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101화
새로운 톱니바퀴 (1)
기사들과 함께 왕성으로 귀환하자, 누구보다 먼저 뛰쳐나온 비도르 남작이 일행을 반겼다.
“오셨습니까, 전하.”
“음.”
나는 그사이에 무척이나 수척해진 남작의 얼굴을 애써 무시했다. 그 수척한 얼굴의 원인이 바로 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작은 실성하기라도 한 것인지, 그 괴이한 몰골을 뿌듯하게 물들이며 보고를 시작했다.
“하하, 전하께서 맡겨 주신 일은 모두 처리했습니다.”
“……그런가?”
“그곳에 계시는 동안 걱정하지 않으실 수 있도록 확실히 처리해 두었습니다.”
“…….”
이쯤 되면 저것이 진심인지, 아니면 내게 항의를 하는 것인지 모를 정도였다.
그러므로 나로서는 일단 칭찬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잘했군.”
“감사합니다.”
이를 바라보는 조지의 시선 또한 모르쇠로 먼 곳을 향하고 있었다.
그렇게 우여곡절을 지나서 집무실의 앞으로 당도하자, 문득 남작의 행동이 묘하게 경직되고 있는 것을 느꼈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눈매를 좁혀 나갔다.
“무슨 일이 있었군.”
“하하…… 그게.”
그 어색한 웃음은 결코 결백한 이에게서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대답을 듣기 전에 집무실의 문을 열어젖혔고, 이윽고 무수한 서신의 향연이 나를 반겼다.
“…….”
“와우, 이게 다 몇 개야.”
조지는 나와 남작의 틈 사이로 보이는 서신들을 보며 이죽거렸다.
화전민 마을에 간 지 얼마나 되었다고, 족히 수백 장은 되어 보이는 양이었다.
나는 한숨이 나오려는 것을 꾹꾹 참아 내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그래, 역시 항의였군.”
“그, 그게…….”
서신과 함께 도착한 선물들 역시 도처에 널려 있었다.
더 가관인 것은, 조지가 가기 전에 치워둔 서신들조차 그대로 남아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쯤 되면 악질적인 항의 의사가 아니고서야 말이 되지 않았다.
부스럭- 부스럭-
선물과 서신들을 대강 밀쳐 내며 걸어가는 내 뒤로, 남작의 어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애석하게도 전하께서 자리를 비우신 동안 탄생일이 지나지 않았습니까? 그렇다고는 해도 이를 기념하지 않을 수는 없으니, 슬슬 연회의 준비와 초대장을 보낼 귀족들의 목록까지 작성하셔야지요.”
“연회는 없다. 그러니 준비할 필요도 없을 터다.”
“저, 전하?!”
그 단호한 대답에 남작은 기겁하다시피 펄쩍 뛰었다.
“전하께서 탄생하신 날은 모두가 함께 축하해야 마땅한 왕실의 기념일입니다! 어찌 그런 날에 연회를 열지 않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왕실의 기념일은 무슨. 누가 보면 즉위식이라도 하는 줄 알겠군.”
“그건…….”
“하물며 이미 지나간 날의 연회 따위 필요 없다.”
“…….”
나는 손을 허공에 휙휙 내저으며 남작의 이어질 말을 막았다.
허례허식은 내가 왕위에 오르게 된 이후로 제일 싫어하게 된 단어였다. 그리고 그다음으로 싫어하는 것은 의미 없는 낭비였고.
심지어 나는 회귀 전의 즉위식조차 최대한 간략하게 진행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그 기조는 회귀한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뜻에서 생년을 기념한 연회는, 매년 찾아오는 내가 극도로 싫어하는 요소의 집합체라 할 수 있었다.
“그 쓸모없는 서신들은 즉시 파기하도록. 불쏘시개로 쓰기에 적절할 것이다.”
“……알겠습니다.”
남작은 그렇게 시무룩한 표정으로 서신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내 시선이 바닥에 깔려 있는 선물들로 향했다.
“저것들은 귀족들이 함께 보낸 것인가?”
“예? 아, 그렇습니다. 아마 연회를 기다리다 지친 귀족들이 보내온 선물일 것입니다.”
“역시 귀족들이란, 썩 의미 없는 짓들을 좋아하는군.”
뒤에서 조지가 나직이 ‘그 귀족의 제일 위에 있는 전하께서 하실 말은 아닌 거 같습니다만’이라 읊조렸으나, 무시하고 쌓여 있는 것들을 대략 확인했다.
……어차피 기다려도 연회는 벌어지지 않을 터니 의미는 없겠지만, 공득지물을 확인하는 것이라면 이야기가 다르지.
그리곤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선물들을 뒤적거리던 조지에게 말했다.
“그것들은 한데 모아서 정리하도록.”
“정리하라고 하면…… 창고에 말입니까?”
“그래.”
“예, 뭐. 알겠습니다.”
조지는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대개는 창고라 하면 왕실의 창고를 일컬으나, 적어도 내가 말하는 것이 왕실의 창고가 아니라는 사실 쯤은 녀석도 잘 알고 있을 터였다.
녀석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점점 물건이 쌓이고 있네요.”
……그래.
일 년 전에 회수한 아수스의 물건. 그리고 연방제국의 회수책에게서 빼앗은 물품들.
그 모든 것들은, 개인적인 ‘창고’ 속에서 조용히 잠들어 있었다.
나는 녀석의 능청거림을 무시하며 의자에 앉았다.
‘재물은 많을수록 좋지.’
마치 에스테반이 전쟁을 대비하기 위해 막대한 예산을 소모하고 있는 것처럼. 가진 돈이 많다면 아직은 1왕자인 내라도 움직일 수 있는 폭이 넓어질 것은 당연했다.
돈이란 그런 것이었다. 가지면 가질수록 힘을 얻게 되는 신기한 요소.
물론 아직까진 개인적으로 돈을 쓸 일이 많지는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돈이 필요한 일들이 많아질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말이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등받이에 몸을 가볍게 기댔다.
그 순간, 내 눈으로 드러난 선물 중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그건 뭐지?”
“아, 이거요?”
내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묘한 분위기를 지닌 투명한 돌멩이였다.
그것이 어째서 내 시선을 사로잡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것의 정체를 묻고 있었다.
조지는 상단에서의 경험을 떠올리며 돌멩이의 정체를 짐작해 냈다.
“아마도 호박이라는 보석일 겁니다.”
“호박이라고? 그것이?”
“뭐, 이렇게 깔끔하고 커다란 것은 저도 처음 보는데…… 일단 틀리진 않았을 겁니다.”
노란빛과 자줏빛의 사이에 있는 어딘가.
조명을 머금고 투명하게 빛나는 그 보석의 이름은 호박이었다.
나는 그제야 그것이 어째서 내 시선을 사로잡았는지, 그리고 그 정체를 잊고 있었는지 단박에 깨달았다.
“이리 가지고 오도록.”
“음? 보낸 사람이 적혀 있지 않은데요?”
“상관없다.”
그런 것을 보낼 이들은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으므로.
그 자그마한 보석을 받아드는 내 눈이 차분하게 가라앉고 있었다.
* * *
철컥-
“전하, 말씀하신 것을 찾아왔습니다.”
비도르 남작은 왕궁의 서고에서 책 한 권을 가지고 돌아왔다.
나는 그것을 받아 들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만 나가 보도록.”
“예, 전하.”
야속하게도 오후부터는 비가 내렸다. 귀환을 축복하고 휴식을 만끽해야 할 하루는 초봄의 비와 먹구름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나는 추적추적 떨어지는 창밖의 빗방울들을 바라보며, 이미 수십 해도 더 지나간 그 날의 역사를 상기했다.
‘2월 18일.’
기억의 일면에조차 남지 않은 이야기.
왕실에 닥쳐온 축복과 비극. 국왕의 사랑했던 여인이 새로운 생명과 함께 떠나갔던 그 악몽과 같은 날.
아마. 이제는 역사 속에만 남은 그날도, 이렇듯 늦봄의 비가 찾아왔으리라.
“…….”
나는 상념을 멈추고 조지가 가지고 온 역사서를 뒤적거렸다.
사르륵-
그렇게 시간은 빠르게 거슬러 올라가, 마침내 원하던 순간을 짚어 냈다.
나는 말없이 그 순간을 읽어 내리며 역사 속에 남은 장면을 더듬었다.
[……비 전하의 출산에 관한 우려는 수차례 제기되기도 했거니 위태로움을 겪고 계시던 국왕께서는 비 전하의 부탁에 따라 마지못해 그것을 허락하시었다.]
[험난한 산통이 이어지는 와중에도 의원들의 염려가 이어졌다. 신전에서 찾아온 사제들이 신성력을 운용하는 와중에도 고통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비 전하께서는 점차 기력을 다하시며 말씀을 줄이셨다.]
[하지만 곧이어…….]
“……그렇군.”
탁-
나는 책을 소리 나게 덮으며 그것을 가볍게 밀어냈다.
더 읽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내가 궁금했던 것은 단지 역사의 과정뿐이었으니까.
이윽고 내 시선이 집무실 책상 위에 놓인 ‘보석’에 다다랐다.
“이십일 년. 아니, 따지고 보면 사십일 년 만인가.”
왕비가 죽은 이후로 이 보석이 왕실에 도착한 일은 없었다.
그건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내가 왕위에 오르게 되었던 회귀 전에도 마찬가지였고, 그 이후로 십 년이 지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리하여 허망하게 왕비를 떠나보냈듯, 두 세력 사이의 연은 끊어진 것이나 다름없던 것이다.
하지만 보석은 또다시 왕실에 진상되었다.
그 존재조차 잊고 있던 와중에, 내게 관심 가지고 있었다고 말하는 것처럼 자신들의 존재를 드러낸 것이다.
“……재미있는 이야기군.”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말하자면 내 지난 1년간의 움직임이 헛되지 않았다는 소리처럼 들리기도 했으니까.
다만, 그것은 곧 다가올 새로운 바람을 암시하는 것처럼 투명하게 빛나고 있을 뿐이었다.
스윽-
나는 호출을 위한 수정구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남작은 기특하게도 문밖에서 대기하고 있었는지 곧장 집무실로 들어왔다.
“예, 전하. 말씀하십시오.”
“왕실의 묘지에 가겠다.”
“예? 지금 말씀이십니까?”
창밖으로 보이는 빗방울은 점점 거세지고 있었다.
구태여 이런 날씨에 그런 장소에 간다는 것이 의아한 모양이었다.
“……아.”
하지만 남작은 이윽고 무언가를 떠올렸는지, 탄식을 흘리며 다급하게 고개를 조아렸다.
“곧장 준비하겠습니다.”
“음.”
곧장 준비하겠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었는지, 남작이 마실의 준비를 마치고 돌아오는 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출발하지.”
“알겠습니다.”
역대 왕가의 일원들이 묻힌 장소…….
왕실의 묘지는 왕궁의 뒤뜰로 가면 금방 찾아볼 수 있었다.
그 묘지 하나하나가 모두 품위가 넘치고 고아했으나, 이미 죽음을 겪어 본 내게는 호화로운 처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저벅- 저벅-
이윽고 내 무뚝뚝한 발걸음이 향한 곳은, 개중에서도 가장 볕이 좋은 장소였다.
나는 묘지에 적힌 이름을 바라보며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속삭였다.
“……오랜만인가.”
이곳에 찾아오는 것은 정말로 오랜만이었다.
회귀 전에는 간혹가다 이곳을 찾은 기억이 남아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발걸음이 뜸해지더니 아예 오지 않게 되었다.
‘아마, 허례허식을 싫어하게 됐을 때 즈음이었겠지.’
유약한 소년이 갑자기 한 나라를 양어깨에 얹게 된 이후.
목소리도. 얼굴도 모르는 어머니의 존재처럼, 아예 기억 속에서 사라지게 된 것이다.
그렇게 수십 년이란 오랜 세월을 보냈건만, 이렇게 다시 눈앞에 목도하고 나니 그 심경이 새로웠다.
조금은…… 그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유약했던 1왕자 시절의 잔재라는 건가.’
나는 피식 웃음을 흘리며 묘비를 슬쩍 어루만졌다. 쏟아져 내리는 빗방울에 겉옷이 젖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때, 문득 내 시선이 묘비의 아래쪽에 있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이건?”
곱게 올려진 한 장의 서신.
비를 맞고 있었지만 마치 방금 전에 놓인 것인지, 완전히 망가지지는 않은 모습이었다.
나는 그것을 집어 들며 우산을 씌워 주고 있는 남작에게 물었다.
“보통 이곳에 오는 사람들은 많은 편인가?”
“……아마도 아닐 것입니다.”
“그렇겠지.”
그렇다면 나와 같은 생각을 한 사람이 있다는 소리였다.
멀리서 찾아볼 필요도 없이, 그것이 아버님이라는 사실은 당연한 사실이었다.
서신의 포장부터가 아버님의 무뚝뚝한 성격이 물씬 드러났으니까.
나는 그 서신의 포장을 뜯은 뒤, 그대로 내용을 읽어 나갔다.
“…….”
그러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어깨를 으쓱이며 다시금 서신을 내려놓았다.
남작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국왕 전하의 서신입니까?”
“그래.”
“으음…….”
하지만 그 내용까지는 물을 생각이 없었는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할 뿐이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말했다.
“이런 날씨에 오래 있을 필요는 없겠지. 돌아간다.”
내용을 보면 매년 있었던 모양이나, 예전의 나는 언제나 바로 돌아갔기에 이런 게 있는지를 전혀 몰랐었다.
이런 걸 알게 된 것도 회귀를 겪은 덕일까?
내 시선이 다시 한번 서신에 닿았다가, 떨어졌다.
그 입가에는 정체 모를 미소가 은은하게 맺혀 있었다.
* * *
왠지 모를 만족감으로 가득했던 하루.
겉옷에 묻은 물기를 털어 내며 남작과 함께 집무실로 돌아온 순간, 나는 익숙한 기운의 움직임을 감지하고는 입꼬리를 비틀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전하.”
아무도 없던 이곳에 홀연히 나타날 수 있는 사람. 그리고 휘몰아치는 이 마력의 파동.
그리고 그 익숙한 마탑주의 모습 옆에는,
“다섯 달 안에 성과를 보이겠다는 약속을 지키러 왔습니다.”
로브를 쓰고 있는 자그마한 인영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