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125화
백야 (2)
“그리하여 원정군은 북부를 점령하고 안전하게 방어선을 구축하였습니다.”
“……그렇군.”
국왕의 집무실.
보고를 받으시는 아버님의 표정은 무척이나 복잡한 감정이 엿보였다.
다친 곳 없이 훌륭하게 임무를 다했다는 대견함?
아니면 최소한의 손실로 북부를 점령했다는 기쁨?
그것들 역시 그 표정에 일조했지만, 무엇보다도 아버님의 감정에 깊이 남은 것은 당혹감이었다.
“……정말로 갈 때와 마찬가지로 신속한 행동력이구나.”
“지체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나는 새로이 국경지대가 된 최전방에 전력을 남겨 두고 귀환했다. 이제 더 이상 그곳에 있을 이유가 없었으니 당연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귀환을 논한 것이 바로 오늘 아침의 이야기였다.
하루도 지나지 않아 왕성으로 도착한 것이, 아버님께서는 사뭇 당황스러우셨던 모양이시다.
“크흠! 네 귀환에 맞춰 성대한 개선식을 준비하겠다 했을 터다. 그런데 이리도 갑작스럽게 오면 예정에 어긋나지 않느냐?”
그랬다.
통상의 전쟁이라면 그에 따른 환영과 논공행상이 뒤따를 것이다.
당연한 절차와도 같았다.
그러나 이 경우는 조금 특이했다.
“아버님. 아직 놈들이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것은 어디까지나 연방제국과의 전쟁 탓입니다.”
“음?”
“북부에 병사들과 기사단을 대기시켜 놓은 것은 그 때문입니다. 아직 승전의 축하를 하기에는 이르다는 뜻이지요.”
“그, 그렇지.”
아직 소강의 양상을 띠고 있을 뿐이다.
그 점을 간과하여 방심해서는 결코 안 된다.
“……한데 그리하면 네 공적 역시도 치하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 아니더냐?”
“그렇게 되겠지요.”
아버님이 조심스러우면서도 부드럽게 말씀하셨다.
결론은 아버님이 걱정하고 계시는 요지는 그거였다. 미적지근한 개선으로 공적이 낱낱이 드러나지 않는 것.
하지만 전혀 상관없었다.
‘더 이상의 증명은 필요 없다.’
나는 어깨를 으쓱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이미 지난 일 년간 여러 사건들로 스스로를 증명했다.
유약하고 휘둘리기만 하던 1왕자의 모습에서, 국정을 주도하고 이득을 챙길 수 있는 차기 군주의 모습으로.
말 그대로 더 이상 스스로를 보이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애초에 세력이 굳어진 이상 귀찮은 과시일 뿐이지.’
현재 에스테반은 나를 따르고 있는 1왕자파와, 알베도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2왕자파로 나뉘어져 있다.
아수스가 죽고 반대급부로 2왕자파가 급격히 성장했다지만, 그 세력은 일련의 사건들로 점차 힘을 잃었다.
그런데 그것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었다.
즉, 지금까지 남아 있는 2왕자파의 세력들은 무슨 일이 벌어지더라도 떨어져 나갈 일이 없다는 소리다.
“어차피 전쟁과 공적에 관한 소식은 금세 퍼지게 될 것입니다.”
“그렇긴 하지만…….”
“하면 지금은 개선식을 여는 것보다 이후의 일을 생각하는 것이 좋은 판단이겠지요.”
“……네 생각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겠지.”
아버님께서는 짐짓 아쉬운 표정을 감추시며 말씀하셨다.
그것으로 정리는 끝났다.
본인이 이렇게까지 말하고 있는 이상에야, 개선식을 밀어붙일 방도는 없으리라.
“그런데 그 인공 태양이라는 것이 정확히 무엇이더냐?”
“말씀드렸다시피 고대 마법사들이 만들던 마력의 보고입니다. 정확히는 그것의 잔재이지만요.”
“그것은 알겠다. 하지만 그것으로 무얼 할 수 있는지가 궁금하구나.”
점령지의 하늘에 설치해 둔 인공 태양.
그것은 마력을 방출하며 밤낮을 가리지 않고 북방의 땅을 비추고 있었다.
심지어 두 개의 태양이 떠오른 낮에는 그 혹한의 땅이 녹아내리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듣기에는 덕분에 북부의 추위가 누그러졌다고 하는 것 같던데, 그것만으로는 네가 그것을 설치한 이유를 설명할 수가 없구나.”
“아니요. 충분한 이유가 될 수 있습니다.”
“음? 고작 몸이 따뜻해지는 것만으로 말이더냐?”
아버님의 표정은 어느덧 호기심에 가득한 어린아이처럼 변모하였다.
나는 작은 미소를 머금으며 답했다.
“북부에서 야만족들이 가지는 강점은 그 환경에 적응했다는 것입니다.”
“……혹한의 추위에도 견디는 것 자체가 강점이라는 말이냐?”
“왜 아니겠습니까? 그들이 강한 것은 사실이오나, 그래 봤자 오러를 사용하는 이들은 저희와 비슷합니다. 그런데도 그렇게 싸울 수 있는 것은…… 날씨의 영향이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요.”
연방제국을 사이에 둔 아렌델이 쉽게 무너졌던 이유가 무엇이었던가?
연방제국의 간계 탓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놈들이 겨울의 추위에 편승하여 들이닥쳤기 때문이었다.
추위는 근육을 위축시켜 반응을 느리게 만들며, 착용하는 군장에도 영향을 끼친다.
하지만 그들은 그러지 않는다.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달려드는 전사들!
결국 야만족 전사들에게 혹한이란 환경은 절대적인 이점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병사들의 몸이 녹는다면, 그것만으로도 상대와의 차이를 좁힐 수 있을 것입니다.”
“확실히…… 그리하면 선점한 방어선의 지형과 더불어 방어를 수월하게 만들어 주겠구나.”
“물론 그런 이유뿐만은 아니겠지만요.”
나는 품속에서 푸른빛의 보석 한 개를 꺼내 아버님께 건넸다.
“한 번 보시겠습니까?”
그러자, 아버님은 안경을 꺼내 쓰시고는 그 보석을 바라보셨다.
“색상을 보니 마탑에서 만들어 낸 인공 마정석이군. 이제 막 만들어진 것인가?”
“예, 이번 방어선 구축의 일등 공신이 되었던 물건입니다.”
“분명 성채를 옮기기 위해서 이것들을 사용했다고 했지.”
마탑주는 세 개의 성채를 옮기기 위해서 이것을 사용했다.
과도한 권능의 사용으로 부족해진 마나를 마정석에 의존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인공적으로 뭉쳐 놓은 마나 역시 활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고, 그것의 응용성을 증명했다.
“하지만 아버님께서 잘못 말씀하신 부분이 있습니다.”
“음?”
“이것은 마탑에서 만들어 낸 것이지만, 이미 사용이 끝난 마정석이기도 합니다.”
“……뭐라고?”
아버님께서 급히 마정석을 받아 들고 이리저리 돌려보기 시작하셨다.
그 선명한 푸른빛은 분명 마력이 가득 찬 것이 분명했다.
그것도, 통상적으로 보랏빛을 띠는 자연적인 마정석과는 다른…….
“그것은 북부의 태양에서 충전시킨 마정석입니다.”
“뭐, 뭐라……!”
시종일관 자리에 앉아 계시던 아버님이 벌떡 일어나셨다.
방금 전에 했던 말이, 그 정도로 경악스러웠던 것이었다.
“한 번 사용한 인공 마정석을 또다시 충전시킬 수 있다고!”
그건 혁신 정도로 말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바로, 마법 전력의 판도 자체가 뒤바뀌게 되는 중대한 사항이었다.
* * *
북부 점령에 관한 소식은 귀족들에게 알음알음 퍼지고 있었다.
물론 대부분은 이미 일정 구역은 점령에 성공했다더라, 라던가 아직 야만족들의 방어를 뚫지 못했다더라, 등등의 추측일 뿐이었다.
원체 알려진 정보도 없는 데다 북부 원정 자체가 중대사였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왕실에서 공표한 소식이 들려오자, 그런 추측들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
[북부의 군대가 야만족의 땅을 성공적으로 점령했다.]
[이에 점령지의 용도에 관한 논의를 진행 중이며, 이후의 관리는 직할령으로써 왕실이 직접 관리하게 될 것이다.]
……쉽사리 믿을 수 없는 소식이었다.
당초 수개월은 걸릴 거라 예상했던 원정이 어찌 이토록 빠르게 진행된단 말인가?
애초에 에스테반의 땅이 넓어진다는 것 자체가 그들로서는 꿈에서도 상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이 영토 확장을 했던 것은 초대 국왕 때를 제외하면 없었으며, 그나마도 방어하는 것이 고작이었으니.
그렇기에 최근 외교를 통해 평야를 얻어온 1왕자의 공이 더더욱 빛난 것이기도 했다.
심지어 북방의 야만족은 결코 약한 세력이 아니다. 저 연방제국만 해도 아직까지 그들과 일진일퇴를 거듭할 정도지 아니한가.
그런데.
-기껏해야 그 수를 줄이는 것으로 그칠 줄 알았건만……!
북부에 새로운 국경지대가 세워지고 왕실이 점령지를 관리한다고?
다른 어느 곳도 아니고 그 야만족의 땅에?
매년 들려오는 피해 때문에 따로 회의가 소집된다는 것을 잘 아는 귀족들이었기에 그 내용엔 더더욱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그게 끝이 아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이후에 들려온 소식이었다.
[왕실은 해당 점령지를 군사 특구로 지정하고, 병력의 육성을 위한 시설을 개발하기로 결정하였다.]
에스테반 영토의 20%가량 남짓.
그 넓은 점령지 전체를, 오롯이 전력 증진을 위해 사용하겠다 선포한 것이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정세에 관심을 가지는 이라면 눈치챌 수 있었다.
그 땅에 군사들을 육성하겠다 말한 것이,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를…….
“본격적으로 놈들에 대치할 수단을 만들어야겠지.”
나는 흡족하게 말하며 새로 만들어진 북부의 지도를 바라보았다.
붉게 표시된 에스테반의 경계선.
그것은 야만족의 땅이었던 곳을 가르고 지나가, 새로이 우리의 것이 되었다고 알리듯 드넓은 땅을 내포하고 있었다.
“연방제국의 입장에서는 잇속에 가시가 든 기분이겠군요.”
“그렇게 되겠지.”
본래라면 야만족의 땅을 통해 병력을 움직이는 일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에스테반에서 북부를 점령했고, 그곳에 군사를 육성하겠다 말했다.
놈들로서는 신경 써야 할 것이 또다시 늘어난 셈이었다.
에스테반의 본대와 북부.
두 곳에서 몰아칠 병력은 그들의 기본적인 전략을 다시 세우게 만들어야 할 정도였으니.
물론 진정으로 흡족한 부분은 따로 있었다.
“에스테반은 지금부터 끝없는 마력으로 순식간에 발전해 나갈 것이다.”
인공 태양은 본디 실패작이었다.
고대의 마법사들이 바라던 ‘영광의 샘’은 파멸만을 낳았고, 그들의 염원은 무너졌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났다. 소실된 것도 있지만, 새롭게 발전된 것도 있기 마련이지.’
낮아지는 대륙의 마력 농도. 거기서 살아남기 위해서 마법사들은 수많은 마법을 강구했고, 우리는 그 해답을 알고 있었다.
응집.
바로, 일 점에 집중된 마력 속으로 새로운 ‘응집’의 마법진을 새긴 것이다.
‘주변의 마나를 자동으로 흡수하는 마법각인의 구조를 참고했지.’
거기에 인공 마정석을 연구하며 획득한 마나 응집 기술까지 덧붙였다.
그 덕에, 인공 태양은 정말로 고대의 마법사들이 원했던 것에 가까운 형태가 되었다.
응집과 방출을 보다 효율적으로 하는 마력의 보고.
비록 영구 기관은 아니지만 그에 걸맞은 기능을 충실하게 수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사실상 멈추지 않는 동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평상시에는 그만큼 마력을 비축해야겠지만.’
이미 그런 단점 따위는 의미가 없었다.
드러난 장점이 너무도 막대하고 경악스럽기에.
이는 단지 병력을 운용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에스테반의 발전을 선도하게 되리라.
“이번에도 정말 많은 것을 이루고 오셨군요.”
이야기를 듣고 있던 비도르 남작이 온화하게 웃었다.
언뜻, 아버님의 감정 속에서 보이던 것과 비슷한 뿌듯함이 느껴지는 듯했다.
‘그러고 보니 남작에게는 왕성의 일을 모두 맡기고 갔지.’
큰 문제가 있지는 않았으리라. 이미 대부분의 일은 처리해 두고 갔으니까.
하지만 그간 왕성에서 있었던 일이 궁금하기도 했기에, 어깨를 으쓱이며 물었다.
“그런데 내가 없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지?”
“별다른 일은 없었습니다. 아, 우선은 로엘의 상태가 많이 좋아졌습니다.”
“상태라면?”
“조금 더 감정의 표현이 잦아졌다고 해야겠지요.”
로엘은 납치 사건이 있던 이후. 때때로 비도르 남작령을 오가며 남작의 딸과 교류를 나누기도 했다.
또래 언저리의 여자아이가 주는 영향력이 강했던 탓일까? 무난하게 성장하고 있는 것 같다며 남작은 흐뭇함을 감추지 않았다.
물론 거기에는 제 딸에 대한 자랑 역시 언뜻 섞여 있으리라.
나는 시큰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그리고 또 다른 일이 있기는 한데…….”
그렇게 남작의 보고가 이어지려던 그 순간이었다.
무심하게 턱을 괴고 창밖을 보던 내 눈으로, 문득 이상한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손을 들어 남작의 말을 끊어 냈다.
“잠깐.”
“예?”
“그런데 저건 뭐지?”
“저것이라면…… 아!”
일순 남작의 시선이 내 눈이 향한 곳으로 움직였다.
그러고는 기묘할 정도로 어색하게 웃음 지어졌다.
거기에는 왕성의 정원을 아장아장 걸어 다니고 있는 일련의 닭 무리가 있었다.
“저런 것이 왜 왕성에 있는 것이지?”
“하하, 그게…….”
미간에 골을 만들며 묻는 내 질문에, 남작은 머리를 긁적이며 답했다.
“방금 전에 말씀드리려 했던 것입니다만…… 저것은 그리폰의 새끼입니다.”
“……그리폰?”
나는 그 당혹스러운 대답에 자리에서 일어나며 눈매를 좁혔다.
그러자, 소드마스터의 선명한 시야 속으로 놈들의 자세한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알아보지 못하실까 봐 걱정했는데 역시나군요. 학자들 역시 저 모습에는 크게 놀랐습니다.”
“…….”
닭인 줄 알았더니 정말로 그리폰이었다.
나는 졸지에 황당한 기분이 되어서 중얼거렸다.
“그런데 크기가 왜 저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