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112화
자그마한 균열 (1)
암흑가에 속한 암상인 길드의 윗선이 모조리 죽어 나갔다. 덕분에 암흑가 내부에는 작은 소란이 일었다.
한 단체가 말 그대로 풍비박산 난 상황이었으나 작은 소란이라 표현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그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을 정도로 은밀했으며, 또한 대처마저 신속했던 탓이다.
그렇기에 암흑가는 평소와 같은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 누군가가 바랐던 모습 그대로를 유지한 채로…….
척-!
“통신이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 소식을 곧장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오만하게 내리깔아진 눈은 조지가 가지고 온 보고서를 바라보며 살벌하게 빛났다.
“……나쁘지 않군.”
예상대로 간결하고 빠른 그자의 행동에 만족감이 느껴졌다.
이틀. 암상인 길드가 완전히 해체되고 정리되는 데까지 걸린 시간이었다.
물론 암상인 길드뿐만 아니라 손봐야 할 곳은 많았다. 입맛대로 움직이게 하기 위해서는 당연한 수순이다.
하지만 가장 먼저 암상인 길드를 선택한 이유는 간단했다.
‘놈들이 아수스에게 협력했기 때문이지.’
아수스가 연방제국과 붙어먹었다는 사실을 알고도 관계를 유지했다. 오히려 4황자 아래에 빌붙어 이득을 얻고자 했다.
이제 암흑가라는 음지 최대의 세력이 내 손 아래에 들어온 이상 놈들을 놔둘 이유는 없었다.
‘뭐, 당연히 그런 이유만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내 입꼬리가 작게 올라갔다.
“그 외에도 통신으로 전해 온 내용이 있을 텐데?”
“슬슬 의뢰의 ‘선수금’을 달라고 하더군요.”
“그렇군.”
약속에는 신의가 뒤따르고, 계약에는 대가가 필요한 법이었다.
나 역시도 놈들의 일이 끝나기만을 기다렸으니, 썩 반가운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윽고 흘러나온 내 말은, 선수금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이야기였다.
“연방제국에서는 소식이 들려왔나?”
“……연방제국이요?”
아니, 갑자기?
조지는 그런 내 말에 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이었다.
“뭐, 일단은 야만족과의 전쟁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 외에는 별다른 소식은 없습니다. 신성제국의 치료사제들이 파견되었으니 정치적인 메시지라도 보낼 줄 알았는데 말이죠.”
성명, 도발, 사신단 등등.
그건 아무리 야만족과의 싸움으로 급한 상황이었다고 해도 그러하였다.
명색이 제국, 그럴 여유조차 없는 것은 아니었으니.
“어차피 놈들도 예상하고 있었다는 말이겠지.”
“작년 가을에 있었던 회담 때문에 말입니까?”
“그래.”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가볍게 다리를 꼬았다.
성녀가 이끄는 신성제국의 사절단이 찾아왔던 가을.
그 과정에서 에스테반과 신성제국 사이에서 모종의 이야기가 오갔다는 것쯤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사실이다.
거기까지 확인했다면 그 이후는 간단하다.
……야욕을 드러내는 연방제국을 견제하기 위한 두 국가의 협력.
치료사제의 파견 자체는 예상하지 못했을 터나,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은 아니라는 소리다.
다만.
“그 주도권을 에스테반이 쥐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않고 있겠지.”
나는 눈을 감았다가 떴다.
감추어진 비밀과 신성철이라는 두 요소가 만들어 낸 관계.
그것은 사실상 에스테반이 그들의 목줄을 쥔 것이나 다름없었다.
‘앞으로는 놈들이 예측한 것 이상의 협력이 일어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예측하지 못한 연방제국에게는, 말 그대로 눈을 뜨고 코를 베인 것만 같은 느낌으로 다가오리라.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놈들에 관한 이야기를 꺼낸 것은 그 때문이었다.
“내부의 균열을 만들어 천천히 잠식해 나가는 것은 놈들이 가장 애용하는 수법이다. 알고 있겠지?”
“뭐, 그렇죠. 아수스 때도 그랬지만, 공작원을 보낸 것도 그런 점을 위해서였으니까요.”
“한데, 그것을 우리라고 하지 못할 이유가 있나?”
“허!”
내 입꼬리가 비틀어졌다.
지금까지는 놈들과의 전쟁을 대비하기 위해 무언가를 만들고, 바꾸어 나갔다.
하지만 그것이 에스테반에서 저지르는 일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면? 직접 놈들의 본진으로 들어가서 방해 공작을 펼칠 수 있다면?
녀석 역시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을 이해하고는, 웃음을 참는 것처럼 말했다.
“암흑가, 그것을 점령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군요.”
“그래.”
나는 존 헤드윅에게 돈을 벌 만한 정보를 제공해 준다고만 했지, 그것이 에스테반의 일이 아니라고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음지의 세력이라는 것은 참으로 매력적이었다.
“놈들은 기사들과 다르게 도덕적인 관념에 거리낌이 없다. 수단도 방법도 가리지 않으니까.”
“거기에 그것에 특화된 능력과 세력을 지금까지 길러 왔으니 애써 시간을 들일 필요도 없겠군요.”
“그래. 왕실의 힘만으로는 결코 하지 못할 일들을, 놈들의 손으로 처리하는 것이다.”
그 말을 들은 조지가 턱을 쓰다듬으며 눈을 번뜩였다.
“전쟁 중이라는 특수한 환경을 이용해서.”
“정답이다.”
거기까지 이야기가 나왔으면 더 이상의 설명은 의미가 없었다.
과연 조지는 고개를 까닥거리며 재차 턱을 쓰다듬었다.
“뭐, 상대를 망치고 싶다는 악의만 있다면 불가능하진 않겠네요.”
“……그것을 어디에서 들었지?”
“나름대로 신조 같은 말입니다.”
나는 조금 놀란 기분으로 눈매를 좁혔다. 회귀 전의 ‘녀석’이 입버릇처럼 달고 다니던 말이었기 때문이다.
그 순간 그렇게 말하는 조지의 입술이 짓궂게 말아 올려졌다.
마치, 연방제국의 참모로서 활약하던 그때의 모습처럼…….
“이왕이면 거기에 하나 더 얹죠?”
“무엇을 말이지?”
“뭐, 놈들을 망치게 만들 계획 말입니다. 대충 떠오른 것이 있어서요.”
“……호오.”
우뚝-
무의식적으로 책상을 두드리던 내 손가락이, 의외의 감정을 느끼고 멈추었다.
그와 동시에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정말로 그 모습에선 회귀 전의 녀석과 같은 자신감이 흘러나오고 있었기에.
그리고 나는 이어지는 녀석의 설명을 들으며 확신했다.
‘……조지 헤그메스.’
녀석을 데리고 온 지도 벌써 일 년이라는 세월에 가까워진 지금.
놈은 슬슬 내가 바라던 모습을 갖추어 나가고 있었다.
가슴 깊은 곳까지 차오른 악의로 상대를 무참히 망가뜨리는, 그 악명 높았던 참모의 모습으로.
* * *
에스테반 최대의 음지 세력 암흑가.
그들은 수도를 비롯한 인근 영지의 대부분을 장악할 정도로 거대한 세력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적수가 없느냐 하면 그건 아니었다. 암흑가의 힘이 닿지 않는 곳에는 자잘한 세력이 존재하기도 했고, 때때로 영지를 관리하는 귀족 개인이 음지를 관리하는 경우도 있었으니까.
그리고 빌른 영지의 뒷골목을 장악한 것은, 두 가지 모두를 충족한 세력이었다.
귀족의 위세를 빌려 성장해 온 음지의 세력. 수도와도 멀리 떨어져 있었으니 암흑가의 견제를 받을 일도 없었다.
비록 작은 영지의 세력이라 하더라도, 독자적인 돈벌이 수단을 발전시키기에 충분했다는 소리였다.
하지만 그런 그들에게도 갑작스런 재앙이 찾아왔다.
서걱-
“으아아악!”
“도, 도망쳐!”
평소라면 적을 앞에 두고 도망가는 것을 용납할 건달들이 아니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저 흉측하게 늘어선 시체들 속에서 비수를 번뜩이는 이들을 이길 방법은 없었으니까.
“쫓아라.”
“예.”
누군가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그림자가 움직였다.
도망가던 건달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렸으나, 결코 그 훈련된 움직임을 따돌릴 수 없었다.
푹!
서걱!
“커헉!”
“으으윽!”
‘제, 젠장!’
숨어서 그 장면을 지켜보던 한 건달이 두려움에 떨며 숨을 몰아쉬었다.
싸늘하게 드러누운 시체가 늘어날 때마다 얼굴에 초조함이 서렸다.
정확히는 공포였다. 운이 나쁘면 이 자리에서 도망가지 못할 거라는 원초적인 두려움.
‘직속 암살대가 이런 곳에 오다니…….’
암흑가 최강의 암살 길드이자 비밀병기.
틀림없었다. 저 인상착의와 실력은 놈들이 분명했다.
그러니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절대로 들키지 않을 거라면서……!’
그들과 연줄이 있는 빌른 남작은 돈을 원했다. 그리고 그건 자신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이해관계가 맞은 두 세력은 쥐도 새도 모르게 하나의 사업체를 만들었다. 그것이 바로 이 장소였다.
하지만 절대로 들키지 않을 거라는 남작의 호언장담과는 다르게 결국 일이 터져 버렸다.
다른 누구도 아닌 암흑가에게 들켜 버린 것이다.
‘최소한 이 장소를 이대로 내주면 안 된다.’
이 장소는 극비리에 운영되어야 하는 시설.
그러니 살아서 돌아가더라도 이곳을 빼앗긴 이상 빌른 남작에게 죽임을 당할 가능성이 높았다.
차라리 지금은 증거라도 소멸시켜야 했다.
스윽-
그렇게 숨어 있던 남자가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성냥개비였다.
‘제발…… 빨리…….’
화르륵-!
‘됐다!’
다행히 성냥은 건달의 다급함을 알기라도 하듯 재빠르게 머리를 불태우며 그 몸집을 불려 나갔다.
그는 희열에 찬 표정으로 성냥개비를 던졌다.
……아니, 던지려 했다.
“네놈이 마지막이군.”
“……!”
푹!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가 돌아간 순간, 목덜미에 틀어박힌 금속의 찬 감촉을 느끼며 허물어졌다.
마지막으로 보인 것은 검은 두건 사이에 감추어진 무신경한 암살자의 눈이었다.
스윽-
암살자는 그렇게 마지막 생존자를 바라보며 성냥을 발로 밟아 껐다.
“……끝났습니다.”
“정리하도록.”
“예.”
더 이상 살아 있는 사람이 남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한 암살자들은, 산개하며 주변을 정리해 나갔다.
그때 동안, 암흑가의 지배자인 존 헤드윅은 여유롭게 그 광경을 눈에 담았다.
‘……놀랍군.’
민가 사이에 숨어 있는 넓은 지하 공간.
그 안에 보이는 것은, 구석에 고이 모셔진 포대 자루들과 의문의 도구들이었다.
존 헤드윅은 그것을 향해 다가갔다.
슬쩍 들춰 본 포대 자루 속에는 하얀 가루가 가득했다. 암흑가를 지배하는 그가 그 가루의 정체를 모를 리는 없었다.
‘마약.’
이 시설은 마약을 제조하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었다. 이곳에서 만들어진 마약들은 귀족의 힘으로 몰래 유통되어 왔겠지.
다만 놀라운 사실은 이 장소를 점지한 것이 다름 아닌 1왕자라는 사실이었다.
-빌른 영지의 마약 제조 시설을 빼앗아라.
두 번째 명령.
한 국가의 왕자가 내리기에는 너무도 부적절한 명령이었다.
그것을 파괴하라는 것도 아니고 빼앗으라니?
“……빌른 남작의 일은 직접 처리하겠다고 했던가.”
그건 사실상 암흑가에게 마약 유통 시설을 ‘공식적으로’ 맡긴 것이나 다르지 않았다.
그 지시를 믿지 못하고 이곳까지 친히 따라온 존 헤드윅이다. 하지만 직접 본 이상 더욱 흥미로울 따름이다.
“마약의 유통이라.”
존 헤드윅이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것이 돈이 되느냐 되지 않느냐를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이 시설은 선수금으로 받기에는 충분하다 못해 넘칠 정도였다.
순간, 그날에 있었던 1왕자와의 대화가 떠올랐다.
-그것이 내게도 이익으로 돌아오게 될 테니까.
바꿔 말하자면 이 마약들을 유통하는 것이 1왕자에게도 도움이 된다는 소리였다.
당연히 이해는 갔다. 1왕자는 에스테반에서 마약을 유통하는 일을 철저하게 금했으니까.
그렇다면 남은 유통 루트는 한 군데였다.
“큭큭큭, 아…… 정말 유쾌하군. 다른 확신이 있는 건가? 아니면 날 그렇게까지 믿는 건가?”
아니, 그자라면. 직접 독대했던 그런 자라면 나에게 모든 것을 맹목적으로 맡긴 뒤 방치할 리 없다.
미리, ‘알고’ 있는 것이다.
내가 어떻게 할지를.
존 헤드윅의 기괴한 목소리에 웃음기가 가득했다.
슬슬 왕자가 그리는 그림이 뭔지 감이 오기 시작했다.
“재밌군, 정말 재미있어.”
보통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위선을 떨기 마련이다. 그것이 특히나 윗선에 있는 고귀하신 분들이라면 더더욱.
하지만 이자는 다르다.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정말로’ 목적을 위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인물은.
저쪽이 이렇게까지 보여 줬다면, 이쪽도…….
“최대한 원하시는 것에 동참해 드려야지.”
그래. 당신이 원하는 대로 이쪽은 철저하게 유통해 보이지. 내 모든 능력을 다해서.
“제국군을 물밑부터 무너트리는 것은 과연 어떤 맛일지.”
기대되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