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127화
창공의 제왕? (2)
아침이 되자 왕성에는 작은 소란이 일었다.
“저건…… 고블린이랑 코볼트잖아?”
“모, 몬스터들의 사체가 어째서 여기에…….”
낭자한 피와 바닥으로 흩어진 시체.
그 처참하게 찢긴 모습에는 비위가 약한 시녀들이 구역질을 했다.
그럴 정도로 퍽 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알아서 치워 놓도록. 조금의 흔적도 남기지 마라.”
“예, 저, 전하. 한데 이 사체들은 도대체…….”
“치우라는 지시에 부연 설명이 필요한가?”
“죄, 죄송합니다.”
나는 왕궁의 사용인들에게 그렇게 명령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벌써부터 질린 표정이 가까이 다가가기조차 싫은 것처럼 보였으나, 명령을 이행하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윽고 사용인들이 분주히 움직이며 그것을 치우기 시작했다.
비도르 남작은 그것을 확인하고는 뒤따라왔다.
“전하, 지금부터 그곳으로 가실 예정이십니까?”
“그래야겠지.”
감히 왕궁 정원에 이런 짓을 해 놓은 녀석들.
같은 일이 재발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놈들을 찾아갈 필요가 있었다.
그 새 대가리들에게 자정작용을 바라기는 무리가 있었으므로.
나는 비도르 남작을 데리고 왕성의 밖으로 나섰다.
“어, 어서 오십시오 전하.”
왕궁 밖 공터에 마련된 임시 사육장. 그곳으로 들어서자, 사육사가 무척이나 당황한 듯 식은땀을 훔치며 나왔다.
꼭 들키면 곤란한 무언가를 걸린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 이유는 당연히 짐작할 수 있었다.
“놈들은 지금 어디에 있지?”
“그, 그것이…… 이쪽으로 와 주십시오.”
사육사는 그렇게 체념하며 일행을 안내했다.
그리고 거기에서 발견한 것은, 잔뜩 부서져 그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는 울타리와……
……삐약?
그 안에 옹기종기 모여서 깃털을 다듬던 그리폰들이었다.
사육사는 변명하듯 재빠르게 상황을 설명했다.
“죄, 죄송합니다. 사실은…… 간밤에 그리폰들이 밖으로 나갔다 온 것 같습니다. 아침에 확인했을 때는 이미 이런 상태였습니다.”
“나도 안다.”
“……아아, 혹시 이 아이들이 또 왕성을 찾았습니까?”
“찾긴 찾았지.”
다만 소동을 일으켰다는 점이 문제였지만.
사육사는 그런 사정까지는 모른다는 듯 상황 설명을 이어 갔다.
“다행히 서른 마리 모두 무사히 복귀하였습니다. 행여나 주변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았을까 상황을 조사하고 있었습니다. 헌데…… 혹시 사람들을 공격하지는 않았습니까?”
“공격하지 않았다.”
“휴우, 다행입니다.”
그래, 정확히 말하면 피해를 입힌 일은 없었다. 말 그대로 귀찮게 만들었을 뿐이지.
나는 눈매를 찌푸리며 녀석들에게 다가갔다.
짹짹!
짹-!
녀석들은 내가 다가가자 날개를 퍼덕이며 나를 환영했다.
서열이 확고한 생물이라고 했던가? 일전에 내가 보여 준 모습으로 인해 명백히 나를 자신들의 윗급으로 대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것도 마치 키워 주는 어미와 같은 느낌으로…….
‘악의가 없었다는 것이 더욱 귀찮군.’
아마 몬스터의 사체를 가져다준 것은, 일종의 보은이었으리라.
그 증거로, 녀석들의 눈은 마치 ‘어땠냐’는 듯 기대에 가득 차 있었으니.
물론 이 상황에도 좋아할 인간들은, 분명 새끼 환수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한 학자들 뿐이리라.
“당분간 이놈들의 교육은 내가 맡겠다.”
“……예?”
갑작스러운 내 말에 사육사의 표정이 멍해졌다.
“그리폰의 교육을 1왕자 전하께서 직접 하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래.”
지금 녀석들은 존재감만으로도 압도할 만큼의 힘을 가진 나를 제외하고, 나머지 인간들의 서열을 낮잡아 보고 있었다.
어쩌면 말을 들을지도 미지수일 정도로.
‘그렇다면 말을 들을 수 있게 해 줘야겠지.’
귀찮기는 해도 어쩔 수 없었다.
최소한으로 인간을 따르게끔 만드는 것. 지금 놈들에게 필요한 교육은, 그런 것이었으므로.
‘구르다 보면 말을 들을 터다.’
그러한 지론은 당연히 몬스터 따위에게도 적용되는 것이었다.
조잘대는 새소리는 이후의 일도 모르고 맑게 울렸다.
짹짹!
* * *
“……저게 뭡니까?”
“그리폰이네.”
“…….”
뒤늦게 북부에서 왕성으로 돌아온 조지는 황당한 장면을 목도했다.
짹짹!
삐악삐악!
남성의 몸통만 한 조류들이 정원에서 구르는 그 모습.
그리고 그것을 지휘하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1왕자였다.
“저 양반이 드디어 정신이 나갔나…….”
“크흠! 전하께서도 생각이 있으시지 않겠는가.”
“저 조류 언저리들을 붙잡고 병사처럼 훈련시키는 것이 말입니까?”
그것은 황당하다는 말로밖에 표현할 길이 없었다.
솔직히 말해서, 지금까지 보아 온 1왕자의 기행 중에서 단연 역대급이었다.
오죽했는지, 본래라면 성을 내며 말투를 고쳐 줘야 했을 남작 역시도 어색하게 만류할 뿐이었다.
“……그래도 의외로 효능이 있다네. 최근에는 괜한 소동을 일으키는 일이 많이 줄어들었으니.”
“저렇게 구르면 피곤해서라도 소동은 못 일으킵니다.”
“…….”
비도르 남작은 슬그머니 시선을 피했다.
실제로 창문 밖에 보이는 그리폰들은 무척이나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뭣하면 곧장 자리에 누워서 기절할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소동이 줄었다는 말 역시 거짓은 아니었다.
“큼! 어쨌든 저렇게라도 통제되는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하네.”
“아니, 뭐 그 정도입니까?”
“일반적인 새끼 동물과 비교해서는 안 되네.”
방금 왕성으로 도착한 조지야 모르겠지만, 남작은 저 작은 새끼 그리폰들의 말썽을 똑똑히 보아 오지 않았던가?
기실 처음 몬스터를 들고 왔던 일은 약과였다.
이후에는 1왕자의 기분이 좋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그리폰들이 더 많은 양의 몬스터를 가지고 오기도 했으니까.
‘매일같이 정원을 치워야 하던 사용인들의 눈이 처연했지…….’
그 안타까운 눈빛은 둘째 치고, 애초에 그것을 치우는 이들은 무슨 죄란 말인가.
덕분에 수도 밖에서 간혹 발견되던 몬스터들의 씨가 말라 버렸다지만, 결과적으로는 여러 사람이 눈물을 머금어야 했더랬다.
물론 그 외에도 소동은 있었다.
정원의 풀을 듬성듬성 뜯어 먹은 바람에 노년의 조경사를 뒷목 잡고 쓰러지게 만들었다든가.
아직은 나쁜 시력 탓에 왕궁에 장식된 사자 조각상과 싸우려고 든 일이 있었다든가.
마지막으로 음식 냄새를 맡고 궁의 내부로 들어왔다든가.
……말 그대로 말썽쟁이 그 자체였던 것이다.
“하루가 멀다고 일어나는 소동 탓에 왕궁은 바람 잘 날이 없었네. 그나마도 연구 가치가 있어서 망정이었지, 아니었다면 전하께서 무슨 행동을 하셨을지 모를 정도로.”
“…….”
“사육사의 얼굴이 야위어 가는 이유가 있었다네.”
그러니 더 이상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소기의 성과가 있는 셈이었다.
그렇게 남작은 지나간 일들에 혀를 내두르다, 문득 조지를 바라보며 물었다.
“음? 그러고 보니 조지 군, 자네는 왜 북부에 남아 있었는가?”
“짬 처리죠, 뭐.”
“짬…… 처리? 그게 뭔가?”
“쉽게 말하면 업무를 모조리 넘겨받았다는 겁니다.”
조지는 피곤한 얼굴을 쓸어내리더니, 주먹을 쥐었다 폈다가를 반복했다.
“그 양반이, 정신을 차리고 보니 먼저 귀환했더군요.”
“……아.”
비도르 남작의 묘한 탄식이 이어졌다.
눈앞에 있는 조지 역시, 사육사 못지않게 안타까운 일을 당하고 있던 것이다.
“……힘내게나.”
“그런다고 힘이 나겠습니까.”
“크흠!”
하지만 그런 말과 다르게 조지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하였다.
물론, 그 이유를 남작이 알 리는 없었다.
절대적인 기준으로만 본다면. 누구보다 많은 업무를 감당하는 것이, 그 자신이라는 사실을.
남작은 의외로 보고만 있어도 상대적으로 위안이 되는 사람이었다.
* * *
놈들의 훈련을 마친 나는 집무실로 올라왔다.
그러고는 뾰로통한 얼굴로 노려보는 조지에게 말했다.
“돌아왔군.”
“……예, 뭐. 조류 언저리들 훈련시키는 것은 잘 봤습니다.”
예상대로 조지는 듣는 둥 마는 둥 고개를 까닥이더니, 대뜸 그렇게 지껄였다.
업무를 맡기고 먼저 왕궁으로 온 것이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이다.
그러나 업무에 관한 이야기는 결코 대강 처리하지 않았다.
“예상보다 일이 빠르게 끝났습니다.”
“성채를 보강하는 작업이 말이지.”
“드워프들의 솜씨가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 아니라면 보강의 재료를 완비한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해야 할지…… 아무튼 그대로라면 100년은 끄떡없을 겁니다.”
“그렇군.”
새로운 북부 경계선에 놓인 성채는 성공적인 보강작업이 이루어졌다.
어느새 기존의 조악하게 만들어진 성채는 어디 가고, 드워프들의 솜씨로 재구성된 하나의 성벽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것도 보통 성벽이 아니었다.
“아무래도, 갈데르드 평야 요새 건축에서 노하우를 좀 얻은 모양입니다.”
“설계까지 손을 보았다고 했지.”
“야만족들이 투척하는 도끼가 성벽 위로 닿기 어렵도록, 군데군데 구조 자체를 바꾸었습니다.”
그러면서 녀석은 새로운 성채의 설계도를 내게 건넸다.
나는 그것을 살펴보다가, 이윽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놈들을 막기엔 충분하겠군.”
“더 자세히 안 봐도 됩니까?”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다.”
“예? 전하가 떠난 뒤에 그린 설계도인데요?”
조지는 의아한 듯 되물으며 눈을 좁혔다. 하지만 나는 어깨만 으쓱일 뿐이었다.
‘확실히 도움이 되긴 했나 보군.’
이전 갈데르드 평야의 요새 공사 작업이 시작되었을 적에.
나는 성벽을 지어 본 경험이 없던 드워프들을 위해서 미래에 있던 성벽의 구조들을 일러 준 적이 있었다.
이 설계도에 그려진 것은, 그때 가르쳐 준 성벽 구조의 정수였다.
하지만 그렇게 배운 지식을 일 년도 지나지 않아서 완벽하게 이용한다?
그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었다.
애초에 나는 녀석들에게 간략한 설명만을 해 주었지, 대단한 강의를 한 것이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녀석들은 그것을 해냈다. 거기에 덧붙여, 그것을 야만족이라는 상황에 맞게 응용하기까지 했다.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았으나 내심 놀라움을 느낄 정도였던 것이다.
“성채를 보강했던 드워프들은?”
“거기에 주둔시켜 봐야 의미도 없으니 모조리 데려왔습니다. 평야에서 요새화 작업 마무리나 시키려고요.”
“나쁘지 않은 판단이군.”
나는 씨익 웃으며 턱을 괴었다.
그런 사소한 지시 또한 내 생각과 같았기에, 역시나 마음에 들었다.
“성벽 보강의 책임자를 데리고 와라. 녀석들에게는 따로 지시를 내리지.”
“지금 바로 데리고 옵니까?”
“그래. 이제부터는 더욱 바빠질 테니까.”
갈데르드 평야의 요새화는 고작 성벽을 짓는 것 따위로 끝날 일이 아니었으므로.
아마 더욱 바빠지면 바빠졌지, 일손이 남는 일은 없으리라.
“아이고야…… 덩달아 힘들어지겠네.”
녀석은 그렇게 앓는 소리를 하며 집무실 밖으로 나섰다.
고단한 듯 허리까지 부여잡은 것을 보면, 돌아오자마자 업무를 시작한 것이 귀찮긴 한 모양이었다.
* * *
조지의 발걸음이 향한 곳은 왕성에 들린 손님이 머무는 별궁이었다.
하지만 별궁은 어느덧 드워프들이 머무는 곳처럼 변한 지 오래였다.
애초에 손님의 왕래가 잦지 않은 에스테반의 왕궁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부터 1왕자의 집무실로 가는 것이오?”
“예, 뭐. 그렇게 되었습니다.”
“알겠소. 잠시 준비만 끝내고 나가겠소.”
드워프는 별궁으로 찾아온 조지의 말에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히려 언제쯤 부르나 대기하고 있던 참이다. 하루빨리 평야로 귀환하라는 지시를 받아야 그 보금자리로 돌아갈 수 있을 테니까.
이 왕궁은 예전에도 느낀 것이지만, 너무도 정적이고 지루한 장소였다.
“이제 안내해 주시오.”
“이쪽으로 오시죠.”
그렇게 드워프는 조지의 안내를 따라 집무실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기다리던 시간이었기에, 짧은 다리에도 불구하고 어울리지 않는 빠른 걸음이었다.
그러나 그 움직임이 멎은 것은, 문득 정원의 부근을 지날 때쯤이었다.
“……음? 저건?”
“저거요? 아, 그리폰이라던데요.”
“그리폰?”
교육이 끝나고 정원에서 휴식을 취하던 그리폰들.
움직이던 드워프가 그것을 발견한 것이다.
순간, 드워프는 무척이나 흥미를 보이며 입을 열었다.
“참으로 씩씩한 녀석들이구려.”
“너무 씩씩해서 탈이죠. 전하께서 주워온 알에서 얼마 전에 깨어났습니다.”
“오오, 역시. 그리폰의 알은 환수족을 다룰 수 있는 우리 요정들도 발견하기 어려운 것인데, 정말 대단하오.”
“……예? 그게 무슨 소립니까? 환수를 다룬다는 것이?”
조지는 되레 당황하며 물었고, 드워프는 그 의문 속에서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음? 무슨 소리냐니? 환수인 저들이 요정족의 피에 반응하는 것은 당연한 상식이 아니겠소?”
“……!”
“혹시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는 그 지식이 알려지지 않은 것이오?”
일순, 조지의 눈이 밑도 끝도 없이 크게 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