턱을 쓰다듬으며 내게 조언하셨다.
“그곳에서 발생할 전염병, 그것의 원인을 밝혀내고 예방한다고 하였느냐.”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그 무엇보다 신속하고 확실하게 처리해야 할 것이다.”
……그래.
이미 아버님께서는 내 행보를 더 이상 의심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내가 정녕 그렇게 말했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거라고까지도.
더 없을 정도로 완성된 신뢰였다.
팔짱 낀 내 어깨가 슬며시 까닥여졌다.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
그렇게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당황하는 것은, 대사제 하나에 불과했다.
* * *
“저, 저건……!”
화전민들의 마을인 가론 마을에 마차가 드나드는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제아무리 산골에 몰래 세워진 마을이라 하더라도 어찌 되었든 ‘마을’이 아니겠는가?
필요한 생필품을 거래하기 위해서라도 마차가 오다니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거래를 위한 마차에 국한되었다.
휘황찬란한 신전의 마차가. 그것도 왕실의 마차와 함께 당도한 것은, 분명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리라.
심지어 그들의 뒤로 수백의 행렬이 따라붙었다면 더더욱.
화전민들은 마을로 들어오는 마차들을 보며 분주하게 움직였다.
“이런…….”
“서, 설마 우리들을 처리하러 온 건가?”
“빨리 촌장님께 알려!”
아이를 둔 부모들은 황급히 아이들을 이끌고 집으로 몸을 숨겼으며, 땔감을 이고 들어오던 남자들은 경계심을 드러내며 쟁기 따위를 손에 들었다.
하지만 공통적으로 그들에게 보이는 감정은 결국 ‘공포’이었다.
“전하, 도착했습니다.”
“음.”
나는 어수선한 외부의 분위기를 느끼며 천천히 마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그런 내 옆으로 왕실의 기사들이 재빨리 다가와 호위하듯 주변을 감쌌다.
뒤늦게 마차에서 내린 조지는 그 모습을 보며, 핀잔하듯 한마디를 내뱉었다.
“거참 누가 보면 전쟁터 한복판인 줄 알겠네요.”
흠칫-
그러자 기사들의 몸이 작게 움찔거렸다. 솔직히 자신들이 보기에도 과한 수준의 호위였던 것이다.
하지만 어쩔 수 있겠는가?
“아버님께서 꼭 데리고 가라 하시더군.”
“…….”
국왕의 명령.
그 무적과 같은 단어에, 녀석은 꿀이라도 먹은 것처럼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나는 비식거리며 흘러나오는 웃음을 멈추고 화전민 마을을 바라보았다.
“그런 의도야 없었다 해도 화전민인 저들이 우리를 경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 만에 하나를 대비해 호위 기사들을 붙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지.”
화전민들은 대부분 영지에서 도망간 평민들인 경우가 많았다.
혹자는 세금을 피하기 위해. 혹자는 부담감에서 벗어나고자. 그리고 극히 일부는 죄를 짓고서.
그 이유야 다양했지만, 어찌 되었든 왕실의 입장에서 보면 무단으로 땅을 점거한 이들이라는 소리였다.
“솔직히 다른 누구도 아니고 전하께 무슨 일이야 일어나겠냐마는…….”
“뭐, 아버님께서도 그런 걱정은 하지 않으셨을 터다.”
그렇게 말하는 어깨가 으쓱여졌다.
이미 아버님께서는 내 검술 실력에 대해 얼핏 알고 계실 것이 분명했다.
앞선 북부 전투에서 힘의 일부분을 드러내기도 했고, 이후 그리폰을 처리했던 것처럼 무력을 사용하는 일도 수월하게 처리해 왔으니까.
‘무엇보다도 마탑주에게 언질을 들으셨을 테지.’
다만 아버님께서는 이후의 상황을 생각하시고 기사들을 붙여 주신 것이리라.
기사들의 존재를 처음부터 앞세움으로써, 일어날 수 있는 귀찮은 상황들을 미리 예방하겠다는…… 뭐, 그 외에도 다양한 의미로 말이다.
그때, 어수선한 마을 사이에서 한 노인이 달려왔다.
아마도, 이 화전민 마을을 이끄는 촌장으로 보였다.
“나, 나으리들…… 대체 이런 누추한 곳까지는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하지만 마을의 사람들이 모두 그러했듯, 그 얼굴에 비추어진 감정 역시도 공포였다.
특히나 기사들의 갑주가 햇빛을 반사하며 번뜩일 때마다 얼굴이 하얗게 질리기 일쑤였다.
나는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네가 이 마을의 가장 높은 사람인가?”
“그, 그렇습니다, 나으리.”
“그렇군.”
내 시선이 마을의 규모를 짧게 훑으며 말을 이어 갔다.
“일 년 사이에 외지인이 다녀갔다거나, 이상한 일을 겪은 이가 있다거나, 하는 등의 사건이 있었나?”
“그, 그건…….”
“자세히 생각해 보는 편이 좋을 것이다. 마을을 위해서라도. 그리고 너 자신을 위해서라도.”
“…….”
꿀꺽-
무척이나 위압적인 태도에 촌장의 목울대가 울렁거렸다.
하지만 촌장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조아리며 생각을 정리해 나갔다. 되도록 자극하지 않으려 하는 모양새였다.
“화, 확실하게 없습니다, 나으리. 워낙에 작은 마을인지라 특이한 일이 있다면 알지 못할 리가 없습니다.”
“그렇군.”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시선을 살짝 틀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미 내게는 이 마을에서 일어나는 이상 현상의 전조가 느껴지고 있었다.
가깝고도 먼 미래. 에스테반을 강타하게 될 끔찍한 전염병의 징조가.
‘시기를 생각하면 지금쯤이라 여겼거늘, 이보다 전의 일이었나 보군.’
가볍게 혀를 찬 내 시선이, 가론 마을로 배치된 사제들을 이끄는 이에게 닿았다.
“거기, 자네.”
“부르셨습니까.”
“사제들의 상태는 어떻지?”
“피로도는 문제가 없습니다. 명령만 내려 주신다면 곧장 움직일 수 있습니다.”
팔라딘 롤랑이라 했던가?
곧장 다가오며 대답하는 성기사에게 나는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마을 곳곳으로 움직이며 ‘정화의 축복’을 사용하도록. 이상한 것을 발견하면 즉각 보고하고, 성기사들은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사제들을 보호하라.”
“그렇게 하겠습니다.”
정화의 축복은 말 그대로 삿되고 오염된 것들을 깨끗하게 지워 내는 사제의 축복 중 하나였다.
물론 그것이 만능은 아니었다. 그렇게 간단하게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었다면, 이 세상에 전염병이란 것이 존재할 리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처럼 ‘그 전염병’이 아직 확산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공기를 정화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효과가 있을 터였다.
그때였다.
“나, 나으리……! 잠시만 제 이야기를 들어 주십시오.”
행동 하나하나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던 촌장이 대화에 급히 끼어들었다.
무얼 하려는지는 모르겠으나, 무언가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감지했는지 내 팔을 붙잡으려 한 것이다.
하지만 기사들이 이를 저지하며 으름장을 놓았다.
“감히 누구에게 손을 대는 것이냐!”
“함부로 손을 대었다가는 목이 날아가도 모자랄 것이다!”
“히…… 히익……!”
설마하니 이런 산골의 화전민 마을로 온 사람이, 그것도 왕실에서 나온 이가 왕족일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촌장은 화들짝 놀라 물러나더니, 벌벌 떨며 바닥으로 몸을 낮추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무미건조하게 입을 열기 시작했다.
“자리에서 일어나라.”
“그, 그것이…….”
“두 번 말하지 않는다.”
“……예, 아, 알겠습니다!”
촌장이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나를 쳐다보는 그 눈빛은 이미 시커멓게 죽어 있었다.
정확히는 사제들과 성기사들의 움직임에 두려움을 표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니 나는 물었다.
“뭐가 두렵지?”
“저…….”
“내가 기껏 너네 따위를 해치기 위해 이곳까지 온 것이라 생각하는 건가?”
“…….”
촌장의 당황한 눈이 빙글빙글 돌아가기 시작했다.
동시에 내 눈매가 순간적으로 좁혀졌다.
“따라와라.”
“예?”
어쨌든 사제들을 풀어서 ‘정화의 축복’이라는 일차적인 방역을 이루어 낸다지만, 그것만으로는 원인을 찾아 제거하기 어려울 것이 분명했다.
회귀 전의 정보들을 떠올리면 확신할 수 있었다.
그러니 적어도 이 마을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한 명쯤은 필요하리라. 나는 그런 역할을, 촌장에게 맡길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전에…….
저벅- 저벅-
“……전하?”
내 발걸음이 어딘가로 향하기 시작했다.
발걸음이 향한 곳은 신성제국의 팔라딘, 롤랑이 타고 온 마차였다.
철컥-
“히익!”
그리고 예고도 없이 거칠게 열린 은빛 마차의 문 사이로, 가녀린 비명이 튀어나왔다.
결코 이런 곳에 있어서는 안 되는 사람. 그리고 멋도 모르고 따라온 천방지축 소녀.
나는 그 얼굴을 보며 높낮이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성녀께서는 어째서 이곳에 계신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