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104화
새로운 톱니바퀴 (4)
한 귀족이 눈을 찌푸렸다.
“이대로는 안 됩니다.”
1왕자. 놈이 왕국 상단을 관리하게 되었다는 소식이 뒤늦게 귀족들 사이로 퍼졌다.
이제는 국정 운영에도 손을 뻗다니?
놈의 영향력은 너무도 커지고 있다. 어쩌면 자신들이 모르는 사이에 또 다른 일들이 진행되고 있을지도 몰랐다.
“이대로 가면 2왕자파는 허무하게 와해 될 것입니다.”
“어허, 각하께서는 때를 기다리라 하지 않으셨습니까?”
“게다가 지금은 놈에게 그 어떤 수작도 먹히지 않을 것이오.”
이미 수차례 언급되었던 목소리였다. 어떻게든 그 위상을 깎아 내려야 한다고.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기에는 계승권에서조차 밀리는 상황이다.
……모순되게도.
그 어떤 행동이라도 해야 할 때였으나, 도무지 기회가 오지 않고 있는 것이었다.
그 아성은 특유의 기행으로 무척이나 물렁해 보였으나, 정작 공격하기엔 너무 단단하였다.
그때, 한 귀족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하면, 그 주변 인물이라도 노리는 것이 어떻겠소?”
“그게 무슨 뜻입니까?”
“장군을 잡기 전엔 그가 탄 말을 잡아야 하는 법이오. 예를 들면…… 지금 1왕자파의 실세로 떠오르고 있는 남작 놈을 생각해 보시오.”
“……남작이라면.”
“……흐음.”
고작 남작이라는 작위 따위로 1왕자의 전속 보좌관이라는 자리를 꿰찬 인물.
변방의 자그마한 영지에서 평민이나 다를 바 없이 살아왔건만, 때마침 국왕과 1왕자의 눈에 들었다는 이유로 순식간에 실세에 떠오른 인물.
처음 화두를 던진 귀족의 눈이 번뜩였다.
“만일 이대로 1왕자가 왕이 된다면, 놈은 단숨에 총리대신의 자리에 오르게 되는 것이오. 그러니 남작 주제에 실세로 떠오르고 있지 않겠소?”
“그 말씀은…… 놈을 노리는 것으로 당분간 1왕자파를 주춤하게 하자는 뜻입니까?”
“물론 직접적으로 노릴 필요는 없소.”
단지 ‘때’가 오기 전까지 혼란을 만드는 정도면 충분할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균열은 작은 파문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었으니까.
“……그렇군. 나쁘지 않은 생각이오.”
이야기를 듣던 귀족들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지어졌다.
* * *
털썩-
“…….”
나는 힘 없이 주저앉아 숨을 고르는 로엘을 바라보다가, 몸을 돌려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 내 곁으로 비도르 남작이 다가오며 겉옷을 건넸다.
“전하,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
“음.”
수련이 이어진 지도 벌써 5일째.
성과는 확실히 있었다. 다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기를 다루는 영역에 불과했을 뿐이다.
‘검을 사용하는 것은 전혀 나아지지 않는군.’
신체 능력의 차이를 극복하는 일은 애석하게도 결코 수월하지 않았다.
부족한 체력과 근력. 마법으로 그것을 보조하는 방식도 생각해 보았으나, 결과적으로는 실패로 돌아갔다.
간단한 이유였다. 몸을 격하게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마법이 손쉽게 해제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경험이 부족하다는 말이겠지.’
제아무리 검술만을 배우며 자라온 나라고 해도 알고 있었다. 마법을 동시에 사용하면서 검을 휘두르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하지만 그렇다고 결코 불가능한 일이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었다.
로엘이 사용하는 마력은 수식을 맺고 마법진을 활성화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었으니까.
정말로 오러처럼 운용할 수 있는 마력이라면, 그 역시도 기사들의 신체 강화와 마찬가지로 사용할 수 있을 터였다.
‘……결국은 기사의 노하우를 스스로 깨달을 필요가 있다는 말이군.’
그전까지는 당분간 방법을 터득하는 것에만 몰두하게 하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뭐,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마법이라는 변수를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언젠간 필요한 과정이었으리라.
나는 작게 혀를 차며 남작에게 말했다.
“준비했던 것을 가지고 집무실로 오도록.”
“알겠습니다.”
나는 로엘이 충분한 휴식을 취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녀석을 데리고 집무실로 올라왔다.
그 사이, 남작은 내가 말한 ‘물건’을 가지고 집무실에 도착해 있었다.
“여기 있습니다.”
남작의 손에 들린 것은 하얀색의 기다란 펜던트였다. 특이하게도, 그 끝에 달린 것은 보석 따위가 아니라 마정석이었다.
그 마정석이 평범하지 않다는 것은 입만 아픈 사실일 테지.
나는 로엘에게 눈짓하며 말했다.
“당분간의 마력 운용 수련은 이것으로 대체하겠다.”
“…….”
로엘은 고개를 살짝 기울이더니, 눈을 두 번 깜빡였다.
요 며칠 사이. 왕성의 분위기에 적응하기 시작한 로엘은, 점점 다양한 감정 표현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라고 하기보다는 그 묵묵한 모습에 우리가 적응했다고 보는 것이 옳겠다만.
어쨌든 지금 저 행동은 결국 ‘의문’을 표하고 있는 것이었다.
“차도록.”
명령이 내려지자 로엘은 그제야 펜턴트를 착용해 나갔다.
그렇게 펜던트의 체인이 목 뒤에서 맞물린 그 순간이었다.
팟-!
“……으.”
로엘의 주변에 무의식적으로 발산되던 마력이, 마치 자물쇠를 걸어 잠근 것처럼 사라졌다.
그리고 그 반대급부로, 로엘의 몸은 진흙 속에 빠진 듯 눈에 보일 정도로 축 처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지 않군.”
“음…… 전하, 저것이 무엇입니까?”
“마탑주에게 만들라고 지시해 두었던 물건이다. 사용자의 마나를 억제하고 몸을 무겁게 만드는 아티팩트지.”
“예? 그렇다면 오히려 안 좋은 것이 아닙니까?”
“그래.”
나는 남작의 질문에 답변하며 손가락으로 책상을 가볍게 두드렸다.
언뜻 보기에 저것은 저주라고 부를 수도 있는 아티팩트였다. 마나는 마나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몸은 몸대로 무거워지는 것이었으니.
그러나 명백히 노리는 바는 있었다.
“기사들의 힘은 폭발적으로 흘러나오는 오러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반대로 마법은 마나라는 힘을 설계하는 것에서 시작되지.”
“그러니까…… 그것을 다루는 방식부터 다르다는 말씀이시지요.”
“음.”
녀석을 이루는 힘은 오러가 아니라 마력이다.
그러니 가장 먼저 힘을 다루는 방식을 바꿀 필요가 있었다.
“기존의 것을 바꾸는 일은 어렵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는 어렵지 않은 일이지.”
“아, 언젠가 전하께서 하신 말씀이시군요.”
“그래. 저 상태에서 수련하게 된다면, 보다 빠르게 기사의 힘에 적응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부족한 신체 능력을 마력으로 보조할 수도 있겠지.
가장 큰 단점을 어떻게든 감출 수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저것을 상시로 착용하게 된다면, 모르긴 몰라도 신체 능력 또한 함께 성장시킬 수 있을 터.
말 그대로 수련이라 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것이다.
탁-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나는, 책상을 두드리던 손가락을 멈추며 말했다.
“그 상태로 검에 마력을 담게 될 수 있을 때까지 착용하도록. 물론 검술 수업은 계속해서 이어질 것이다.”
“……네.”
이전보다 더욱 어려워진 수행이었건만 로엘의 표정은 의외로 밝았다.
그리고 나는 그 사실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확실히 적응하고 있군.’
녀석에게 있어서 마탑의 생활은 삭막한 황무지와도 다름없었으리라.
아무도 반겨 주는 이 없는 곳. 자신을 원하는 사람은 없고, 크롬웰의 아래에서 꾸지람만 듣던 장소.
비록 처음 마탑을 떠나는 일이 결정되었을 때는 불안한 모습을 보였으나, 그것은 다만 어린아이가 느끼는 당연한 감정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자신을 바라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마탑에 있었을 때보다 생기를 띠는 것은 당연한 일이리라.
‘뭐, 남작의 헌신이 있기도 했고.’
나는 로엘의 목걸이를 정리해 주고 있는 남작을 보며 어깨를 한 번 으쓱였다.
비도르 남작은 그 특유의 온화한 성격답게 마치 가족을 대하는 것처럼 로엘을 돌보아 주고 있었다.
딸이 있다고 했던가?
아마도 그것의 영향을 받은 모양이지. 덕분에 로엘의 적응이 빨라진 것은 의외의 성과라고 하겠다.
스윽-
나는 마법 수정구를 쓰다듬으며 조지를 호출했다.
그러자 역시나 녀석은 삐딱한 태도로 집무실에 들어왔다.
“아, 예, 오늘은 또 뭡니까?”
“오늘의 수련이 끝났으니 데리고 가서 시종의 교육을 마저 진행하도록.”
“오호라…… 뭐, 본부대로 합죠.”
녀석은 히죽 웃으며 답했다. 거짓말로라도 선의 한 톨조차 들지 않은 미소였다.
다만. 놈 역시도 로엘의 적응을 누구보다 돕고 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 * *
“이번에는 내가…… 아니, 네가 아침마다 해야 하는 업무들을 알려 주마.”
“응.”
조지는 뒤를 쫄래쫄래 따라오는 로엘을 이끌고 왕실의 복도를 거닐었다.
지금 향하고 있는 곳은 1왕자의 침실이 있는 장소였다.
하지만 문득. 홱- 하고 뒤를 돌아보고는, 로엘을 꼬나보며 인상을 좁히기 시작했다.
“아니 근데 얘는 뭐, 수련장 바닥을 몸으로 닦고 왔나? 오늘은 왜 이리 더러워?”
“…….”
“전하께서 바닥에 굴리든?”
“아니.”
로엘은 담담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하지만 아예 근거 없는 말은 아니었다. 수련을 위해 입은 로엘의 로브는 흙먼지가 잔뜩 묻어, 탈탈 털기만 해도 무언가가 떨어져 내릴 수준이었으니까.
그것이 로엘의 서툰 검술 탓이라는 사실을 알 리 없는 조지는, 혀를 쯧쯧 차며 말했다.
“그 양반, 진짜로 피도 눈물도 없구먼. 전략 전술 같은 것을 억지로 배우게 했을 때부터 알아봤지.”
“그게 아닌데…….”
“야, 꼬맹이. 이리 따라와 봐.”
조지는 로엘을 데리고 발길을 돌렸다.
하지만 그렇게 도착한 장소는, 시종들이 생활하는 장소와 정반대의 방향이었다.
조지는 이윽고 ‘살롱’이라 적힌 어느 응접실의 문을 열며 어깨를 으쓱였다.
“뭐, 이것저것 편법을 쓰긴 했는데. 일단은 내가 개인실로 쓰고 있는 곳이야.”
“…….”
왕궁의 응접실.
그것을 일개 ‘남작의 보좌관’ 신분인 조지가 어떻게 개인실로 쓰는지는 의문이었다.
그러나 로엘은 아무 의심 없이 조지를 따라 내부로 들어갔다.
“아.”
가장 처음 보인 것은 잘 포장되어 있는 선물 덩어리들의 향연이었다.
미술품이나 무구 따위의…….
“저것들은 신경 쓰지 말고 안쪽으로 들어와.”
그리고 보다 내부에는, 가벼운 세안이 가능한 장소가 있었다.
조지는 따뜻한 물이 나오는지 대강 확인하고는, 로엘에게 말했다.
“대충 씻고 나와라. 옷은 적당히 찾아볼 테니까.”
“…….”
“뭐 해? 씻으라니까?”
하지만 무언가 이상했다.
로엘은 우물쭈물하며 주변을 둘러보기만 할 뿐이었고, 이따금 자신의 눈치를 보며 눈을 내리깔기도 했다.
이에 조지의 눈매가 좁혀졌다. 가뜩이나 바쁜데 뭘 저리도 망설인단 말인가?
“그 꼴로 왕궁을 쏘다닌 것이 들키면 내가 남작님한테 죽어. 그러니까 빨리…….”
“……그게.”
“그게, 뭐?”
조지는 툴툴대며 쏘아붙였다. 그러나 그 순간, 로엘은 조심스레 다가오며 조지의 귓가에 무언가를 속삭였다.
그리고 조지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진짜로?”
“……응.”
……
타다다다다-
덜컥-!
집무실 문밖으로 방정맞은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고는 이내 그 문이 거칠게 열리며, 발소리의 주인공인 조지가 들어왔다.
녀석의 뒤에는 손목을 붙잡힌 채로 영문도 모르고 끌려온 로엘이 있었다.
“……조지 군?!”
그리고 그 추태에 남작이 펄쩍 뛰며 무어라 하기 전.
황당함으로 일그러진 조지의 입이 다급하게 열렸다.
“아니, 얘 여자애라는데요?”
나는 그 당혹감 가득한 물음에 어깨를 으쓱였다.
그 모습이 기가 찼기에 헛웃음을 흘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나도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