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117화
준비된 일, 잊힌 땅 (4)
“방향은 북동쪽! 병력의 수는 최소 오백으로 추정됩니다!”
“급히 주변의 병력을 모아 온 모양이군. 거리는?”
“대략 4킬로미터 근방입니다!”
나는 들려오는 병사의 외침을 들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어느새 주둔지 내부는 혼란으로 아수라장이 되어 가고 있었다.
그 뒤로 변경백의 가신이 따라붙으며 다급하게 재촉했다.
“저, 전하! 야만족 전사 오백이라고 합니다!”
“나도 안다.”
“어, 어서 병력을…… 아니, 지금은 차라리 대마법사님의 마법을 이용하여…….”
……헙!
그는 그렇게 횡설수설하다가 내 시선을 마주하고는 그대로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
바라보는 그 시선이 너무도 차갑고 무표정했던 탓이다.
“자네가 이번 원정의 지휘를 맡았나?”
“아, 아닙니다.”
“그렇다면 닥치고 있도록. 사태를 파악하는 것도, 정리하는 것도. 모두 네 역할이 아니다.”
“……명심하겠습니다.”
변경백의 가신은 그렇게 고개를 조아렸다.
나는 그 모습을 지나쳐 걸어가며 다가오는 조지에게 지시를 내렸다.
“병력을 벌써부터 소진시킬 필요는 없겠지. 태양기사단과 함께 놈들을 처리하고 오겠다.”
“뭐,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느낌이네요.”
“당분간 주둔지 내부의 지휘는 네놈에게 맡기겠다.”
“예? 저요?”
너무도 갑작스러운 지시에 조지는 일그러진 얼굴로 되물었다.
“제가 뭐라고 병력을 지휘합니까?”
“이런 일을 대비해 많은 것들을 익히게 했을 터다.”
“아니, 그건 그런데…….”
“시키는 대로 하도록. 이견은 허락하지 않겠다.”
녀석이 뭐라 하던 내 생각은 변치 않았다.
화전민의 마을에서 녀석이 보여 주었던 통솔력. 그리고 이후 내게 연방제국에 피해를 입힐 작전이라며 가지고 왔던 수법.
그런 능력들은 충분히 회귀 전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그렇다면 병력을 통솔하는 것 역시도 마찬가지리라.
‘점점 경험을 쌓게 만드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야만족은 분명 강하지만, 충분히 상정 내다. 심지어 녀석들은 우직하고 저돌적이지. 힘만 부족하지 않은 이상 경험을 쌓기엔 이만한 상대도 없을 터.
이렇게 조금씩 실전을 경험한다면…….
그리하면 점점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자라나게 될 것이다.
“빠르게 움직여라.”
“……알겠습니다.”
나는 녀석을 눈짓으로 내쫓으며 시선을 돌렸다.
수백의 기감이 느껴지고 있는 방향을 향해서.
* * *
투두두두두!
지축을 흔드는 말발굽 소리가 울려 퍼졌다.
선두에 달리던 군마가 빠르게 치고 나가자, 뒤따르던 기사단 역시 고삐를 몰며 박차를 가했다.
눈 덮인 오지 가운데로 퍼지는 말발굽 소리는 개전의 긴장감을 더했으며, 이윽고 놈들의 병력과 맞닥뜨렸을 때는 그것이 폭발하듯 투지처럼 불타올랐다.
“저기에 있다!”
“검을 들어라!”
챙-!
로데르의 외침과 함께 백 수십 자루의 검이 일제히 뽑혀 나왔다.
하지만 건설 중인 주둔지를 향해 다가오던 야만족들은 그것을 보며 코웃음 쳤다.
“잘 만났다 이 새끼들!”
“그 꼴을 보아하니 작년에 이 땅을 침범했던 에스테반의 똘마니들이 분명하군.”
“이번에야말로 그때의 치욕을 갚아 주지.”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야만족 병력 사이에서 세 명의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다른 야만족들과는 확연히 다른 기세를 내뿜고 있는 전사들.
저들은 다른 누구도 아닌.
“크흐흐.”
“대전사들의 눈에 띈 이상 살아 돌아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마라.”
야만족의 땅을 지배하는 위대한 전사, ‘칸’의 대전사들이었다.
그들을 향해 돌진하던 로데르의 눈썹이 작게 꿈틀거렸다.
‘대전사라, 작년의 원정 이후로 방비를 강화했다는 뜻인가…….’
연방제국으로 출진했던 녀석 중 일부가 돌아온 걸까?
야만족이라고 해서 질서와 규율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말 그대로 부족 단위의 생활을 할 뿐, 명령을 통해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것은 여느 국가들과 다르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저 대전사들은, ‘칸’의 수족이자 일종의 귀족 계급이나 다름없는 이들이었다.
누구보다 막강한 야만족 최강의 전사. 그리고 한 명 한 명이 최상급에 버금가는 실력자들…….
하지만 그럼에도 말을 달리는 로데르의 움직임은 주저함이 없었다.
자신들의 앞에는 그 야만족 대전사 따위보다 압도적인 힘을 가진 남자가 있었으므로.
‘1왕자 전하……!’
로데르의 신뢰 가득한 눈이 선두에 달리는 남자에게 닿았고, 곧 그에게서 나지막한 명령이 떨어졌다.
“작전대로 움직인다. 한 놈도 남기지 말고 죽여라.”
“충!”
그것은 살육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투두두두!
“왕국의 똘마니 새끼들! 죽여 버려!”
“흐아압!”
챙!
검과 도끼가 맞부딪치며 작은 불똥이 하얀 눈밭 위로 튀었다. 그와 동시에 붉은 피가 흩뿌려진다.
당연히 나뒹구는 것은 검을 받아 낸 야만족 전사였다.
“크하하하! 이런 약한 공격으론 어림도 없지!”
하지만 놈들은 조금 다쳤을지언정 멀쩡했다.
잠력을 끌어 일으켜 신체를 강화해서 막아 낸 것이다.
놈들도 예상대로의 결과에 목소리를 드높이며 사기를 드높였다.
그리고 다가오는 기마대를 향해 다시 정면으로 맞섰다.
“죽어라!”
하지만 곧장 놈들을 종횡무진 돌파할 것처럼 움직이던 기마들은 곧장 퍼지며 야만족들의 공격 범위에서 벗어났다.
도끼를 휘두르려던 야만족들이 당황하는 것이 보였고, 이어서 로데르는 검을 회수하며 소리쳤다.
“놈들을 정면으로 상대하지 마라! 치고 빠지면서 수를 줄이는 데에만 집중해!”
“알겠습니다!”
“이런 비겁한 새끼들이!”
“무서워서 꽁무니를 내빼는 것이냐!”
야만족 전사들의 비아냥이 이어졌다.
하지만 태양기사단은 그들과 정면으로 맞부딪치는 것이 두려워서 이런 전략을 선택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단 한 명의 사내가 활약할 공간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
그저 진형을 유도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기사들은 치고 빠지기를 반복하는 데에 거리낌이 없던 것이다.
“전하!”
“놈들의 병력이 흐트러졌습니다!”
“음.”
두두두두!
“…….”
나는 사방에서 울리는 말발굽 소리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곧장 말 인장을 박차며 높게 도약했다.
이윽고…….
쿵-!
“뭐, 뭐야, 이 새끼는?!”
“갑자기 웬 놈이냐!”
놀랍게도 내 몸은 야만족 병력의 사이로 가볍게 안착했다.
충격파에 의해 흩날리는 눈송이와 바람.
야만족 전사들은 수백의 병력 사이에 스스로 둘러싸인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당혹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판단은 빨랐다.
가장 선두에서 말을 달려오던 이가 대뜸 찾아왔으니, 그들이 보기에는 호재라고 생각된 것이다.
“……오냐, 잘 찾아왔다!”
“네놈이 저 똘마니들의 지휘관이렷다!”
후욱-!
사방에서 몰아친 도끼날이 번뜩임과 동시에 파공음이 귓가에 울렸다.
녀석들과는 반대로 나는 무덤덤하게 그것을 감상하며 검을 빼 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담담하게 휘둘렀다.
서걱-!
“컥!”
“크아악!”
털썩-
몇 번의 검격.
그리고 순식간에 시체가 된 대여섯 구의 몸뚱어리가 땅바닥으로 허물어졌다.
그야말로 눈으로 확인할 틈도 없이 순식간이었다.
야만족 병사들은 무엇을 해 보기도 전에 허무하게 당한 동료들을 보며 더듬거리는 음성으로 외쳤다.
“뭐, 뭐야!”
“조심해라! 허깨비 같은 놈은 아니다!”
직접 그 장면을 목도해서인지 녀석들은 경계심을 드러내며 주위를 맴돌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만히 있을 내가 아니었다.
“오, 온다!”
“씨발!”
나는 야만족의 수가 가장 많은 방향을 향해 땅을 박찼다.
녀석들은 내 신형이 흐려지자 당황해하며 도끼를 휘둘렀으나, 신형이 흐리게 보일 정도로 빠른 움직임에 그딴 공격이 맞을 리가 없었다.
서걱!
쿠쿠쿵!
“아아악!”
“뭐야!”
검에 맞은 이들의 몸이 거세게 날아가며 진형을 붕괴시켰다.
보통 검에 베인다는 것은 신체 부위가 절단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정상이었으나, 놀랍게도 그 위력이 너무 강한 탓에 말에 치인 것처럼 충격을 받고 날아간 것이다.
나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된 진형의 내부를 둘러보다가 입꼬리를 끌어당겼다.
“드디어 오는군.”
“이 새끼들이……! 대체 이게 무슨 소란이냐!”
야만족 대전사 둘.
놈들은 태양기사단을 쫓다 내부에서 벌어진 소동에 이끌려, 결국 이곳까지 찾아온 모양이었다.
물론 가장 먼저 녀석들이 본 것은, 이미 멀찌감치 떨어져 나를 보고만 있는 야만족 전사들이었으리라.
“고작 한 놈을 당해 내지 못하고 있다니!”
“쓸모없는 새끼들!”
대전사들은 가차 없이 욕지거리를 내뱉고는 도끼를 쥐었다.
근육이 꿈틀대는 것이, 확실히 다른 놈들과는 위압감부터 달라 보였다.
나는 아랑곳 하지 않고 녀석들을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놈들을 이끌던 대전사는 세 놈이었던가.’
하지만 이 자리에 온 놈들은 둘이었다.
그렇다면 아직 한 명이 태양기사단을 상대하고 있다는 말이겠지.
“……뭐, 한 놈 정도는 넘겨 줘도 괜찮겠지.”
“뭐라?”
팟-!
서걱-!
극히 찰나의 순간이었다.
야만족 대전사의 머리가 분리되어 하늘을 날고, 그 뒤에 서 있던 전사들의 몸이 사방으로 찢겨 나간 것은.
툭-! 데구루루르-
“……!”
청록색 칼날 위로 타오르는 핏빛의 오러. 그리고 분쇄되듯 무너진 진형들.
그리고 비로소 조금의 시간이 더 지나서야, 야만족들은 머릿속으로 방금의 상황을 인지해 낼 수 있었다.
“이, 이런…….”
“바, 방금 그건!”
“으아아악! 도망쳐! 이러다 다 죽는다!”
긍지 높은 강함? 칸의 전사라는 명예?
그런 것들은 압도적인 무와 공포 앞에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나는 혼비백산하며 달아나기 시작한 야만족 전사들을 둘러보며 입술을 혀로 훑었다.
“소용없는 행동들을 하는군.”
“허억!”
우뚝-
스멀스멀 전사들의 머릿속을 잠식하기 시작한 공포가, 문득 명확한 형태를 드러내고 놈들의 발목을 붙잡았다.
그것은 살의였다.
내 몸에서 퍼져 나간 살의가 맹수 앞에 놓인 먹잇감처럼 놈들을 굳게 만든 것이다.
“괴, 괴물 같은…….”
나는 사방에서 흐느끼듯 들려오는 경악에 흡족하게 웃었다.
수십 수백의 병력. 일제히 멈춘 놈들의 몸은, 그 자체만으로도 장관이었으므로.
그러니 마침내 놈들에게 찾아온 것은 안식이었다.
“한 놈만 빼고 모조리 죽여 주지.”
……그래.
그 싸늘한 명령이 지나간 이후에 남은 것은, 안식이라는 이름의 학살뿐이었다.
* * *
내부에서부터 무너진 진형과 대전사라는 최강 전력을 잃은 야만족들은, 허무하리만치 간단하게 태양기사단의 손으로 처단당했다.
피로 물든 새하얀 대지와 시체만이 가득한 산.
그리고 그 경악하리만치 섬뜩한 장면이 지나간 후. 나는 최후에 남은 한 놈에게 다가갔다.
덥석-
“커헉!”
“네놈들 외에도 근처에 병력이 움직이는 장소가 있나?”
“그, 그건…….”
멱살을 틀어 잡힌 대전사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그와 반대로 맞닥트린 내 눈은 싸늘히 놈을 주시하고 있었다.
“숨기지 않는 것이 좋을 텐데? 피차 귀찮게 하지 말고 편하게 가지.”
“나, 나를 살려 줄 것이냐?”
“상황을 봐서.”
“…….”
녀석은 다급하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미 나뒹굴고 있는 동료의 시체들을 보면, 자신 역시 같은 처지가 되리라는 사실을 모를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정보를 알려 주는 것으로 일말의 희망을 바랄 수는 있으리라.
“부, 북쪽으로 반나절 거리에 전사들의 성채가 있다. 우리가 나온 장소가 바로 그곳이다.”
“호오, 병력의 규모는?”
“오, 오백의 숫자가 빠져나왔으니 남은 것은 백 명이 채 안 될 것이다. 내가 아는 것은 그것뿐이야!”
“그렇군.”
푹-!
“커, 커억…….”
녀석은 목구멍에 틀어박힌 금속의 감촉을 느끼며 쓰러져 갔다.
“……쿨럭! 사, 살려 준다…… 며…….”
“상황을 봐서 살려 주겠다 했던 것 같은데?”
“거, 거짓…… 끄윽…….”
이윽고 목에서부터 핏물이 꿀렁꿀렁 배어 나오더니, 녀석은 생기를 잃고 싸늘한 시체가 되었다.
나는 뒤에서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쳐다보던 로데르를 보며 말했다.
“주둔지에 사람을 보내도록.”
“예, 전하. 어떤 내용을 전하게 하면 되겠습니까?”
“지금부터 우리는 남아 있는 성채를 정리하러 간다. 그렇게 전하라.”
“……음.”
로데르는 작게 침음을 흘리며 답했다.
“점령이군요. 알겠습니다. 그럼 그걸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북쪽으로 반나절 거리에 위치한 성채.
어쩌면 원정군이 그것을 이용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