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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122화 (122/223)

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122화

힘의 근원 (2)

-식량은 얼마나 남아 있지?

-앞으로 닷새 치가 남아 있습니다.

-그렇군.

기사는 상정 범위 내라는 듯 무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 표정이 어두워지는 것만은 감출 수 없었다.

이 지옥과 같은 유적 속에서 헤매기를 수일.

아마, 처음의 그 날에는 열흘의 식량이 넘게 남아 있었던가?

무척이나 우스운 일이었다.

-아직 학자들은 수수께끼를 풀어내지 못했는가?

-그렇습니다.

-……후우. 첫 번째 길목부터 이토록 고전하게 된다니.

결국 기사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돌렸다.

여섯 갈래로 갈라지고 펼쳐진 길목들은 그들의 무지를 비웃기라도 하듯 그 입구를 훤히 드러내고 있었다.

조금만 발을 뻗으면 이곳을 벗어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학자들이 새로운 실마리를 발견한다면 곧장 알려 주도록.

-예, 알겠습니다.

어느덧 지친 기사들과 학자들의 낯빛 역시 초췌해져만 갔다.

그나마 저 밖에서 휘몰아치는 눈보라를 피할 수 있는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

그럴 리가, 그것은 너무나 우문(愚問)이었다.

결국 이 수수께끼를 풀어내지 못하면. 차라리 눈보라에 갇히는 것이 더욱 편안한 죽음이 될 테니까.

-결국 그 방법을 쓸 수밖에 없는 것인가.

기사는 주먹을 꽉 쥐고 이를 악물었다.

아직 시도해 보지 않은 해결법, 그러나 시도하고 싶지 않은 방법.

어느덧 그들에게 남은 것은, 최후의 한 가지 방법뿐이었다.

* * *

퓨슈슈슉!

챙-!

나는 또다시 날아온 것들을 쳐 내며 어깨를 으쓱였다.

벌써 마흔네 번째 함정이었다. 다만 지속적으로 변주를 주고 싶은지, 이번에는 화살촉의 끝에 시퍼런 것이 발려 있었다.

독이다, 그것도 일반인이라면 순식간에 절명케 할 정도의 맹독.

“끝도 모르고 쏘아져 오는군.”

“시기도 방향도 모두 제각각입니다. 아마 심력을 소모시키는 것, 그 자체에 목적이 있는 듯합니다.”

마탑주가 답했다.

실제로 그 말대로다.

함정들은 악독했지만, 단숨에 몰살을 시키려는 듯 보이진 않았다.

중간중간 정직하게 문제와 정답을 제시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들어온 이들을 조금씩, 하지만 확실하게 죽일 수 있도록.

그들이 서서히 공포에 좀먹어갈 정도로 조절되어 있었다.

아마 지금 이곳을 지나는 사람이 나와 대마법사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쉽고 편하게 올 수는 없었겠지.

“이번이 네 번째 길목이군.”

“그렇습니다.”

나는 눈앞에 있는 갈림길을 보며 흡족하게 웃었다.

회귀 전의 기록에 따르면, 아마도 이곳이 마지막 관문일 가능성이 높았다.

과연 그 모습조차도 지금껏 보아왔던 세 번의 갈림길과 궤를 달리했다.

“이번에는 길이 두 개뿐입니다.”

마탑주가 흥미를 보였다.

이제까지 보아 온 갈림길은 최소 여섯 개에서, 많게는 열 개 사이의 선택지를 제시해 왔다.

그런 와중에 두 개의 길이 있다는 말은, 무척이나 많은 의미를 내포했다.

“단순히 올바른 길을 찾는 것이 정답이 아닐 수도 있겠군요.”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

생과 사를 가르며 올바른 선택만을 하도록 종용했던 미궁이, 이번에는 고작 절반의 확률을 제시한다?

그 자체로도 함정이었다. 분명 다른 의도가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해결법은 간단했다.

“전하, 이곳에도 고대어가 적혀 있습니다.”

“해석하도록.”

“예, 전하.”

나는 레이튼에게 눈짓했다.

그러자 레이튼은 익숙해진 듯 수첩을 꺼내 들으며 그 글귀를 수첩 위로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총 네 번의 힌트. 그리고 네 개의 관문.

레이튼은 그동안 자신의 쓸모를 무던히도 증명해 냈다.

‘역시 녀석을 데리고 오기를 잘했군.’

당연히 야만족의 땅에 데리고 온 것만을 말하는 바는 아니었다.

이곳에 고대의 유적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이상, 그것은 필연과도 같은 일이었으므로.

내가 만족하는 부분은 녀석을 에스테반으로 데리고 온 일 자체였다.

‘덕분에 이 유적에 오는 계획을 앞당길 수 있었지.’

야만족의 땅을 점령한 목적을 온전히 이루기 위해서는, 고대의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바로, 이 유적의 비밀을 파훼해 낼 수 있을 만큼 다양한 지식을 지닌 사람이 말이다.

실제로 내 지식만으로 풀어낸 첫 번째 갈림길을 제외하고는, 모두 녀석의 역할이 크게 작용했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반대로 회귀 전에는 어떠했던가?

이곳을 발견하고 탐사했던 국가에서는 마땅한 고대학 학자조차 구하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가진 정보조차 불확실했고…….

그렇기에 탐사의 과정에서 크나큰 희생을 남겼다. 그리고 그 희생자의 대부분은, 정답을 찾기 위해 스스로 몸을 내던진 이들이었다.

‘그마저도 최후의 관문을 넘지 못했으니 개죽음이라 할 수 있겠지.’

이윽고 짧았던 상념이 지나간 후, 레이튼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이마를 훔쳤다.

“……끝났습니다.”

그런데 그 표정은 굳어 있었다.

해석이 막힌 것이 아니었다. 그 내용은 무척이나 간단한 것이었으니까.

다만, 그 내용이 주는 울림이 마음을 심란케 했을 뿐이다.

“아마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내용을 해석해야 힌트가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그는 수첩을 내게 건네며 운을 떼기 시작했다.

“그렇군.”

나는 수첩의 내용을 확인했다.

[마법사들은 거짓된 이론들을 풀어내고 오랜 숙명에 다다르리라.]

앞선 한 개의 문구.

그리고.

“그러니 마력의 근원, 영광의 샘을 찬양하라.”

“영광의 샘.”

그 말을 듣자, 마탑주의 표정이 낮게 가라앉았다.

“……그것의 이름을 이곳에서 듣게 될 줄이야.”

고대의 마법사들은 마나라는 것이 자연이 아닌 하나의 존재에게서 오는 힘이라 믿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이 말하는 영광의 샘은, 마법의 종주이자 모든 마나의 근원이었다.

“샘의 존재는 마나와 원소의 이론이 확립되기 전까지 통용되던 속설이었습니다.”

“원시 형태의 신앙이라는 뜻이군.”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론이 증명된 이후에는 곧장 사장되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한데 그런 샘을 찬양하라니?

어쩐지 장난처럼 보이는 문구였다. 그러나 그것이 장난이 아니라는 것쯤은 마탑주 역시 알고 있었다.

“이곳을 만든 마법사들은 샘의 존재를 믿고 있었군요.”

“그래.”

“그렇다면 고대라고 부르는 시기 중에서도 보다 과거의 것이라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겠습니다.”

마나와 원소의 이론이 확립된 것은 기록상으로 천 년도 훨씬 전의 일이었다. 그러니 이곳은 그보다도 과거에 지어졌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추측에 불과했다.

“반대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

“예?”

“이론이 정립된 뒤에도 ‘영광의 샘’의 존재를 믿던 이들이 남아 있었다고 말이지.”

“……!”

마탑주는 그것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는 듯 눈을 크게 뜨고 생각에 잠겼다.

그래. 분명 그럴 가능성도 있었다. 오히려 배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과연…… 그렇다면 거짓된 마법의 이론을 푼다는 내용도 그렇고, 오랜 마법사들의 숙명을 푼다는 내용도 의미심장하군요.”

마탑주는 앞선 내용들을 상기하며 중얼거렸다.

샘의 속설을 믿던 그들에게 확립된 ‘원소’와 ‘마나’의 이론은 사도(邪道)와 같았으리라.

그러니 그것들은 내용에 적힌 ‘거짓된 이론들’이었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그들이 말하는 오랜 숙명은 무엇일까?

아마 그것은 이 너머에 있는 유적의 비밀과도 관련이 되어 있으리라.

이론이 확립된 이후에도 샘의 존재를 믿던 이들이, 이곳에 자리를 잡고 하려 했던 것.

“설마…….”

내용을 종합해 보면 정답을 손쉽게 유추할 수 있었다.

마탑주의 경악한 시선이 두 개의 길목으로 향했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것을 수긍했다.

“그래. 바로 ‘영광의 샘’의 존재를 증명해 내는 것이다.”

마력의 근원.

그것을 직접 밝혀내고 증명해 냄으로써 이론을 뒤집는다. 그것이 그들의 오랜 숙명이었다.

그 순간, 마탑주의 눈이 번뜩였다.

“……그렇다면 이번 문제의 의미를 알 것 같군요.”

“호오.”

나는 팔짱을 끼며 뒤로 물러섰다. 알아서 해 보라는 제스처였다.

마탑주는 두 길 사이에 다가서며 천천히 팔을 올렸다.

우우우우웅!

곧이어 마탑주의 손에서 생겨나기 시작한 마법진.

하지만 그건 그가 일생을 바쳐 배워 온 현대의 것이 아니었다.

바로, 최근 레이튼과 함께 연구해서 복원한 고대의 마법진이었다.

“……정답의 힌트는 문장에 있습니다. 거짓된 두 개의 이론은 각각 이 길목들을 뜻하는 것이겠지요.”

“그렇다면 두 길목 모두 정답이 아니라는 것인가?”

“그렇습니다. 오직 그들이 믿는 영광의 샘 하나만이 진실이고, 그 외의 다른 것은 이론으로 치부하지도 않았을 터. 그러니 두 거짓된 길목을 모두 지워 버린다면.”

“그들이 생각한 진정한 정답이 드러난다는 뜻이겠군.”

……그리고 마법진이 두 통로 사이에 닿았다.

마법진의 종류는 진실과 거짓을 판별하는 캔슬레이션.

그러자, 공교롭게도 기다렸다는 듯이 미궁의 내부가 천천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궁!

“허억!”

갑작스러운 진동이었다.

레이튼은 영문도 모른 채로 발자국을 물렸다.

하지만 그 흔들리는 땅 위에서도 마탑주는 우두커니 마법진을 가동시키고 있었다.

“그렇군.”

일순 내 입꼬리가 가늘게 올라갔다.

마탑주가 만든 마법진. 그것이 닿는 곳에 새로운 통로가 나타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쿠구구궁-

철컥-

“머, 멎었다?!”

레이튼의 말대로 어느새 진동은 멎어 있었다. 아무래도 그것은 통로를 만들어 내기 위한 소음이었던 모양이지.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드러난 통로를 보며 낮게 중얼거렸다.

“거짓된 이론을 지워라, 무척이나 심오한 정답이군.”

“허허. 두 이론의 존재가 그만큼이나 거슬렸다는 뜻이겠지요.”

물론 좋은 의미는 아니었다.

둘 중 하나에 정답이 있을 거라는 확신을 심어 준 뒤에, 그것을 이용한 함정이었으니까.

마탑주는 마법진을 사라지게 하며 말을 이어 갔다.

“아마 다른 이들의 이곳까지 오느라 소모한 심력으로는 정상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겠지요.”

“뭐, 우리에겐 의미가 없는 시도였군.”

나는 그렇게 말하곤 피식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어쨌거나 이미 문은 열린 상황이었다. 놈들의 설계야 어떻게 되었든 결실만이 남았다는 뜻이었다.

“가지.”

“알겠습니다.”

이것이 마지막이었다는 것은 마탑주와 레이튼 역시 알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열린 통로의 너머에서 놀라울 정도로 거대한 마력의 흐름이 느껴지고 있었으니까.

* * *

그 길의 끝에 있는 것은 거대한 하나의 공방이었다.

수없이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먼지 하나 없는 내부.

단 한 군데도 상한 곳 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마도구들.

이곳을 만든 마법사들이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리고 백골입니다.”

“이곳을 만든 마법사들이군.”

바닥에 흐트러진 백골들 역시 세월이 무심하게도 그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일행을 놀라게 만든 것은 따로 있었다.

“지하에 흐르던 냉기의 원인은 바로 저것이었군요.”

연구실의 중앙.

그곳에 놓인 거대한 얼음들은, 사방을 얼릴 듯 아직까지도 그 서늘함을 주위로 발산하고 있었다.

마탑주는 그것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법으로 만들어진 물건입니다.”

“그렇군.”

어지러이 연결된 관을 통해 마력을 주입받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렇다면 이 얼음이 어째서 이곳에 있는 것일까?

마탑주는 곧바로 그 해답을 찾아낼 수 있었다.

“……이것을 식히기 위해서였군요.”

얼음을 당겨 내자 그사이에 숨겨져 있던 거대한 마력의 덩어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피부에 와닿는 어마어마한 열기.

짐짓 주변의 모든 것을 태울 것처럼 휘몰아치는 플레어.

그리고 허공을 유영하며 파문을 남기고 있는 그 원형의 형태까지.

우우우웅-!

이것이 그들이 증명하고자 하던 ‘영광의 샘’의 존재였던가?

아무래도 마법사들은 자신들이 손수 그것을 만들어 냄으로써 이론을 완성시키고자 했던 것 같았다.

“하지만 자신들조차 버티지 못하고 소멸해 버린 모양이군.”

……인공 태양.

그 가공할 만한 물건이 고고하게 끓어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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