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100화
풀리지 않았던 수수께끼 (9)
“네? 준비하고 있다니…… 대체 무엇을……?”
“당연한 것을 물으시는군요.”
세상에 나올 준비지요.
나는 그렇게 단호하게 말하였다.
앞으로 본격적으로 흑마법사들이 발호한다는 내용.
결코 간단히 입에 담을 만한 내용은 아니었다. 그것도 성국 카르텔의 꼭대기에 위치해 있는 성녀라는 인물을 상대로는 더더욱.
“설마……! 정말로요?”
“네, 일단은 설명부터 해 드리지요. 현재 두 단체는 서로를 간단하게 온건파와 강경파라 부르고 있습니다.”
“온건파와 강경파라…….”
“온건파는 아마 성녀님께서 알고 계시는 흑마법사들일 것입니다. 그들에게 향한 혐오가 언젠가 사라지기를 바라며, 분노 속에서 숨어 사는 이들이지요.”
내가 방문했던 흑마법사들의 은신처 역시 온건파의 것이었다.
물론 관리가 되지 않아 지나치게 비대해졌고, 결국 복수심에 삼켜져 부정적인 힘을 비축했음에도…… 결코 무고한 세상에 분노를 터뜨리지는 않았던 이들.
하지만…….
“반대로 강경파는 어떻게든 그 분노를 세상에 표출하고자 하는 이들입니다.”
“아…….”
“그들은 자신들을 멸망으로 이끈 신성제국에 어마어마한 복수심을 불태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질 ‘성전’에 대비하여 힘을 비축하고 있지요.”
“……성전.”
“하면, 제가 왜 이런 말씀을 드리는지 알 것 같습니까?”
나는 작은 미소를 머금으며 물었다. 이내 성녀는 눈을 깜빡깜빡하며 그 의중을 짐작해 냈다.
“강경파가…… 연방제국과 손을 잡았군요. 그리고 저 흑마법사들은 강경파의 이들이고.”
“예, 그렇습니다.”
그 말이 정답이라는 듯, 내 고개가 끄덕여졌다.
“연방제국과 강경파에는 신성제국이라는 공통적인 ‘적’이 존재합니다. 적의 적은 친구라는 말이 있듯이, 그들 역시 서로에게 이득이 되게끔 움직이고 있습니다.”
“…….”
게다가 현 연방제국은 그야말로 힘이 전부라고 외치는 듯한 기조를 이루고 있다.
현 황제, 그리고 이어서 왕좌를 차지할 4황자에서 그것은 절정에 다다르게 된다.
그런 그들과 흑마법사와의 만남은 썩 유쾌했으리라.
흑마법사들에게는 보금자리와 기술력을. 그들에게는 흑마법이라는 사라진 힘을.
‘각자에게 필요한 것을 공유하고 나눌 수 있었으니 천생연분이라 해 줘야 하나.’
그리고 그 말이 뜻하는 바는 하나였다.
연방제국의 목적이 정녕 에스테반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신성제국을 포함한 대륙 전역의 정복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라고.
이제 전할 것은 모두 전했다.
흔들리는 성녀의 눈동자를 보면 무언가가 더 필요하진 않을 것이다.
그녀는 저래 보여도 꽤나 영민한 거 같으니까.
“그렇다면 신성제국은 그때가 다가오기 전에 선택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허물밖에 남지 않은 권세가 우선일지. 아니라면 놈들의 야욕을 꺾는 것이 우선일지.
나는 그렇게 마지막 말을 이으며 자리에서 떠나갔다.
* * *
한 번 정화 시킨 마을은 또다시 나타났던 흑마법사의 영향으로 다시 더러워졌다.
하지만 이 자리에 있는 사제의 수가 얼마나 되던가?
게다가 그간 겪어 보지 못했던 고위 흑마법사의 등장.
그리고 사냥감이라고만 생각하던 이들에게 죽음을 각오하게 됐다는 사실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자극이 되었다.
사제들은 풀이 죽기는커녕 오히려 힘을 모아 정화에 몰두했다.
그렇게, 거의 쉬지도 않고 이어진 정화 작업.
덕분에 마을 내에 있던 흑마법의 영향은 거의 사라지다시피 한 지 오래였다.
“아마 이제부터는 일상생활을 이어 가도 문제는 없을 것입니다.”
“그렇군.”
나는 보고하는 사제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옆에 서 있던 촌장도 그 말에 안심한 모양이었다.
자칫하다가는 흑마법의 제물이 되어 몰살될 뻔했던 만큼, 그 표정 변화는 가히 극적이었다.
나는 그런 촌장에게 손짓하며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이곳의 이들은 범죄를 짓고 이곳까지 도망쳐 온 것이냐?”
“겨, 결코 아닙니다. 만일 그리하였다면 처음부터 받아들이지 아니하였을 것입니다, 전하.”
“그렇다면 영지에서 걷어 가는 과도한 세금을 이기지 못하고 달아난 것인가?”
“…….”
그 말에 촌장은 곤란하다는 듯 입을 다물었다.
감히 왕족의 앞에서…… 그것도 추후의 왕이 될 1왕자의 앞에서 하기에는 부담스러운 이야기였으리라.
네놈, 혹은 네 아비 때문에 먹고살기 힘들어 도망쳤다는 소리나 다름이 없으니까.
그러나 그것은 지금에 와서는 그다지 의미가 없는 상황이었다.
“마을 사람의 대부분은 이웃한 동부의 루킨즈 영지에서 흘러들어 온 이들이겠지?”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돌아가도록 하라. 이견은 허락하지 않겠다.”
“예…… 알겠습니다.”
왠지 이렇게 될 것 같긴 했다.
몰랐으면 모를까, 세금을 내지 않는 자들을 방치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으므로.
알고는 있었지만 씁쓸한 결말에 촌장은 속으로 괴로움을 삼켰다.
왕자야 알 리가 없으나, 그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도망쳤다 잡혀 온 이들의 최후를.
루킨즈 자작은 아마 자신들을 농노 이하의 가축처럼 만들어 착취할 것이다. 그가 어릴 적 스치듯 봤던 이들이 그러했으니까.
단어 그대로 채찍으로 때리면서 노역에 동원하던 모습들이 아직도 뇌리에 생생하다.
그렇기에 도망치면서도 이렇게 깊고 깊은, 종종 몬스터나 맹수들에게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이곳까지 온 것이 아니겠는가.
‘하는 수…… 없지.’
다시 그 지옥 같은 삶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에 눈앞이 캄캄했으나, 그래도 목숨은 건지지 않았나.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고, 목숨을 건질 수 있던 것만으로도 지금은 감사를 표해야 하리라.
하지만, 그렇게 각오를 다진 그의 귀로 믿을 수 없는 내용이 이어졌다.
“네 녀석들을 고통받게 하던 귀족은 이제 없으니까.”
“예?”
나는 그런 촌장의 얼빠진 반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 갔다.
“곧 영지에 새로운 관리인이 도착할 것이다. 그는 왕실에서 보낸 인물이니 걱정할 필요 없다.”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루킨즈 자작, 그 녀석은 이미 내 손으로 직접 쳐 냈다는 뜻이다.”
“……!”
내 담담한 목소리에 촌장의 눈이 더할 수 없이 커졌다.
녀석과 녀석의 일족은 감히 1왕자를 해하려 한 죄로 모조리 잡혀 들어갔다.
그리고 그 땅은 왕실의 직할령이 된 지 오래였다. 그것이 벌써 수십 일 전의 이야기였다.
“물론, 납세의 의무를 다하지 않고 도망간 것은 벌해야 마땅한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놈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한 과징의 여파였다면, 1왕자의 이름으로 그 여죄를 모두 참작해 주지.”
“저, 정말로 저희가 영지로 돌아갈 수 있습니까…….”
“내 분명 1왕자의 이름으로 사한다고 하였다.”
그것은 비록 가벼운 담화를 나누듯 담담했으나, 확신이 가득한 말이었다.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라고. 그 목소리 속에는 조금의 거짓도 들어 있지 않다고…….
이곳에 와야 했던 이유가 사라졌으니, 정말로 마침내 이 불편한 장소를 떠날 수 있게 된 것이다.
“…….”
촌장은 주름진 눈을 감고 상념 속에 빠졌다.
잠시 후, 조금의 회한도 남기지 않은 눈빛으로 말했다.
“이 늙은 몸이야 살 만큼 살았으니 어떻게 되든 흘러가는 세월을 맞을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전하께서 기회를 베풀어 주신다면, 부디 이 마을에 살던 이들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겠습니다.”
“그래, 그러도록. 이곳을 떠날 때 기사들의 안내를 받을 수 있도록 해 주지.”
주어진 기회는 거기까지가 끝이었다. 이제 나머지는 저들의 손으로 직접 만들어 나가면 될 일이리라.
저들이 어떤 이유로든 이곳에 숨어 살기를 자처했다 하더라도. 결국은 나의 백성이었음이 분명했으니까.
잠시 후, 촌장의 전언을 들을 화전민 마을의 주민들이 숨 가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짐을 싸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상황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있던 것은 에스테반의 기사들이었다.
“역시……!”
“왕자님에 대한 소문이 한치 틀린 게 없구나.”
그야말로 그림으로 그린 듯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모습. 그것은 기사의 왕국이라는 아스테반의 후계자에 걸맞은 모습이었으니.
그들은 감격에 벅차오른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현실은 이상과 같을 수만은 없다.
그렇기에 기사도라는 것은 사실상 과거의 전유물이나 다름없었다.
인간이란 본디 편한 것을 추구하는 생물.
현실에 타협해 가는 과정에서 약자를 보호하고 공명정대함을 펼치자던 기사들의 정신은 어느샌가 빛이 바랬으며, 녹이 슬어 버렸다.
하지만 지금까지 1왕자가 보인 모습들은 달랐다.
다소 과격하긴 했으나, 그 칼은 지금까지 언제나 썩어 있는 자들을 향해 있었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지닌 자들을 적대하는 것은 제아무리 왕자라 해도 쉽지 않은 일이건만,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밀고 가는 모습은 고결해 보이기까지 했던 것이었다.
그렇기에, 이번 일에서 보인 왕자의 모습은 분명 같이 따라온 기사들의 선망이 되기 부족함이 없었다.
“……하여간 멋있는 건 혼자 다 하려고 한다니깐.”
핀잔을 던진 조지의 불만족스러운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 손에는 고이 포장된 물건들이 들어 있었다.
“여기, 흑마법사들에게서 찾아낸 물건입니다.”
“그렇군.”
나는 조지가 건넨 자그마한 알약들을 무표정하게 바라보았다.
흑마법사들의 힘을 강하게 만들어 주는 비인도적인 알약.
과거에는 이것을 상대하기 위해 크나큰 피해를 입었으나, 이미 확보한 이상 그저 대비할 수 있는 수단에 지나지 않았다.
‘재미있군.’
그 외에도 흑마법사들의 시체에서 찾아낸 정보들은 차차 내 계획에 도움이 될 테지.
그래…… 미끼로써 말이다.
“목표했던 바를 이루었으니 슬슬 돌아가겠다.”
“뭐, 언제쯤 말하나 했습니다.”
전염병의 원인도 제거한 데다 그 시체까지도 소각했으니 후환조차 남지 않았을 터였다.
그렇다면 더 이상 이 마을에 볼일은 없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몸을 돌려 발걸음을 옮겼다.
* * *
성녀는 텅 비어 버린 화전민 마을을 보며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신성제국은 그때가 다가오기 전에 선택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무언가를 선택하는 일은 성국에게 익숙하지 않았다.
또한 순리라는 길을 걸어온 그녀에게도 결코 친숙하지 않은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상대는 지나간 가을에 있었던 것처럼 그들에게 선택을 종용했다.
그러고는, 무정하게도 그 선택지조차 앗아 가듯 추상적인 경고를 보내왔다.
허물밖에 남지 않은 권세를 우선하지 말라, 하며.
“허물밖에 남지 않은 권세…….”
성녀는 1왕자와의 대화를 떠올리듯 같은 말을 되새겼다.
그가 넌지시 언급한 말이 무슨 뜻인지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 의미가. 자신들의 행동이 잘못되었다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이라는 사실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니 성녀로서는 태연한 그 답을 이해하지 못했다.
“흑마법에 잠식된 이들을 쫓는 것이…… 단지 권세를 이어 가기 위한 수단이었다고?”
성녀의 물음에 답을 해 줄 이는 남아 있지 않았다. 그리고 그 자문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성녀의 마음속에는 그렇게 말하는 1왕자의 모습이 아른거리고 있었다.
“…….”
조금만 더 시간이 필요하다고.
그렇게 성녀는 자신에게 친숙하지 않은 선택을 반복했다.
스스로 이 땅에 남기를 선택했던 그때와 마찬가지로. 새로운 의문을 가슴속에 품은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