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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95화 (95/223)

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95화

풀리지 않았던 수수께끼 (4)

“아…… 아하하…….”

자신의 존재를 들킨 성녀는 머쓱하다는 듯이 머리끝을 배배 꼬며 웃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왕성에서, 그것도 누구보다 엄중한 보호를 받고 있어야 할 성녀가 이런 장소에 오게 된 작금의 상황은…… 단순히 웃어넘길 수 있는 것이 아니었으므로.

이에 성녀는 볼을 슬며시 긁적이며 말했다.

“어, 어쩌다 보니…….”

“분명 사제들에게 행선지를 일러 주지 않은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렇다면, 이곳이 어딘 줄도 모르고 따라오셨습니까?”

“그게…… 네…….”

“그러면. 왕성에 남아 있던 가르덴 대사제는 이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

성녀는 침묵했다. 그녀 역시 이 상황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곤 있었다. 오죽했으면 대사제조차 그녀에게 사제들의 행선지에 대해 말해 주지 않았으랴?

하지만 그것은 성녀의 호기심을 막을 순 없었다.

아니, 오히려 더욱더 자극했다. 그래서 지금 이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아마 대사제로서도, 지금쯤 사라진 성녀를 눈치채고 펄쩍 날뛰고 있으리라.

물론 이 황당한 상황조차 내게는 나쁘지만은 않았다.

“그 안이 답답하시면 이제 나오시지요.”

“……네?”

“하지만 이곳에서는 정체를 숨기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로브를 가져다 드릴 테니, 그것을 입으십시오.”

‘어…… 어? 뭔진 모르지만, 아무튼 넘어간 건가?’

성녀는 이내 놀란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고개를 파닥파닥 끄덕였다.

그와 동시에 그녀의 은빛 머리카락이 흔들리며, 풋풋한 복숭앗빛 향기가 은은하게 퍼져 나갔다.

* * *

조지는 왕성의 기사들과 함께 수상한 것을 탐색하라는 명령을 받고 떠나갔다. 때문에 남아 있는 것은 나와, 모종의 이유로 불려 나온 성녀. 그리고 그녀를 호위하기 위해 멀찍이 떨어진 성기사들 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우리를 안내하고 있는 것은, 나의 협조 요청을 받은 백발의 노쇠한 촌장이었다.

“저, 전염병의 전조라는 말씀이십니까?”

설명을 들은 촌장은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평범한 화전민들의 마을, 제아무리 도망자 신세를 자처한 그들이라지만 전염병이 발생할 만한 짓을 한 것은 단연코 아니었다.

마법이 발달한 이 대륙에서, 이미 전염병이란 것이 어떤 원인으로 퍼지는지는 대부분 밝혀진 상태였으니까.

그리고 그것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은 성녀 역시 마찬가지였다.

“대부분의 전염병은 청결이나 오염된 물로 인해 전파되지 않았나요?”

성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그리고 거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실제로 사제들이 가장 먼저 ‘정화’를 시도한 곳이, 바로 우물이었으니까.

그렇다면 다른 원인이 있다는 소리였는데, 그것을 아직 발발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밝혀내기란 쉽지 않을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원인에 대해 이미 알고 있는 상태였다.

‘……다만.’

내 눈빛이 일순 날카롭게 찢어졌다.

전염병을 퍼뜨리는 그 원인을 알고 있을 뿐. 그것이 어디에서, 그리고 어떻게 생겨난 것인지는 알지 못했다.

‘대충 예상은 가나, 너무 늦었었지.’

이미 한 차례 전염병을 겪은 미래에도 밝혀내지 못한 사실이었던 것이었다.

“우선은 말했던 곳으로 가지.”

“……알겠습니다.”

그렇게 의구심 가득한 촌장을 따라 이동한 곳에는 나무로 지어진 건축물이 있었다.

촌장은 그곳을 유심히 쳐다보는 내 눈치를 보다가 설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화…… 아, 아니, 마을 주민들이 함께 사용하는 공용 창고입니다. 원래는 말린 육포를 가져다 두고는 했는데, 겨울에 들어서는 주로 땔감을 넣어 두고 있습니다.”

“그렇군.”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창고의 문으로 손을 가져다 댔다.

그 순간, 등 뒤에서 화들짝 놀란 성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하, 잠시만요!”

“…….”

갑작스러운 만류.

나는 뻗어지고 있던 손을 멈춘 채로, 성녀에게 눈길을 던졌다. 그러고는 그다음 말을 바라듯, 천천히 입을 열어나갔다.

“무슨 일이십니까.”

“조심하세요. 그 안에서 좋지 않은 기운이 느껴지고 있어요.”

좋지 않은 기운?

약간의 흥미가 동한 입술이, 천천히 비뚤어 올라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내 입술이…….

“좋지 않은 기운, 말씀하시는 그것이 무엇입니까?”

“……무척이나 은밀하게 만들어진 흑마법이에요.”

“호오.”

마침내 그 대답을 들었을 때는, 흡족하게 피어나고 있었다.

그건…… 적어도 내가 아는 선에서 한 치의 오류도 없는 진실이었다.

흑마법.

그 존재를 다시금 마주하는 것은, 수개월 전 확인했던 흑마법사 잔당들의 은신처 이후로 처음이었다.

세상에서 사라진 마법.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이 자리에 있는 신성제국이라는 이름 아래에 무참히 짓밟혔던 하나의 학문.

그런데 성녀는 내게, 지금 이 창고의 안에서 바로 그 흑마법의 기운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흐, 흑마법이라니?! 큰일 날 소리를 하십니다!”

로브로 가려진 성녀의 정체를 모르는 촌장은 대번에 기겁하며 손을 휘저었다.

흑마법사 말살 작전. 이 마을로 찾아온 사제들이 그것을 듣는다면, 적어도 영지의 토벌대가 찾아오는 것보다 더한 고통을 맞이하게 될 것이므로.

제아무리 산골의 마을 속에 산다고 하더라도, 신성제국의 분노가 자신들을 향하리라는 사실을 모르지는 않는 촌장이었다.

하지만 나는 손을 들어 그의 입을 다물게 하며 성녀에게 물었다.

“방금 전에 흑마법의 기운이 무척이나 은밀하다 말씀하셨지요. 그렇다면 그 시기는 짐작하실 수 있겠습니까?”

“죄송해요. 그것까지는 잘…….”

“괜찮습니다.”

내 고개가 가볍게 끄덕여졌다.

사실 때마침 이곳까지 따라온 성녀를 이용할 생각은 있었지만, 그녀가 이렇게 흑마법의 존재를 단박에 간파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토록 감추어진 흑마법의 기운이라면 대마법사나 소드마스터가 아닌 이상에야, 제아무리 사제라 하더라도 눈치채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역시 어리더라도 성녀는 성녀라는 건가.’

놀라울 정도의 재능이로군.

슬며시 휘어지는 내 눈초리가 미소를 띠었다. 아무래도 조금은 더 쓸모가 있을 것처럼 보였다.

“당장 밝혀진 것은, 전염병의 원인이 흑마법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되겠군요.”

“아마도 그럴 거예요. 정말로 전염병이 있을지는 몰랐지만요.”

“그렇다면 그 흑마법을 옮기는 ‘매개체’를 찾아낸다면, 마법이 만들어진 시기와 만든 이를 추적할 수 있겠습니까?”

“확실하지는 않지만…… 어렴풋이…….”

성녀는 로브 속에 감추어진 머리카락을 배배 꼬며 자신감 없는 투로 말했다.

하지만 불가능하지는 않을 터다. 적어도 이 기운을 감지해 낸 수준이라면 말이다.

나는 거기에 대고 약간의 확신을 불어넣어 주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짐작하고 있는 것이 있으니까요. 단지 대략적인 단초라도 괜찮습니다.”

“아, 그 정도라면 가능할 것 같기도 해요.”

“충분합니다.”

그래. 그것을 밝히기 위해, 내가 이곳에 온 것이었으니.

내 손이 다시금 뻗어져, 흑마법의 기운이 느껴지는 창고의 문을 붙들었다.

그리고 그 뒤로 성녀의 조심스러운 축복의 주문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흑마법으로부터 보호하는 상충의 충복을 부여하려는 모양이다.

“저는 괜찮으니 스스로를 보호하는 데에만 힘써 주십시오.”

“아…….”

성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축복을 완성시켰다. 하지만 그것은 나에게도 동시에 부여된 모양인지, 이질적인 감각이 몸속을 파고드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작게 어깨를 으쓱인 뒤에 촌장에게 말했다.

“이곳에서 기다리도록.”

“아, 알겠습니다.”

대화에 끼지 못하고 남겨진 촌장은 아직도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왕성에서 나온 왕족이라는 사람이 존댓말을 하는 존재. 그리고 대뜸 흑마법이 거론된 이유까지도.

물론 그런 것을 설명해 줄 이유는 없으리라.

끼이익-

창고의 문이 열리고 특유의 퀴퀴한 냄새가 물씬 느껴지는 창고의 내부가 드러났다.

나는 창고의 내부로 발걸음을 들이며 주변을 살폈다.

과연 땔감을 가져다 둔다는 말이 거짓이 아니라 하듯, 내부는 쪼개진 나무로 가득했다.

‘흑마법의 기운이 느껴진다.’

하지만 은신처에서 흡수했던 폭발할 듯한 음차원의 마나와는 달리, 이건 은밀하게 감추어진 것이었다.

오히려 그토록 드러나 있던 것이 특이한 경우라고 할 수 있겠지.

일순, 잠자코 있던 오러가 들끓으며 주변으로 얇게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기감이었다.

팟-

퍼져 나간 기감은 이십 평 남짓한 창고 내부를 가득 채워나갔다.

이윽고 내부를 샅샅이 훑은 뒤에, 내게 정보를 남기고 차차 회수되어 갔다.

……그렇군.

“저기, 몸은 어때요?”

내가 흑마법의 영향으로 멍하니 서 있는 것이라 생각했는지 성녀는 나를 올려다보며 불안감을 표했다.

확실히, 그들이 사용하는 음차원의 마나는 사람의 마음을 파고들어 혼란스럽게 하는 경향이 있었다.

물론 그런 것이 내게 통할 리는 만무했지만 말이다.

나는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다가 입을 열었다.

“흑마법의 기운이 느껴집니다.”

“그건 저도 아는데…….”

“하지만 지금은 움직이고 있군요.”

“네?”

“뭐, 이변을 느끼고 도망가려는 모양입니다. 아마 처음부터 그렇게 설계되어 있었겠지요.”

“그게 무슨…….”

영문 모를 소리.

하지만 그렇게 말한 순간이었다. 내 시선이 장작 사이로 뻗어지더니, 이윽고 차갑게 내리깔아졌다.

그리고.

“찾았군.”

파앗-

“……아!”

쿠구구구구구-!

성녀는 문득 막강한 위압감을 느끼고 몸을 움찔거렸다.

마치 거대한 바위가 짓누르고 있는 듯한 감각.

순간적으로 눈앞의 장면들이 일그러져 보인다고 생각이 들 정도로 막강한 존재감이 발현된 것이다.

하물며 그 위압감이 그녀에게로 향한 것이 아니었음에도 놀랄 정도로 거대한 힘이었다.

성녀는 쭈뼛 서는 머리카락의 감각을 느끼며 되물었다.

“저, 전하? 방금 전의 그건…….”

“그것보다, 지금 확보한 저 매개체를 확인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매개체라면…….”

성녀의 시선이 내가 가리킨 방향을 향해 움직였다. 이윽고 그녀는 장작 사이에 숨어 있던 무언가를 발견하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쥐?”

녀석은 무언가에 붙들린 듯 가만히 꿈틀거리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도 마찬가지였다.

그것이 내가 내뿜은 살의에 의해 본능이 마비된 것이라는, 사실쯤은 말할 것도 없을 테지.

내 입술이 비뚜름히 올라갔다.

“흑마법으로 만들어진 패밀리어입니다.”

“패밀리어…….”

“아마도 녀석의 목적은, 이곳에서 마법진을 완성시키고 전염병을 퍼뜨리는 것이겠지요.”

……그래, 놈을 다스리는 주인의 명령으로 말이지.

나는 확답하듯 차갑게 뇌까렸다.

여기까지는 회귀 전의 조사로 밝혀진 사실의 전부였다. 하지만 그다음으로, 아직 풀지 못한 퍼즐이 남아 있으리라.

“조금 있으면 사제들과 기사들이 추가적인 매개체를 회수해 올 것입니다. 하지만 그건 흑마법사 추적엔 도움이 되지는 않겠지요. 이 패밀리어를 통해 시기와 뒷배를 추정해 낼 수 있겠습니까?”

“하, 한번 해 볼게요.”

성녀는 그렇게 말하며 로브 사이로 감추어져 있던 금빛 머리 장식을 가볍게 어루만졌다.

그러자 머리 장식이 번쩍하고 빛나더니, 기다란 지팡이 같은 것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익히 들어 본 형태의 물건이었다.

‘……영광의 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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