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107화
소동 (3)
두렵지도 않은지. 아니면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이 앞섰는지.
엘리는 떨리는 발걸음으로 로엘의 앞을 가로막으며 말했다.
“누, 누구세요?”
“우리? 아, 그냥 지나가던 사람들이야.”
“하, 하지만 방금까지는 분명…….”
저기에 있다며 자신들을 향해 찐득한 눈빛을 보내지 않았던가?
게다가 저 복면이라니…….
너무나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었다.
엘리는 미처 하지 못한 뒷말을 삼켜 내며 몸을 떨었다.
아무리 시골 영지의 영애라도 이 상황이 이상하다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상대는 히죽 웃으며 아무렇지 않게 다가왔다.
“그게 뭐가 중요할까? 이봐 아가씨, 일단은 이 아저씨들이랑 같이 갈까?”
“어, 어디를요?”
“지금 아가씨를 찾는 사람이 있어서 말이지.”
그런 복면의 사내의 시선이 로엘에게 잠시 닿았다가 떨어졌다. 그 입꼬리는 비열하게 휘어지고 있었다.
“뭐, 목격자가 있으면 곤란하니까 그 남자아이도 같이 데리고 가 줄게.”
“……!”
결국 저들의 목적은 엘리를 데리고 가는 거라는 소리였다. 엘리는 후들거리는 팔을 붙들며 소리쳤다.
“에스테반의 수도에서 이러고도 무사할 것 같나요? 조금만 있으면 호위 기사들이 저희를…….”
“그럴 일은 없으니까 걱정하지 마라. 이미 높으신 나으리들이 손을 써 둔 모양이라서.”
“귀, 귀족이 이런 일에 가담했다고…….”
무언가 잘못되어 가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한 엘리의 시선이 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하지만 보이는 것이라고는, 인적 드문 길목과 자신들을 가로막고 있는 복면의 남자들 뿐이었다.
그때 로엘이 엘리의 옷자락을 잡아끌며 말했다.
“……늦었어.”
“뭐?”
“이미 기사들, 갔어.”
짧은 대화였지만 그 내용은 유추할 수 있다. 기사들이 이미 이 주변을 떠났다는 사실을.
“그, 그렇다면 정말로 귀족들이…….”
“그렇다니까는? 물론 해칠 생각은 없고, 그러니까 순순히 우리를 따라서…….”
슈욱-!
샥!
“큭! 이게 뭐야!”
순간, 껄렁대며 다가오던 복면의 사내가 뒤로 물러났다. 날카로운 무언가가 자신을 향해 쇄도해 왔기 때문이다.
그것을 아슬하게 피해 낸 사내는, 눈을 악귀처럼 부릅뜨며 그 원흉을 바라보았다.
“……이 개좆만 한 새끼가.”
새하얀 레이피어. 그리고 조금은 짧은 검신.
비록 아이의 몸은 어설프게 낮추어진 자세였지만, 그 태도가 뜻하는 바를 모를 리는 없었다.
지금 사내를 향해 쇄도한 공격이, 저 아이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로, 로엘!”
엘리는 갑작스럽게 무기를 내지른 로엘을 보며 당황했다.
아니, 물론 상황이 상황이기에 이해할 수 있다고는 해도, 다짜고짜 칼을 들이미는 것은 너무 위험하지 않은가?
최소한 이야기로 풀어 볼 생각은 해 봐야…….
“살기.”
“응?”
“저 사람들. 봐줄 생각 없어. 우리를 죽이려고 해.”
“……그게 정말이야?”
엘리는 로엘의 말에 싸늘한 감각을 느꼈다.
그리고 문득 이 지경까지 와서도, 목숨의 위협을 받고 있다 생각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냉정하게 공격을 감행한 로엘과는 전혀 달랐다. 어쩌면 남작령의 평화로운 분위기에 익숙해진 탓일지도 몰랐다.
‘어, 어쩌지…….’
명백히 저들은 자신들을 해치려 하고 있다.
단순히 두려움을 느끼는 것에서 그칠 수준이 아니었던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사내는 뒷목을 부여잡은 채로 몸을 풀기 시작했다.
“……오냐. 좋은 말로 할 때 따라왔으면 좋았을 텐데, 그렇게 나오면 억지로 끌고 갈 수밖에 없지.”
이미 납치를 시도했다는 시점부터 모순된 말이었으나, 지금은 그런 것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남자는 나머지 동료 넷을 향해 손짓하며 으르렁댔다.
“의뢰주가 몸 성히 데려오라 하진 않았으니, 몇 군데 부러뜨려 주지.”
“저 칼 든 새끼는 필요 없으니까 죽여 버리고 가자. 칼도 비싸 보이는데 우리끼리 나눠 먹어도 되겠지?”
“그래.”
스윽-
복면의 남자들은 각자 녹슨 단검 하나씩을 품에서 꺼내며 다가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느새 엘리를 뒤로 밀어낸 로엘은, 오히려 그들에게 달려들며 세검을 들어 올렸다.
전혀 주눅 들지 않은, 망설임 없는 움직임이었다.
“……로엘!”
슈우욱!
이윽고 순백의 검이 순식간에 흩뿌려졌다.
그 거침없는 찌르기의 궤도 끝에는, 가장 처음 자신들을 위협했던 남자의 팔이 있었다.
그리고 때마침 동료들과의 대화로 방심하고 있던 남자는 그것을 피해 내지 못했다.
푹-!
“아아아악!”
가죽옷과 살갗을 꿰뚫는 소음이 인적 드문 길목에 울려 퍼졌다. 복면의 남자는 핏물이 울컥 배어 나오는 팔을 부여잡고 휘청거렸다. 그러자 그의 손에 들린 단검이 땅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감히!”
“저 애새끼가!”
방심한 탓이었다.
설마 저 어린 애새끼가, 사람을 상처입힐 수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그 이상으로 예상보다 검을 휘두르는 속도가 빨랐던 탓도 있으리라.
남자들은 그제야 경계심을 올리며 살기를 번뜩였다.
“……가볍군.”
“생각보다 더 좋은 칼인 모양이지?”
물론 그것이 동료의 부상 따위보다, 욕심에 기인한 감정이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타다닷!
슈욱!
복면의 괴한들이 동시에 달려들었다. 그리고 이에 응수하듯, 또다시 로엘의 팔이 움직였다.
가장 선두로 달려오는 남자를 향해서…….
“어이쿠!”
“……아!”
“크흐흐!”
……빗나갔다.
놀랍게도, 빠르게 찔려져 나간 검은 허공만을 꿰뚫고 허무하게 멈춰 섰다.
이에 검을 피해 낸 남자는 뭐가 그리 우스운지 비릿한 미소를 흘렸다.
“흐흐, 이래 보여도 암흑가의 일원인데, 너 같은 애송이의 그딴 공격은 안 통하지.”
“…….”
레이피어의 장점은 길게 뻗어졌을 때 나오는 압도적인 리치(reach)에 있다.
원하는 사정거리 안에 상대가 들어올 수 있게끔 강제하는 검의 길이. 그리고 그것을 조절하는 사용자의 움직임.
하지만 지금의 로엘은 그런 것을 조절하기에 너무 부족했다.
숙련도와 신체 능력, 그 모든 것이 월등히 떨어졌다.
하물며 그 작은 체구로 노릴 수 있는 부위가 얼마나 될까? 그것도 괴한들이 달려들어 여유가 없는 상황이라면?
그렇기에 남자는 그것을 꿰뚫고는 여유롭게 공격을 파훼한 것이다.
슈우욱!
“…….”
그러는 사이, 어느새 네 자루의 단검이 사방에서 찔러져 들어왔다.
지금 로엘의 움직임은 1왕자의 가르침을 최대한 침착하게 따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익숙하지도 않은 실전에 완전히 적응할 수 있을 리는 없었다.
푹!
“……아.”
“로엘!”
결국 로엘은 단검 세 개를 피하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그 대가로 나머지 단검 하나에 어깻죽지를 찔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검을 쥔 반대쪽인 것을 다행이라 여길 수 있을까? 로엘의 로브 자락이 점차 붉은 핏물에 적셔지기 시작했다.
“크큭!”
하지만 공격을 적중시키는 데에 성공한 괴한은 멈추지 않고, 이어서 주춤하고 있는 로엘을 향해 발길질을 날렸다.
퍽!
쿠당탕!
성인 남성의 진심 어린 공격을 어린아이가 버틸 수 있을 리 만무했다.
그렇게 배를 걷어차인 작은 체구는 날아가듯 땅을 향해 처박혔다.
이윽고 약간의 흙먼지가 일었고, 하얀 레이피어는 허공을 비산하다가 땅으로 내리꽂혔다.
“호오라, 확실히 비싸 보이네.”
남자는 그것을 주워 들며 복면 속에 가려진 혀를 작게 날름거렸다.
물론 그 표정이 흥미로 변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음? 레어 메탈을 사용한 줄 알았는데 단순한 철이잖아? 그런데도 이렇게 가볍고 단단하다고? 대체 어떻게 이럴 수 있는 거지?”
보면 볼수록 신기한 물건이었다. 마치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진 무구가 아니라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그때, 피가 철철 흐르는 팔을 부여잡고 있던 괴한이 외쳤다.
“아악! 이 미친 새끼야! 지금 그런 게 문제야? 당장 저 개새끼부터 죽여 버려!”
“아, 닥치고 좀 기다려 봐. 혹시나 다른 물건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잖아?”
“씨발! 그딴 것은 죽인 뒤에도 할 수 있잖아!”
“시끄럽네. 고작 꼬마한테 당한 주제에.”
“뭐?!”
검을 살펴보던 남자는 그렇게 고개를 내저으며 남자의 말을 무시했다.
차라리 몸통을 찔렸다면 의뢰비도, 이 검의 지분도 더욱 든든하게 챙길 수 있었을 것을…….
“……쿨럭.”
“쯧.”
들려오는 아이의 기침 소리에 남자의 한쪽 눈이 잔뜩 찡그려졌다.
하지만 그때였다.
“음?”
문득 남자의 눈으로 아이의 목덜미가 눈에 들어왔다.
하얀색 줄과 그것을 이루고 있는 보랏빛의 보석. 마치 값비싼 마탑의 아티팩트를 보는 듯한 그 기하학적인 자태는, 분명 남자에게도 익숙한 형태였다.
‘……목걸이?’
목덜미 사이로 드러난 목걸이를 바라보던 남자의 눈이 욕망으로 젖어 들었다.
비싸 보였다. 그것도, 한낱 검 따위와 비교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가치가 있어 보였다.
“…….”
스윽-
남자는 재빨리 목걸이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고는 억지로 그 줄을 끊어 내고, 재빠르게 주머니로 집어넣었다.
마침 시선은 다친 동료에게로 몰려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이 목걸이는 온전히 자신의 것이라는 말이었다.
‘크흐흐. 이제 남은 계집을 의뢰주에게 데리고 가기만 하면…….’
그렇게 남자의 입꼬리가 흡족하게 올라간 순간이었다.
“……응?”
무언가, 알 수 없는 감각이 남자의 피부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건 다른 동료들 역시 마찬가지였는지, 복면 사이로 드러난 네 쌍의 눈은 어느새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보다 정확히는 그보다 조금 뒤, 지금의 감각이 생생하게 느껴지고 장소를 향해서였다.
바로, 땅바닥에 조용히 쓰러져 있던 아이에게로…….
우우우우웅-
“크아악!”
“뭐야?!”
그리고 이변은 순식간에 일어났다.
어쩌면 찰나의 순간이라고 해도 좋았다. 강력한 바람이 불어오더니, 아이의 앞에 서 있던 남자를 순식간에 밀어낸 것이다.
쾅-!
“……컥!”
“이봐!”
“무슨 일이야!”
눈 깜짝할 사이에 거의 수 미터나 날아간 남자는, 땅바닥에 머리를 부딪치고 기절했다.
모든 게 끝났다 생각하며 긴장을 늦췄던 복면의 괴한들은 다급히 경계심을 드러내며 집어넣었던 단검을 다시 꺼냈다.
하지만 그렇게 당혹감을 드러내던 괴한들은 결코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저, 저게 뭐야?”
분명 공격을 받은 채로 쓰러졌던 아이가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다만, 그저 평범하게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면 그들이 굳을 일도 없었으리라.
“……허공에 떠 있다고?”
아이의 몸은, 무언가가 잡아끌듯 허공으로 붙들어지고 있었다.
저것은 자의로 몸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었다. 다른 무언가가, 그 몸을 일으켜 세우고 있는 것이었다.
그것도, 그들을 불안하게 만들 만큼 섬뜩한 기척을 내뿜고 있는 무언가가…….
그 믿기 어려운 상황에 뒷걸음치던 그때, 처음 팔을 찔렸던 남자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외쳤다.
“뭘 저런 것에 쫄고 있는 거냐 이 새끼들아! 저 애새끼한테 무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 그런가…….”
“에잇! 못 써먹을 새끼들!”
남자는 분노로 물들인 눈으로 고통을 참아 내며, 다른 한 손에 단검을 들고 아이에게 다가갔다.
직접 그 자신의 손으로 녀석을 죽여 버리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꼭 쥔 단검이 허공에 붙들린 몸으로 파고들려던 그 순간,
서걱-
“……!”
오히려 남자의 몸에서 피 분수가 흘렀다. 그리고 그 몸은, 순식간에 차디찬 시체가 되어 바닥을 뒹굴었다.
털썩-
“…….”
복면의 괴한들은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멍하니 그 장면을 바라보았다.
정확히는 이해하지 못한 것이 아니었다. 단지 공포가 몸을 지배했을 뿐.
그도 그럴 것이…….
“……저게 뭐야.”
찰나에 내질러진…… 아무것도 없어야 할 아이의 손에서부터, 얼핏 무언가가 솟아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렁이는 대기. 그리고 짙푸른 파란색의 흐릿한 형태. 마지막으로 몸을 떨리게 만드는 살기까지.
“……검?”
그것은, 순수한 마나로 이루어진 기(氣)의 집합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