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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126화 (126/223)

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126화

창공의 제왕? (1)

왕궁의 시종들이 맡게 된 가장 황당한 업무가 있노라면, 그것은 1왕자가 가지고 온 알을 돌보는 것이었다.

“이게 그 그리폰의 알이란 말이지?”

“……엄청나게 커다라네.”

알이 보관된 장소에 들어온 두 시종은 눈을 휘둥그레 뜨며 감탄했다.

그들 역시 수레에 딸려 온 그리폰의 시체를 본 일이 있다.

그 위엄 있고 사납게 생긴 환수의 모습이란……!

그러니 이 수십 센티미터 남짓의 알 역시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황당하다 말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는 법.

“이 마정석을 알에 문질러 줘야 한다는 말이지?”

“일단은 그렇게 해 보라고 하던데?”

돌본다는 것은 그런 의미였다.

1왕자가 가지고 온 것은 그리폰의 시체나 알만이 아니었다.

대량으로 가지고 온 바람 속성의 마정석!

그리고 그런 마정석을 아침 점심 저녁에 나눠 알에 문지르고, 그 기운을 흡수시켜야 한다는 명을 내린 것이다.

그래야 알들이 수월하게 깨어날 수 있다고 하던가?

‘깨끗하게 닦는 것도 아니고 그저 마정석을 문지르라니…….’

관리하는 시종들의 머릿속에 동시에 든 의문이었다.

그렇다고 그 1왕자의 명령을 어길 수도 없는 노릇.

시종들은 반신반의하면서도 하루하루 꾸준히 알을 관리해 나갔다.

그러는 한편 약간의 두려움 같은 것도 있었다.

“제아무리 새끼라 하더라도 그리폰인데…… 괜찮은 걸까?”

“그 왜, 맹수들도 새끼 때는 별로 안 무섭다고 하잖아. 그거랑 비슷하지 않을까?”

“……그렇긴 해도 불안한데.”

비록 시체라 하더라도 그 위용을 직접 눈으로 보았던 시종들이었기에.

마음 한편에는 긴장감과 비슷한 것이 있는 것은 당연했다.

“밖에 기사들도 있으니까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확실히.”

“애초에 알이 깨어날지 아닐지도 불확실한 상황이잖아. 우리는 하라는 대로만 하면 될 거야.”

“……알겠어.”

조금은 미심쩍긴 해도 그렇게나마 편하게 마음을 먹는 것이 옳은 판단이었다.

그렇게 두 시종은 오늘도 마정석을 문질러 준 뒤에, 알이 보관된 장소를 나섰다.

……아니, 나서려 했다.

쩌저적-

“……!”

분명, 등 뒤에서 들려온 소리만 아니었다면 그렇게 했으리라.

“알이……!”

“깨, 깨진다?!”

설마 진짜로? 문지르기만 했는데도 부화한다고?

그리고 그들을 기다릴 생각은 없다는 듯, 뭉쳐 있는 알들에 금이 가기 시작하며 파각음이 귓가에 울렸다.

이윽고 가장 앞에 있던 알의 껍데기가 툭 떨어져 나가더니, 그 사이로 애처로운 새의 울음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사이로 드러난 것은…….

쩍- 쩌적-

째액!

“닭?”

독수리와 닭 사이의 애매한 무언가.

그 묘한 생김새의 자그마한 머리통이었다.

녀석은 동글거리는 눈을 밝히며 슥슥 주위를 둘러보더니 이내 고개를 왼쪽으로 픽 숙이며 울었다.

째액?

“…….”

얽혀 가는 두 시종의 시선이 황당함으로 떨렸다.

* * *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렇군.”

비도르 남작의 설명을 듣고는 턱을 쓰다듬었다.

풀숲을 뛰놀며 제집인 양 걸어 다니고 있는 저 새들.

창공을 지배하던 그 위용 넘치는 모습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애초에 그 맹렬하던 사자의 몸통은 어디에 갔는가?

‘분명 암컷들이 지키던 새끼들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던 것 같은데.’

……의문이었다.

나는 눈치껏 입을 다물고 있는 남작을 보며 물었다.

“놈들이 태어난 지는 얼마나 지났다고 했지?”

“오늘이 나흘째입니다. 총 서른 마리가 성공적으로 부화했습니다.”

말 그대로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소리였다.

남작은 좁혀져 가는 내 눈매를 보더니, 황급히 설명을 이어 갔다.

“왕궁의 학자들이 말하기를, 생김새는 조금 다르지만 일단 그리폰이 확실하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저 모습이 자라나면서 바뀔 수도 있다는 말이겠군.”

“알려진 것이 없으니 단정하기 어려울 뿐이지요.”

그리폰의 생태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었다.

때문에 알에서 막 태어난 저것들이 조류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으리라.

‘……아니. 이상한 일인가?’

사실 저것들이 부화하는 것 역시도 불투명한 일이었기에 신경을 끄고 있었다.

바람의 마석을 문지르는 것도 그저 나중에 밝혀진 그리폰의 생태를 기반으로 대략 말했을 뿐 큰 기대는 없었다.

어찌 되어도 상관없는 일이었으므로.

애초에 조사와 실험을 위해서 알을 가지고 온 것이 아니었던가.

그러니 몬스터의 알을 부화시켰다는 점에서는 이미 충분한 성과를 거두었다 하겠다.

그런데 대체 저것들이 왜 왕궁을, 그것도 정원을 멋대로 거닐고 있단 말인가?

“놈들을 통제할 사육사는 구하지 못했나?”

“아닙니다. 알에서 태어난 날에 맹수들을 조련해 본 경험이 있는 서커스단의 사육사를 데려왔습니다.”

“그렇다면 왜 저렇게 돌아다니도록 두고 있지?”

“그것이…… 도통 통제가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통제가 되지 않는다고?

나는 얼굴을 찌푸리며 잘 가꾸어진 정원의 풀을 뜯어 먹는 그리폰 새끼들을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놈들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는 사람이 있기는 했다.

“저자를 불러오도록.”

“예, 전하.”

그렇게 지시를 받은 남작이 사육사로 보이는 남자를 데리고 왔다.

“에, 에스테반의 1왕자 전하를 뵙습니다.”

“고개를 들어라.”

“옙.”

오십 대로 보이는 중년의 사내였다.

나는 그에게 곧장 궁금했던 것을 물어보았다.

“통제되지 않는다는 것은 무슨 뜻이지?”

“말 그대로 어떠한 지시도 따르지 않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공격성을 보이지는 않고 있는데…….”

“이유는.”

“저,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그리폰들이 인간의 서열을 낮게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서열?”

이야기를 듣던 남작의 시선이 샐쭉 힐끔거려졌다.

이 와중에도 놈들은 이쪽을 신경조차 쓰지 않고 있는 모습이었다.

남작은 무언가 기묘한 표정을 지으면서 물었다.

“이보게, 그러니까 저 그리폰들이 인간을 자신들보다 아래로 보고 있다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태도를 보면 확실하지요.”

“허.”

“아마 통제를 듣지 않는 것은 그런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제아무리 그리폰이 지능이 높다 한들, 갓 태어난 새끼들이 그런 판단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놈들을 바라보며 나직이 그 감상을 늘어놓았다.

“건방지군.”

“……크흠.”

서열에 관한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추측의 단계였다.

알려진 것 없는 그리폰에 대해 왈가왈부하기에는, 나흘이라는 시간은 짧았으므로.

그러나 직접 확인해 보면 확실히 알 수 있으리라.

후우우우웅!

나는 가진 기운을 끌어올리며 녀석들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내재 되어 있던 힘. 그리고 숨겨져 있던 존재감.

그것이 일순 끌어올려지자, 풀을 뜯고 있던 놈들이 화들짝 놀라며 소리를 질러 댔다.

본능적인 위기감을 느끼고 놀란 것이다.

짹!

째재잭!

삐약!

“……삐약?”

남작의 당황한 중얼거림 가운데.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녀석들에게 차갑게 명령했다.

“닥쳐라.”

……뚝.

그러자 약속이라도 한 듯 녀석들이 일제히 주둥이를 다물었다.

거의 찰나에 벌어진 일이었다.

“허어!”

사육사는 오히려 그리폰들보다 놀라고 있었다.

그토록 통제되지 않던 녀석들이, 무슨 조화인지 단박에 말을 듣는 것을 보고 놀란 것이다.

“놈들의 사육장은?”

“……아! 연구를 위해 왕성 밖 공터에 임시로 만들어 둔 시설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이곳까지 온 것이지?”

“아무래도 태어난 곳을 고향이라 생각하는 모양인지라…….”

“모조리 데리고 가서 가두어 놓아라.”

“아아,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사육사가 놈들을 통솔하여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행히 이번에는 무척이나 말을 잘 듣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사육사와 서른 마리의 새끼 그리폰들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정말로 놈들이 서열을 따졌던 모양이군.”

“……전하, 제가 보기에는 겁에 질린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거나, 그거나.”

자기보다 강한 존재에게 납작 엎드린다는 것은 똑같다.

나는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공포.

놈들을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이 생겼다는 것은 고무적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일시적인 현상일 뿐, 언제 다시 제멋대로 행동할지는 모르는 이야기다.

언제까지고 내가 붙어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당분간 놈들을 통제할 방법을 찾아야겠지.”

그것이 목줄이 되었든, 마법이든.

분명 방법이 없지는 않으리라.

* * *

그리폰들을 통제할 방법을 찾기 시작한 지도 수일이 흘렀다.

그사이, 아무런 소득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놈들을 손쉽게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으니까.

목줄.

놀랍게도 그리폰들은 목줄이 달리자, 자신들의 처지를 이해했는지 곧장 말을 듣기 시작했다.

몬스터치고는 과도하게 높은 지능이 그것을 가능케 했던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 방법이 오래가지는 못했다.

“……죄송합니다, 전하. 저로서는 더 이상 그리폰들을 통제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나는 곤란함 가득한 사육사의 목소리에 어깨를 으쓱였다.

내가 보기에도, 불가능해 보였던 탓이다.

“고작 보름 만에 이렇게 성장할 줄은 몰랐군.”

……그래.

기껏해야 커다란 수탉만 하던 그리폰들은, 요 며칠 새에 거의 개만 한 크기가 되었다.

눈 한 번 깜짝했더니 순식간에 성장한 것이다.

사육사는 자신의 머리를 콕콕 쪼고 있는 부리를 밀어내며 말했다.

“어찌나 힘이 강한지 목줄을 제어하기 어렵습니다. 다행히 아직까진 말을 듣기는 하고 있지만…….”

“그것도 조만간이겠지.”

알에서 깨어난 총 서른 마리의 그리폰.

그것을 일일이 목줄로 제어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이야기였으므로.

심지어 녀석들은 자라나며 점차 그리폰에 어울리는 사자의 몸통을 가지게 되었다. 네 다리에서 나오는 버티는 힘이 무척이나 드센 것이다.

덕분에 새끼 그리폰을 연구하기 위해 찾아온 학자들만 신났다.

“오오, 이런 진화 과정을 겪고 있다니……!”

“그야말로 세기의 발견입니다!”

“조금만 더 자라면 날개를 이용할 수도 있을 것 같군요!”

학자들은 그렇게 만연한 웃음을 띠며 그리폰에게 손을 뻗었다.

하지만 어디 쓰다듬는 것을 보고 있겠는가?

그리폰들은 고개를 홱 돌리며 우아한 발걸음으로 학자들의 주름진 손을 피해 냈다.

“하하, 아무래도 서열이 확고한 동물이다 보니…….”

“……크흠.”

“거, 신기하구먼.”

그나마 긍정적인 점이 있다면, 놈들이 인간을 결코 적대시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똑똑한 지능 덕일까? 공격성은 있지만 지금 자신들을 길러 주고 먹이를 주는 것이 누구인지를 확실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실제로 정원에 나타나는 새 따위를 곧잘 잡아먹는 일이 있기도 했고.

“……앞으로도 인간을 공격하는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다만, 그 외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구태여 외부로 도망가는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고 했던가?”

“그렇습니다. 아마 지난 보름 동안 인간의 손에 확실히 길들여진 모양인지라.”

“그렇군.”

내 눈꺼풀이 잘게 찌푸려졌다.

결국은 말 안 듣는 동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소리다.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것은 그런 의미였다.

‘당분간 학자들이 연구할 수 있도록 알아서 놔둬야겠군.’

처음 목적 역시도 그러했기에, 딱히 아쉬운 마음이 들거나 하지는 않았다.

이대로 놔두면 적어도 학술적인 가치로는 충분히 쓸 만했으니까.

하지만 소동은 그날 저녁에 일어났다.

“저, 전하……! 잠시 나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뭐지.”

“사육장에 있던 그리폰들이 왕성에 날아들었다고 합니다!”

나는 비도르 남작의 호들갑에 닦고 있던 엘베른을 내려놓으며 무심히 답했다.

남작은 무척이나 당황한 듯 보였고, 그 자신도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듯했다.

쯧.

어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남작을 따라나섰다.

그 발걸음이 안내한 곳은 왕궁의 정원이었다.

그러나.

“……이건.”

멀리서부터 느껴지는 혈향.

그리고, 달빛 사이로 드러난 정원은 무척이나 붉게 물들어 있었다.

무언가 일이 있어도 단단히 있었다는 소리다.

“호오.”

나는 흥미가 돋는 것을 느끼며 정원을 살폈고, 이내 정원을 수놓은 핏물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놈들이 이것을 가지고 왔나?”

“아, 아무래도…….”

처참하게 찢긴 채로 정원에 방치된 몬스터 한 마리.

그 흔적을 보아하니, 누구의 소행인지 알아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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