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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121화 (121/223)

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121화

힘의 근원 (1)

세월에 마모되었음에도 그 형태를 굳건히 유지하는 석문(石門).

그리고 음산한 분위기가 풍겨 오는 벽화와 글귀들.

“이곳이군.”

병사들이 발견한 건축물은, 협곡 벽면에 자리한 작은 틈 속에 있었다.

그 사이에 입구가 있으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아마도 벽면을 집중적으로 수색하라는 명령이 아니었다면, 발견하기 어려웠을지도 몰랐다.

물론 이미 그것을 찾은 이상 의미는 없었다.

‘소식으로만 듣던 것을 직접 보게 될 줄이야.’

마치 유령처럼 야만족의 땅에 세워진 미지의 유적.

그 입구를 바라보는 시선은 새삼스럽게도 즐거움을 드러내고 있었다.

하지만 뒤따라온 마탑주는 고작 그 정도가 아니었다.

“……전하, 이것은 진짜 유적입니까?”

“그렇다.”

“허어, 맙소사.”

먼 과거에부터 존재해 오던 유적들.

그곳에 있는 흔적과 지식들은 귀중한 학술적 가치를 지녔고, 때로는 천문학적인 금액을 벌어다 주는 모험가들의 돈줄이 되어 주기도 했다.

……까지가 일반적인 상식.

하지만 그것이 야만족의 땅에 있는 것이라면 말은 달랐다.

“야만족의 땅에 위치한 유적이라니, 대관절 이런 것을 누가 만들었단 말인가……!”

마탑주의 표정이 굳었다.

야만족의 문명 수준으로는 이런 것을 만들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아니, 결단코 불가능하다 말하겠다. 기껏해야 놈들이 만들 수 있는 것은 급조한 성채 정도가 전부였으니까.

그렇다면 이것은 명백히 불가사의에 가까운 유적이라는 뜻이었다.

“이곳은 대륙인의 발길이 닿지 않았던 북부의 오지거늘…….”

스윽-

마탑주는 눈앞에 보이는 건축물을 손가락으로 쓸어내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실로 복잡한 감정이 엿보였다.

“……도무지 두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군요.”

“이상한 일은 아니다. 인간의 기행이란 예측할 수 없는 일이니까.”

“결국 이 또한 평범한 인간의 산물이라는 뜻입니까?”

“당연한 것을.”

하지만 이곳은 무려 그 야만족의 땅에 있는 유적이었다.

누가 어째서 어떻게 만들었으며, 무엇을 내포하고 있을지.

그것만으로도 감히 그 학술적인 가치를 헤아릴 수조차 없는 것이다.

“오오! 맙소사!”

덕분에 신이 난 것은, 마탑주의 도움을 받고 이곳에 온 레이튼이었다.

“마탑주님, 여기를 보십시오! 입구에 적힌 글귀가 고대어입니다!”

“고대어라니…… 확실히 그런 거 같구나.”

“예, 틀림없습니다!”

오랜 기간 고대학을 연구해 온 레이튼.

그는 연방제국을 떠나온 뒤로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고대의 기록들을 섭렵해 나갔다.

그리고 지금에 이르러, 성취를 마음껏 뽐내고 있었다.

“이건 고대의 마법사들이 제작한 유적이 분명합니다!”

“허어!”

이 유적의 정체를 단박에 꿰뚫는 데에 성공한 것이다.

마탑주는 놀란 시선을 내게 던지며 진위를 물어 왔다.

당연히 그 사실을 모르고 있을 내가 아니다. 하지만 나는 그저 흘려넘기듯 눈썹을 까닥이며 레이튼을 바라보았다.

‘금세 정답을 맞히다니, 역시 대단하군.’

그래, 그 확신대로였다. 이곳은 고대 마법의 흔적이 잠들어 있는 장소였다. 그것도 아주 커다란 비밀이 담겨 있는.

“정말로 꿈만 같은 공간이구나!”

레이튼은 아예 벽면에 닿을 정도로 샅샅이 주변을 훑고 있었다.

야만족의 땅 특유의 추위에 질려 있던 처음의 모습과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다가 마탑주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마나로 유적 내부의 규모를 파악할 수 있겠나?”

“이미 시도해 보았지만 불가능했습니다. 아마 마나의 흐름이 꼬여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뭐, 아쉽지만 당연한 이야기겠지.”

어깨가 절로 으쓱여졌다.

이미 어느 정도는 예상했던 바였기에 상관은 없었다.

그건, 회귀 전에 이곳을 발견했던 국가도 마찬가지였으니까.

“그나저나, 이미 병사들이 열어 보는 것을 시도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래.”

“하지만, 아직까지 큰 이야기가 없는 것을 보면…… 특별한 방식이 필요한 구조라는 뜻이겠군요.”

석문이라고는 해도 꿈쩍도 하지 않았으며, 단단하기로는 어지간한 강철보다도 단단했다. 혹시나 해서 그것을 밀어 보려던 레이튼도 포기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특별한 방식은 무슨.”

나는 입꼬리를 씨익 비틀며 석문 위로 손을 가져다 댔다.

쩌저적!

“……!”

“헛!”

그러자 그 위용을 과시하고 있던 석문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마탑주와 레이튼의 놀란 외침이 이어졌다. 미동도 하지 않던 문이 손을 댄 것만으로 갈라지기 시작한 것이 당혹스러웠던 것이다.

그리고.

콰과과광!

결국 석문은 그대로 종잇장처럼 찢겨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이 무너졌다.

“이, 이게 갑자기 왜…….”

두 사람은 석문이 위치해 있던 곳을 바라보며 허망하게 침묵했다.

거기에는 검은 아가리를 벌린 채 먼지만 흩날리는 유적의 내부만이 보일 뿐이다.

레이튼이 당혹감을 뒤로하고 물었다.

“저, 전하?! 이것을 이대로 부숴 버려도 되는 것입니까?”

손을 댄 것만으로도 무너진 석문은 둘째치고, 이곳은 고대 마법사들이 만든 유적이다.

함부로 부숴 버렸다가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먼지가 묻은 소매를 털어 내며 무심하게 대답을 내던졌다.

“단지 마법으로 잠겨 있던 석문일 뿐이다. 그 외에 별다른 의미는 없다.”

“그, 그렇지만 억지로 열려 들었다가는 내부가 붕괴한다거나…….”

“쓸데없는 기록들을 너무 많이 접했군.”

“하하…….”

그렇게 일침 하자 레이튼이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물론 그 걱정도 기우는 아니었다. 실제로 유적의 대부분은 침입자를 막기 위해 마력으로 유지되는 경우가 많았으니까.

‘하지만 이 유적은 아니다.’

나 역시도 모든 것을 아는 건 아니었으나, 이곳의 끝에 뭐가 있는지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것은 명백한 ‘힌트’였다. 이 유적이 결코 무너지게끔 설계되어 있지 않다는 증거.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들어간다.”

“아, 알겠습니다.”

나는 그렇게 굳어 있는 레이튼을 지나쳐 가며 유적의 내부로 걸어갔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이었다.

* * *

북부의 밤은 춥다. 특히나 그것이 겨울이 모두 지나지 않은 지금이라면 더더욱.

그렇기 때문에 북부에는 찬바람을 피하기 위해 지하를 만드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 지하는 유별났다. 유적 내부로 진입하자마자 느껴지는 한기. 모순적이게도, 이 지하공간 속에서는 밖보다 더욱 칼날 같은 바람이 불고 있었다.

“미로입니다.”

마법으로 주변을 밝히던 마탑주가 말했다.

……그 시선이 향한 곳에 보이는 여섯 갈래 길.

그는 마나를 퍼뜨리는 것으로 길을 찾아내려 했으나, 애석하게도 마나는 마탑주의 몸에서 멀어짐과 동시에 천천히 소멸했다.

“위에서 탐지가 불가능했던 건 이곳 때문이었군요. 마나의 흐름이 꼬여 있기에 이 이상 알아내는 것은 불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군.”

그것은 기사의 기감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어찌 보면 마력의 폭풍이 몰아쳤던 아렌델의 티바르 협곡과도 비슷한 상황이다.

꼬여 있는 흐름이 기의 순환을 방해하는 것이다.

“여기서부터는 자력으로 헤쳐 나가야 한다는 소리겠지.”

“저, 전하. 혹 석문을 부수셨던 것처럼 미로의 벽면을 뚫어 내시면…….”

“하중을 견디지 못하고 내부가 무너질 것이다.”

“아.”

레이튼이 시무룩하게 몸을 움츠렸다.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회귀 전의 일을 떠올렸다.

‘미로라…….’

총 여섯 개의 방향으로 구성된 길목.

그것은, 수수께끼와 함정으로 구성된 미로형 유적의 입구였다.

이곳을 발견한 국가에서도 결국 마지막까지 미로를 정복하지 못했던가?

시간이 더 있었다면 몰랐을까, 이곳의 침입을 눈치챈 야만족들에 의해 그 시도는 무산되었다.

하지만 완전히 소득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덕분에 이 안에 잠들어 있는 ‘그것’의 정체와, ‘고대’의 유적이라는 약간의 힌트를 얻는 데에는 성공했으니까.

뭐, 이제 그 힌트는 내가 사용하게 되겠지만.

“입구에 적혀 있던 글귀에는 뭐라고 적혀 있었지?”

“……아!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레이튼은 그렇게 답하며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입구의 글귀를 적어 두었던 수첩이었다. 녀석은 그것을 보며 고대어의 뜻을 해석해 나가기 시작했다.

“어디 보자, 태양 빛이 닿는 대지에는 원소가 있고…… 그림자가 속박된 미궁은 빛을 좇아 길을 찾게 하리라…….”

“……이보게, 그것이 전부인가?”

“예, 마탑주님. 입구에 적혀 있던 것은 이게 전부였습니다.”

“허, 무엇을 어떻게 하라는 명확한 지시조차 없구나.”

결국 길을 찾기 위해서는 적혀 있던 ‘빛’이라는 것을 따라가야 한다는 소리였다.

그리고 아마도 이 여섯 길 중 하나는 ‘빛’과 관련된 길목이 분명하겠지.

……뜬구름 잡는 선문답이었다.

그것도 어떤 함정이 있을지 모르는 고대 던전에서의.

저벅- 저벅-

“……!”

그때였다.

마탑주와 레이튼은 문득 울려 퍼지는 발걸음 소리에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아마 그런 그들이 본 것은, 한 길목으로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고 있는 내 모습이었으리라.

“전하?!”

가장 우측에 있는 여섯 번째 길목.

나는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기면서도 확신했다. 아마도 이곳이 정답이라는 것을.

기실, 이미 단서는 나와 있었다.

‘고대 마법사들이 만든 유적. 그리고 원소라는 명확한 단어와 여섯 개의 길.’

……그래.

그것은 마법의 요소인 여섯 개의 원소를 뜻했다.

불, 물, 바람, 땅.

그리고 어둠과 빛.

제아무리 세월이 지나, 빛과 어둠의 원소가 가진 의미가 변질되고 소실되었다 한들.

그것은 고대의 마법사들에게 있어서 진리와도 같은 것이었다.

그러니 그들이 말한 길은, ‘빛’의 원소를 상징하는 여섯 번째 길목이었다.

한 번 정립된 원소의 정렬 순서를 그 고지식한 마법사들이 바꾸지는 않았을 테니까.

‘괜히 내부를 탐사하는 데에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이 아니었군.’

빛과 어둠 역시 마법의 한 요소였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은, 이 유적이 발견된 것보다 미래의 일이었다.

신성제국의 비밀과 흑마법사의 진실에 관한 연방제국의 폭로.

어찌 생각하면 놈들의 행동이 내게 도움을 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뭐, 그보다는 녀석을 데려오기를 잘했다는 뜻도 되겠지만.’

내 시선이 짧게 레이튼에게 닿았다가, 떨어졌다.

“따라오도록.”

“전하!”

개의치 않으며 발걸음을 옮기는 내 뒤로, 당혹감 가득한 외침이 들려왔다.

그렇지만 그들이 어쩌겠는가? 마지못해서라도 따라오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옳은 선택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철컥-

“흠!”

“엇!”

몇 분쯤 걸었을까? 미로처럼 구부러지기 시작한 길목으로 불빛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벽면에 설치된 마법 벽등. 불빛은 그곳으로부터 비롯되고 있었다.

순간적인 소란에 화들짝 놀란 레이튼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비, 빛이네요. 어, 어째서…….”

“과연 그렇군요…….”

놀라는 것도 당연했다.

아무 이유 없이 움직였다 생각했거늘, 결국 그것이 정답인 것처럼 보였으니까.

“만약 다른 방향으로 갔더라면…….”

“몰아치는 함정들 속에 갇히게 되었겠지.”

“그, 그런……!”

나는 저들의 의문에 그렇게 답했다.

실제로 다른 방향들은 고대의 마법으로 만들어진 함정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그것도 각 속성에 맞는 함정이었다. 첫 번째 길목의 원소인 화염은, 쏟아지는 용암 속에 빠지게 된다거나 하는 등의…….

이곳이 말 그대로 빛의 길이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말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곳에 함정이 없다는 것은 아니지.”

“……예?”

챙!

“허어억!”

털썩-

레이튼은 갑작스레 번뜩인 무언가에 놀라 발을 헛디뎠다.

그러고는 자신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뿌연 색의 방어막과 땅바닥에 떨어진 무언가를 보며 식은땀을 닦았다.

“화, 화살…….”

“정답에 방심한 틈을 노리고, 빛으로 보이지 않는 화살을 발사했군요.”

“그래.”

“만일 지쳐 있는 이들이었다면 꼼짝없이 당했을 것입니다.”

마탑주는 순식간에 일으켰던 방어막을 지워 내며 말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씨익 웃을 뿐이었다.

아직 유적의 초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퍽이나 ‘빛’에 어울리는 함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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