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119화
준비된 일, 잊힌 땅 (6)
“성문이 열렸다!”
“들어가라!”
태양기사단의 본진이 성채에 다다른 순간, 굳게 닫혀 있던 성문이 열리며 내부가 환히 드러났다.
입구를 장악하고 있던 기사들이 곧장 성문을 연 것이다.
“뭐, 뭐야 이 새끼들은!”
“적이다! 에스테반의 똘마니들이 쳐들어왔다!”
땡땡땡-!
그 소란에 어둠 속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야만족들이 혼비백산하며 일어났다.
순식간에 성채 내부는 아수라장이 되었고, 엉겁결에 잠에서 깨어난 야만족 전사들은 도끼를 꼬나 쥐고 소란의 근원으로 다가갔다.
하지만 태양기사단은 그런 그들을 가만히 두지 않았다.
“놈들에게 둘러싸이면 안 된다!”
“어서 퍼져!”
“주변의 건물들을 무너뜨려라!”
우우우웅-!
서걱-
“무, 무너진다!”
“이 새끼들아! 피해!”
콰르르릉!
놈들이 쉬고 있던 건물은 물론이고 횃불을 걸어 놓은 거치대까지, 형형색색의 오러에 닿은 모든 것들이 무너져 내렸다.
그렇게 태양기사단이 서 있는 주변은, 무너진 건물의 잔해와 땅바닥에서 타오르는 횃불로 발 디딜 틈이 없어졌다.
또한 일부 야만족들은 그것에 휩쓸려 반항조차 하지 못하고 사라졌다.
그것이 태양기사단이 바라던 것이었다.
“다가오는 야만족들을 처리하라!”
“충!”
지형지물을 통해 전투의 범위를 제한했다. 이제 놈들이 공격할 수 있는 방향은 전방의 한 곳뿐이었다.
그것도 기껏해야 한두 사람만이 드나들 수 있는 작은 틈.
“일대일의 전투는 얼마든지 자신이 있지.”
각자 자리를 잡고 검을 들어 올리는 기사들의 입술이, 호선을 그리며 휘어졌다.
……그리고 그 광경을 지켜보던 이가 있었다.
“제, 제기랄, 건방진 새끼들이……!”
허억- 허억-
한 야만족 주술사가 숨 가쁘게 성채를 달리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적군의 병력. 그리고 혼돈의 도가니에 빠진 성채 내부.
필시 이전에 내보냈던 대전사들이 당한 것이 분명했다.
‘급한 대로 봉화를 올려야 해!’
우선은 주변 성채에 습격을 알리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습격 인원은 고작 백 놈에 불과했지만 저것이 끝일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한시 빨리 봉화를 올려 지원군을 보내게끔 해야 했다.
하지만 봉화 주변에 다다르자, 주술사의 피부로 알 수 없는 감각이 와닿았다.
스윽-
‘……저건.’
그것이 행운이었을까?
기척을 감추고 엄폐물 뒤에 숨은 주술사는, 이윽고 어둠 속에서 누워 있는 여러 구의 시체를 볼 수 있었다.
……말할 것도 없이 부족 전사의 시체였다.
주술사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벌써 봉화를 장악당하다니……!’
아마 자신이 저곳으로 달려갔더라면, 모르긴 몰라도 같은 꼴이 되어 쓰러졌으리라는 사실은 자명했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하나였다.
‘샤먼께서 주술로 놈들을 뚫어 내야 한다.’
샤먼의 주술이라면 저 봉화를 탈환하는 것도 가능했다.
봉화를 탈환하고 적들에게 저주를 내린다면, 전황은 무난하게 이쪽으로 기울 가능성이 높았다.
‘……한데 샤먼께서는 이런 상황에 대체 무얼 하고 계시지?’
근본적인 의문이었다.
이렇게까지 시끄러웠다면 이미 주술이 놈들의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어도 이상하지 않건만, 혼란스러운 내부는 요지부동이었다.
‘아직 거처에 계시는 건가?’
주술사의 표정이 또 한 번 일그러졌다. 그 거처의 위치가 생각보다 먼 곳에 있었던 탓이다.
하지만 어쨌든 봉화에 관한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샤먼을 찾아야만 했다.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 그리 많지 않으니 선택지도 없었다.
스윽-
주술사는 혼란을 틈타 엄폐물에서 몸을 빼냈다.
그러고는 조심스럽게 성채의 외각을 따라 달려가며 거처를 향해 나아갔다.
그렇게 샤먼의 거처에 거의 다다른 그 순간이었다.
“주술사?”
“……!”
“호오, 혹시나 해서 대기하고 있었는데 정말로 찾아왔잖아?”
바로 옆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주술사는 화들짝 놀랐다.
시선을 돌려 소리가 들린 쪽을 바라보자, 황금색 갑옷을 입고 있는 남자가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아직 여린 티가 남아 있는 기사였다.
“쳇!”
우우우웅-!
주술사는 다급하게 녀석을 공격하려 수인을 맺었다.
하지만 그보다 가슴팍으로 파고드는 기사의 검이 더욱 빨랐다.
푸욱!
“……커억!”
후두둑-
가슴팍을 꿰뚫은 검에서 핏물이 무수히 떨어져 나왔다.
“개…… 새끼…….”
“뭐래.”
털썩-
주술사는 눈을 부릅뜬 채로 죽어 쓰러졌고, 이윽고 기사는 주술사의 시체로 다가오며 뿌듯한 듯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드디어 진짜 공적이라 할 만한 것을 세웠군.”
……4년 차 기사 베넷 리프레.
그는 성채의 전투에서 적군 마법사의 수를 줄이는 것으로 의외의 공적을 남겼다.
그렇게 이 습격을 전달해야 할 여섯의 마법사들이 목숨을 잃었다.
* * *
길었던 밤이 지났다.
간간이 피어오르는 희뿌연 연기와 지긋지긋한 혈향. 그리고 여기저기에 걸린 시체들은 간밤에 이곳에서 벌어진 일이 얼마나 참혹했는지를 알려 주었다.
연락을 받은 주둔지의 병력이 이곳에 당도한 것은, 오후가 훌쩍 지난 시각이었다.
“……천 명은 훌쩍 넘는군요.”
“그렇소. 대략 천백 정도로 추정하고 있지.”
“그렇게 많은 이를 태양기사단이 모두 처리했단 말입니까?”
“왜 아니겠소? 제아무리 야만족 전사라 하더라도 우리 태양기사단을 막을 수는 없지.”
로데르는 짐짓 태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조지의 눈에는 보였다. 저 속에 미묘하게 감추어진, 무척이나 뿌듯하다는 자랑의 감정이.
조지는 피식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뭐, 일단은 알겠습니다. 사상자는 어떻게 됩니까?”
“거동에 무리가 있을 정도의 중상은 넷, 사망자는 없소. 나머지는 대부분 경상이라 생각하면 될 거요.”
“치료사제들을 데려왔으니 곧장 치료합시다.”
“알겠소.”
그렇게 다친 사람들을 불러 치료사제에게 인계한 조지는, 곧장 성채 내부를 정리하라고 병사들에게 지시했다.
그러고는 끈덕지게 따라오는 로데르를 보며 물었다.
“그런데 전하는 어딜 갔답니까?”
“음…… 어젯밤에 따로 할 일이 있다고 말씀하시고는 사라지셨소.”
조지의 눈매가 좁아졌다.
“어디로 갔는지는 모른다는 말입니까?”
“그것까지는 말씀해 주지 않으셨소.”
“아니, 이 양반은 쓸데없이 어디를 또…….”
조지는 그렇게 툴툴거리며 성채 내부를 둘러보았다.
주변에는 시체가 즐비했다. 이렇게까지 해서라도 점령하라고 했으면 적어도 이유라도 설명해 주고 가야 했는데, 그런 것도 없었다.
마치 알아서 움직이라 방치해 둔 것처럼…….
“부단장님! 통신이 도착하였습니다!”
“……음?!”
그때, 태양기사단의 단원이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조지와 로데르는 동시에 반응하며 기사를 향해 다가갔다.
“통신이라니…… 혹 1왕자 전하로부터 도착한 통신인가?”
“그렇습니다.”
“허어! 이리 내 보게.”
로데르는 기사의 손에 들린 통신 마법구를 받아 들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치지직-
“전하? 들리십니까?”
-들린다.
“이쪽은 성채의 점령이 끝났습니다. 전하께서는 어디에 계십니까?”
-잠시 밖으로 나와 있다.
“자, 잠시 나와 있다니…….”
웬 산책이라도 다녀온다는 것도 아니고…….
로데르의 당황한 기색이 목소리부터 여과 없이 느껴졌다.
“하아, 바꿔 주십시오.”
“……음? 아, 여기 있네.”
이를 바라보던 조지는 짧게 한숨을 내쉬며 마법구를 넘겨받았다.
“조지입니다. 그러면 성채는 어떻게 합니까? 주둔지의 대용으로 사용하시렵니까?”
-내부는 정리하고 있겠지?
“거의 다 끝났습니다만.”
-그렇다면 지체하지 말고 태양기사단과 함께 병력을 북진시켜라.
“……예?”
통신 너머로 들려오는 1왕자의 지시를 들은 조지의 눈이 왈칵 찌푸려졌다.
그만큼 전해 받은 명령이 황당했던 탓이다.
“대뜸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아직 전투의 피로도 안 풀렸을 텐데요?”
-야만족들은 에스테반의 군대를 막기 위해서 이곳 주위에 성채들을 건설해 두었다. 그 말은, 후방의 방비는 도리어 허술하다는 뜻이지.
“성채들? 주변에 이런 곳이 더 있단 말입니까?”
-총 세 군데. 에스테반 군의 습격을 막기 위해 놈들이 설치한 성채의 숫자다.
“아, 예.”
그렇다면 더욱 이해가 가질 않았다.
방비가 허술한 것은 둘째 치더라도, 결국 이대로 북진한다면 방어선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포위를 당할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무작정 북진하는 것보다 예정대로 놈들의 병력을 깔끔하게 밀고 올라가는 편이 낫지 않겠는가?
-지체하지 말고 움직이도록.
하지만 1왕자는 그렇게 단호한 명령을 내렸다.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을지도 도통 의문인…… 그런 1왕자가.
“……뭐, 일단 알겠습니다.”
그렇기에 조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것을 납득했다.
‘이 양반이 난데없긴 해도 그런 것 하나는 확실하니까.’
언제나 그리했듯, 무언가 이유가 있다는 말이었다.
조지는 로데르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지금 바로 움직이겠습니다. 병력을 통솔하고 있을 테니 기사들을 모아 주십시오.”
“흐음…… 알겠소.”
그렇게 부단장 로데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떠나갔다.
조지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아직 끊어지지 않은 마법구를 향해 입을 열었다.
“그래서, 어디까지 올라가면 됩니까?”
-점령 예정지였던 방어선의 끝자락까지 북진하도록.
“그 말은…….”
-최대한 빠르게 원하던 땅을 점령하겠다.
……그래.
이 전쟁을 길게 볼 필요도 없이, 단숨에 끝내겠다는 뜻이었다.
조지는 어깨를 으쓱였다.
* * *
“도착했습니다!”
며칠 뒤.
조지와 태양기사단이 이끄는 병력은 아무런 장애물 없이 원하던 장소에 도착했다.
당연히 주위를 배회하던 야만족이 있긴 했으나, 태양기사단의 재빠른 대응으로 무탈하게 처리하는 데에 성공했다.
갑옷에 새겨진 방한 마법 역시 환경을 이겨 내는 데에 도움이 되었고.
“최대한 빠르게 움직이란 것은 이런 뜻이었군.”
……성채가 점령당했다는 사실이 밝혀지기 전에 움직여라.
말 그대로 무난한 작전이었지만, 결국 그것은 후방에 남아 있는 두 성채를 제외했을 때의 경우였다.
모르긴 몰라도 에스테반 군의 움직임을 확인했을 테니, 이제 곧 후방에서 야만족이 몰아닥칠 가능성이 컸다.
“……일단 지형은 좋다만.”
조지는 턱을 쓰다듬으며 주변을 살폈다.
앞으로는 높게 솟아오른 언덕이 있고, 저 옆으로는 자연적으로 생성된 협곡이 병력을 원천 차단시켜 준다.
과연 1왕자가 이곳을 중심으로 새로운 국경지대를 만들자고 하는 것이 이해가 갔다.
이득을 챙길 수 있으면서도 놈들의 병력을 손쉽게 막아 낼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위치였으므로.
“뭐, 무슨 생각으로 이곳까지 보냈는지는 확인해 봐야 알겠지만.”
치지직-
-도착했나?
“예, 뭐. 그렇죠.”
통신이 연결되기가 무섭게 1왕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지는 불어오는 칼바람에 외투를 저미며 너스레를 피웠다.
“이제 우리는 이곳에서 야만족들을 막으면서 전하가 오는 것을 기다리면 됩니까?”
-그럴 필요 없다. 병력을 뒤로 물리도록. 언덕을 반경으로 500미터다.
“…….”
또다시 이해할 수 없는 명령이 나왔다.
하지만 이미 이곳까지 와 버린 거, 구태여 명령을 흘려들을 필요는 없었다.
조지는 병력을 모두 물린 후에 다시금 통신을 걸었다.
“물렸습니다만.”
-잘했다. 만에 하나 발생할 충격에 대비하도록.
“……예?”
그 순간이었다.
우우우우우웅!
쿠구구구구구!
허공이 진동하는 듯한 울림과 함께 땅이 뒤집힐 듯 흔들리기 시작했다.
무예와는 담을 쌓고 지내던 조지도 알 수 있을 만큼이나 거대한 마력의 흐름이었다.
“이, 이 양반이 이번엔 또 무슨 미친 짓을 하는 거야!”
그런 조지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진동은 계속되었다.
이윽고 하늘이 열리며 커다란 광휘(光輝)가 지상을 비추었다.
조지는 물론이고 병사들까지, 흔들리는 대지 위에서 자세를 낮추며 그 장면을 바라보았다.
“……!”
그러고는 목도한 장면에 경악했다.
열린 하늘에서부터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하나의 건축물.
분명, 어디에선가 본 것 같은 그것이 하늘에서부터 땅바닥으로 내려앉고 있었다.
“……성채?”
며칠 전에 보았던 그 성채가 분명했다. 태양기사단이 점령했고, 자신들이 정리했던 그것.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저 멀리…… 본래라면 방어선을 구축했어야 할 장소에도 비슷하게 생긴 성채가 나타나고 있었으며, 협곡을 따라 이어지는 능선의 너머에서도 같은 현상이 발생하고 있었다.
쿠구구구-
그렇게 하늘에서부터 나타난 총 세 개의 성채. 그리고 이곳에서부터 물러나라던 1왕자의 명령.
이윽고 천천히 가라앉은 그것은 떨어지는 충격에 일부 바스러지고 넘어지기도 했지만, 충분히 쌓이다 보니 어느덧 자연스럽게 방어선을 지탱해 주는 성벽의 역할이 되었다.
“……미친.”
아마, 그것이 뜻하는 바는 하나였으리라.
“설마 하려던 일이란 게, 저 커다란 것들을 여기로 텔레포트 시킨 거야?”
조지의 표정은 더할 수 없을 정도로 황당하게 일그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