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105화
소동 (1)
“…….”
조지는 묘하게 익숙한 움직임으로 로엘의 주변을 빙빙 돌며 관찰을 시작했다.
다만 이번에 다른 점이 있다면, 로엘의 시선 역시 녀석을 따라 빙빙 돌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윽고 녀석의 발걸음이 우뚝 멈추었다.
“참 나. 황당하네, 진짜로.”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는 해도, 철석같이 믿고 있던 사실이 부정당하는 것은 그만큼이나 황당했다.
녀석은 ‘어쩐지 쥐방울만 하더라니’, 같은 말을 중얼거리며 나를 쳐다보았다.
드물게 동요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근데 전하는 언제부터 알고 계셨습니까?”
“처음 검술을 가르쳤을 때부터.”
“그러면 5일 전이네요.”
“그렇게 되겠지.”
턱을 괴고 있던 내 한쪽 어깨가 슬며시 들어 올려졌다.
중성적인 외모에 중성적인 체구. 나라고 해서 본 것만으로 성별을 알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다만, 검을 휘두르는 것을 본 순간에는 확실하게 깨달았다.
그 움직임은 도무지 남자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마탑주가 말한 작은 비밀이란 것은, 이를 뜻하는 말이었을 테지.’
마지막에 들려왔던 그 의미심장한 웃음소리가 귓가에 맴도는 것 같았다.
조지는 무언가 불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근데 왜 말씀해 주지 않으셨습니까?”
“그것을 알려 준다 한들 달라질 것이 있나?”
“……그건 그렇긴 한데.”
성별이 다르다고 해서 하는 일이 달라질 리도 없을뿐더러, 수련에 차질을 빚는 것도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그딴 사실을 미주알고주알 늘어놓는 것은 내 성미에 맞지 않았다.
“그러니 허튼 감상은 그만하고 교육에만 신경 쓰도록.”
“예에.”
녀석은 댓 발 튀어나온 입술을 집어넣으며 삐딱하게 대꾸했다.
그때, 마찬가지로 놀라움에 빠져 있던 남작이 아리송한 표정으로 조지에게 물었다.
“그러고 보니 조지군. 이력서에서 본 것 같네만, 자네도 여동생이 하나 있지 않았나?”
“예, 뭐. 분명 있기는 한데요.”
“허허, 그렇다면 다행이지 않은가? 기억상으로는 나이대도 비슷할 터이니, 교육은 익숙할 것이 아닌가?”
그러자 조지는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이걸 남 얘기라고…….”
“어허, 나 역시도 함께 교육을 돕고 있지 않은가? 함께 힘내서 전하의 뜻에 응답하세.”
“끄응. 전하의 뜻은 무슨…….”
조지는 말문이 막힌 듯 그렇게 머리만 벅벅 긁었다. 말이 여동생뻘이지 실상은 거의 초면이나 다름없었으니까.
그러고는 이내 체념하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일단은 알겠습니다.”
그렇게 녀석은 다시 로엘을 데리고 집무실을 나섰다.
째깍- 째깍-
그 후로 규칙적으로 울리는 지루한 초침이 몇 번이나 지나가고.
나는 찰나의 정적이 흐른 뒤에야 여유롭게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슬슬 보고를 이어 가도록.”
“예, 알겠습니다.”
남작은 진지한 표정으로 보따리에 싸여 있는 무언가를 책상 위로 올렸다.
……그것은 매끄러운 금속으로 만들어진, 마치 심장처럼 보이는 회색빛의 물건이었다.
혈관의 역할을 하는 것이 분명한 가느다란 관. 그리고 금속의 중심부에 얼핏 보이는 보랏빛의 마정석.
마정석에서 마력의 파장이 흘러나올 때마다 심장처럼 생긴 그것이 요동쳤고, 그 반동으로 관을 통해 마력이 전달되고 있었다.
그것을 바라보던 남작은 짐짓 낮은 목소리로 조용히 속삭였다.
“방금 전, 왕성으로 도착한 물건입니다.”
“그렇군.”
나는 책상 위에 올려진 그것을 만지며 입꼬리를 끌어당겼다.
심장이 꿈틀거리는 듯한 그 기괴한 모습은, 마력의 흐름을 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는 내게도 신기한 것이었다.
당최 어떤 원리로 마력의 파동을 읽는 것인지. 그리고 그 파동의 흐름을 어떻게 관으로 유도한 것인지.
그러니 보면 볼수록 신기했고. 또한 무척이나 흡족했다.
그 이질적인 생동감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이것이 네놈들이 내놓은 정답이냐?’
마도공학(魔道工學).
드워프들에게 전수되어 온 고도(高度) 기술의 정수이자 꽃.
녀석들은 이 짧은 시간에, 먼 훗날의 청사진을 내게 제시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 시작은 비로소 비상식적이고 기이한 부품으로부터 태어나게 될 것이라고.
“……이것은. 에스테반의 발전을 가속 시킬, 둘도 없는 요소가 될 것이다.”
“예.”
“그리고 과거에도 미래에도.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고유의 힘을 얻게 할 테지.”
나는 그렇게 확답하듯 뇌까렸다.
이변은 없다. 반드시 그리될 것이라고 믿었고, 그 말에는 조금의 오차도 없다.
그 확고한 자신감에 남작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럼 갈데르드 평야에는 전하께서 무척이나 흡족해하셨다고 서신을 보내겠습니다.”
“아니, 그럴 필요 없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창밖의 전경을 바라보았다.
“이것을 가지고 온 드워프를 바로 집무실로 불러내도록.”
조금의 시행착오도 없는 올바른 길.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는 그 왕도를 걷게 하면 될 뿐이다.
* * *
“와아…….”
엘리는 휘황찬란한 왕궁의 모습을 보며 눈을 똥그랗게 떴다.
그 말똥한 눈에서는 금방 빛이라도 발산할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여기가 바로 왕궁.”
솔직히 말해, 에스테반의 왕궁은 검소하고 고상하다는 느낌이 들 뿐이지, 타국에 비하면 그다지 화려한 편은 아니다.
다만, 그럴지라도 지금의 이 열다섯의 소녀에게만큼은 꿈만 같은 장소로 보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마치 좋아하는 소설 속에서 등장했던 왕자님의 성처럼…….
꿀꺽-
그렇게 엘리는 설렘과 긴장을 동시에 안고, 왕궁의 내부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그 선택을 후회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예상보다. 아니 당장 보이는 것보다 더욱, 왕성의 구조가 넓고 복잡했기 때문이다.
“여기는…….”
벌써 같은 자리를 몇 번이고 돌았다.
어쩌면 각기 다른 장소였을 수도 있었으나, 적어도 그녀가 보기에는 비슷한 모양새였다.
“빠, 빨리 놓고 가신 것을 전해 드려야 하는데…….”
다급한 발걸음으로 정처 없이 내부를 떠돈다.
하지만 사람의 시야는 다급할수록 줄어든다고 하지 않았던가?
설레는 마음으로 주변을 살폈을 때도 찾지 못한 길을, 한 줌 여유조차 없이 찾는 것은 요원한 일이었다.
“……!”
그러는 사이, 멋들어진 갑옷을 입은 기사들이 이쪽으로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엘리는 저도 모르게 왕궁의 기둥으로 몸을 감추었다.
딱히 이유는 없었다. 다만, 그녀에게 저런 엄숙한 분위기의 기사란 무척이나 어색하게 느껴지는 존재였기에.
“……갔나?”
기둥 사이로 갈색의 웨이브 진 머리카락이 흔들렸다.
그녀는 기사들이 간 것을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순간.
“…….”
“꺄악!”
콰당!
그녀는 갑작스럽게 다가온 무언가에 화들짝 놀라 넘어졌다.
마치 유령처럼 등 뒤로 스며드는 무언가.
하지만 엘리는 그것의 존재를 확인하고 두 눈을 깜빡였다.
“……아이?”
“…….”
어째서인지 왕궁 내부에서도 로브를 입고 있는 꼬마 아이.
말도 없는 데다 그 짧은 머리카락 탓에 남자인 줄 알았지만, 자세히 보니 여자아이 특유의 체형이었다.
그렇게 긴 침묵 속에서 두 시선이 교차했다.
* * *
“하.”
로엘을 바라보는 조지의 입술이 해탈한 듯 헛웃음을 흘렸다.
……아마 남작님이 나를 볼 때 이런 표정을 짓곤 했으리라.
조지는 참을 수 없이 치솟는 의구심을 꾹꾹 억누르며, 최대한 침착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건 또 뭔데.”
“아마도. 미아…….”
“이제는 살다 살다 별 황당한 소리를 다 듣겠네.”
로엘은 저보다 20cm는 커 보이는 소녀의 손을 끌고 오고 있었다.
그래, 백번 양보해서 자신이 미아 같아 보이는 점은 그렇다 치더라도 이곳은 왕궁이었다.
대체 왕궁에서 미아가 발생할 확률이 얼마나 될까?
‘차라리 길을 잃고 왕궁에 들어왔다는 말이 설득력 있겠네.’
하물며 상대는 일단 귀족의 영애처럼 보였다. 사람을 데리고 온 것만 해도 귀찮아 죽겠는데, 그것이 귀족이라면 이제는 골치가 아프다.
조지는 안경을 벗으며 눈두덩이를 씁쓸하게 쓸어내렸다.
“가서 버리고 와.”
“…….”
“애초에 그렇게 아무나 덥석 데리고 오라는 건 누가 가르쳤는데?”
“남작님이.”
“설마 미아는 도와야 한다고 하시던?”
“응.”
“하이고 맙소사.”
업무에 관한 것은 자신이. 그리고 예절과 왕궁 생활에 관한 것은 비도르 남작이 가르친다.
그것이 로엘의 효율적인 교육을 위한 분야의 세분화였다.
하지만 ‘예절’을 가르치는 것이 남작님이었다면, 언젠가 이런 사태가 벌어지리라는 것을 예측했어야 했다.
그 바른 생활 귀족이 가르칠 예절이란 게, 거기서 거기일 테니까.
“……내가 미쳤지. 일 좀 맡겨 보겠다고 이런 것을 떠안았으니.”
당연히 후회해도 늦었다.
오히려 1왕자는 이런 상황을 예상하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아니, 확실했다. 어쩐지 너무도 태연하게, 업무를 떠넘기는 꼴을 보고만 있었더랬다.
‘……근데 누굴 탓하겠냐.’
이 상황을 자초한 것은 결국 자신이었다.
조지는 자괴감 섞인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래서. 그쪽은 대체 어디에 찾아가시는 길이었습니까?”
“아! 사실은 사람을 찾고 있었는데, 아빠…….”
“아빠?”
“……아버님께서 놓고 가신 것을 전해 드리려고요.”
소녀의 품에서 서류 봉투 하나가 꺼내져 나왔다.
조지는 그것을 보며 눈을 찌푸리다가, 이내 표정을 지워 내며 말했다.
“그런 것이라면 사람을 시켜 보내게 하면 될 것이 아닙니까? 어째서 직접 오셨습니까?”
“그, 그게, 영지에 서류를 배달할 사람이 없어서……?”
“…….”
서류를 배달하는 것이 뭐가 대단하다고 그럴 사람이 없단 말인가?
지나가던 사용인 하나를 시키는 것으로도 충분한 것을.
‘핑계구만.’
결국엔 놀러 오고 싶었던 거다.
‘……귀찮은데 빨리 처리하고 가든지 해야지, 원.’
조지는 더 이상 생각하기를 포기했다.
“그쪽의 부친께서 왕성에서 일하시는 귀족분이십니까?”
“아! 네!”
“그렇다면 제가 전달해 드릴 테니 이만 돌아가십시오.”
조지의 손이 뻗어지며, 빨리 서류를 내놓으라는 듯 휘적거려졌다.
하지만 소녀는 서류를 다급히 품에 안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아, 안 돼요. 중요한 서류일지도 모른단 말이에요. 직접 전해 드려야 해요.”
“중요한 서류면 서류지, 중요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말은 뭡니까.”
“실은 아버님이 왕자님의 보좌관으로 일하고 계셔서…….”
……왕자? 누구?
이야기를 듣던 조지의 눈이 일순 날카롭게 찢어졌다. 예기치 못한 상대의 정체를 가늠해 보려 한 것이다.
하지만 문득 이상함을 느끼고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그러고 보니…….’
저 평범한 듯 특색 없는 갈색 머리. 열다섯에서 여섯쯤으로 얼굴.
무엇보다도 수행원조차 없이 이곳에 와서는, 서류를 배달할 사람이 없다고 말하는 모습까지.
“……설마.”
“엘리?!”
어디에선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역시나.
조지는 그 불안한 예감이 맞았다는 것을 짐작하며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고…….
“하.”
그곳에서 이 모든 사태의 원흉일 남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놀라움 가득한 표정과 당혹감이 드러난 두 눈.
……비도르 남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