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111화
음지 (3)
대화를 시작하겠다는 말과는 다르게 침묵은 길게 이어졌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바닥을 흥건히 적시며 퍼진 피비린내 또한 코끝을 진하게 스쳐 갔다.
그 침묵의 끝에서, 나는 앞에 놓인 찻잔을 여유롭게 들어 올리며 말했다.
“음지의 세력이라는 것은 참 재미있지. 불법이라는 단어 뒤에 늘 필요악이라는 수식어가 붙으니까 말이야.”
“하지만 과장된 수식어는 아닐 것입니다. 실제로 효용이 있으니 그런 말이 붙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뭐, 그렇겠지.”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날 리 없다고, 실제로 음지 세력은 의외로 삶과 밀접한 연관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니 재미있는 법이었다. 그 누구보다 음지에 숨어들어야 했기에 양지로 나오기 위한 수단을 강구하는 그들의 노력이.
게다가 척결하기 위해 아무리 애써도 바퀴벌레처럼 계속 나오기에, 위정자라면 나라를 불문하고 골치 아픈 존재라 할 수 있겠지.
그렇기에.
“두 가지 선택지를 주지.”
“경청하겠습니다.”
“하나는 이대로 아르곤 기사단에 의해 암흑가의 세력이 찢겨 나가는 것이다.”
제아무리 암흑가라 불리며 영향력을 떨친다 한들. 내막과 비밀 지점까지 모두 알고 있는 이상, 그것을 피할 수는 없었다.
지금 이끌고 온 인원이라면, 순식간에 퍼져 세력의 형체조차 남기지 않고 쓸어 버릴 수 있으므로.
애초에 서로 간의 이익을 위해서 뭉친 이들에게 신의가 있을 리 없었다.
“왕자님의 의견은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혼자 오신 이 자리에서, ‘그렇게’ 말씀하셔도 괜찮겠습니까?”
존 헤드윅은 그렇게 공손한 말투로 말했다. 정말로 그 안위를 걱정한다는 듯, 말을 꺼낸 주제에 우려가 가득한 목소리였다.
나는 그 모습이 퍽 우스워 입꼬리를 올렸다.
“괜찮지 않을 것이 뭐가 있지?”
“이곳은 수백에 달하는 용병이 상시로 대기하고 있는 장소입니다. 그리고, 이미 수많은 암살자와 해결사들이 대기하고 있죠. 이래 보여도 숨어 있는 병력이 적지 않다는 말입니다.”
“그래, 그래서?”
아직도 주제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군.
“그게 뭐 어떻다고 묻고 있는 거다.”
순간 몸에서 강렬한 기파가 쏟아 나왔다.
딱히 오러를 일으키거나, 문양의 힘을 사용한 것도 아니었다.
말 그대로 기세.
무의식적으로 흘러나오는 기운을 인위적으로 조절해 낸 것이다.
그것은 곧 극적인 변화를 만들어 냈다.
주변의 공기를 떨리는 듯 차가워지고, 붕대 뒤에 있는 녀석의 표정이 기괴하게 일그러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것은 기운을 회수한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단둘이 나누던 대화가 심심하던 참이니, 분위기를 띄울 겸 사람을 불러오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사양하겠습니다. 제게도 보는 눈은 있으니까요.”
놈의 기괴한 목소리가 한껏 웃는 것처럼 들렸다.
인간은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동물이었다.
칼날에 손이 스치면 다치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듯. 정해진 결과가 있음에도 무모한 행동을 하는 것은, 아마 짐승이라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녀석은 그런 최소한의 생각은 할 줄 아는 놈이었다.
“그렇다면 두 번째 선택지는 무엇입니까?”
“지금처럼 암흑가를 운영하는 것이다.”
“아까보다는 나은 선택지군요.”
마치 장난처럼 답하는 녀석.
애초에 이 정도는 되는 녀석이란 걸 알곤 있었다.
“뭐, 그렇게 되겠지.”
나도 장난스럽게 웃으며 답했다.
하지만 녀석은 이미 눈치챘으리라.
그것이, 결코 농담조로 들릴지언정 빈말이 아니라는 것을.
녀석은 이미…… 대화의 핵심을 꿰뚫고 있었다.
“제게는 그 제안이, 전하의 입맛에 맞도록 음지를 움직이겠다는 뜻으로 들립니다.”
“정답이다.”
음지의 세력마저도 이 손으로 장악하겠다는, 욕심 가득한 처우.
그것이 바로 에드워드와 내가 내린 이용법이었다.
‘필요악. 그것이 눈에 거슬린다면, 목줄을 채우면 그만일 테지.’
사냥개라는 이름하에 그것을 컨트롤 할 수 있다면, 그 세력은 내게 더할 나위 없는 힘을 안겨 주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내게는 무척이나 쉬운 일이었다.
“마음에 드는 제안이었으면 좋겠는데.”
“예, 자비를 베풀어 주셨으니 당연히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없겠지요.”
……하지만.
“그렇지만 문제가 있습니다.”
녀석은 그렇게 말하면서 고개를 들이밀었다.
그러자 붕대 사이에 드러난 눈이 더욱 자세하게 보였다. 신경이 꿈틀거리며, 금방이라도 핏발 설 것 같은 눈이었다.
“……그것이 제게 줄 수 있는 이득은 무엇입니까?”
그 욕망에 번뜩이는 눈빛.
녀석은 말했다.
“전하께서는 지금이라도 바로 저희 모두를 청소할 수 있으십니다. 네, 저희가 아무리 발악해 봤자 막을 수 없겠지요. 하지만.”
원래 성향이 그러한지, 그것도 아니면 방금 죽음을 경험했기에 나온 객기인진 모르겠으나. 그것은 분명 광기라 불러 마땅했다.
“절 없앤다고 그것을 이룰 수 없으리란 사실을, 영민하신 전하라면 이미 충분히 알고 계실 겁니다. 그렇기에 이렇게 귀찮은 일을 하면서까지 저를 알아보려 하신 걸 테고요.”
“눈치가 아예 없진 않군.”
“예, 저라면 전하의 뜻을 이룰 수 있습니다. 원하시는 것 그 이상까지도 깔끔히 말이지요. 그래서…….”
얼마를 주실 수 있으십니까?
자신에게 무슨 이득을 줄 수 있느냐고. 무엇이 자신을 움직이게 할 수 있느냐고.
한 가지 선택지와 정해진 결과 속에서도 자신의 가치를 흥정한 것이다.
자신의 목숨을 건 배팅.
나는 그 태도에 입꼬리를 끌어당기며 웃었다.
“……재미있군.”
내게 이 상황은 너무도 재미있었다. 아마도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면, 그 건방진 행동을 죽음이라는 이름으로 갚게 해 주었겠지.
다만 그것이 이자, 존 헤드윅의 성향을 알고 있다면 말은 달랐다.
‘한 번 받은 의뢰는 결단코 저버리지 않는다.’
돈으로 얽힌 관계는 반드시 지키는 남자.
그것이, 지금의 암흑가를 있게 만든 존 헤드윅이라는 사람이었다.
전생에서는 그 탓에 자신이 죽게 되었음에도 끝까지 물러서지 않았다. 내 검에 반이 갈려 죽던 그 순간까지도 녀석은 한결같았다.
그렇기에 오히려 매력적이었다.
지금의 그는 충성이라는 맹목적인 감정을 내게 팔겠다고 한 것이나 다름없기에.
‘목적이 뚜렷한 사람일수록 컨트롤은 간단한 법이지.’
그리고 거기에서 나오는 충성은 언제든지 배신할 수 있는 알량한 동경 따위보다도 믿음직했다.
마치 ‘가족의 안위’라는 방향성을 가졌던 조지처럼 말이다.
나는 꼬아진 다리를 풀며 말했다.
“정보의 가치는 곧 돈이지. 그것이 올바른 이에게 돌아가게 된다면 막대한 부를 낳을 수 있을 것이다.”
“그 말씀은…….”
“앞으로 나는 네놈에게 사업의 정보를 제공해 주겠다.”
얼굴을 가린 붕대가 씰룩 움직였다. 아까보다 더욱 큰 흥미를 느낀 것이다.
“그것이 그만큼의 가치가 없다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가치는 반드시 있을 것이다. 그것이 내게도 이익으로 돌아오게 될 테니까.”
“흠! 그렇군요.”
뒤 세계를 주무르던 놈답게 내가 왕국 상단을 이용해서 무엇을 한지 떠올렸는지, 녀석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표정은 그 말속에 내포된 뒤 내용까지 이해한 듯했다.
왕국 상단을 비롯한 내정에 손을 댈 수 있게 되었다고 해도, 결국 할 수 없는 일들은 존재하기 마련이었다.
1왕자라는 자리가 주는 자유와 맞바꾼 셈이다.
그러니 나는 내게는 불가능한…… 그리고 왕실의 이름으로 불가능한 일을 이들에게 맡길 생각이었다.
불법과 합법 사이를 넘나드는 여러 사업을.
그리고 그것은 단순히 돈을 버는 일이 아니리라.
“알겠습니다. 거래 성립입니다.”
잠시 눈을 감고 생각을 정리하는 사이, 녀석은 자리에서 일어서며 곧장 부드럽게 허리를 숙였다.
충성이라는 이름의 의뢰를 받아들인 것이었다.
내 입꼬리가 흡족하게 올라갔다.
……나쁘지 않군.
전에는 이빨을 들이밀었던 그 사냥개가 마침내 복종한 것이다.
녀석이 얼마나 끈질긴지, 그리고 그 이빨이 얼마나 날카로운지 아는 만큼 만족감이 더 컸다.
‘네 녀석도 한번 느껴 보는 게 좋겠지.’
본디 좋은 것은 나누라고 하니, 충분히 맛보게 해 주마.
나는 턱을 쓰다듬으며 상념에 잠겼다.
그뿐이 아니라도, 녀석을 활용할 방법은 무궁무진했다.
예를 들면, 음지의 세력으로 일을 맡기고, 이를 왕실의 힘으로 보조한다든지.
이미 회귀 전의 기억을 통해 그 성공 여부마저 알 수 있었으니, 말 그대로 더는 거리낄 일이 없다.
그럼…….
“첫 번째 지시를 내리지.”
“하명하십시오.”
“지금부터 내가 말하는 암흑가의 세력을 정리하도록.”
붕대 사이로 낮은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후환조차 남지 않도록 관리자들을 모조리 죽이는 정도면 충분하겠지.”
암흑가는 명백히 범죄자들의 소굴이었다.
당장 그들이 운영하는 정보 길드나 암살 길드가 그러했으며, 암상인 길드 역시 마찬가지였다.
특히나 그 일부는 썩을 대로 썩은 참이다. 부패의 원인을 도려내지 않으면 모두가 썩어 버릴 터다.
“예, 본부대로 하겠습니다.”
녀석은 반문조차 하지 않은 채 그 명령을 받아들였다.
게다가 거기서 한 발 더 나가서 내가 원하던 것을 바로 입에 담았다.
“암상인 길드를 정리하면 되겠습니까?”
“이야기가 빨라서 좋군.”
음지의 길드 중에서도 그 어느 곳보다 돈에 민감한 곳.
녀석들은 돈을 벌기 위해 귀족들에 줄을 대는 경우가 많았다.
‘아수스의 지원을 받던 경매장의 총지배인처럼 말이지.’
조지의 개인실에 쌓여 있는 아수스의 경매 물품들. 나는 그것을 떠올리며 미소 지었다.
그런 놈들은 계획에 방해만 될 뿐 쓸모가 없었다. 그곳에는 내 입맛에 맞는 이들을 집어넣는 정도면 충분했다.
“암상인 길드는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정리하겠습니다.”
“좋아.”
착-!
마주한 책상 위로 무언가가 미끄러졌다.
이윽고 녀석의 지근거리까지 날아간 ‘그것’은 정확히 놈의 앞에서 멈추었다.
……수정구였다.
“연락은 그것을 통해서 하도록. 통신은 일방향일 것이다.”
“호출용 수정구군요. 그것도 통신 신호를 파악하지 못하게 만들어진.”
“그 이후에는 이쪽에서 사람을 보내지. 용건이 있을 때도 마찬가지다.”
“기대하겠습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녀석과 눈을 마주했다.
왕실과 음지. 결코 맺어질 수 없는 두 세력 간의 믿을 수 없는 관계가 생겨난 순간이었다.
* * *
암상인 길드 소속 상인 케세드.
그는 길드의 간부인 동시에, 길드에서 개최하는 경매장을 관리하는 총지배인이기도 했다.
허나 그런 그조차도 암흑가의 수장을 만난 적은 없었다.
오히려 그 얼굴을 본 사람이 두 손에 꼽을 정도였으니 당연한 말이었다.
하지만 그는 오늘, 무려 그런 수장의 초대를 받고 움직이는 중이었다.
‘드디어 기회가 왔구나.’
케세드의 얼굴에 희열이 스쳐 지나갔다.
그의 얼굴을 본다는 것은 간단하게 말해 자신을 중역으로 쓰겠다는 말과도 다르지 않았다.
지금도 이 자리에서 얻는 이득에 충분히 만족하고 있었음에도, 강을 떠나서 더 넓은 바다로 나아갈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나쁘지 않은 직책이기는 했다만, 안전한 것은 아니었지.’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린 그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었다.
연방제국에서 4황자의 대리인이 찾아왔을 때는 곧 죽어도 이상하지 않겠다 싶을 정도로 긴장하기도 했었다.
다행히 사건을 유야무야 무마하기는 했으나, 그때의 충격이 워낙 컸던 탓에 한동안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 길드의 중역으로 올라가면 작별이었다.
순수하게 자신에게 떨어지는 콩고물만으로도, 지금보다 더 큰 이득을 볼 수 있을 테니까.
“흐흐흐흐.”
케세드는 외눈 안경을 어루만지며 비릿한 웃음을 흘렸다.
그래, 이 문만 넘는다면…….
그리고 마침내, 그토록 원하던 순간이 그에게 다가왔다.
철컥-
“어서 와라.”
기괴한 목소리와 외형.
케세드는 움찔했으나, 미리 언질을 들은 덕에 기색을 드러내진 않았다.
다만, 정말로 이런 곳에 암흑가의 수장이 있었으니 놀랄 뿐이다.
‘소문대로 본진은 서부에 있었구나.’
심지어 용병길드라니! 이러니 발견할 턱이 있나.
이런 비밀이 공유된 것만으로도 마치 세상의 비밀을 알아낸 것처럼 들뜬 기분이었다.
케세드의 입술이 찢어지듯 길게 올라갔다.
하지만 그 순간, 등 뒤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그의 고개가 돌아갔다.
철컥-
“어?”
순식간에 문이 닫혔다. 그리고 그 문을 대여섯의 남자가 가로막았다.
본진인 만큼 지키는 문을 이들이 있는 것은 당연했지만 이건 다른 문제였다.
지금 나타난 이들은…… 온통 검은색의 복장을 뒤집어쓴 암살자들이었으니까.
“……저, 이게 어떻게 된.”
“아, 별 건 아니다. 단지 확인할 게 있어서.”
“…….”
케세드의 의문에도 불구하고 암살자들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다음에 내려질 명령을 기다리는 것이었지만.
“……음. 암상인 길드의 간부가 맞군.”
그리고 그것은 확신이자 명령이었다.
암살자들은 어디선가 꺼내든 단검을 역수로 쥐며 다가왔고, 케세드는 그제야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하지만 이미 너무 늦은 시점이었으리라.
“서, 설명이라도…… 큭!”
콰당-!
번뜩이는 살기에 뒤로 슬그머니 물러나던 케세드의 발이 꼬였다.
그는 우스꽝스럽게 자리로 넘어졌지만, 놀라울 정도로 빠른 속도로 몸을 일으키는 데에 성공했다.
하지만 그 위로, 기괴하면서도 차가운 목소리가 내려앉았다.
“마지막으로 전해 달라던 말이 있었다.”
“마, 마지막이라니…….”
“의미는 모르겠지만 자네가 네 번째라고 하더군.”
……네 번째?
푹!
“커억─!”
케세드는 몸속을 파고드는 비수의 감각을 느끼며 그 단어를 곱씹었다.
다만 의미는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숨이 끊어진 까닭이었다.
“정리하겠습니다.”
“음.”
스르륵-
암살자들은 죽은 암상인의 시체를 밖으로 끌어냈다.
그리고 그때까지도, 붕대 속에 감추어진 눈빛은 암상인의 얼굴을 쫓고 있었다.
무척이나 흥미로운 듯한 눈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