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96화
풀리지 않았던 수수께끼 (5)
고고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은빛의 지팡이. 메이스처럼 뭉툭한 지팡이의 끝.
그리고 그 사이로 얼핏 드러나 있는 신성철.
고대의 시대부터 대를 이어 계속해서 전해져 왔다는 보구. 영광의 홀이었다.
……교황의 지팡이, 저것을 성녀에게 맡겨 두었나 보군.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런 게 아니었다.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대략 한 시간 정도면 될 것 같아요.”
“그렇군요.”
나는 그 모습에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야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한 시간이라는 순간은, 회귀 전에 전염병의 원인을 밝혀내는 데에 소모되었던 노력과 시간을 비교하면 무척이나 짧았다.
* * *
설명을 들은 에스테반의 기사들은 놀라다 못해,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상황이었으니, 말을 더듬은 것도 당연했으리라.
“저, 정말로 전염병의 징조가 있었군요.”
명령에 따르면서도 반신반의했던 것이 진정 사실이었다니…….
그도 그럴 것이, 듣도 보도 못한 어느 화전민 마을에서 갑자기 전염병이 발생할 거라는데 그것을 단박에 수긍할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하지만 정말로 1왕자의 말대로…… 아니, 그 이상으로 놀라운 일이 이곳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흑마법이라니…….”
새삼 기사들의 존경스러운 눈빛이 나를 향했다.
나는 그런 눈빛들을 가볍게 흘려 넘긴 채 조지를 바라보며 물었다.
“수상한 것은 발견했나?”
“뭐, 이게 맞는지는 모르겠는데 대충요.”
녀석은 어깨를 으쓱이며 자신의 검지와 엄지 사이에 끼어 있는 무언가를 건넸다.
나는 녀석이 슬그머니 건넨 것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대로 찾아왔군.”
옷감처럼 찢어진 갈색 양피지, 그리고 그 속에 그려진 기하학적인 마법 문양.
그 마법진의 정체가 무엇이든 상관없었다. 그 안에서 스멀스멀 흘러나오는 어두운 기운이 눈에 훤히 보였으니까.
그건 흑마법의 힘이 확실했다.
녀석은 마치 더러운 것을 만진 것처럼 손을 털다가 말했다.
“더 샅샅이 뒤져 보면 모르겠는데, 당장 발견된 것은 하나뿐입니다.”
“그렇군. 수색을 이어 가도록.”
나는 그렇게 지시를 내리며 양피지를 품속으로 집어넣었다.
하지만 그때, 조지의 뒤를 따라왔던 팔라딘 롤랑이 내게 말했다.
“그것을 어째서 에스테반의 1왕자 전하께서 챙기시는 것입니까?”
“뭐지?”
“그것은 흑마법의 기물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성국의 관리하에 안전히 보관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호오, 그래?”
나는 흥미로운 것을 들었다는 듯 감탄사를 흘렸다. 그러고는 조소를 지으며 물었다.
“건방지군. 권고도 아닌 강압적으로 가져가겠다는 건가?”
“강압적이 아닙니다. 흑마법에 관한 것은 응당 성국이 관리해야 하는 것이 맞습니다. 성기사의 직책으로서 교리를 따를 뿐입니다.”
“재미있는 견해군.”
“전하께서 앞으로도 성국과의 관계를 이어 가고 싶다면 그것을 양보해 주십시오.”
“뭐, 그러지.”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순순히 그것을 건네주었다. 그러자 그것을 건네받은 팔라딘 롤랑은 발걸음을 돌려 어디론가 사라졌다.
당연히 이 장면을 지켜보고 있던 조지는, 눈을 흘기며 내게 물어 왔다.
“혹시 어디 머리라도 맞으셨습니까? 그 어렵게 구한 것을 왜 건네줍니까?”
“건네주어도 상관없는 물건이었다.”
딱히 추적에도 사용할 수 없는 데다 흑마법을 연구할 것도 아니었으니, 상관없다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들을 조지가 아니었다.
“……무언가 꿍꿍이가 있으시군요. 애초에 저런 강압적인 태도에 팼으면 팼지, 쓸모없다 해서 순순히 건네줄 사람이 아니잖습니까?”
“어디 마음대로 생각하도록.”
“…….”
나는 그렇게 의뭉스럽게 웃으며 대강 답했다.
조지 역시도 구태여 더 캐묻고 싶은 마음은 없는 듯했다.
이윽고 녀석이 떠나간 뒤에, 기다리고 있던 촌장이 다가오며 조심스레 물었다.
“저…… 혹시 와, 왕자 전하셨습니까?”
“그래.”
“헙……! 여, 영광입니다.”
이런 귀가 어두운 산골이라도 으레 전국으로 퍼진 소문은 들리기 마련이었다.
야만족의 땅을 습격했다던가, 드워프들을 구해 왔다든가 하는 등의 업적이 바로 그것이었다.
촌장 역시 그런 것을 들어 보았는지, 어느새 두려움을 지워 내고 경외감 가득한 눈빛을 보내기 시작했다.
물론 내가 자신들을 해하기 위해 찾아온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은 탓도 있으리라.
나는 그런 촌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마을의 동쪽과 남쪽. 그 두 방향에서도 흑마법의 기운이 느껴진다. 그곳에도 쥐가 출몰할 만한 장소가 있나?”
“아, 아마도 그럴 것입니다. 짐작 가는 데가 있습니다.”
“안내하도록.”
당연히 녀석들이 조종하는 패밀리어는 하나가 아니었다.
그러니 성녀가 흑마법의 기운을 추적하는 동안, 나 역시도 나머지 패밀리어들을 마저 처리할 생각이었다.
슬슬 눈치챘을 녀석들의 눈과 귀를 막기 위해서.
“빠르게 움직이지.”
한 시간. 그 전에 모든 준비를 마쳐 둘 것이다.
* * *
자리에서 일어나 술잔을 기울이는 용병들. 그것을 보며 깔깔대는 녀석들의 동료.
용병들이 모인 술집의 분위기는 무척이나 요란스러웠고, 또한 그 소음에 귀가 아플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도 조용히 식사를 이어 가는 남녀가 있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주변의 그 누구도 그들의 모습을 이상하다 여기지 않았다.
마치 그 자리에 아무도 없다고 말하는 것처럼. 그들은 다른 용병들의 인식 밖에서 차분하게 식사를 이어 가고 있었다.
“…….”
그렇게 식사를 이어 가던 남자의 머릿속에서, 갑자기 무언가가 뚝 끊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처음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다른 감각 하나가 더 끊어지며 결국 남자의 표정을 일그러지게끔 만들었다.
머릿속으로 끊어지는 이 감각들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탓이다.
“……제길, 패밀리어와의 연결이 끊겼다.”
“뭐?”
그 말에 맞은편에 앉은 검은색 로브 사이에서 여성의 앙칼진 물음이 튀어나왔다.
패밀리어, 남자가 말하는 그것은 분명 화전민 마을에 심어 두었던 녀석들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것이 갑자기 왜 끊긴단 말인가? 로브를 뒤집어쓴 여자는 불쾌함을 여실히 드러내며 말했다.
“그 패밀리어는 내가 개발한 키메라를 기조로 만들어진 녀석이야. 아무런 예고 없이 연결이 끊어질 리가 없어. 네가 마력을 똑바로 관리하지 못한 거 아니야?”
“닥쳐 아델, 하나가 아니다. 외부적인 요인에 의해 끊어진 것이 분명해.”
“외부적인 요인이라면…….”
“아무래도 패밀리어들의 존재를 들킨 것 같군. 두 마리가 죽었다.”
“하!”
그건 더욱 황당한 핑계였다.
남자의 말에 아델이라 불린 여성이 코웃음을 쳤다.
“기척조차 차단할 수 있는 키메라가 제 스스로 모습을 들켰을 리는 없을 테고, 대체 얼마나 티 나게 마력을 운용해야 그것을 들킬 수 있어?”
“농담할 기분이 아니다. 이런 일을 가능하게 하는 인물이라면…… 아무래도 고위 사제가 찾아온 것 같다.”
“……고위 사제가?”
사제라는 말에 순식간에 분위기를 바꾼 아델은 한쪽 눈을 슬며시 좁혀 나갔다.
그러고 보니, 최근 에스테반에 치료사제들이 대거 파견되었다는 소식이 들리고 있던 참이었다.
이곳, 에스테반에서까지 그 지저분한 사제의 이야기를 듣게 될 줄은 몰랐지만, 어쨌든 그의 말대로라면 고위 사제가 찾아온 것 같다는 핑계도 완전히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는 아니라는 뜻이었다.
“고위 사제라…….”
“이유는 알 수 없으나, 하필이면 이런 곳에 고위 사제를 파견한 모양이다. 그렇다면, 아무래도 패밀리어는 운 나쁘게 걸려든 것 같군.”
“아니, 운이 나쁘지는 않은 것 같아.”
“무슨 소리지?”
순간 아델의 눈이 살기로 번뜩였다.
이미 패밀리어의 존재가 들킨 이상, 이대로 전염병을 일으킨다는 작전은 실패했다고 봐도 무방했다.
어차피 가벼운 실험의 일종이었으니 작전의 성패의 여부야 상관없었다. 하지만 그 실패의 원인이 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신성제국의 사제가 아닌가?
그렇다면 이야기가 다르지.
“마침 잘 됐어 로이, 사제들을 죽이러 가자.”
“죽이는 건 간단한 일이지. 하지만 괜한 흔적을 남기게 될 텐데?”
“상관없어. 어차피 키메라가 놈들의 손에 들어가게 된 이상, 흑마법의 소행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테니까.”
그리고 녀석들에게 그렇게 쉽게 새로운 키메라의 정보를 넘길 수야 없지.
아델이 만든 흑마법의 정수인 키메라를 넘겨주느니, 차라리 마을의 녀석들을 모조리 죽이고 다른 흔적을 남기는 것이 좋을 수도 있었다.
어차피 흔적을 뒤쫓아 온다 해도 녀석들이 자신들을 잡을 방법은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그들에겐 그럴 만한 자신이 있었다.
“아직 죽지 않은 다른 녀석들도 회수해 와야 할 테고.”
“그렇군.”
이윽고 고개를 끄덕인 남자, 로이가 비릿한 미소를 흘렸다.
“나쁘지 않은 생각이다.”
즉시 움직이지.
* * *
찍-!
간결하게 내질러진 검에 꿰뚫린 쥐가 비명만을 남긴 채로 사라졌다.
꿰뚫린 쥐의 사체에서는 피 대신에 시커먼 연기만이 뿜어져 나왔다.
……이번이 마지막인가.
치이익-
매개체였던 사체를 들어 올리자, 뜨거운 감각과 함께 착용한 장갑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새카맣게 장갑 전체로 변색 되고 있는 그 모습은, 누가 보아도 심각한 기운을 내포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그것을 마법 처리된 보관함에 담을 뿐이었다. 그러고는 오염된 장갑도 함께 집어넣었다.
총 세 마리의 패밀리어. 개중 한 마리는 성녀에게 맡겨 두었으니, 가론 마을에 있던 패밀리어를 모두 처리한 셈이었다.
“……일단 전염병의 발생은 막았다는 건가.”
그러나 이 일의 원흉이 남아 있는 한, 앞으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0에 수렴하지 않을 터였다.
최소한 이번 일을 깔끔하게 매듭지어 허튼수작을 부리지 못하게끔 만드는 것이 좋겠지.
게다가 부정적인 기운이라는 것이 그렇게 쉬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었으니, 정화 작업도 사제들이 풍족한 이 시기 사이에 계속해서 이어 나가야 할 터였다.
“일단 첫 번째 정화 작업은 끝났습니다.”
촌장과 함께 마을의 중앙으로 돌아오자, 조지가 일차적인 정화가 끝난 사제들을 통솔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화전민들이 놀라지 않도록 제법 질서 정연하게 움직이는 것이, 역시나 연방제국의 총 참모가 될 미래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 주고 있었다.
“뭐,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군. 수고했다.”
“…….”
나는 그렇게 말하며 마을을 더 자세히 둘러보았다.
관리조차 받지 못하고 허물어지고 있는 허름한 나무집들. 마땅한 가축조차 없는 기근. 피죽조차 제대로 먹지도 못했는지 무척이나 야윈 화전민들.
‘당장에는 해치지 않는다 한들 결국은 도망자의 신세라 이건가.’
……창문 사이로 보이는 그런 그들의 모습은, 아까보다야 나아졌다지만 여전히 불안감에 떨고 있었다.
“그러면, 이제 사제들과 성기사들은 어쩔까요? 일단은 다음 지시가 있기 전까지 휴식을 취하라 할까요?”
“아니.”
조지의 묘한 시선이 이어질 때쯤, 내 입술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지금 즉시 기사들로 하여금 화전민들을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키라고 일러라. 그리고 사제들과 성기사들에게는 그사이, 만에 하나 벌어질 흑마법사와의 교전을 대비하라고 설명하도록.”
“예?”
“최대한 빠르게 움직여라.”
녀석은 그 갑작스러운 명령에 무슨 일인가 싶어 당황해하며 눈을 굴렸다.
촌장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설명해 줄 내 몸은 어느새 녀석을 지나쳐 걸어가, 성녀가 있을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물론 내 시선은 창고를 향하고 있던 것이 아니었다. 보다 너머로 거뭇하게 느껴지는 기감들.
‘두 명.’
……그래, 내 시선은 패밀리어의 이상을 느끼고 찾아온 흑마법사들에게 향해 있었다.
나는 미소를 머금으며 허리춤에 매인 엘베른을 쓰다듬었다.
“언제쯤 모습을 드러내나 했는데.”
이제야 나타났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