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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120화 (120/223)

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120화

준비된 일, 잊힌 땅 (7)

“…….”

“마, 맙소사……!”

어느덧 성채의 출현을 알리듯 천지를 울리던 진동이 멎었다.

그 두 눈으로 보고도 믿지 못할 광경이 지나간 이후에도, 사람들은 서 있는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했다.

……생각해 보라.

하늘에서 내려온 세 개의 성채가 반듯하게 자리한 이 광경이.

이윽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소란조차 일지 않는 이 상황이.

일반인들이 보기에 정녕 이해가 가겠는가?

지금까지 수차례 대마법사의 이적을 보아 온 조지 역시도 믿지 못할진대. 병사들이 받은 충격이 얼마나 클지는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당연히 그 상황에서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것은 조지였다.

“저 성채들이 공간 이동을 통해 이곳에 온 거라면, 내부에 있던 야만족들까지 함께 도착했을지도 모릅니다.”

“……아, 그렇지. 우리가 정리한 성채는 하나뿐이니까.”

조지의 냉철한 분석에 로데르는 엉겁결에 대답했다.

총 세 대의 성채. 그중 두 개에는 필시 처리하지 못한 야만족들이 남아 있으리라.

이에 조지가 재빠르게 지시했다.

“태양기사단은 저곳에 있는 성채를 정리해 주십시오. 저는 포위를 대비해 병력을 이끌고 다른 성채를 틀어막고 있겠습니다.”

“아, 알겠소. 최대한 빠르게 움직이겠소.”

로데르의 표정이 굳었다.

양쪽 성채 모두 천여 명 이상의 병력이 남아 있다면, 이끌고 온 병력만으로 틀어막기에는 피해가 막심할 가능성이 높았다.

태양기사단이 성채 하나를 얼마나 빠르게 정리하느냐에 따라 병사들의 운명이 결정되는 것이다.

“기사들은 모두 말에 올라타라! 놈들이 당황하고 있을 지금이 기회다!”

“충!”

하지만 지정된 성채까지 급히 움직인 태양기사단.

그들의 앞에 보인 것은, 훤히 드러난 성채의 내부와 무참히 사살된 야만족 전사의 시체뿐이었다.

기사들은 새하얗게 질린 표정으로 소리쳤다.

“이, 이럴 수가!”

“설마 이곳이 우리가 정리했던 성채였단 말인가?!”

……실수였다!

세 성채의 모습이 비슷했기에 착각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더더욱 문제였다. 다른 두 곳에 남은 야만족들을 에스테반의 병사들끼리 온전히 감당해야 했던 것이었다.

‘그것도 놈들에게 포위당한 상태에서…….’

우려하지 못했던 최악의 상황이었다.

로데르가 이를 악물고 외쳤다.

“태양기사단은 전속력으로 회군한다! 병사들을 구해야 한다!”

“충!”

“빠르게 움직여라!”

두두두두두-!

무거운 침묵 속에서 말발굽 소리만이 울렸다.

어느덧 다음 성채의 앞까지 다다랐을 때는 형용할 수 없는 긴장감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런데 문득 가장 선두에서 달리던 로데르는 이상함을 느꼈다.

‘……왜 조용한 것이지?’

이미 사단이 났어도 크게 났어야 할 판국이다.

하지만 가까워진 성채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고, 그 흔한 먼지조차 일지 않고 있었다.

‘설마 이미 늦었다는 말인가……!’

당최 영문 모를 조화가 이어지고 있던 그 순간이었다.

“엇! 저, 저기……!”

“병사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들이 향하고 있던 성채에서 에스테반의 병사들이 나오고 있었다.

그것도, 무척이나 다급하고 신속한 발걸음으로.

“……태양기사단?”

저 멀리, 병력을 이끌던 조지의 눈이 일그러지는 것이 보였다.

그런 그들의 몸에는 작은 생채기 하나 없었다.

“…….”

“…….”

두 지휘관의 표정이 황당함으로 번지는 순간이었다.

* * *

“마음에 드는군.”

나는 거리를 유지한 채로 나열한 성채들을 보며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척 보기에도 급조한 티가 나는 데다가 공간 이동의 충격으로 인해 여기저기가 틀어진 모습이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는 곳에 방어선을 세우는 것보다 나았다. 적어도 성벽이라 할 만한 것이 있다면, 방어가 더욱 수월해질 것이 분명했으니.

‘드워프들의 손길이면 금방 복구되어 성벽으로써의 역할을 충실히 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그 위치마저도 새로운 국경지대라 부르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아마 야만족들은 더 이상 에스테반의 땅을 넘보지 못할 것이다.

그건 연방제국과의 전쟁이 끝난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에스테반을 침략하기 위해서는 여러 지형지물의 방해를 피해, 언덕 위에 세워진 저 성채들을 뚫어야 할 테니까.

야만족의 땅에 방어선을 구축한다는 계획은 놈들의 성채 덕에 완벽으로 거듭난 것이다.

“전하께서 만족하시니 정말로 다행입니다.”

물론 애석하게도 그것을 가능케 했던 마탑주는 흐무러져 가고 있었다.

제아무리 대마법사인 그라고 해도 이만한 크기의 성체 세 개를 옮기는 일은 무리가 있었으므로.

“……마치 마탑의 창조물인 슬라임을 보는 것 같군.”

“허허, 마법사가 듣기에는 썩 당혹스러운 농담이군요. 슬라임은 형태가 없는 액체에 가까운데, 어찌 인간과 비슷하다 할 수 있겠습니까?”

“…….”

……진짠데.

나는 그 뒷말을 애써 삼켜 내며 시선을 피했다.

그런 마탑주의 주변에는 힘을 다한 인공 마정석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덕분에 저것들의 쓸모까지도 충분히 증명해 냈군.”

“준비기간이 오래 걸렸지만 모자란 마나를 대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 것은 좋은 소득이었습니다.”

“고생했다.”

“전하께서도 성채 두 개를 손수 점거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전하께서 큰일을 해 주시지 않으셨더라면 불가능한 작전이었을 것입니다.”

“그렇군.”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그 말을 받았다.

솔직히 이런 전투를 했던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에, 딱히 큰일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하지만 마탑주의 입장에서는 놀랄 따름이었으리라.

“그 원소의 힘을 손에 넣으신 뒤로 일신의 힘이 더욱 강해지신 것 같습니다. 벌써 그것에 적응하셨습니까?”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지. 속도를 보조해 준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나름대로 쓸 만하더군.”

“허허. 이 또한 전하께 도움이 되어 드린 것 같아서 다행이군요.”

나는 마탑주의 맹목적인 충성에 손을 휘젓는 것으로 답했다.

본인이 좋다면야 상관없지만, 간혹 너무 부담스러울 때가 있었다.

……지금처럼.

“텔레포트를 시전할 마나가 남아 있나?”

“가까운 거리라면 한 번 정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성채로 가지.”

“예, 알겠습니다.”

우우우웅!

곧 몸이 붕 떠오른다는 느낌이 듦과 동시에, 시야가 확 뒤바뀌었다.

이제는 익숙해진 감각이었다. 나는 천천히 빛무리에서 걸어 나가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지 않은 타이밍에 도착했군.”

“……본인이 왔군요.”

“전하?!”

조지와 로데르, 그리고 변경백의 가신들은, 성체를 가운데에 두고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로데르는 내가 나타나자, 곧장 달려오며 상황을 묻기 시작했다.

“저, 전하,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입니까?!”

“무엇이.”

“이 성채는 대체…… 아니 그보다, 성채 내부에 있던 야만족들의 시체는 대체 어찌 된 것입니까?”

“죽였다.”

“주, 죽였다니…….”

그 많은 숫자를 말인가?

로데르와 변경백의 가신들이 경악했다.

두 성채에서 발견된 야만족의 수만 하더라도 족히 일천이 넘는 숫자였다.

그런 상황에서, 이토록 가벼운 어투로 죽였다고 말하는 것이 놀라운 모양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성채를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이용할 수 있는 것은 모조리 이용하는 것이 좋겠지. 병사들을 나누어 나머지 두 성채도 정리하라고 일러라.”

“그, 그런…….”

“이제부터 이곳은 에스테반의 새로운 국경지대가 될 것이다.”

“…….”

점령이라는 것이 이리도 간단하게 이루어질 수 있단 말인가?

자신들이 아는 전쟁, 그리고 점령전이라는 개념이 붕괴되는 기분이었다.

이미 북부의 영지들은 방어선을 구축하고 버티는 데에 필요한 병력을 추가로 징집하고 있었고, 왕실에서도 이에 대한 지원이 이루어지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런 것들은 소용이 없어졌다.

저 성채들이 떡하니 버텨 줌으로써, 이미 계획이 시작되기도 전에 절반 이상이 완성되어 버린 것이다.

‘뭐, 아직 이 넓은 땅을 온전히 보호할 수는 없겠지만.’

조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내게 다가오며 말했다.

“일단 드워프들에게 성채의 수리를 맡기고, 병력과 기사단을 각 성채에 나누어 배치하겠습니다.”

“당분간은 그렇게 하도록. 다음 병력이 도착하기 전까지는 태양기사단의 힘이 필요할 것이다.”

“알겠습니다.”

사태를 파악하지 못하고 달려드는 몇 번의 습격만 버티면 된다는 말이었다.

본격적으로 북부의 개발이 시작되면, 이곳도 언젠가는 완벽한 방비를 갖추게 되리라.

“하지만 아직 북부에 배회하는 야만족들을 모두 처리하지는 못했을 텐데요.”

“그 부분은 후발대에 맡기도록 하지.”

“어차피 잔당밖에 남지 않았으니까요?”

“그래.”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충원되는 병력이 북부로 밀고 올라오며, 남은 잔당들을 처리하면 된다.

간단한 방법이었다.

‘뭐, 통신을 보내 두면 알아서 해 주겠지.’

그 부분은 더 이상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이쪽은 알아서 방어만 하고 있으면 될 뿐이다.

하지만 딱 하나, 해결되지 않은 부분이 남아 있었다.

“아, 그리고 그때의 병사들을 불러내도록.”

“그때의 병사들이라면…….”

변경백의 가신 중 한 명이 물었다.

나는 그자를 바라보며 입꼬리를 끌어당겼다.

“발 빠른 병사들을 말이다.”

* * *

“……그게 무슨 소리더냐?”

로메르트 변경백은 들려온 소식에 의문을 감추지 못했다.

야만족과의 전투가 벌어졌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 며칠 전이었다. 하지만 그 이후 들려온 소식은, 너무나도 황당무계하고 이치에 맞지 않았다.

“전하께서 고작 며칠 새에 방어선을 만드셨단 말이더냐?”

“예, 할아버님.”

당혹스러운 것은 변경백의 손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정말로 들어온 소식이 그것이 전부였거늘…….

변경백은 노쇠한 몸을 일으키며 직접 보고서를 받아 들었다.

“허어……!”

그러고는 깊은 탄식을 내뱉었다.

정말로, 보고서에 쓰여 있는 내용은 북부의 점령이 끝났다는 소식뿐이었다.

과정도 내용도 쓰여 있지 않았지만, 그들에게 전달된 지시사항 만큼은 명확했다.

“정녕 전하께서 남은 야만족 잔당의 소탕을 요구하시는구나.”

“그렇습니다.”

“허어, 이럴 수가…….”

믿지 못할 이야기였으나 믿을 수밖에 없었다.

이 내용을 보낸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1왕자, 그 본인이었으니까.

“병력의 순수 이동시간만 계산하더라도 며칠이 걸렸을 터다. 한데 벌써 방어선을 구축하셨다는 말씀은…….”

“아마 저희가 모르는 방법을 사용하셨을 것입니다.”

“그렇겠지, 당최 어떻게 하신 것인지 궁금하구나.”

도통 떠오르는 것이 없으니 더욱 의문일 뿐이다.

로메르트 변경백은 그렇게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겨 있다가 말했다.

“……전하께서 정녕 북부에 방어선을 구축하셨다면, 더 이상 국경지대에 병력을 남겨 놓을 이유는 없을 터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이곳은 국경지대가 아니게 되겠지요.”

“네 말이 맞다.”

그렇다면 병력의 차출을 재촉할 필요도 없었다.

만에 하나를 대비하여 국경지대에 남긴 병력을, 모조리 끌고 가면 될 뿐이었으니까.

‘……더 이상 이 땅에 피를 흘릴 이유가 없다는 말이다.’

로메르트 가문의 오랜 숙명.

그것이 정말로 이루어질 수만 있다면, 모든 병력을 이끌고 북진할 이유로는 충분했다.

변경백의 주름진 얼굴이 결연하게 굳어졌다.

“내가 직접 병력을 이끌고 가겠다.”

“예, 빠르게 병력을 출정시킬 준비를 하겠습니다.”

그렇게 북부의 정복이라는 대업은, 빠르게 수순을 밟아 나가고 있었다.

그 누구의 예상보다도 빠른 진척이었다.

……같은 시각.

“바, 발견하였습니다!”

한 병사가 성채 내부로 다급하게 달려오며 외쳤다.

어찌나 급히 왔는지, 머리카락이 휘날리고 있는 것조차 모르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다가온 병사에게 시선을 던졌고, 병사는 숨을 몰아쉴 틈도 없이 급히 보고했다.

“저, 정말로 그곳에 유적으로 보이는 건축물이 존재했습니다!”

따로 병사들을 추려 실시한 협곡의 수색.

그 기다려온 결실이, 드디어 내게로 도착했다.

“……나쁘지 않군.”

그 말에 나는 잠시 즐기던 티컵을 내려놓곤 일어섰다.

그럼 슬슬 놈을 불러와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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