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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118화 (118/223)

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118화

준비된 일, 잊힌 땅 (5)

국왕은 야만족의 땅에서 들어온 보고를 들으며 눈매를 좁혔다.

“첫 전투가 끝났다는 말이겠지?”

“그렇습니다.”

“한데 어째서 피해가 없다고 하는가? 분명 수백의 야만족들이 공격해 왔다 하지 않았는가?”

제아무리 대단한 전략을 사용하더라도 피해는 있기 마련이다.

하물며 지형지물을 이용한 작전에도 작은 부상은 뒤따르는 것이 당연했고, 그것이 전면전이라면 사상자가 없는 것이 더욱 이상했다.

하지만 분명히 보고서에는 그렇게 적혀 있었다.

“자세한 내용은 모르겠습니다. 다만, 1왕자께서 태양기사단을 이끌고 직접 출전하셨다는 것밖에는…….”

“허…… 녀석이 그리했단 말이지…….”

“애초에 주둔지에 들어온 보고 역시 간략한 내용 전달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그 후에는 전하께서 다음 작전을 위해 신속히 움직이셨다고…….”

“그렇군.”

국왕은 무엇을 생각하는지 수행원의 보고에 묵묵히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그렇게 조금의 침묵이 지난 후, 갑자기 새삼스러운 중얼거림을 남겼다.

“알렌, 그 녀석이 검을 배운 지도 올해로 열여섯 해가 지났다.”

“예, 국왕 전하. 대개 귀족 자제들의 교육 역시, 그 정도 나이에 시작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녀석은 자신의 실력을 드러내지 않더군.”

“……예?”

검술 실력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한 수하가 되물었다.

그러나 국왕은 재차 생각에 잠겼다.

“작년 이맘때 즈음이었지. 본래 실력이 정진하면 내게 달려와 곧잘 자랑하던 녀석이, 더 이상 나를 찾아오지 않더구나.”

“아마 성년식을 치르신 뒤였으니 스스로 잘하고 계신 것이 아닐지요…….”

“…….”

스윽-

순간, 국왕은 시선을 돌려 수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자네가 보기에는 녀석의 재능이 어떠했던가?”

“음, 제가 아는 1왕자 전하께서는 어렸을 때부터 검술에 대한 재능이 남다르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실제로 스무 살에 오러를 사용하실 수 있으실 정도로…….”

“맞아, 분명 그리했지.”

그 대답을 들은 국왕의 눈빛이 기묘할 정도로 날카롭게 번뜩였다.

“녀석은 분명 스무 살에 오러를 사용했다. 무척이나 뛰어난 재능이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존재 하나가 태양기사단을 피해 없이 전투로 이끌 정도라 생각하나?”

“……아마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애초에 그들 역시 전원이 오러를 사용할 수 있는 강자들이니까요.”

“그런데 어째서 태양기사단은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았지?”

“그건…….”

수행원의 말문이 막혔다.

정말로 생각할수록 이상한 일이었다. 명백히 수적으로도 불리한 상황에서 조금의 피해도 입지 않았다는 것이.

그리고 그것은 과거에 있었던 일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개척되지 않은 북부의 오지에서 돌아올 때까지 단 한 명의 사망자도 내지 않았다. 심지어 그건 병사들을 이끌고 그리폰들을 잡아 오면서도 달라지지 않았고.”

“혹 국왕 전하께서는 1왕자 전하께서 힘을 숨기고 계신다 짐작하십니까?”

“짐작이 아니라 확신이네.”

처음 한 번은 우연이라 치부하더라도, 그것이 몇 번이고 반복된다면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이미 앞선 일들로 인해 대충은 짐작하고 있었으나, 이번에야말로 그 능력에 쐐기를 박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렇다면 정말로 놀라운 일이었다.

“엑스퍼트…… 아니, 마스터 그 이상의 경지일지도 모르지.”

“……!”

“작금의 사태들은 그것이 아니라면 설명하지 못하네.”

말하자면 이변을 생긴 스무 살 때부터 이미 그만한 경지에 이르렀다는 소리였다.

스무 살의 소드마스터?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황당무계하다는 말도 모자랐다.

그러나 정말로 모든 정황이 그것을 가리키고 있었다.

‘……대체 무엇을 감추고 있는 것이냐.’

아비 된 자로서. 그리고 일국의 왕으로서도 경하할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유약하고 순박했던 녀석이 그것을 감추었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녀석의 성격까지도 바뀔 만큼 커다란 무언가가.

‘……알렌 에스테반.’

그러니 아비 된 자로서. 정녕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가슴에 품고 있을 것을 도무지 짐작해 내기 어려웠으므로.

“…….”

……그러니 국왕은 이번 일 또한 소란 속으로 묻어 버렸다.

적어도 이를 직접 알기 전까지, 이번 일을 공론화하는 것은 일어나지 않으리라.

* * *

북부의 오지 사이로 솟아오른 성채.

부족한 자원을 아끼고 아껴 만든 이곳이었지만, 오늘따라 그 전경이 기이하리만치 풍족해 보이기도 했다.

달빛 한 점 드러나지 않은 어둠 사이.

그곳에 타오르는 횃불을 바라보던 한 남성의 입이 찢어지듯 길게 휘어졌다.

“에스테반의 똘마니 놈들이 또다시 쳐들어와 줄 줄이야.”

남자는 그 귀한 주술사 중에서도 칸의 신임을 받는 샤먼 계급의 주술사였다.

그런 자신이 이딴 곳에 배치되었을 때만 하더라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한창 전쟁이 진행 중인데, 전장에서 그와 같은 고급 인력을 배제한다는 것은 사실상 좌천이나 다름없었으니까.

하지만 수개월의 기다림은 도약을 위한 발판이었을까?

이깟 성채 따위는 쓸모가 없을 거라 생각했던 그의 판단과는 다르게, 정말로 에스테반의 기사들은 먼저 대가리를 들이밀었다.

칸에게 전공을 가져다 바칠 수 있는 기회.

그런 먹잇감들이, 손수 자신을 찾아온 것이다.

“크흐흐, 조만간 제사장의 자리에도 오를 수 있겠구나.”

대전사들을 함께 보냈으니 결과는 빠르게 나올 터.

남자는 그렇게 흡족해하며 몸을 돌렸다.

“……음?”

하지만 그때였다.

문득 어둠 사이에서 반짝이는 무언가가 그의 눈으로 들어왔다.

횃불이 맞은편까지 반사된 것일까? 어리둥절하며 얼굴을 가까이했지만, 그 의문스러운 빛은 오히려 짙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푹!

“끄어억…….”

심장 한가운데로 차가운 쇠 더미가 무참하게 틀어박혔다.

피할 틈도, 반항할 시간도 없었다. 주술사는 그렇게 소리 한 번 지르지 못하고 바닥으로 무너졌다.

스스슥-

그리고 이윽고 어둠 속에서 두 개의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몸을 감싸는 검은색 로브. 그리고 그 사이로 언뜻 보이는 황금빛 갑판은 그들의 정체를 짐작게 했다.

한 기사가 검에 묻은 피를 조용히 흩뿌리며 속삭였다.

“여기는 2조. 부단장님, 지휘관으로 보이는 이를 처리하였습니다.”

치지직-

-확인했네. 작전을 마저 진행하도록.

“명을 받들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통신은 끊어졌다.

뒤에서 통신을 지켜보던 베넷 리프레는 로브 자락을 여미며 식은땀을 훔쳤다.

“휴우, 자칫하면 들킬 뻔했네.”

하필이면 다른 누구도 아닌 지휘관이 이곳에 있을 게 뭔가?

다행히 방심하고 있어서 망정이었지, 정신을 차리고 자신들을 경계했다면 분명 소란이 있었을 것이다.

그때 검을 회수한 기사가 베넷의 어깨를 치며 말했다.

“베넷 경,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신속하게 움직이지.”

“아, 옙. 알겠습니다.”

그들은 신속하게 발걸음을 옮기며 다음 목적지를 향해 나아갔다.

시작부터 지휘관을 죽여 버린 것은 의외의 소득이었지만, 아직 목표를 전부 이루지는 못했으니까.

……한편.

통신을 받은 로데르는 어둠 속에서 몸을 숨기고 있던 기사들에게 다가갔다.

정확히는, 그 사이에서 묵묵하게 성채를 바라보고 있는 1왕자를 향해서였다.

“전하, 2조의 인원들이 성채의 지휘관을 사살했다 합니다.”

“음.”

1왕자는 무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 시선은 성채를 향해 있을 뿐,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로데르는 그 모습에서 의구심을 느끼고 물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역시 숫자를 속였군.”

“……예? 무슨 말씀이십니까?”

너무도 두서없는 말에 로데르가 되물었다.

그제야 1왕자는 로데르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성채에 남아 있는 병력의 수를 속였다는 뜻이다.”

“아, 살아 있던 야만족에게서 얻은 정보를 말씀하시는 것이군요.”

“그래. 최소 천여 명에 가까운 병력이 남아 있군.”

“…….”

하지만 로데르의 의문은 더욱 가중되었다.

수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대뜸 천여 명의 병력이 남아 있다고 하는 말이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았던 것이다.

‘기감으로 파악하신 것인가?’

그렇다고 하기에는 너무도 멀었다.

아니, 설사 그것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숫자까지 일일이 파악하는 일은 불가능할 터인데…….

그런 로데르의 의문에도 불구하고 1왕자는 피식 웃을 뿐이었다.

“어떻게든 에스테반에 피해를 입히려 한 모양이지.”

“아…… 예! 아마 그 정보를 신뢰하고 무작정 다가갔다가는 순식간에 몰아쳐 나온 병력에 분명 피해를 입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전투는 작전대로 진행한다.”

“알겠습니다.”

당연히 적들의 존재를 밝혀낸 의문스러운 방법은 둘째치더라도, 1왕자의 말은 전적으로 신뢰하는 로데르였다.

그렇게 고개를 갸우뚱거리던 그때였다.

치지직-

-성채의 입구와 봉화를 장악했습니다.

어둠 속에 내려앉은 정적을 찢고, 기사들의 다음 통신이 들려왔다.

로데르는 한껏 진지해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1왕자를 바라보았다.

“전투의 준비가 끝났다고 합니다.”

준비한 작전은 내부를 미리 장악하고 난전을 유도하는 것이었다. 그와 동시에 봉화를 틀어막아 다른 성채와의 통신체계를 혼란하게 만드는 것.

그렇기에 이토록 은밀하게 기사들을 들여보냈다.

하지만 이번에도 1왕자는, 준비가 되었다는 보고를 들었음에도 가만히 서 있었다.

“돌입하도록.”

“알겠습니다. 하면 전하께서는 어찌하시겠습니까?”

“따로 할 일이 있다. 이 정도는 맡을 수 있을 터다.”

“……아, 예! 알겠습니다.”

맹목적으로 고개를 끄덕인 로데르가 기사들을 통솔하며 조용히 진격하기 시작했다.

결국 그 또한 1왕자의 뜻에서 빗나가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던 것이다.

“…….”

그렇게 어느덧 홀로 남은 나는 천천히 그 장면을 지켜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어느새 한 명의 마법사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마탑주, 엘레이드였다.

“전하, 정말로 돕지 않으셔도 되겠습니까?”

“이런 간단한 일조차 스스로 해내지 못하면 에스테반 최강의 기사단이라는 이름이 아깝게 되겠지. 지형지물을 이용하면 그들로서도 충분히 이겨낼 수 있을 터다.”

“허허, 저들의 성장을 직접 확인하고 싶으신 것이군요.”

“마음대로 생각하도록.”

나는 그렇게 대답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틀린 말은 아니었으나, 할 일이 있다는 것도 사실이었으니까.

뒤따르던 마탑주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걸렸다.

“야만족의 땅에 성채가 세워진 것은 예상치 못했지만, 의외로 쓸 만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주변의 성채를 모두 손에 넣는다면 이 땅을 장악하는 데에도 활용할 수 있겠지.”

“시간이 관건이겠습니다.”

“문제는 없다.”

그러기 위해서 따로 마탑주를 불러낸 것이었으니까.

어둠 속에 가려진 내 입가가 천천히 휘어지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느껴 보는 진정한 전장이 되겠군.”

혈흔과 시체만이 난무하는 그 현장은, 내게는 너무도 익숙한 것이었다.

“아침이 되기 전까지 모조리 처리한다.”

“알겠습니다.”

이윽고 두 사람의 몸은 어둠 속에서 빛무리에 휘말려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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