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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110화 (110/223)

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110화

음지 (2)

“전원, 말에서 내린다.”

“충!”

푸히히히힝!

철컥- 철컥-

도열한 기사들에게서 느껴지는 기색은 무척이나 위압적이었다.

묵직하고 절제된 움직임은 그 자체만으로 시선을 집중시켰고, 번뜩이는 눈빛 속에서 이는 투지는 용병들의 몸을 움츠러들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아르곤 기사단?”

“대체 왕실의 기사단이 레스탄까지 왜 왔지?”

용병들은 경계심을 드러내는 한편 뒷걸음치며 자리를 비켜 냈다.

만일 여타 기사단이었다면 그 기세를 느끼지 못하였을 터였다.

하지만 그들은 왕실 직할의 제3 기사단이었다. 제아무리 전투에만 특화된 기사단이 아니라 한들, 이미 그 수준부터가 남달랐던 것이었다.

“정렬.”

“정렬하라!”

철컥- 척-!

그렇게 기사들이 일시에 정렬하자, 레스탄의 거리는 긴장감 속에서 침묵이 흘렀다.

용병들은 가던 발걸음도 멈춘 채로 그 장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앞으로 큰일이 벌어지리라는 사실을 예상한 것처럼…….

하지만 그 직후에 들려온 목소리는 한없이 태연할 뿐이었다.

“전하,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기사단을 통솔하던 에드워드가 물었다.

용병 길드의 앞. 원하던 장소에 도착했으니, 이제 무엇을 하겠냐는 말이었다.

나는 천천히 말에서 내리며 말했다.

“무엇을 할 것도 없다.”

이미 레스탄의 거리는 용병들로 인해 소란이 벌어진 상태였다.

게다가 이곳까지 오면서도 놈들이 알아차리지 못했을 리는 없었으니, 어떻게든 ‘저들’은 우리에게 접근해 오려 할 것이다.

‘이미 이 상황을 이해했을 테니까 말이야.’

앞선 2왕자파의 의뢰와 사로잡힌 잡배들. 그리고 그 일련의 상황 뒤에 나타난 기사단까지.

이만큼 신호를 줬으니 뒷골목의 세력을 주무르는 그 녀석들이라면, 이미 이해하고도 남았을 터이니.

뭐, 우리는 그때까지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는 말이었다.

그때 에드워드가 조금은 낮은 목소리로 운을 떼었다.

“……전하,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시는 것은 어떠하십니까?”

“무엇을 말이지?”

“본부에서 나누었던 이야기를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놈들의 처우에 관련된 이야기를 뜻하는 것이었다.

나는 표정을 굳히는 에드워드의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 얼굴은 무척이나 복잡한 심경을 드러내보였다.

“제가 말씀드렸던 것은 단지 개인의 의견입니다. 그마저도 실현 가능성은 극히 낮고, 그저 허황된 것이지요. 굳이 그렇게 하지 않으셔도…….”

“내가 하는 일에 자네의 의견을 반영한 것이 우려되는가?”

“……솔직한 심정으로는 아니라고는 말씀드리지 못하겠습니다.”

에드워드는 선뜻 의사를 표현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일이 벌어진 상황에서 그 판단은 실수였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을 테니까.

하지만…….

“걱정하지 마라.”

나는 그렇게 담담하게 말했다.

오히려 그 우려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듯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분명히 말했을 터다. 그 또한 내 의견과 같았다고.”

“하지만 전하.”

“스스로의 의견을 부정하는 것은. 곧 그와 같은 생각을 떠올린 나를 부정하는 것과 같을 것이다.”

“…….”

그러니 믿어라. 그리고 그딴 것에 심력을 낭비하지 마라.

에드워드는 이어진 내 말에 고개를 조아렸다.

“예, 알겠습니다. 1왕자 전하.”

나는 입꼬리를 끌어당기며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용병 길드가 자리 잡은 거리가 한눈에 들어왔다.

어느덧 레스탄에 나타난 기사들을 바라보는 용병들의 수는 더욱 많아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내 기감으로 특별한 감각들이 잡히기 시작했다.

어쩌면 그저 스쳐 지나가는 인파의 행렬이었을 수도 있었으리라. 하지만 그 뚜렷한 특색의 기척을 느끼지 못할 내가 아니었다.

“……슬슬 반응이 오는군.”

“예?”

“기, 기사 나으리들께서 이런 곳까지는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그리고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용병들 사이에서 누군가가 다가왔다. 언뜻 평범한 행인처럼 얼굴을 훤히 드러낸 노인이었다.

그러자 기사들이 그 앞을 가로막았다.

“신분을 밝히고 예의를 갖추어라! 이분께서는 에스테반의 1왕자 전하이시다.”

“아, 아이고……! 1왕자 전하를 뵙습니다.”

노인은 한 기사의 일갈에 다급히 고개를 조아리며 말을 이어 갔다.

“쇤네는 길드장님의 잡무를 도와드리는 노인네입니다. 길드장님이 자리를 비우신 사이에 소란이 일어난 듯하여 사태를 파악하기 위해 내려왔습니다.”

“용병 길드에 소속된 사용인인가?”

“그렇습니다.”

용병 길드 앞에 무장한 왕실 기사단이 모여 있다는 것은 확실히 소란이라 하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이를 알아보기 위해 사람이 오는 것 역시 당연했고.

하지만 내 눈은 속이지 못할 테지.

“용병 길드에서 온 사람이라고 했나?”

“그, 그렇습니다요. 전하.”

“요즘 사용인들은 암살자의 움직임을 따라 하기도 하는군.”

“……예?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1왕자가 직접 말을 건 것이 당황스러운지. 그게 아니라면 암살자를 운운한 것이 놀라웠는지.

노인은 몸을 잘게 떨며 내게 되물어 왔다.

아니, 정확히는 그런 모습을 연출해 냈다.

“물 위를 걷는 듯한 흐릿함. 당혹스러운 기색과 달리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침착하게 움직이는 눈.”

당연히 그 모든 것들이 가리키는 바는 하나였으리라.

“역시 암흑가의 소속답게 썩 훌륭한 능력이군.”

“…….”

슈욱-!

콱!

눈 깜짝할 사이에 쇄도하는 얇은 비수.

나는 귀신처럼 다가오는 암기를 손으로 잡아내며 이죽거렸다.

“평범한 사용인으로 위장하는 것은 나쁘지 않은 판단이었던 것 같다만, 대처는 좋지 않았군.”

“…….”

“뭐, 상황이 이렇게 돼서야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겠지만.”

어느새 당혹감에 젖어 들었던 노인은 사라지고, 인형처럼 무표정한 암살자가 거기에 있었다.

이미 모든 것이 밝혀진 이상 정체를 잡아떼는 것은 그리 좋은 판단이 아니었다.

하물며 그것이 상대의 진의를 파악하지 못한 상태라면 더더욱.

“음? 방금 뭔가가 반짝이지 않았나…….”

“날벌레라도 지나간 건가?”

구경꾼처럼 서 있던 용병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른 채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만큼이나 빨랐고 은밀한 공격이었다는 말이었다.

그러나 그런 공격도 왕실 기사들의 눈을 피해 갈 수는 없었다.

“전하, 괜찮으십니까.”

“문제없다.”

암살의 위협을 받았으나, 이미 이야기를 전해 들은 기사들은 괜히 소란을 피우지 않았다.

다만, 자연스럽게 진형을 움직여 노인을 포위해 나갔을 뿐이다.

물론 나 역시도 개의치 않으며 말을 이어 나갔다.

“뛰어난 암기술과 침착함. 내 기억이 맞다면, 분명 늙은 살수 루손이라고 불리는 이겠지.”

“……그 이름을 어떻게 알고 있는 것이지?”

“인제 와서 겨우 그런 것이 놀라운가? 본진의 위치를 들키고 정체마저 탄로 난 이 상황에서?”

“…….”

혼란을 노리고 날린 암기마저 무용지물이 되었다. 거기에 아르곤 기사단까지 찾아왔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겠지.

사로잡히거나 혹은 사살당하거나. 어쨌든 이 자리를 피한다고 하더라도, 그 자신과 암흑가의 미래는 끔찍한 최후를 맞이할 것이라는 사실을.

하지만 난 그저 가볍게 입을 열뿐이었다.

“독대를 나누지. 나를 안내하라.”

“…….”

그리고 녀석의 무표정을 깨뜨리는 데에 성공했다.

예컨대, 당황케 만들었다는 소리였다.

“네놈의 주인인 존 헤드윅이 있는, ‘소굴’의 내부로.”

“……!”

모든 것을 꿰뚫는 그 한마디.

그것은 거부할 수 없는 명령이었다.

* * *

“이쪽으로 오십시오.”

어제의 적은 오늘의 손님이라 하던가? 루손은 공손함을 가장한 태도로 나를 안내했다.

물론 어디까지나 ‘가장’일 뿐이다.

그 태도의 저의는 사살이 아닌 대화를 선택한 내 의도를 파악하기 위한 수단이겠지.

그러나 우습게도, 거기에는 그 어떤 계산적인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덜컥-

암흑가(暗黑街).

본디 음지의 한 구역을 단순하게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그 규모와 세력이 확장됨에 따라 하나의 고유명사처럼 자리하게 된 이들을 뜻했다.

그 종류는 암상인부터 시작하여 정보 길드까지, 말 그대로 현존하는 에스테반의 음지 세력 중 최강을 논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때문에 그런 범죄자들은 에스테반 왕실의 척결 대상이었다. 당연히 그들 역시 자신을 감추기 위해 더욱 깊은 음지 속으로 도망쳤고, 그 결과가 바로 이곳, 레스탄의 용병 길드.

완전하게 드러난 양지의 세력 속에서, 자신들의 그림자를 버젓이 감추는 데에 성공한 것이다.

“어서 오십시오.”

쇠를 칼날로 긁는 듯 기괴한 목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혔다.

그것이 인공적으로 변조된 목소리가 아닌, 본연의 목소리라는 것이 신기할 뿐이다.

그렇게 불쾌감을 자아내는 목소리를 감상하며 자리에 앉았다.

‘존 헤드윅.’

최대 음지 세력인 암흑가의 수장이자 베일에 감춰진 인물.

녀석의 얼굴을 완전히 감싼 붕대, 그 사이로 꿈틀거리는 눈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대화를 원하셨다지요?”

“알고는 있군.”

“먼저, 제 부하가 실례를 저질렀다고 들었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놈은, 생소한 차림과 목소리에도 놀라지 않는 내게 의외의 흥미를 느낀 것처럼 보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의자 위로 내려앉은 다리를 꼬며 발끝을 까닥였다.

“감히 에스테반의 1왕자를 해치려 들었으니 고작 실례 수준은 아니겠지.”

“예, 그에 관련해서는 암흑가의 세력 전체를 대신해서 사죄드리겠습니다. 하위의 조직원들이 감히 전하의 사람들을 건드린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죄라.”

암흑가의 수장 정도가 되면 눈치가 빠르기 마련이었다. 놈은 내 목적이 범죄의 토벌이 아닌, 자신들과의 대화 그 자체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니 이 대화는 일종의 미끼나 다름없었다.

“그 뜻으로, 1왕자 전하께서 이곳을 찾아주신 이유에 협조를 다하겠습니다.”

“뭐, 나쁘지 않은 이야기군.”

나는 어느새 루손이 가지고 온 찻잔을 보며 어깨를 까닥였다.

하지만 그렇게 답하는 내 관심사는 전혀 엉뚱한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런데, 암흑가 전체를 대신하여 사죄한다고 했던가?”

“예,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그 건방의 화가 번지기 전에 네 손으로 부하를 쳐 내는 것 정도는 가능하겠지.”

“직접 부하를 죽임으로써 사죄를 뜻을 증명하라 종용하시는 것이군요.”

붕대에 감추어진 얼굴과 기괴한 목소리는 그 감정을 감추어 주기에 충분했다. 얼핏 드러난 두 눈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찻잔을 내리던 루손은 아니었다.

“컥!”

챙그랑-!

뻔하기는.

녀석의 손에서 발사되려던 암기들이 땅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노인의 가슴팍이 함몰됨과 동시에 뒤로 나자빠진 것은.

그 가슴 깊숙이 박힌 물건은, 처음 녀석이 내게 던졌던 그 자그마한 비수였다.

“…….”

어느새 핏물이 튄 의자. 그러나 나는 처음과 같은 태연한 모습으로 다리를 꼬며, 붕대 사이로 드러난 두 눈을 바라보았다.

녀석 역시 수하의 죽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태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나는 말했다.

“종용이 아니다. 처음부터 죽이지 않는다는 선택지는 없었으니까.”

“예, 그렇군요.”

그런 내 눈이 천천히 휘어지기 시작했다.

감히 나를 해치려 들었던 것. 그리고 감히 내 사람을 해치려 들었던 것.

“나는 내게 이빨을 드러내는 것을 무척이나 싫어하지.”

이것은 본보기이기도 했으며, 그 대가이기도 했다.

설령 그것이 이 남자가 의도한 사항들이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그렇다면 슬슬 본격적인 대화를 시작해 볼까?”

일방적인 구도에서의 대화야말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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