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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97화 (97/223)

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97화

풀리지 않았던 수수께끼 (6)

뭐, 일부러 그 점을 노리면서 다른 패밀리어를 바로 잡지 않고 남겨 놓긴 했으니까.

아마 저들로서는 남은 패밀리어를 회수하고자 이곳으로 들를 수밖에 없었으리라.

자신들이 몸을 의탁하고 있는 ‘그곳’의 정체가 밝혀진다면, 단순히 흑마법사의 존재가 드러나는 것 외에도 커다란 파장을 불러오게 될 것이 분명했으니까.

‘물론 이곳에 있는 사제들을 처리하고자 하는 의도도 있었을 테지.’

아마 사제와 성기사 몇 명 정도만 잡으면 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설마 성국에서 왔던 모든 사제가 이곳에 와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나는 여유롭게 발걸음을 옮기며 기감의 주인공들을 향해 걸어갔다.

녀석들은 이 장소가 익숙한 듯 산길을 헤치며 걸어오고 있었다.

이윽고…….

저벅-

“어머?”

앞길을 가로막은 내 모습에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여성의 놀란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러고는 주변을 둘러보며, 근방에 아무도 없는 것을 깨닫고는 내 목적이 그들에게 있었음을 한 번 확인했다.

“우리가 보여? 어떻게?”

“…….”

“일단은 아무래도 좋은 의도로 찾아온 것 같지는 않네.”

나는 그 물음에 답하지 않았다. 다만 엘베른을 뽑아 들며 그녀의 물음에 확신을 남겨 줄 뿐이었다.

그때, 옆에 선 남자가 잠시 얼굴을 찡그리더니,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은빛 머리카락에 붉은 눈……틀림없다. 저 남자는 에스테반의 1왕자다.”

“저 사람이? 정말? 잠깐, 그런 사람이 왜 여기에 있어?”

“모르겠다. 어쩌면 사제들을 따라온 것일 수도 있겠군.”

그렇게 말하는 흑마법사들의 주변에는 무언가 익숙한 감각이 느껴지고 있었다.

은은하게 퍼져 나가는 음차원의 마나.

인간은 부정적인 것으로부터 눈을 돌리고 싶어 한다고 했던가?

아마도 저것이 놈들의 존재를 감추어 주는 역할을 하고 있겠지.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보다.

“건방지군.”

……감히 나를 앞에 두고 허튼소리만 지껄이고 있는, 저 흑마법사들이 더욱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핑-!

“큭!”

“흠!”

공기가 얼어붙는 것 같은 살기가 녀석들을 옥죄었다.

그러자 놈들의 몸에서 흘러나오던 음차원의 마나는 어느새 태양 앞의 반딧불이처럼 그 모습을 감추었다. 더 강한 힘 앞에서 무력하게 꼬리를 말고 사라진 것이다.

이제야 이 상황에 대해 이해했는지, 녀석들은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고 있던 여유를 지워 내며 급히 지팡이를 꺼내 들었다.

“……로이, 방금 그건?”

“……아마도 기사들이 내뿜는 살기의 일종이다.”

“말도 안 돼. 기사의 살기 따위가 우리가 만든 흑마법의 마력을 무효화시킨다고? 이건 뭔가…….”

“1왕자는 검술에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 했으니…… 불가능하지는 않을 수도 있지.”

하지만 세간에 알려진 ‘1왕자’의 검술은 이제 막 오러를 다루는 정도라고 알려져 있다.

이제 겨우 스물한 살에 가까운 어린 나이임을 생각한다면 그것만으로도 무척이나 월등한 재능이라 말할 수 있을 터다.

하지만, 그 말은 다르게 말하자면. 그래 봤자 아직은 고위 마법사들을 당해 낼 수 없으며, 당장 낼 수 있는 출력에도 한계가 있단 소리기도 했다.

결코 지금의 그들이 펼친 결계와 마법을 막거나, 강제로 파해할 정도의 힘은 낼 수 없을 터인데…….

그렇다면 귀결되는 정답은 단 하나였다.

빠득─

남자는 가볍게 자신의 입술을 깨물었다.

“힘을 숨기고 있었군.”

“……그래.”

녀석들은 마른 입술을 적시며 조용히 대화를 나누었다.

물론 그 거리에서 내가 듣지 못할 대화는 없었다.

‘로이.’

익숙한 그 이름에 내 눈썹이 작게 들어 올려졌다.

“로이와 아델, 강경파를 이끄는 두 흑마법사인가? 그렇다면 여자 쪽이 아델이겠군.”

“너, 너 뭐야? 대체 그걸 어떻게 알고 있어?”

순식간에 정체를 들킨 검은 로브의 여자가 당황하며 중얼거렸다.

왕자가 그들이 흑마법사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점은 이해할 수 있었다.

지금도 멈추지 않고 흑마법사 특유의 어두운 기운을 풍기고 있었으니, 하지만 ‘강경파’라는 것을 입에 담는 것은, 도무지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건, 같은 흑마법사 내부에서도 극히 일부만이 사용하는 표현이었으므로.

반대로 그들의 정체를 확신하게 된 내 입술은 비뚤게 일그러졌다.

“아쉽게도 내 계획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이 걸렸군.”

“뭐?”

“뭐, 어차피 잘됐다. 정보를 얻는 데 숨이 붙어 있지 않아도 지장은 없다는 소리니.”

“……!”

“조심해, 로이!”

서걱-!

“흡!”

여자의 비명과도 같은 외침이 들려온 직후, 눈 깜빡할 사이에 다가와 내질러진 검이 남자의 팔을 잘라 냈다.

로이의 얼굴이 고통으로 와락 일그러졌다.

“대체 어느새…….”

보이지 않는 움직임.

하지만 그저 당하기만 할 생각은 아니었는지, 놈이 잘린 오른팔에 시선을 던지면서도 급히 마나를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물론 그것을 마냥 두고 볼 내가 아니었다.

덥석-

콰직-!

“컥!”

입이 왼손에 틀어막힌 남자의 머리가 그대로 나무에 거세게 들이박혔다.

그와 동시에 놈이 움직이던 마나가 흩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주문의 사용을 저지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주문이 시전되기 전에 그것을 자의든 타의든 멈추게 하면 되는 것이었다.

말 그대로 가장 간단하고, 쉬운 방법이었다.

하지만 녀석의 마법적인 성취는 생각보다 뛰어났는지, 아쉽게도 잘린 오른팔에서부터 응집되던 마나만큼은 멈추어지지 않고 이어졌다.

이미 마법이 발동되고 있던 것이다.

쿠구구궁-!

오른팔이 부풀어 오르고, 이내 커다란 진동과 함께 일 점으로 수축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폭발하기 직전의 화약고를 보는 것만 같았다.

‘신체 부위의 일부를 폭파시키는 흑마법이군.’

잘리는 순간까지 저런 것을 발동할 줄이야.

보통이었다면 꽤나 위협적이었을 거다.

그래, 보통이었다면 말이다.

‘먹어 치워라.’

나는 그 모습을 무심히 바라본 뒤, 마법 각인에 저장되어 있던 마력을 일시에 해제했다.

파앗-!

그러자 파동처럼 퍼져 나간 마력이, 녀석의 떨어져 있던 오른팔에 맞닿으며, 그것을 지워 나가기 시작했다.

천천히, 마치 숙주를 좀먹듯이 그 구조를 알알이 파괴하였다.

일 점으로 수축했던 오른팔도. 이를 가능케 만들었던 부정적인 기운들도.

그 모든 것들을 먹잇감을 노리듯 게걸스럽게 먹어 치우기 시작한 것이다.

반경의 모든 마법을 무효화시키는 마력 장악의 발동이었다.

“……!”

필시 공격이 먹힐 거라 생각했던 로이는 머리를 부딪쳐 혼미한 정신 속에서도 눈을 부릅뜨며, 그저 그 광경을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

이미 발동된 마법이 사라진,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이 상황.

그리고 그 실패의 대가는 녀석에게 남은 나머지 팔 한 짝이었다.

서걱-

“허튼수작이 통할 거라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큽!”

쿵!

어깻죽지 아래로 모조리 사라진 녀석의 두 팔. 나는 아직 잡혀 있는 녀석의 얼굴을 그대로 바닥으로 내던졌다.

녀석은 과도한 출혈과 고통으로 인해 이미 숨이 끊어진 상태였다.

그렇게 차갑게 늘어진 시체 위로 싸늘한 음성이 내려앉았다.

“일단 한 놈은 확보했군.”

어느새 검은 로브의 여성, 아델은 이 자리를 벗어난 지 오래였다.

애초에 ‘대인’ 전투에 특화된 이도 아니었을뿐더러, 이미 한 놈이 당했으니 이길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단지 놈들의 의리가 거기까지였다거나.

‘뭐, 수준도 알 만하네.’

나는 여유롭게 어깨를 으쓱이며 여성이 도망간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방향은……공교롭게도 사제들과 성기사들이 모여 있는 방향이었다.

물론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 방향으로 도망가기를 유도한 것은, 바로 나였으니까.

“……인형술사 아델이라 했던가.”

네 녀석은 부디 내가 원하는 것을 보여 주었으면 좋겠군.

회귀 전의 기억을 떠올리는 내 눈이 흥미롭게 휘어졌다.

* * *

허억- 허억-

아델은 미친 듯이 산길을 헤치며 도망치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 어찌 보면 시체처럼 창백하게 보이기까지 할 정도였다.

그녀가 그렇게 기를 쓰며 도망가는 이유는 간단했다.

‘로, 로이를 가지고 놀다니…….’

멸망 당한 흑마법사들에겐 양지의 다른 마법사들과는 달리, 그 경지의 수준을 나누는 등위가 존재하지 않았으나, 그녀는 로이의 마법이 얼마나 강력한지 알고 있었다.

가디언급 마법사 정도라면 능히 아이 다루듯 할 수 있는 수준의 마력.

그리고 뭇 마법사의 천적이라 불리는 기사들에게조차 근접전에서 밀리지 않는 마법의 운용력.

분노라는 감정만을 가지고 살아온 그 남자는 아델이 아는 그 누구보다 호전적이었으며, 또한 파괴적이었다.

하지만 그런 로이가 제대로 된 반격 한 번 하지 못하고 순식간에 당했다.

그녀로서는 어떻게 당했는지조차 짐작이 가지 않았다.

잠시 눈을 깜빡이자, 순식간에 그의 한쪽 팔이 떨어져 나가고 있었을 뿐이다.

비록 전력을 다한 싸움이 아니었다지만, 이토록 허무하게 당한다는 것은 그녀가 아는 상식선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러니 지금 그녀를 잠식하고 있는 공포는 오로지 미지에서부터 비롯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1왕자는 우리를 알고 있었지.’

문득, 그녀의 몸이 오한이 든 듯 부르르 떨렸다.

정말로 자신은 1왕자에게서 도망쳐 나오고 있는 것이 맞을까?

이런 발버둥조차 그의 손바닥 안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온갖 상념이 아델을 집어삼켰다.

인제 와서는 이 도망조차 덧없는 발악에 불과할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대체 무엇을 위해 지금까지 악착같은 삶을 버텨왔던가?

어느새 그녀의 손에는 작은 알약이 들려 있었다.

‘어떻게든 흔적을 회수해야 해.’

그리고 어떻게든 살아서 도망쳐야 한다.

그래야 적어도 ‘강경파’의 흔적을 감출 수는 있을 테니까.

혼란스러웠던 그녀의 머릿속으로 오직 한 가지 일념만이 맴돌기 시작했다.

……생존.

아델은 손에 들린 알약을 다급하게 삼키며 눈을 번뜩였다.

그런 그녀의 주변으로 형용할 수 없는 끔찍한 기운이 솟아올랐다.

이 알약은, 강경파에게 주어진 최후의 수단이었다.

* * *

신성제국의 팔라딘, 롤랑의 곁으로 성기사들이 다가왔다.

“에스테반의 1왕자께서 교전에 대비하라 하십니다.”

“나도 안다. 그래, 미리 전투대형을 유지하고, 성역이라도 준비하면서 교전의 피해를 막으라고 했다던가?”

“그렇습니다.”

“후, 그는 대체 성역을 유지하는데 얼마나 많은 노력과 자원이 필요한지 알긴 하는 것인가?”

롤랑이 까칠하게 답하며 불만을 표출했다.

애초에 그는 이 상황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고작 소국 따위가 성국이 휘두르려 하다니.’

오로지 로에나의 권세만을 위해 검을 휘둘러 온 롤랑이었다.

빛 아래 정의가 있다.

그 일념 하나로 성기사가 되었고, 재능이 있던 그는 결국 팔라딘이라는 영광스러운 자리에까지 오르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의 모습은 뭔가?

고작 이딴 소국이 뭐길래 그들이 아쉬워하며 이것저것 챙겨 가며 고위 치료사제까지 다수 파견해야 한단 말인가? 대체 대사제들은 어째서 그런 것을 허가했단 말인가?

신성철에 대한 양국의 거래를 알지 못했던 그였기에 당연히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미 출발하기 전, 그런 점부터 마음에 들지 않거늘.

정작 도착한 에스테반에서도 1왕자는 사제와 성기사들을 마치 하인 다루듯, 멋대로 명령을 내리며 이런 오지로 보내기까지 했다.

마치 응당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대하듯, 오만하고 건방지게 행동한 것이다.

사제들이야 원래 그들이 하던 일의 연장이었기에 큰 반감이 없었으나, 자존심으로 똘똘 뭉쳐 있던 그는 아니었다.

심지어 성녀님을 앞에 두고 그런 건방진 태도까지 보이다니…….

‘천둥벌거숭이 주제에.’

까드득-

롤랑은 작게 이를 갈며 중얼거렸다.

“운 좋게 발견한 흑마법사의 흔적에 앞뒤도 분간하지 못하는 꼴이라니…….”

“어떻게 할까요? 우선은 지시에 따르시겠습니까?”

“허무맹랑한 소리다. 감히 천한 흑마법사들 따위가 신성제국의 성기사들을 앞에 두고 덤벼들 리 없다. 설사 녀석들이 미쳐 돌아서 덤빈다고 하더라도 성역까지는 필요도 없지. 언제나처럼 처리한다.”

그래, 그건 자신감이었다.

지금껏 그래 왔던 것처럼, 그 누구도 성국에 맞설 자가 없다는 것을 확신하는 자신감.

흑마법사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놈들은 고작 성국의 척살 대상일 뿐, 결코 적수가 되지는 못하리라.

……그래, 지금껏 그래 왔던 것처럼.

“그렇다면 언제나처럼 2인 1조로 나눠 도망칠 녀석들을 추적하고, 그사이 사제들은 휴식을 시키겠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그는 그렇게 일축한 뒤에 몸을 돌렸다. 하지만 그 순간, 문득 롤랑의 피부로 섬뜩한 감각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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