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103화
새로운 톱니바퀴 (3)
국왕은 국무를 처리하다 말고 들어온 소식에 흥미를 보였다.
“알렌 에스테반, 그 녀석이 개인 시종을 들였다고?”
“그렇습니다.”
“흠. 호위기사마저 거부하던 녀석이 개인 시종을 들였다라…….”
검소한 것인지 번거로운 것을 싫어하는 것인지…….
보좌관 후보를 임명했을 때를 제외하고는 원체 그런 움직임을 보인 적 없던 1왕자였다.
그런데 그런 1왕자가 직접 개인 시종을 들였다는 사실은 국왕의 관심사에 들기에 충분했다.
“그래, 국무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개인적으로 관리할 시종이 필요하기는 하지. 이번에는 어떤 인물이라 하던가?”
“마탑에서 데리고 온 수행 마법사라고 합니다.”
“음? 마탑?”
국왕은 수행원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법사들이 구태여 마탑에서 시종을 데리고 올 이유가 있었던가?
“하면 어느 가문의 자제라 하던가?”
“그것이…….”
수행원은 난처하다는 듯 말꼬리를 흐리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출신성분이 불분명한 것을 보면 아마도 평민인 것 같습니다.”
“……또?”
“그렇습니다.”
“허.”
그건 국왕의 입장으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널리고 널린 것이 귀족이거늘, 어찌 그들을 놔두고 평민을 등용한단 말인가?
“……기행이구나.”
“……그렇습니다.”
둘은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가끔씩 튀어나오는 그 행동들은, 말 그대로 기행이라고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기묘하게도 그 판단이 잘못되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라 하겠다.
‘이번에 부순 흑마법의 계획도 녀석의 기행 덕분에 밝혀진 것이었지.’
흑마법과 전염병의 연관성은 워낙에 충격적이었기에 세간에 밝히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또한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은 국왕이 누구보다 가장 잘 알고 있었다.
때문에 그는 설레설레 고개를 내저으면서도 제 아들의 행동을 탓하지 않았다.
“그래, 녀석이라면 알아서 잘하겠지. 하물며 아무래도 마탑 내의 사정에는 녀석이 더 밝을 테니까.”
“로드께서도 함께 모습을 드러내셨다 하시니, 아무래도 그분과도 연관이 있는 모양이었습니다.”
“흠. 역시나 이번에도 완전히 근거 없는 판단은 아니라는 소리구나.”
……그러면 그렇지.
마탑주는 에스테반의 역사에 남을 대마법사였다. 그와 관계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능히 이유가 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었다.
국왕은 흐뭇하게 미소 지으며 수행원을 바라보았다.
“한데 그 말은 마탑주와 알렌 녀석이 함께 관심을 가졌다는 뜻이 아니더냐? 무언가 알 수 없는 재능이 있을 터인데, 그런 이가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이유가 뭔가?”
“아, 그것은 아마도 시종으로 들인 이의 나이 탓일 것입니다.”
“나이?”
“올해로 열다섯이 된다고 합니다.”
“…….”
국왕은 아찔한 기분을 느끼며 이마를 부여잡았다.
……아니나 다를까, 기행이었다.
* * *
조지는 얼떨결에 떠맡게 된 후임을 돌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멀리서 바라보았을 때의 일이었다. 정확히는, 남들에게 보이는 것이 그러하다는 소리였다.
“야, 집무실로 도착한 서신들은 어떻게 한다고?”
“……일단 버려.”
“크으! 이 녀석이 맹한 표정과는 다르게 꽤 똘똘하구먼.”
녀석은 자신의 교육에 만족한 것인지 턱을 쓰다듬으며 흡족한 미소를 흘렸다.
이윽고 안경까지 치켜올리는 그 모습이, 보기에 참으로 가관이었다.
“잘 알아 둬라. 일단 버리고 나면 남작님이 알아서 해 주신다. 그것만 명심하면 돼.”
“……응.”
“그렇다면 예외는 뭐라고 했지?”
“비싸 보이는 서신.”
“음! 완벽해.”
녀석은 그렇게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고는 나를 바라보았다.
마치 봤느냐고 묻는 듯한 얼굴이었기에, 나는 헛웃음조차 나오지 않는 심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 한심한 교육 방식은 둘째치더라도, 그건 네 녀석의 업무가 아니었나?”
“아닐 말이죠. 제가 상단에서 일했을 때도 궂은일은 후임이 하는 것이 정석이었습니다.”
“퍽 편리한 핑계군. 남작이 들으면 무척 좋아하겠어.”
“…….”
그제야 녀석은 찔끔하는 눈빛으로 시선을 피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하등 쓸모없는 교육은 계속 이어지는 모양이다.
“크흠! 따라와라. 이번에는 이 선배님이 농땡이. 아니, 조금의 여유를 누릴 수 있는 장소를 알려 주지.”
“……응.”
그렇게 왕실의 새로운 얼굴과 한 놈팡이가 떠나가자, 기어코 시끄러웠던 집무실이 조용해졌다.
그리고 때마침 찾아온 것은 비도르 남작이었다.
“이 집무실에도 드디어 새로운 바람이 불었군요. 로엘, 그 아이가 사용할 검을 발주했습니다.”
“형태는 내가 말한 대로 되었겠지?”
“그렇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그 아이에게 맞는 레이피어의 형태입니다.”
“음.”
처음에는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롱소드의 형태로 검술을 가르치려 했다.
그 특유의 균형 잡힌 형태는, 비단 성인뿐만 아니라 어린아이들에게도 유용한 교본이 되고는 했으니.
실제로 에스테반의 기사들 역시 대부분 롱소드를 기조로 수련해 왔을 정도였다.
문제는 녀석의 체구가 비정상적으로 작다는 점이었다.
마탑에 들어오기 전에는 어디에나 있던 평민이었다는 점과 아직 나이가 어린 것을 감안하더라도, 너무 작았다.
오죽했으면 조지는 물론이고 남작까지, 그 나이를 듣자 놀라움을 표했을까.
‘더 큰 문제는 그 힘이다.’
일전의 대련에서는 검의 무게를 버티기는커녕 그것에 휘둘리려 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구태여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그 정도면 또래 나이대의 아이들보다 월등히 약한 편이었다.
그것이 내가 레이피어라는 형태의 검을 선택한 이유였다.
“레이피어라면 녀석도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가볍지. 특히나 드워프의 손길이라면 경도라는 약점을 없애는 것은 물론이고, 그 무게도 조금은 덜어 낼 수 있을 터.”
“하지만 전하, 괜찮으시겠습니까? 레이피어는 일반적인 검과는 교육의 방식이 다를진대…….”
“내가 다루지 못하는 무구는 없다.”
“……아!”
남작은 문득 자신의 앞에 앉아 있는 남자가 누군지를 깨달았다.
이미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초월자, 그런 남자에게는 더 이상 무구의 형태는 의미가 없었다.
실제로 나 역시도 전장을 영위하며 수많은 무술을 겪어 보았으니.
레이피어는 어떤 의미로는 흔히 접할 수 있었던 무기였다.
제국 명문인 보나파르 가문에서부터 저 먼 대륙의 번개와 같은 세검술까지.
이미 머릿속엔 직접 겪었던 검법들을 분해해서 만든 최적의 검로가 존재했다.
“어울리는 검술을 익히도록 만들면 되겠지. 이미 그것들은 완성되어 있으니까.”
“……과연.”
무엇보다도 검술은 의미가 없었다.
결과적으로 검술이란 것은 부가적인 요소에 불과했고, 그 재능을 꽃피울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 진정한 목적이었으니.
그런 의미에서. 폭발적인 속도의 찌르기를 가능케 하는 레이피어는, 오히려 그 요소를 뒷받침해 주는 요소가 될 수 있으리라.
“검의 도착은 언제지?”
“작업의 우선도를 최우선으로 지정하였다 하니, 엿새 내로 검을 받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군.”
내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가기 시작했다.
“기대되는군.”
내 손으로 피어날 전혀 다른 차원의 재능.
회귀 이후 처음으로 느낀 색다른 재미는, 나를 기대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 * *
예정대로, 갈데르드 평야에서 보내온 검은 엿새가 지나기 전에 왕성으로 도착했다.
도착한 검의 생김새를 바라보는 남작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졌다.
“아름답군요.”
폭과 두께가 얇은 순백의 검신.
그 아래로 그립과 어우러져 유려한 별빛의 형태를 띠고 있는 크로스 가드.
마치 어둠 속에서 찬란하게 빛나는 별이 있다면 그렇게 생겼을까?
베기 공격을 포기하고 온전히 찌르기의 리치에만 신경 쓴 그 형태는, 내게도 무척이나 흡족했다.
나는 곧장 집무실로 로엘을 불러, 그것을 들어 보게끔 시켰다.
“들고 오른팔을 움직여 보도록.”
슈욱- 슉-
“앗……!”
다행히 녀석은 그것을 들고 곧잘 휘두르는 모습을 보였다.
비록 길이를 조절했다지만 그 작은 체구 탓에 거추장스러운 느낌이 없지 않아 있었다.
하지만 겨우 이 정도는 시간이 지나면 문제가 되지 않으리라.
“그렇다면 본격적으로 검술을 가르쳐 주지.”
녀석 역시 그 검의 아름다움이 썩 마음에 들었는지, 살짝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휙휙 끄덕였다.
그렇게 나는 녀석과 함께 수련장으로 내려왔다. 그러고는, 마주한 로엘을 바라보며 물었다.
“네 재능은 작은 마력으로도 보다 큰 힘을 발현할 수 있는 것이다. 증폭과 발현, 알고 있겠지?”
“……네.”
“하지만 앞선 대련에서 그 마력을 적중시키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는 사실 역시 배웠을 것이다.”
“…….”
녀석은 이해하고 있는 것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였다.
하지만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걸로도 상관없다.
나는 연무실 바닥에서 적당한 검 하나를 주워 들었다.
무척이나 긴, 츠바이헨더에 가까운 검이었다.
“그렇다면 간단하다. 마법을 맞추기 어렵다면 그것을 검술에 녹여내면 그만이다.”
“…….”
“바로 이렇게.”
휙-!!
쿠구구구궁!
순간, 눈 깜빡할 사이에 허공으로 뻗어 나간 검이 막대한 충격파를 만들어 내며 내질러졌다.
어찌나 빠른 속도였는지, 살이 에일 듯한 파동이 흘러나온 것은 물론이고, 검의 주변으로 공간이 일그러지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오히려 뒤늦게 소리가 들린 것을 보면, 최소한 음속에 가까운 찌르기였다는 말이었다.
그 거대하고 무거운 검으로 행한 일이라기에는 도무지 믿기 어려우리라.
“……아.”
로엘은 상체를 작게 움츠린 채로 눈을 깜빡거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찔러진 검을 천천히 내리며 무감한 어조로 말했다.
“기사의 오러처럼 검에 그 기운을 담아라. 그리고 그것을 상대방이 반응하기 전에 내지르면 그만일 뿐이다.”
“…….”
“이, 이게 무슨 소란입니까?”
그때, 마저 정리를 마치고 따라 내려오던 남작의 기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윽고 남작은 검풍으로 인해 아수라장이 된 수련장을 보며 눈을 부릅떴다.
“저, 호, 혹시 몬스터라도 나타났습니까?”
“구경할 거라면 호들갑 떨지 말고 거기에 있도록.”
“하, 하지만…….”
물론 기본조차 되지 않은 이에게 이런 위력을 내포하기를 바라지는 않았다.
검에 마력을 담는 일도. 검을 내지르는 일도. 아직은 아무것도 배운 것이 없었으니까.
그러니 나는 담담하게 검을 내려놓으며 말을 이어 갔다.
“오늘은 네가 사용할 검술의 가장 기본이 되는 찌르기를 익히도록 하지. 다만, 단순히 검술만을 배우게 할 생각은 없다.”
후우우웅!
순간, 내 오른팔에 있는 마법 각인이 저장된 마나를 방출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주변에 보일 정도로 짙게 형성된 마력들이 반구형의 방어막을 만들어 냈다.
‘……거리는 대략 10미터 정도인가.’
로엘은 물론이고 구경하는 남작까지, 그 모습을 보며 의아한 듯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나는 천천히 미소를 지으며 로엘에게 말했다.
“마력을 기감처럼 퍼뜨려서 이 거리에 있는 보호막을 흐트러뜨릴 수 있겠나?”
“……아니요.”
“그렇다면 첫 번째 수련은 원거리에 보호막을 파훼하는 것이다. 물론 그사이에 찌르기의 연습이 병행되겠지.”
로엘의 표정에 당혹감이 서렸다.
불가능하다고 말한 것이 방금 전이었거늘. 마력 운용과 더불어서 찌르기의 연습까지 해야 한다는 것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상식적으로 마력을 거칠게 움직이며 운용할 수 있을 리가 없었으니까.
다만 그건 ‘마법’의 이론적인 영역에서나 불가능한 일일 터였다.
“틀에 박힌 이론은 버려라.”
전투 중에 기감을 퍼뜨릴 수 있는 것처럼. 마력이라고 다르다는 것은 핑계에 불과했다.
그 일련의 행동이 자연스러워지기까지 시간이 걸릴 테지만, 충분히 할 만하리라.
그것을 가르치는 이가, 뭇 기사들의 정점에 달했던 남자였으니.
“명심해라. 너는 이제 마법사가 아닌 기사로서 거듭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