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109화
음지 (1)
다음 날.
제 3 기사단, 아르곤 기사단으로부터 심문의 결과가 도착했다.
“가장 먼저, 배신한 두 기사에 관한 처우입니다.”
“말하도록.”
“일단 사로잡은 두 명 모두 기사의 작위를 영구적으로 박탈하고, 그 가문에 즉각 통보하였습니다.”
사유는 근무 태만. 그들이 호위 대상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입힌 것이 아니었기에 당연한 처사였다.
뭐, 들리기로는 자신들은 호위 대상과 엇갈렸을 뿐이다, 라는 핑계를 댔다고는 하지만…… 당연히 그따위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결국 중요한 것은 그 이후의 일이었으니까.
“그리고?”
“죽였습니다.”
“그렇군.”
나는 조지의 보고에 시린 미소를 띠었다.
구태여 사고사 따위로 위장할 필요도 없었다. 단지, 쥐도 새도 모르게 대륙에서 사라졌을 뿐.
그 말인즉슨.
‘쓸만한 본보기가 되었다는 것이겠지.’
어차피 불명예스러운 작위 박탈을 당했으니 찾는 이들도 없으리라.
나는 조지에게 넘겨받은 보고서를 한 번 확인하고 다시 녀석을 쳐다보았다.
“암흑가는?”
“일단 잡배 두 명에게서 정보를 알아내고 있습니다만, 아무래도 석연치 않은 모양입니다.”
“아직은 마땅한 정보를 얻지 못했다는 말이군.”
“뭐, 비슷하겠죠.”
조지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애초에 말단 중의 말단인 잡배에 불과했다. 아는 것이 많지 않으니, 알아낼 수 있는 사실 역시 그다지 없었으리라.
하지만 내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자, 녀석은 의문스러운 시선을 던지며 물었다.
“뭐합니까?”
“직접 가지.”
“……뭘 할 수 있다고 거기에 갑니까?”
“정보를 알아내겠다.”
“…….”
조지의 손가락이 관자놀이 위로 빙빙 돌았다. 그와 동시에 그 고개가 내저어졌다.
알아낼 수 있다면 진즉에 알아내지 않았을까? 아마 그렇게 생각하는 모양이다.
물론 개의치 않았다.
“놈들은 지금 어디에 있지?”
“……뭐, 왕성에 있는 3 기사단 본부에 있을 겁니다.”
“그렇군. 안내하도록.”
나는 그렇게 말하며 집무실의 문으로 걸어갔다.
그때, 나를 향해 시선을 고정하고 있던 조지가 대꾸를 툭 던졌다.
“그 아이는 안 데려갑니까? 일단 도움은 될 텐데요.”
꼬박 스무 시간에 걸친 잠에서 깨어난 로엘을 말하는 것이었다.
적어도 저들의 대화를 가까이에서 들었을 테니, 참고인으로서는 가장 적합하다는 소리겠지.
나는 녀석의 얼굴을 힐끔 바라보다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필요 없다.”
어차피 대부분의 정보는 내 머릿속에 있었다.
단지, 원하는 정보 하나를 얻으면 될 뿐이다.
***
아르곤 기사단의 본부에 도착한 나는 기사들의 안내에 따라 본부의 지하로 내려갔다.
무척이나 은밀하고 비밀스러운 것을 다루기 위해 만들어진 장소.
그곳은 왕궁의 지하 감옥과는 다르게, 오롯이 아르곤 기사단의 관리하에 있는 곳이었다.
철컥-
“1왕자 전하, 이쪽입니다.”
어둠 속에 놓인 의자. 그리고 그 위에서 꿈틀대는 암흑가의 잡배들은, 더 이상 복면으로 얼굴을 가리는 호사를 누리지 못했다.
그리고 얼굴이 모두 드러나 있었기에 나는 그 표정들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녀석들은 들어오는 기사들을 보며 웃고 있었다.
나는 그런 놈들의 행동에 문득 궁금증을 느끼며 물었다.
“뭐가 우습지?”
“크흐흐, 뭐가 우습기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을 잡아다 놓고 심문하는 것이 우습지.”
간략한 대화였지만 상황은 대충 이해할 수 있었다.
다리에 부목이 붙어 있는 남자가 이죽거렸다.
“게다가 말했잖아? 우리는 그쪽에서 먼저 검을 휘둘러서 반격한 거지, 결코 사람을 해칠 생각이 없었다고.”
“정당방위를 주장하는 것인가?”
“마법으로 조사해 보면 다 나올 사실인데 인제 와서 무슨.”
……그래.
녀석들은 이 상황을 벗어날 타개책으로 법률에 의거한 정당방위를 주장할 생각인 모양이었다.
사로잡힌 지 하루가 지난 시점. 정신을 차리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겠지.
예상대로 놈들은 기사들에게 눈짓하며 말했다.
“애초에 왕실의 기사단이 이렇게 사람을 멋대로 잡아 와도 되는 건가?”
“맞아, 명백히 이쪽은 사람이 셋이나 죽었는데 말이야.”
“참 나! 이 사실이 세간에 알려지면 정말로 큰일이 나겠군?”
누구보다 왕국의 법을 우선시해야 하는 왕실 직할의 기사단.
그런 이들이, 조사조차 하지 않고 대뜸 사람을 가둔 것을 문제 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저들이 지대하게 착각하고 있는 것이 있었다.
“네놈들이 이곳에 잡혀 온 이유가 단지 납치 미수 때문이라고 생각하나?”
“그게 아니면 우리를 이런 곳에 가둘 이유가 어디 있는데?”
“틀렸다.”
“……뭐?”
하지만 그 물음에는 답하지 않은 채로 시선을 돌린다. 그러자 내 시선을 확인한 기사들은 고개를 조아리며 감옥의 밖으로 나갔다.
나는 그들이 나간 것을 확인한 뒤, 손에 끼고 있는 검은색 가죽장갑을 벗으며 말했다.
“아쉽게도 네놈들을 이곳에 잡아 온 것은, 한낱 법률 따위의 정의가 아니다.”
“그게 무슨 말이지?”
“그저…… 날 거슬리게 만든 죄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 같군.”
내 입술이 비틀어졌다.
그 이상의 설명은 의미가 없었다. 또한 그것을 풀이해 줄 만큼, 나는 착한 사람이 아니었고.
“조지.”
“여기 있습니다.”
감옥에 유일하게 남아 있던 조지가 건넨 것은, 날카롭게 벼려진 한 자루의 단검이었다.
나는 그것을 받아 들고 그들에게 다가갔다.
“혀, 형씨 뭘 하려는 거야?!”
“그건 대체 왜…….”
놈들은 그제야 이상함을 느꼈는지 의자 위로 묶인 몸을 꿈틀대며 저항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이 소용이 있을 리는 만무했다.
푹!
“끄아아악!”
처음에는 허벅지.
그것을 꿰뚫은 단검은 천천히 움직여, 살을 뚫어 내는 것처럼 잔혹하게 비틀어졌다.
하지만 그곳에서는 한 방울의 피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칼날을 통해 흘러간 오러가 허벅지 주변의 혈관을 모조리 막아버린 탓이다.
나는 허벅지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격하게 몸부림치는 남자를 뒤로하고, 그 옆을 바라보았다.
“현 암흑가의 수장이 머무는 장소가 어디인지 알고 있나?”
“그, 그걸 우리가 알 리 없잖소…… 그건 암흑가 내에서도 극히 비밀리에 다뤄지고 있는…….”
푹!
“으아아아악!”
“히, 히익……!”
비명은 ‘모른다’는 대답을 늘어놓은 남자가 아닌, 다른 이에게서 흘러나왔다.
어느새 허벅지에 뚫린 구멍은 두 개가 되었다.
하지만 내 입꼬리는 여전히 비뚤어 올라간 상태였다.
“걱정하지 마라. 잠시 후에는 질문자를 바꾸어서 똑같이 물을 것이니.”
“…….”
“물론 그때의 책임은 다름 아닌 네 녀석이 지게 될 테지만.”
촤아악-!
느껴지는 고통에 실신하기 직전이었던 남자는, 허벅지에 뿌려지는 성수를 바라보며 죽은 눈을 부릅떴다.
그리고 아득히 멀어지던 정신이 되돌아오는 것을 느꼈다.
나는 그런 남자의 머리채를 잡아 올리며 옆을 바라보았다. 공포에 질린, 다른 한 남자의 얼굴을.
“현 암흑가의 수장이 머무는 장소가 어디지?”
“그, 그게…….”
“뭐, 대답하지 않아도 좋아. 대답을 미루다 보면, 언젠가 네놈도 같은 고통을 받게 될 테니까.”
“…….”
“하지만 남은 기회는 이제 한 번이다. 답해라, 현 암흑가의 수장은 어디에 있지?”
조지는 그것을 보며 질색하는 표정으로 몸서리쳤다.
1왕자와 고문이라는 두 단어는 결코 양립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탓이다.
물론 적어도 회귀라는 경험을 가진 내게는 아니었다.
‘오랜만이군.’
수없이 많은 전장의 경험. 그 속에서 나는 연방제국의 포로들을 상대로 직접 고문을 가하기도 했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인간은 자신에게 고통이 가해질 때보다, 타인에게서 본 고통이 자신에게로 다가올 때 더 큰 공포를 느낀다는 것을.
……겪어 보지 못한 반응에서 오는 공포.
어쩌면 그것 때문에 녀석이 나를 피에 미친 전쟁광이라 표현했을지도 모르겠군.
피도 눈물도 없이 직접 고문까지 행하는 왕의 모습이 흔한 건 아니었으니.
그러나 더 효율적인 심문과 전략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약소국과 제국의 전쟁이란 그런 것이었으니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이들로부터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쪽도 그 이상으로 독해져야 했다.
“답할 생각이 없는 것 같으니 질문자를 바꾸지.”
“자,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그렇게 최후의 선택지가 내려졌다.
결국 남자는 단검이 다가오는 것을 보며, 다급하게 외쳤다.
“수, 수도 밖에 있습니다! 정말로 그곳이 어디인지는 모르지만, 암흑가의 본진이 적어도 수도 내부에 없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수도 밖, 방향은?”
“아마도 서부입니다! 간부들이 그곳을 오다닌다는 소문이 암흑가 내부에 퍼져 있습니다!”
녀석은 이제 벌벌 떨며 제발 그 칼날이 자신에게 돌아오지 않기만을 빌었다.
내가 그 단편적인 대답에 만족하지 못했다면, 분명 옆 사람에게 재차 질문을 던질 테니까.
하지만 다행히도, 서부라는 방향을 듣는 것만으로도 나는 온전한 정보를 취합할 수 있었다.
“레스탄이었군.”
“……아니, 그것만으로 알 수 있습니까?”
“보통은 그러지 않겠지.”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물론 이 또한 회귀 전의 지식을 이용한 추론이었다.
이 시기에 수도로 뿌리를 내리고 있는 ‘암흑가’의 본진이, 반드시 그곳에 있으리라는 그런 확신을.
챙-!
나는 단검을 아무렇게나 땅바닥에 내던진 뒤에 감옥 밖으로 나왔다.
그러고는 뒤처리를 위해 내부로 들어가는 기사들을 바라보며, 고저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필요한 정보는 얻었다. 돌아가지.”
“그렇다면 이 뒤에는 어떻게 할까요?”
“물을 것도 없다.”
이미 익히 내 성격을 배운 조지에게는 그 말만으로도 충분했다.
그것은.
마찬가지로 내 뜻을 거스르는 이에게 내리는 사형 선고였다.
***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뒤, 나는 다시금 제3 기사단의 본부를 찾았다.
“강녕하셨습니까, 전하.”
에드워드 필리르. 아르곤 기사단의 기사단장인 그는 언제나와 같은 공손한 모습으로 나를 반겼다.
물론 지루한 안부 인사 따위, 아무런 의미가 없겠지.
나는 곧장 준비되어 있는 자리에 앉으며 손가락을 까닥였다. 그러자 조지가 다가오며 서류 몇 장을 에드워드에게 건넸다.
“……이것은.”
에드워드는 짙은 호기심을 보였다. 나는 그것을 바라보며 무덤덤하게 말했다.
“암흑가의 본진에 대한 정보다.”
“흐음.”
레스탄.
그곳은 수도 근방의 영지 중에서도 특히나 유별나고, 또한 인구의 유동이 많은 장소였다.
물론 그 영주가 대단하다거나, 특수한 특산물이 나온다는 이유는 아니었다.
그저 에스테반에서 가장 거대한 길드 중 하나가,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놈들이 용병 길드의 영향력 속에 숨어 있었군요.”
“그래.”
나는 그 말이 맞다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차갑게 미소 지었다.
“범죄의 소탕을 시도한 것은 이미 과거에도 수차례 있었던 일이지. 하지만 용병 길드라는 껍데기를 뒤집어쓴 이상, 그 본체를 찾지 못하는 것이 당연했을 터다.”
“길드 창설에 자유를 주는 법의 허점을 완벽하게 이용했군요. 확실히 그것이라면 활동에도 제약이 없었을 것입니다.”
“뭐, 하지만 이제는 아니겠지.”
척-!
이번에 건네진 문서는 한 사람의 인적 사항을 나타낸 서류였다.
그 얼굴은, 수많은 범죄자를 파악하고 있는 에드워드의 지식 속에서도 낯선 것이었다.
“존 헤드윅.”
“현 암흑가를 이끌고 있을 수장이다.”
“…….”
서류에 눈길을 두던 에드워드의 진지한 시선이 내게로 향했다.
당장 레스탄에 본진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도 얼마 되지 않았거늘, 벌써 그 수장의 정보까지 파악했다고 했으니 놀라는 것도 당연했다.
“……그렇군요. 음지와의 전쟁, 전하께서 원하시는 것은 그것이십니까?”
“넌 어떻게 생각하지?”
“예……?”
에드워드는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하며 되물었다.
아니, 그 답은 당황에 더 가까웠다.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내 눈빛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은 심연 속으로 가라앉았다.
“아르곤 기사단을 이끄는 수장으로서의 의견을 묻는 거다.”
그의 흔들리는 눈동자에 담긴 새하얀 은발을 보며 난 가볍게 손을 까닥였다.
암흑가…… 그 필요악과 같은 녀석들을 처리할 방법은 이미 정해져 있었으나, 굳이 이렇게 한 번 물어본 이유는 단 하나였다.
과거와는 다르게 앞으로도 제3 기사단을 이끌고 나갈 에드워드 필리르. 이자의 자질을 이번 기회에 시험해 보고 싶었기에.
그렇게 잠시 고개를 숙이고는 내 질문의 진위를 고민하던 에드워드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제 생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