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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99화 (99/223)

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99화

풀리지 않았던 수수께끼 (8)

“후!”

한편, 아델은 창고 내부에서 패밀리어를 회수한 채로 달아나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 숲길이었다.

그런 아델의 몸에는 자잘한 상처들이 낭자해 있었다.

“멍청하기는.”

그녀의 입술이 비뚜름히 올라갔다.

분명 그녀는 손에 꼽을 만한 실력이 있는 흑마법사긴 했다. 하지만 설마 성녀를 상대로 정면 돌파할 미친 흑마법사가 어디에 있겠는가?

애초에 그녀의 목적은 저들을 혼란시키는 사이에 도주하는 것이지, 그들을 몰살하는 게 아니었다.

그런 만큼 당연히 자신을 대신할 인형을 그곳에 세워 두었고.

다행히 지닌 능력에 비해 아직 경험이 일천한 성녀는 그것에 속아 자신을 놓치기에 이르렀다.

물론 성녀를 속일 만큼이나 그녀의 인형술 경지가 뛰어나기는 했다만, 그것도 인형과 자신을 영적으로 연결시키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으리라.

실물과 똑같은 인형. 그 탓에 인형의 피해를 자신이 일부 감당했을 정도였으니까.

‘애초에 그것을 먹지 않았으면 인형술을 써 보기도 전에 당했겠지?’

역시 성녀라는 녀석은 무시무시하군.

그녀는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며 간신히 그 자리에서 빠져나오게 만들어 준, 그 손에 들려 있는 약을 쳐다봤다.

……살아 있는 인간의 뼈를 갈아서 만든 알약.

그 안에서 만들어지는 온갖 부정적인 감정들은, 흑마법사들의 힘을 강하게 만들어 주는 원동력이 되었다.

평소라면 상대도 되지 않았을 사제들과 성녀의 발을 묶은 것은 그 덕분이었다.

단점은 부정의 힘을 끌어다 쓴 대가로 부작용이 따른다는 점을 꼽을 수 있었지만, 어찌 되었든 지금은 그런 것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부작용이고 뭐고 살고 봐야 할 일일 테니까.

‘혹시 지금이라면 놈을 상대로 이길 수 있지 않을까?’

아델은 1왕자를 떠올리며 입술을 적셔 나갔다.

하지만 망설일 것도 없이 그 고개는 내저어졌다.

강경파의 실력자 중 하나인 로이를 아이 다루듯 하던 그 힘…….

비록 단편적인 모습만을 보았다지만, 능력이 강화되어 고양감에 휩싸인 지금도 그 압도적인 힘을 상대로 이길 가능성은 전무해 보였으므로.

하지만 이제는 아무렴 상관없는 일이었다.

목표를 이루었으니 재빨리 이 자리를 뜨기만 하면 될 뿐이었으니.

그래, 그 괴물에게서부터 도망치기만 하면…….

“과연, 그 알약은 꽤 흥미롭군.”

“……!”

움찔-

문득 아델은 숲길 사이에서 들려온, 들릴 리 없는 목소리에 몸을 굳혔다.

마치 먹잇감을 기다리던 맹수를 만난 것처럼…….

그런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돌아간 그녀의 눈에는, 흥미로운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핏빛의 눈이 보였다.

“대, 대체 어떻게…….”

아델은 황망하게 중얼거리며 뒷걸음질 쳤다.

성녀를 상대하며 눈을 다른 쪽으로 돌렸고, 거기서 오는 사이에도 사방으로 뿌려 둔 디코이를 생각하면 그가 자신을 찾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렇기에 아무도 없는 길이라 생각하고 달려왔건만, 1왕자는 마치 이곳에 올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것처럼 자신을 반기고 있었다.

그리고 그게 끝이 아니었다.

풀썩-

“……로이.”

1왕자의 손에서부터 떨어지고 있는 저것은, 분명 자신의 동료였던 남자였다.

이제는 숨이 끊어져 짐 덩이의 역할밖에 하지 못하는 강경파의 흑마법사.

1왕자는, 저런 짐 덩어리를 들고도 자신을 쫓아왔다는 소리였다. 그것도, 알약을 먹은 자신을 이미 앞지를 정도의 빠른 속도로…….

‘미, 미쳤어…….’

그녀의 눈에 보이는 1왕자는 정상이 아니었다.

두 팔이 잘린 고깃덩어리를 들고 오느라 온통 피범벅이 된 몸. 그리고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시종일관 무표정을 유지하는 눈. 그럼에도 우아하게 검을 뽑아 드는 손.

……맹수?

저것은 겨우 맹수라고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괴물.

죽이는 것에 대해 그 어떤 감정조차 담지 않고, 마치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듯 자연스럽게 행할 수 있는 한 차원 위의 존재나 다름없었다.

심연과 같은 눈동자가 그녀를 완전히 옭매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청록색 검을 쓰다듬는 1왕자의 입에서는 나지막한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것은 인간의 부정적인 감정을 담아 놓은 알약인가?”

“그, 그게…….”

“뭐, 그렇게 작으니 회귀 전의 전쟁에도 걸리지 않았을 테지. 과연 마법사들이 찾지 못한 이유가 있었군.”

“…….”

회귀?

그게 무슨 말이냐며 묻고 싶었지만, 입이 열리지 않았다.

그 마음속을 점령하고 있는 것은 지독한 공포였다.

“연방제국 놈들이 재미있는 것을 만들기는 했군.”

“……!”

그리고 그 이름이 나오는 순간, 알싸한 고통이 오른쪽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상황을 인지한 것은, 뒤늦게 소리가 들린 직후였다.

서걱-

“……어?”

오른팔이 잘려 나갔다.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는 검격에, 허무하리만치 공격을 허용한 것이다.

어깨가 타오르는 것처럼 뜨거웠다.

그리고 뒤늦게 그것을 인지했을 때는 이미, 나머지 왼팔마저 차갑게 바닥으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끄으…… 윽!”

털썩-

아델은 영겁처럼 느껴지는 고통 속에서 무릎을 꿇었다.

아직 알약의 효과는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상대는 결코 반항조차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그녀를 짓밟았다.

어쩌면 처음부터 반항 따위가 허락되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이제 더 이상 1왕자에게 느껴지는 감정은 공포가 아니었다.

“쓸 만한 정보를 알게 해 주었으니 특별히 간단히 죽이지는 않으마.”

……절망.

그 웃는 얼굴로부터 치솟는 감정은 비로소 끝없는 절망이었다.

* * *

털썩-

“…….”

나는 처참한 두 구의 시체를 기사들에게 내던지며 말했다.

“정보를 알아내도록.”

“이건…… 아, 알겠습니다.”

물론 죽은 입이 말을 할 수 있을 리는 없었다.

하지만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나 정보를 알아낼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다.

당황하던 기사들은 내 의도를 깨닫고는 흑마법사들의 몸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다가오는 조지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화전민들은?”

“뭐, 재빠르게 대피했으니 당연히 피해는 없고…… 지금은 촌장이 통솔해서 데리고 오고 있을 겁니다.”

과연 그 말대로였다. 화전민들은 갑작스러운 대피 명령에 놀랐을지언정 다친 이들은 한 명도 없었다.

문제가 있다면 신성제국 측의 사제들에게서 부상자가 발생했다는 점이었다.

“……다친 사제와 성기사들은 치료를 받았습니다만, 신성력이 역류한 사제들은 내상이 깊어서 장기간 요양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군.”

신성력이 역류했다는 이들은, 성역을 전개하다 말고 검에 베여 쓰러진 이들을 뜻했다.

마법이 그러한 것처럼, 억지로 그것을 취소시키면 부작용이 따라오기 마련이었으니. 제아무리 형편 좋게 성녀의 보호막을 받았다 하더라도 내상까지는 어쩌지 못한 모양이었다.

점입가경이라 하던가?

그리고 그 사태를 만든 남자는 아직도 충격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한심하군.”

“…….”

분명 나는 다가올 전투에 대비하라 말했을 터였다. 그것이 미덥든 미덥지 않든, 우선은 따르고 봐야 하는 것이 지휘권을 가진 자가 해야 할 의무였다.

하지만 녀석은 그것을 어기고 대비하지 않았다가, 허무하게 흑마법사 하나에 농락을 당했다.

심지어 정신오염으로 조종당하기까지.

신성제국의 성기사가. 그것도 팔라딘이라는 직위에 있는 사람이 흑마법사를 당해 내지 못한 것이다.

“왜 지휘권을 가진 내 지시를 어기고 멋대로 행동했지?”

“…….”

나는 롤랑의 침묵에도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만일 처음부터 성역을 전개했더라면 최소한 흑마법사의 정신오염에 의한 피해를 입지는 않았을 테지. 내 말이 틀렸나?”

“그것은…….”

“수백의 사제와 성기사를 이끌고도 흑마법사 하나를 잡지 못하다니. 태만하군.”

“…….”

“뭐, 이런저런 이유가 있을 수야 있겠지. 믿지 못했다든지, 아니면 내 지시가 불만이었다든지 말이야.”

하지만.

내 시선이 싸늘하게 바닥에 누운 두 흑마법사에게 닿았다.

“결국 선후관계야 어찌 되었든, 놈들을 사로잡은 것은 나다. 그리고 자네가 하등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테지.”

“…….”

“흑마법사의 일은 성국이 관리해야 마땅하다고 말했던가? 하지만, 결국 이것이 현실이지. 타성에 젖어 얕보던 상대에게 당한 것이.”

“…….”

“지금부터 노획한 흑마법사의 정보는 우리 에스테반 측이 관리하겠다.”

“그, 그건……!”

철컥-!

롤랑의 움직임이 당황한 듯 순간적으로 거칠어졌다.

하지만 내 차가운 눈빛이 응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투구로 감추어진 고개를 숙였다.

우물 안의 개구리. 그 자만심이 패착을 낳은 녀석의 입장으로서는, 할 말이 없을 터였다.

저벅- 저벅-

나는 그렇게 자괴감에 빠진 녀석을 지나쳐 성녀에게로 걸어갔다.

성녀는 내상을 입은 사제들을 돌보느라 내가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다.

“성녀님.”

“……아. 1왕자 전하.”

그 이름을 부르자, 그제야 그녀가 나를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더니, 내게 다가오며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흑마법의 기운은 동쪽으로 이어져 있었어요. 저들은 연방제국에서 온 이들일 수도 있어요.”

“예, 아마 그럴 테지요.”

“……이미 알고 계셨나요?”

“대충은 짐작하고 있던 사실입니다. 확신하게 된 것은 저들과 맞붙은 뒤였습니다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회귀 전. 에스테반을 강타한 전염병이 흑마법사에 의한 소행이라는 것을 확인했을 당시에, 그들이 에스테반을 공격한 원인을 밝혀내기 위한 조사가 이루어졌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밝혀진 사실은 없었다.

전염병을 만든 흑마법사들이 대체 누구인지도. 대체 무슨 이유로 에스테반을 공격했는지조차도…….

물론 물증은 부족하더라도 심증은 존재했다.

어쩌면 그것이, 연방제국에서 사주한 일이 아닐지에 대한, 그런 의문이.

당연히 그러한 의견은 귀족들에 의해 순식간에 묵살 되었다. 그리고 결국에는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로써 역사에 남게 되었다.

그러나 그 심증에 대한 부분이 비로소 오늘이 돼서야 증명되었다. 바로, 두 흑마법사의 존재로 말미암아 말이다.

성녀에게 흑마법을 추적하라 부탁한 것은 계획의 일부라고 할 수 있었다.

저들에게 흑마법사와 연방제국의 유착관계를 공식적으로 확인해 줄 필요가 있었으니까.

“흑마법사들의 세력에 대해선 조금 알고 계십니까?”

“네?”

성녀는 뜬금없는 내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흑마법사의 세력이라면……은신처에 있는 이들을 말씀하시는 것인가요?”

“아니요. 제가 말하는 것은 그들의 더 자세한 사정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성녀는 모르겠다는 듯 작게 고개를 흔들었다.

그럼, 슬슬 쐐기를 박아야 할 때로군.

나는 구석에 놓여 있는 두 흑마법사를 향해 시선을 던지며 말을 이어 갔다.

“흑마법사들은 현재 두 단체로 나뉘어 있는 상태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지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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