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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114화 (114/223)

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114화

준비된 일, 잊힌 땅 (1)

야만족의 대대적인 습격으로부터 수개월이 지난 북부의 땅.

태양기사단과 왕실의 재빠른 도움으로 국토를 유린당하는 것을 어찌저찌 막을 수 있었다 해도, 그 피해가 전무한 것은 아니었다.

도리어 초반에 쳐들어왔던 규모가 예년과 차원이 다른 수준의 습격이었던 터라 그 피해는 거대했다.

하지만 그간 복구는 착실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북부의 영주민들은 점차 터전을 되찾아 갔고, 이제는 평범한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그 역시도 왕실의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겠으나, 무엇보다도 올바른 지휘가 있지 않고서는 어려운 일이었으리라.

그리고 그 모든 지휘를 담당하는 것이, 바로 변경백의 지위를 가진 로메르트 가문이었다.

“이제 물자는 충분합니다.”

젊은 사내, 변경백의 손자가 말했다.

그는 로메르트 가(家)를 대표하여 북부의 피해를 복구하는 작업에 힘쓰고 있었다.

아직 젊은 나이에 큰일을 맡은 것이 가신들로서는 믿음직스럽지 않을 법했으나, 다른 북부의 영주들보다 낫다는 변경백의 말에 잡음이 나오지는 않았다.

하지만 정말로 더 낫다는 말이 헛되지는 않았는지, 그 능력을 십분 발휘하여 북부의 복구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사자 아래에서 개새끼가 날 수는 없는 법이었으니.

“고생했다.”

그렇게 노쇠한 변경백은 고개를 끄덕이며 보고를 받았다.

“그리고, 다른 영주들에게도 그 사실을 전했느냐?”

“예, 할아버님.”

“이제 병력을 점검하고 야만족의 습격을 감시하기만 하면 되겠구나.”

변경백의 표정이 한결 풀어졌다.

특히나 국경지대는 처참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큰 피해를 입었거늘, 그마저도 복구가 되었다고 하니 다행이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대로 마음을 놓고 있지 말고 준비해 두어야 한다. 언제든지 움직일 수 있도록 해야 해.”

“그분의 연락이 닿을 때까지 기다리란 말씀이시지요?”

“그래. 머지않아 연락이 도착할 테니까.”

로메르트 변경백은 오래전부터 한 가지 염원을 가지고 있었다.

더 이상 에스테반의 땅이 야만족의 공격으로부터 위협받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그 불가능하지만 이상적인 소원을.

그렇기에 언젠가의 1왕자가 보냈던 ‘그’ 연락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언제 어느 때라도 그의 뜻에 따를 수 있도록. 조금의 지체도 없이 희망을 위해 달려 나갈 수 있도록.

“음?”

그 순간이었다.

손자와의 대화를 이어 가며 창밖을 바라보던 그의 두 눈으로, 익숙한 형태의 마차가 보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오래 기다릴 필요는 없을 것 같구나.”

“예?”

중얼거리는 변경백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맺혔다.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희미한 미소였다. 하지만 손자는 그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드디어 때가 왔군요.”

“그런 모양이구나.”

펄럭-!

변경백의 두꺼운 망토가 그 움직임을 따라 움직였다. 왕성에서 온 손님을 맞이하기 위한 발걸음이었다.

“지금 바로 가신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준비시켜야 한다. 한시가 급하니 최대한 빠르게 움직이도록.”

“알겠습니다.”

손자가 고개를 숙이자, 변경백의 입매에 걸쳐 있던 옅은 미소가 사라졌다.

그리고 남은 것은 한없이 진지한 눈빛이었다.

마치, 태양기사단과 함께 성벽을 방어했던 그때처럼.

* * *

“전하, 급보이옵니다!”

이리도 다급한 움직임은 결코 흔한 일이 아니었다. 그것이 국왕의 집무실에서 벌어진 일이라면 더욱.

국왕은 급히 들어온 귀족의 목소리에 읽고 있던 서류를 내려놓고 답했다.

“발테르 후작이군, 대체 무슨 일인가?”

“북부의 병사들이 무장을 시작하고 전쟁을 준비한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보급을 요청한 것으로 보아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북부. 그것은 에스테반의 북부를 뜻하는 것일 테지.”

“그, 그렇습니다!”

물론 병력 운용에 일부 통제권을 가진 북부가 군세를 키우거나 하는 일은 있을 법했다.

야만족의 위협은 늘 도사리고 있고, 북부의 병력은 언제나 부족했으니까.

하지만 물자를 모으고 전쟁을 준비한다는 이야기는 달랐다.

“연방제국과의 전쟁 탓에 야만족의 습격도 줄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의 북부는 피해 복구 작업에 힘쓰고 있어야 하는데, 어째서 병력을 일으킨단 말입니까?”

이유는 있을 것이다. 아무런 이유 없이 병력을 일으킬 이유는 없으니까.

그런데 어째서 지금 같은 때란 말인가?

그건 마치…… 반란과 같은…….

“행여나 들어온 소식이 있을까 확인해 보았으나 북부에서 온 통신은 전무하였습니다.”

“그렇군.”

하지만 그렇게 주억거리는 국왕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벌써 준비가 끝났다는 말이겠지.”

“……예?”

문득 그렇게 알 수 없는 대답을 들은 후작의 표정이 멍해졌다. 생각해 보면 진즉에 북부로 통신을 보냈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국왕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무언가 그 행동에 이유가 있을 거라고 믿고, 무의식적으로 짐작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이 일련의 과정은, 그간 자주 보인…… 너무도 익숙한 흐름이었다.

똑똑-

그때였다.

집무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국왕과 후작의 고개가 돌아갔다.

국왕은 낮은 목소리로 나직이 물었다.

“누구인가?”

“접니다.”

“음.”

대개는 ‘접니다’라고 말하는 상대를 알아채기 위해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하지만 일국의 국왕에게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상대는 정해져 있었다.

‘1왕자 전하께서도 소식을 들으셨는가……!’

그것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오신 것이 틀림없었다.

후작은 국왕의 입에서 나온 알현 허가에 반색했다. 하지만 그 익숙한 얼굴 뒤로 함께하는 누군가의 모습에, 딱딱하게 눈매를 굳힐 수밖에 없었다.

“자네는?”

익숙하지만 무척이나 보기 드문 얼굴이었다.

노쇠하지만 강단 있게 다물어진 입술. 길게 늘어진 하얀색 수염.

놀랍게도. 수도에 있을 리 없는 그가 1왕자와 함께 이 자리에 들어오고 있었다.

“뭇 기사들의 이정표이자 에스테반 왕국을 이끄시는 국왕 전하께 인사드리옵니다.”

“……로메르트 변경백.”

야만족과 정면으로 대치하는 북부의 대영주.

그리고 이번 북부 병력 운용 소동의 주인공이자, 북부 복구에 앞장서고 있는 남자였다.

* * *

‘마침 잘됐군.’

나는 아버님의 집무실에 있는 후작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전쟁과 물자. 그리고 예산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거기에 내 계획에도 충분한 예산이 필요할 터였으니, 그가 있다면 이야기는 빠르리라.

“이미 들으셨겠지만, 북부 병사들의 출정 준비는 끝났습니다.”

“아직이다. 지금은 보급에 관한 준비가 끝나지 않았다.”

“그것은 이후에 해도 늦지 않습니다.”

뚜벅- 뚜벅-

“우리에게는 대마법사라는 힘이 존재하니까요.”

“흠!”

아버님의 진중한 침음이 집무실에 울렸다. 후작의 정신은 그 이후에야 돌아왔다.

다만 아직 사태를 파악하지는 못한 탓인지 어안이 벙벙한 눈치였다.

“저, 전하? 출정이니 보급이니, 그게 갑자기 무슨 말씀이십니까?”

“병사들은 북부로 출진할 것이다.”

“……예?”

“에스테반은 야만족의 땅으로 두 번째 원정군을 보낸다는 뜻이다.”

“……!”

후작의 몸이 우뚝 굳었다.

단언컨대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이야기였다.

아버님을 바라보는 눈빛이 해명을 바라는 것 같았으나, 마찬가지로 아버님께서는 아랑곳하지 않으시는 것 같았다.

촤악-!

물론 아랑곳하지 않는 것은 나 역시도 마찬가지다.

나는 그 의문을 뒤로하고 지도를 펼쳤다. 이미 지도 위에는 자그마하게 표시된 선들이 줄지어 그어져 있었다.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아버님께서 이미 알고 계실 터였으나, 한 번쯤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었다.

“작년 여름에 있었던 북부 원정의 루트입니다.”

“제한적이지만 최대한 많은 장소를 둘러보기 위해 선발대와 후발대를 나누었지.”

“그렇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이미 야만족의 땅 내부의 구조는 파악해 두었습니다. 또한 예상대로 연방제국의 방어선 역시 야만족들에게 뚫린 상황입니다.”

“지금이 더 없을 정도로 좋은 기회라는 뜻이겠지.”

“예, 그것이 앞선 습격으로 쌓인 경험에 더해진다면, 작년과는 상황이 다를 것입니다.”

“하지만 공간이동을 이용한 보급이라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제아무리 대마법사라 하더라도 그 많은 양을 소화할 수 없을 터인데?”

아버님의 날카로운 질문이 대화를 관통했다.

텔레포트로 보낼 수 있는 물건의 양은 정해져 있었다. 또한 사용할 수 있는 마나도 정해져 있으니 보급을 무한정으로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결국 하루 이틀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에 대한 답변은 내가 아닌 노쇠한 목소리를 통해 흘러나왔다.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물자는 북부에 준비시켜 둔 상태입니다.”

“……이미 북부에 준비되어 있었단 말인가?”

“예, 전하. 수개월 전의 일입니다.”

“허.”

호기롭게 휘어진 내 눈이 아버님을 직시했다.

두 번째 원정군, 그것을 보내는 계획은 이미 오래전부터 쌓여 있던 것이나 다름없었다.

고작 드워프를 구한 것 따위로 만족할 내가 아니었으니까.

“자,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그때, 식은땀을 흘리고 있던 후작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나를 쳐다보았다.

“원정군이라니…… 이토록 갑작스럽게 일이 진행되는 경우가 당최 어디에 있습니까? 저는 결코 들은 기억이 없습니다!”

“전혀 급작스럽지 않다. 이미 아버님과는 이야기가 끝난 상황이었으니.”

“하, 하면 더욱 이상한 것이 아닙니까?!”

무려 야만족의 땅으로 들어가는 원정군이었다. 그 어느 곳보다도 왕실과 가장 먼저 논의가 오갔어야 하는 주제임은 분명했다.

하지만 나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 씩 웃으며 답했다.

“북부의 병력은 운용의 재량권을 인정하고 있지. 원정군이라 해도 북부의 병력만으로 진행될 터니 문제는 없고, 왕실과 논의할 이유도 없다.”

“그, 그게 무슨…….”

“정확히는 왕실의 원정군이 아닌 로메르트 영지 개인의 전투라는 뜻이지.”

“……!”

후작의 눈이 더할 수 없이 크게 뜨여졌다.

하고 싶은 말이 많은지 입술을 재차 오물거리는 모습이었으나, 그 이상의 반박은 나오지 않았다.

왕국의…… 그리고 대륙의 법으로도 전혀 문제가 없었던 탓이다.

“야만족의 땅은 대륙에서 인정하는 국가가 아니다. 다만 위험성 때문에 ‘금지’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을 뿐이지.”

“그건…….”

주인 없는 땅을 강제로 점거하고 있는 야만족들.

그 땅을 침범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었고, 그것이 영지 차원에서의 토벌이라 하더라도 마찬가지였다.

지금까지 그러지 않았던 것은 그저 그들이 너무 강했기 때문이었다는 말이다.

‘뭐, 일종의 특수성을 이용한 편법이지.’

특히나 야만족들과 맞닿은 로메르트 영지이기에, 그 땅을 침범하는 것을 누구도 뭐라 하지 못하리라.

그것은 그들에게 주어진 권리를 이용한 것이었으므로.

……그러나 아직 부족했다.

명확한. 그리고 보다 확실한 목적이 없다면, 원정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자충수에 불과했다.

오히려 이전의 성공을 빛바래게 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뭐, 가치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지도 위에 선을 그었다.

에스테반의 국경선으로부터 보다 넓게 북부로 퍼진, 마치 국토를 넓혀 놓은 것만 같은 하나의 선을.

“……전하, 이것이 무엇입니까?”

“새로이 에스테반의 영역이 될 곳이다.”

“그, 그 말씀은……!”

후작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며 말을 더듬었다.

그와 반대로 내 눈은 점차 반달처럼 휘어지고 있었다.

그래, 이번 원정군은 이전처럼 절반의 성공만을 가져오지는 않으리라.

온전히 원정군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움직임을 보일 것이고, 보다 완벽한 성과를 이루게 될 터였다.

“에스테반의 국토를 넓히고 보다 안전한 방어선을 구축할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이날만을 기다려왔다.

누구도 에스테반에 간섭할 수 없는 상황이 들이닥친, 지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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