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123화
힘의 근원 (3)
영광의 샘.
그 마력의 근원이라 불리는 대마법의 보고(寶庫)를 증명하기 위해, 고대의 마법사들은 힘을 모아서 마력을 응집시켰다.
이론을 눈으로 보여 주기 위해서는 직접 그것을 재현하면 된다고.
한 점으로 무한히 마력을 응축하다 보면 마력의 근원과 다다르는 통로를 뚫을 수 있을 거라고.
그렇게 마법사들은 세간의 시선을 떨쳐 내며 마력을 집중시켰다.
하지만 그것은 옳은 판단이 아니었다.
과도하게 한 점으로 응집된 마력은 서로 마찰하기 시작했고, 이윽고 점차 뜨거워졌다.
그것은 고도의 기술력으로 만든 절대영도의 냉각제를 설치해도 마찬가지.
마침내 그 마력은 그들이 감내할 수 없을 정도에 이르렀고, 결국 한계까지 다다른 마력의 점은 일순 거대한 에너지를 방출하였다.
“……아쉽게도 그 이후의 내용은 적혀 있지 않습니다.”
“그렇군.”
널브러진 연구일지에 적힌 내용들은 거기까지가 전부였다. 하지만 구태여 연구 기록에 의존하지 않아도 결과를 알 수 있었다.
“그 결과는 조물주들을 파괴하는 것이었나.”
나는 바닥에 흩뿌려진 백골들에 시선을 던졌다.
우습게도 그들은 이미 그 전조를 예측했으리라, 이미 마찰이 시작되고 제어하기 어려워진 상태였을 테니까.
하지만 그 위협을 무시했다.
그들이 일생을 바쳐 믿어 온 이론을 증명해야 할 필요가 있었으니.
그리고 그 이후에 남은 연구의 잔재가, 바로 이것.
마치 태양처럼 타오르고 있는 인공 마력 덩어리였다.
“그나저나, 정말로 어마어마한 마력이 느껴집니다.”
이글거리는 에너지의 흐름이 뜨겁다.
또한 경이로웠다. 그것은 온통 마력으로 이루어진 열기였다.
“멈춰라.”
“예…… 옙!”
나는 레이튼은 멍하니 중얼거리며 다가가려던 레이튼을 제지했다.
저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출 정도로 단호한 목소리였다.
그러자 마탑주가 턱을 쓰다듬으며 눈을 빛냈다.
“시간이 지나서 더 이상 그때와 같은 재앙을 야기하지는 않을 걸세,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네.”
“예? 아, 그렇습니까?”
“자칫 저 마력에 장시간 노출되었다가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겠군.”
“어어…… 그렇군요.”
레이튼은 마탑주의 말에 수긍하면서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직접적으로 손을 대려는 것도 아니었는데…….’
마정석이나 이것이나, 결국 마력 덩어리라는 것은 똑같은데 무어가 문제라는 말인가?
그로서는 단지 경이롭게 보이기만 할 뿐이다.
그러나 레이튼이 멍하니 그것을 바라보던 그때였다.
후우우웅!
별안간 눈앞에 보이는 태양이 작게 수축하는 것처럼 보이더니, 이윽고 시야를 가득 메울 정도로 거대하게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 순간에 맞춰 마탑주의 마력이 일행을 부드럽게 감쌌다.
스스스스-
방어막을 스쳐가는 거대한 에너지의 파동.
레이튼은 그것이 지나간 뒤에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바, 방금 건 대체…….”
“한 점에 뭉친 마력이 과도하게 쌓여 분출된 것 같군.”
“뭐, 뭔지는 모르겠지만 위험하다는 말씀은 그런 뜻이었군요.”
“음.”
나는 무신경하게 대답했다.
솔직히 나 역시도 마법사가 아닌 이상에야 그 이상 자세히 알 리 없었고.
다만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은, 그보다 더욱 간단하면서도 근본적인 것이었다.
“야만족들의 성지라는 것에 대해 알고 있나?”
“예? 성지 말씀이십니까?”
레이튼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성지라는 단어야 원체 익숙하다지만, 그것이 야만족과 붙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다행히 마탑주는 짚이는 것이 있던 모양이다.
“성지…… 즉, 그 야만족 전사들의 불가사의한 힘을 부여받는 장소를 말씀하시는 것이군요.”
“잘 알고 있군. 정답이다.”
역시 현자라고 불리는 남자일까?
그는 단박에 내가 원하는 정답을 내놓았다.
“야만족들의 저력은 실로 강대하다. 어지간한 기사와 맞붙는다면 손쉽게 승리를 점칠 수 있을 정도로.”
“분명, 저희 마탑에서도 오러를 습득하지 않은 그들이 어찌 그렇게 강대한 힘을 사용하는가에 대한 연구가 있던 것으로 압니다.”
“그랬지.”
다른 어느 곳도 아닌 에스테반에서 벌어졌던 연구였다. 그것을 모르고 있을 리는 없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그들이 ‘성지’라는 곳에서 힘을 부여받는다는 사실 하나만을 알게 되었을 뿐이다.”
포로나, 이 지역을 돌아다니는 밀수업자 등, 여러 방법을 통해서 겨우겨우 알아낸 정보.
그래.
그 최후의 결론은 허무맹랑하다는 말을 떠나서 일고의 가치조차 없는 내용일 뿐이었다.
그들이 신을 믿는 사제들도 아니고 웬 성지라는 말인가?
그렇게 연구의 내용은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를 틈도 없이 묻혀 버렸고, 야만족들의 성지는 속설로도 남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만약…….
그 연구가 사실은 틀린 것이 아니었다면?
다만 그때에는 농담으로 치부했던 야만족의 성지가 실제로 존재한다면?
정말로 그들에게 미지의 힘을 부여할 수 있는 장소가 존재했다면?
순간, 마탑주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대화의 흐름으로 보아서는, 전하께서 말씀하시는 바가 무엇인지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이해는 빠르겠군.”
내 시선이 타오르고 있던 태양에 다다랐다.
그리고.
“야만족들에게 힘을 부여해 주는 성지. 그것의 진정한 정체는 영원히 타오르는 마력으로부터 떨어져 나간 찌꺼기들이다.”
나는 지금으로부터 수년 후에 밝혀질 진실을 입에 담았다.
* * *
일 년에 한 번씩.
야만족들은 눈보라가 몰아치는 겨울이 오면 태어난 부족의 아이들을 성지에 보낸다.
별다른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성지에 아이를 보내고, 하룻밤을 그곳에서 지내게 할 뿐이다.
제일 추운 밤낮을 맨몸으로 이겨 냄으로 선택을 받는다는, 원시 신앙에 가까운 무식한 의식이었다.
그러나 그 결실은 그리 작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막대한 에너지를 쐬게 된 야만족의 아이들은 크게 두 가지 양상을 보이지.”
에너지를 이겨 내지 못하고 죽거나.
그게 아니라면 그 힘에 적응하여 마력의 편린을 몸속에 담아 두거나.
그리고 그것이 뜻하는 바는 결국 하나였다.
“그들이 가진 힘은 처음부터 이 인공적인 고대 마법의 잔재로부터 나왔다는 말씀이시군요.”
“정확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확신을 심어 주었다.
그것이 야만족들이 지닌 불가사의한 힘의 정체였다.
“놈들이 성지라 부르는 ‘전사의 협곡’이 바로 이곳에 있다. 방금처럼 분출되고 흘러나간 힘을 녀석들이 이용하고 있던 것이지.”
“허…… 그렇다면 이 인공태양만 사라진다면…….”
“야만족의 땅에서는 전사라고 할 만한 것이 태어나지 않겠지. 더 이상 불가침의 영역으로 남게 되지는 않을 터다.”
“허어!”
마탑주의 표정에 더 없을 정도로 놀라운 감정이 스쳐 갔다.
당연히 처음 이곳을 탐사했던 국가 역시도 그 사실을 깨닫고는 같은 반응을 보였다.
이것만 사라진다면 야만족의 위협이 나날이 줄어들 것은 고사한 이야기였으니.
하지만 우습게도 회귀 전에 그 사실이 밝혀졌을 때는, 이미 늦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놈들이 대비책을 세운 뒤였으니까.’
성지에 대륙인이 침입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야만족들은 이곳을 중심으로 거대한 방어선을 세워 나갔다.
그래, 사로잡힌 드워프들에 의해 세워진 성벽들.
그것이 생기게 된 원인이 바로 이 유적의 발견이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제공받은 무구로 무장한 야만족.
놈들의 힘을 꺾겠다며 편성된 연합군은 그 방어선에 가로막혀 아무런 소득도 내지 못했다.
그것이 회귀 전에 있었던 원정의 전말이자 씁쓸한 결과였다.
그러나 지금 이 상황은 회귀 전과는 달랐다.
탐사는 단지 성지의 존재를 인식한 것에서 끝나지 않았고, 그 본체라고 할 만한 것을 목전에 두었다.
일촉즉발.
손만 닿으면 이것을 파괴할 수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재미있군.’
그렇게 입술을 비뚜름히 올린 그 순간이었다.
“야만족들의 위협이 사라진다니! 정말 대단하군요!”
레이튼이 저도 모르게 손뼉을 치며 답했다. 하지만 내 눈치를 보고서는 몸을 움츠렸다.
내가 그것을 눈앞에 두고도 가만히 서 있었기 때문이다.
“전하? 어째서 가만히 계시는지…….”
“이것을 어찌 활용하면 좋을지 생각하고 있었다.”
“예? 활용이라니요?”
방금 전에 말하지 않았던가? 이것만 사라진다면 야만족 전사는 더 이상 태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녀석은 금세 조급함을 보이며 나와 태양을 번갈아 가며 쳐다보았다.
“이, 이곳은 엄연히 방어선의 외부입니다. 자칫 놔두었다가 야만족들의 공격을 받으면 큰일이 날 것입니다. 차라리 이것을 파괴하고 후환을 완전히 없애시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그럴 수는 없지.”
“저, 전하……!”
다만 나는 그렇게 확고하게 말할 뿐이다.
고대 마법사들이 남긴 연구의 잔재. 무한할 정도로 타오르는 이 에너지는 활용하지 않기에는 너무도 아까웠다.
이것을 이용하면 얼마나 더 많은 발전이 가능할까?
얼마나 더 많은 고대의 정보들을 얻을 수 있을까?
그것이 너무 궁금해서 참을 수 없던 것이다.
“마탑주.”
“예, 전하. 말씀하십시오.”
“대마법사의 권능으로 이것을 옮길 수 있는가?”
“허어…….”
마탑주의 입이 순간적으로 다물어졌다. 그 말뜻이 듣기에 너무도 황당했던 탓이다.
하지만 이윽고.
“……마력의 덩어리라도 상관없습니다. 공간이동이라는 권능은 결국 두 공간을 연결시키는 것. 그 종류나 형태에 구애받지 않을 것입니다.”
“나쁘지 않은 소식이군.”
“그러나 이토록 강대한 힘이라면 텔레포트에 저항하여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자세히는?”
“누군가가 이것을 열린 공간의 저편으로 밀어 넣어야 한다는 뜻이지요.”
그 침묵이 무색하지 않은 대답이 흘러나왔다.
내 입술이 일순 작게 휘어졌다.
“그렇군.”
스윽-
나는 손을 감싸던 장갑을 벗어 던졌다.
그러고는 검은 제복의 소매를 잡아당기며 어깨를 으쓱였다.
“권능을 발동시켜라. 위치는 아무도 없는 점령지의 중앙쯤으로 하지.”
“저, 전하?!”
“그곳쯤이라면 확실히 안전하겠군요. 명을 받들겠습니다.”
레이튼의 경악과 반대로 마탑주의 표정은 무척이나 차분했다.
우우우우웅!
이윽고 마탑주의 마력이 공간을 지배했고, 열린 통로 사이로 빛무리가 넘실댔다.
그것의 위치는 인공 태양의 바로 뒤편.
즉, 말 그대로 저것을 밀어 넣기만 하면 된다는 말이었다.
“간단한 일이지.”
나는 그것을 향해 다가가며 오른손을 뻗었다.
쿠구구구구!
어마어마하게 느껴지는 열기. 그리고 폭주하듯 이리저리 날뛰는 막대한 마력.
평범한 이라면 이대로 손을 시작으로 전신이 그대로 불타 없어졌으리라.
그래. 평범한 이었다면 말이다.
일순 오른팔에서부터 발동한 마법각인이 내 몸을 감쌌고,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 마력의 점을 응시하며 입꼬리를 끌어당겼다.
“네까짓 게 내게 반항하려 드느냐?”
첫 번째 임계점을 돌파하여 마법각인의 힘을 일깨운 것이 수개월도 전의 일이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 마탑주를 치료하며 의외의 성장을 보였고, 아렌델에서는 순수한 바람의 원소를 흡수하기도 했다.
회귀 전의 지식과 경험. 그리고 대마법사의 조언을 되살려, 누구보다 빠른 성장을 이루어 낸 것이다.
그런 내 오른팔의 각인은 이미 두 번째 임계점을 넘었다.
제2 임계능력 마력 차단(魔力遮斷)
몸에 닿는 모든 마력을 무효화 하는 그 무적의 기술을, 이곳에서 발동한 것이다.
쿠구구구구!
손끝을 시작하여 기운이 전신을 감싸더니 점차 그 영역을 넖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저벅.
한 발자국을 내디딘다.
저벅. 저벅.
조금씩 나아가는 몸.
그리고 그에 맞춰.
기이이이이─!
녀석이 울부짖으며 뒤로 밀리기 시작했다.
실제 우는 것은 아니었으나 중심에 있는 마력 핵이 내가 펼쳐 내는 반발장을 버티지 못하고 밀려 나가는 것이었다.
나는 그 상태로 펴져 있던 손을 가볍게 움켜쥐었다.
꽈악─!
그러자 내 손 모양에 따라 태양처럼 플레어를 뿜어 내며 날뛰던 마력 덩어리가 뭉개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윽고.
파아아아아아아앗!
일 점에 모여 있던 막대한 마력들은 내 손길을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고, 이내 열린 공간의 저편으로 사라졌다.
“들어왔습니다. 바로 시전하겠습니다!”
그리고 마탑주가 손을 휘젓는 것으로 두 공간의 연결을 사라지게 만들었다.
무척이나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이, 이게 무슨……!”
레이튼은 일련의 상황에 경악하며 말을 더듬었다.
그 경이로울 정도의 마력 덩어리를 제압하는 듯한 모습은 어떠며, 심지어 그것을 순식간에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지게 만들다니.
게다가 어느덧 그 열기를 식혀 주던 절대영도의 얼음들은 걷잡을 수 없이 시린 냉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그것이 뜻하는 바는 하나였다.
“그, 그렇다면 정말로 그것을…….”
“그래.”
이곳에 있던 인공 태양을 옮겨 냈다. 그것도, 이제 에스테반의 것이 된 점령지의 중앙으로.
“……맙소사.”
도저히 인간의 능력이라곤 믿기지 않을 신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