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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98화 (98/223)

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98화

풀리지 않았던 수수께끼 (7)

몸에 엉겨 붙는 듯한 진득한 살의와 분노. 그리고 짙은 음차원의 마나.

이런저런 토벌 작전에 꽤 참여했던 그로서도 한 번도 느껴 본 적 없는 수준의 흑마법이었다.

롤랑은 온몸의 털이 삐죽 솟는 것을 느끼며 불안감에 휩싸였다.

아니, 자신이 불안함에 휩싸였다는 것을 깨닫고는 몸을 떨었다.

그 머릿속으로, 1왕자가 내리고 떠난 명령이 불현듯 떠올랐기 때문이다.

‘정말로 교전이 벌어질 거라고…….’

그러는 순간에도 끔찍한 흑마법의 기운은 점차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방향은…… 명백히 자신들을 향해 있었다.

“전투태세에 돌입하라!”

롤랑은 저도 모르게 비명과 같은 고함을 내질렀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그가 소리 지른 직후, 사제들이 휴식을 취하는 땅바닥에서 꽃이 피어나듯 검은색 기운들이 솟아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그 거뭇한 기운 속에서 나타난 것은, 인간의 형태를 한 유령들이었다.

‘스펙터!’

그리고 그 정체는 롤랑 역시 익히 알고 있는 것이었다.

상황은 순식간에 급박하게 돌아갔다.

“전투준비!”

“흑마법사의 소환물이다! 축복을 사용하라!”

철컥-! 철컥-!

여기저기서 무구를 정렬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성기사들이 3미터 남짓한 랜스를 곧추세우며 스펙터들의 앞을 가로막았고, 사제들은 다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나며 축복의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로에나여,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시옵소서!”

“로에나를 위하여!”

우우우우웅-

치지직-!

캬아악!

밝은 빛무리가 마을을 가득 메웠다.

그 축복이 향한 곳은 피어나고 있는 스펙터들의 머리 위. 스펙터들은 괴이한 소리를 내며 신성력에 태워져 사라져만 갔다.

하지만 안심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이런!”

“놈들이 또다시 생성된다!”

소멸한 스펙터들 아래에서 거뭇한 기운이 또다시 솟아올랐다.

문제는 그 숫자가 명백히 방금과 비교해 배는 많아 보인다는 점이었다.

거기에서 또다시 스펙터가 태어난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저건…….’

그때, 명령을 내리던 롤랑의 시선에 무언가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끔찍한 기운을 몸에 품고 다가오는 검은색 로브. 그리고 그 인영의 손에서부터 내던져지고 있는 무언가.

‘……머리카락?’

그렇게 던져진 머리카락은 땅바닥으로 날아가더니 더 큰 검은색 기운으로 피어나고 있었다.

저자였다. 저자가 분명했다. 이 당혹스러운 사태의 원인이자, 이 마을에 흔적을 남겨 둔 흑마법사…….

‘하필이면 치료사제밖에 없는 지금에……!’

이미 자신이 내린 명으로, 소수의 성기사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수색을 위해서 흩어진 상황!

팔라딘 롤랑은 그제야 자신의 방심을 후회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지금은 그저 늦기 전에 이 사태를 정리하는 것만을 생각해야 할 따름이었다.

입술을 깨물던 롤랑이 다급하게 지시를 내렸다.

“사제들은 성역을 전개하라! 전투에 능한 사제의 수가 부족하니 최대한 빠르게 끝내겠다!”

“모든 것은 신의 뜻대로!”

롤랑의 눈빛을 받은 사제들이 재빨리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무릎을 꿇은 채 기도하는 그들의 몸 밖으로, 어느새 순백의 기운이 넘실대며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우우웅-!

성역은 주변 일대의 신성력을 포화 상태로 만드는 최후의 정화 작업이었다.

그 안에서는 어떠한 흑마법도 사용할 수 없었고, 삿된 마음을 가진 이들은 곧장 정화의 불길 속에서 사라지기 마련이다.

롤랑이 바라던 것은 저 흑마법사의 완전한 소멸.

물론, 준비도 없이 이렇게 급작스럽게 전개했다간 그 소모 때문에 당분간 사제들을 운용하기는 힘들 테지만, 아마 저 원흉만 제거하면 이 사태 역시 간단하게 막을 내릴 수 있으리라.

하지만 그렇게 일대의 신성력이 극한으로 치닫고 있을 때쯤이었다.

움찔-

‘스펙터!?’

거뭇한 기운이 느껴지는가 했더니. 이윽고 기도하는 치료사제들의 사이를 비집고 스펙터들이 태어나기 시작했다.

‘대체, 어떻게 성역 내부에서 스펙터가!?’

그렇게 나타난 스펙터는 모두 두 마리.

지금 이 장소는 신성력으로 말미암아 로에나의 성역이 될 장소였다. 한데 어찌 저딴 삿된 것이 끼어든단 말인가?

‘감히 이곳이 어디라고……!’

비록 그 움직임이 둔하긴 하나 틀림없이 움직이고 있다.

지금 일어나는 일 하나하나가 모두 그의 상식과는 벗어나 있었다.

하지만 그것에 일일이 놀랄 겨를은 없었다.

“성기사들은 당장 삿된 것들을 처리한다!”

사제들이 기도에 열중하고 있는 지금. 녀석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자신들뿐이었으니까.

챙-

롤랑은 성역화를 방해하는 스펙터들을 향해 이빨을 드러냈다.

은빛의 롱소드는 신성력으로 타오르며 전방으로 겨누어졌고, 이내 스펙터들을 향해 휘둘러졌다.

후우우웅!

챙-!

하지만 일격에 놈들을 베어 버릴 듯 휘둘러진 공격은, 이내 무언가에 막히며 반발력으로 밀려져 나왔다.

롤랑의 눈썹이 동요로 크게 꿈틀거렸다.

‘스팩터 따위가…… 이 공격을 막았다고?’

성역 내에서 움직이는 것도 그렇고, 평범한 스팩터가 아님이 분명했다.

반드시 여기서 막아야 한다.

지금도 놈들의 방해 탓에 사제들의 집중력이 흔들리는 상황. 저 녀석들을 더 이상 방치했다가는 아예 성역화가 깨질 수도 있었다.

‘오냐, 감히 로에나의 성역에 오점을 남기려 한 죄를 묻게 해 주지.’

그렇게 생각한 롤랑의 검이 신성력으로 뒤덮였다. 그야말로 전력이라 할 수 있는 수준의 힘이었다.

그러고는 아까에 비할 수 없는 정도의 속도로 거세게 휘둘러졌다.

……그 순간이었다.

“멈추세요, 롤랑.”

화르르륵-!

어디선가 들려온 단아한 음성이 끝나기가 무섭게, 하얀색의 빛무리가 그를 감쌌다.

“……!”

멸악(滅惡)의 불꽃. 롤랑의 몸은 하얀 불길에 휩싸여 타올랐다.

그 빛줄기는 빠르게 그의 몸을 싸고돌더니, 이윽고 갑자기 강한 물리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롤랑의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잡아챈 것이다.

그는 이 불꽃이 무엇인지를 이미 알고 있었다.

“……성녀님?! 갑자기 이게 무슨 짓입니까!”

그래, 그 단아한 목소리는 성녀의 것이었다.

어느새 휘둘러지고 있는 그의 검은 억제력에 의해 허공에 붙들리게 되었다. 성녀의 막대한 신성력이 그것을 가능케 한 것이다.

몸을 움찔거리는 롤랑의 목소리가 다급해졌다.

“이, 이런! 성녀님, 이거 놓으십시오!”

안 그래도 스팩터들이 날뛰고 있거늘.

어째서 존경하는 성녀가 그를 막는단 말인가?

그 와중에도 점점 기도하는 사제들에게 가까워지는 스펙터들. 이대로는 사제 중에 사상자가 나올 수도 있었다.

“대체, 대체 어째서!”

롤랑은 그렇게 성녀가 있을 곳을 쳐다보며 외쳤다. 그리고 문득 이상함을 느꼈다.

‘……뭐지?’

어느새, 주변에서 함께 스펙터를 막던 성기사들이 칼을 겨누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그 방향은 자신을 향해 있었다.

“자네들, 갑자기 왜?”

그리고 당혹감에 빠진 사제들의 모습까지.

마지막으로 진중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성녀의 모습.

그때, 성기사 중 한 명이 물어 왔다.

“롤랑 경! 대체 이게 무슨 짓입니까!”

“무, 무슨 짓이라니, 나는 그저 스펙터들을…….”

“대체 어째서 아군을 공격한 것입니까!”

“……아군?”

그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롤랑은 스펙터가 있는 장소로 시선을 휙 돌렸다.

사악한 기운으로 사제들의 기도를 방해하던 스펙터들…… 하지만 지금 그곳에 있는 것은 충격으로 인해 쓰러진 두 명의 사제들이었다.

어느덧 성역을 만들어 내던 진형 역시 붕괴된 지 오래였다.

‘이, 이게 무슨…… 나는 분명 스펙터들을…….’

롤랑은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정신을 차렸을 때는 확실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이 스펙터라 생각하고 베어 냈던 것이, 다름 아닌 성역을 전개하던 사제들이었다는 사실을.

악다문 롤랑의 입술에서 핏물이 배어 나왔다.

‘설마…….’

그런 롤랑의 질린 시선이 흑마법사가 있던 장소로 향했다.

그곳에 있던 검은 로브의 흑마법사는 어느덧 비릿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환상 마법이었다. 저 흑마법사가 자신을 현혹해 아군을 공격하게 만든 것이 틀림없었다.

그의 표정이 새하얗다 못해 거무죽죽하게 변했다.

“대체, 어떻게…….”

어떻게 저항력을 가진 그의 정신을 헤집어 놓았단 말인가.

성녀님이 아니었다면 이대로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그는 혼란스러웠다.

정신은 자유를 되찾았다지만 이 상황을 대체 어떻게 변명한단 말인가?

사제들이 신성력을 퍼부어 만들던 성역화는 사라지고, 다시금 스펙터들이 생성되고 있는 이 상황을…….

“정신 차리세요.”

“……아.”

그 순간 들려온 성녀의 목소리에 롤랑은 혼란에서 깨어날 수 있었다.

그 맑은 음성에는 항거할 수 없는 신성이 깃들어 있었다.

“쳇, 아쉽네. 조금만 더 있었으면 확실하게 조종할 수 있었는데.”

반대로 그 원흉인 흑마법사에게서는 높은 여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무척이나 끔찍하고 섬뜩한 목소리였다.

흑마법사는 짐짓 흥미롭다는 듯 혀를 삐죽이며 말을 이었다.

“그 기운, 네가 이번 성녀구나? 멀리서부터 기운을 감지하고 달려온 모양이네.”

“…….”

성녀에게서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 대신, 그녀의 손에 들린 지팡이에서 뿜어져 나온 어마어마한 신성력이 흑마법사를 집어삼켰을 뿐이다.

촤르르륵-!

챙!

“……하!”

사슬처럼 탄탄하게 묶인 신성력이 흑마법사를 옭아맸다.

하지만 조금의 움직임조차 허가하지 않을 것처럼 다가오던 빛은 이윽고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와 반대로 흑마법사의 몸에서 솟아오르는 부정의 기운은 더욱 강렬하게 그 존재감을 과시했다.

그녀는 입속에 거슬리던 가래를 내뱉으며 차갑게 중얼거렸다.

“쳇, 방심한 틈에 공격해 오다니.”

스륵-

신성력을 억지로 흩어 버린 흑마법사는 닿은 것만으로 반쯤 타 버린 검은색 로브를 벗어 던졌다.

그러자 그 안에서 심연처럼 새카만 검은색 머리카락이 흘러내렸다.

그때 모든 준비를 마친 성녀가 입을 열었다.

“감히 저희 형제님들에게 그런 사악한 짓을 하다니, 절대 놓치지 않겠습니다.”

빛의 부름.

그 직후, 밤이 오기 시작한 산골의 하늘이 전등을 수놓은 것처럼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마치 태양이 뜬 것처럼 어느덧 환하게 밝아 온 하늘.

그 속에서, 구름을 꿰뚫고 반짝이는 한 줄기의 신성이 흑마법사의 머리 위로 직하했다.

피잉-

쿠구구구구궁!

“……!”

그 어둠을 가르는 빛줄기야말로 악을 멸하는 신성력의 응집체였다.

흑마법과 신성력이라는 절대적인 상성의 우위 앞에서. 성녀가 발산하는 신성력은 그야말로 전능한 힘이나 다름없었다.

그 증거로 신성 주문이 작렬해 흙먼지가 피어오르는 장소에서는 더 이상의 부정이 느껴지지 않았고, 어떠한 기척마저도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먼지구름이 차차 개어진 그 순간, 성녀의 표정이 작게 굳어 갔다.

제압되어 있어야 할 흑마법사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고, 단지 자그마한 인형 하나와 검은색 로브가 그곳에 놓여 있을 뿐이었다.

흑마법사의 검은 머릿결을 닮은…… 그런 인형 하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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