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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129화 (129/223)

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129화

감출 수 없는 균열 (1)

끝나지 않는 전쟁과 이어지는 병사들의 고통.

“……그리고 마약.”

촤르륵-!

순식간에 손을 떠나간 종이들이 요란하게 흩뿌려졌다.

남자는 보고서를 건방지게 내던지며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재미있군.”

오만하게 내리깔아진 눈과 그 방자한 태도. 그러나 바닥으로 떨어진 보고서를 정돈하는 수행원의 모습에서는 조금의 불만도 찾을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눈앞에 있는 남자의 심기를 잘못 거슬렀다가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랐으므로.

“이 첩보가 들어온 것이 언제더냐?”

“두 달여 전의 일입니다, 전하.”

“그래?”

퍼억!

“……큽!”

쿠당탕-!!

순간 남자의 발길질에 밀려난 수행원의 몸은 서랍장을 무너뜨리고야 멈추었다.

때문에 애써 정리한 보고서들이 재차 바닥으로 흩뿌려졌다.

하지만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남자의 표정에서는 그 어떠한 감흥도 찾아볼 수 없었다.

“라이덴 델 카롯트, 그 애새끼가 병사들에게 마약을 유통하고 있었다라…… 이렇게 중요한 내용을 어째서 즉각 보고하지 않았지?”

“그…… 것이, 첩보의 진위를 확인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신음을 참아 내던 수행원은 차분하게 설명했다.

연방제국의 4황자. 그런 사람이 자국의 병사들에게 마약을 유통하고 있다는 사실을 쉽사리 믿을 수 있을 리가 없었으니까.

그렇다고 해도 이미 남자의 심기는 뒤틀린 뒤였다.

“분명 그 애새끼에 관한 첩보는 즉각 내게로 가지고 오라 말해 두었을 텐데?”

“……그렇습니다.”

“그런 것을 네까짓 놈의 판단으로 재단하려 드느냐?”

“……죄송합니다.”

“병신 같은 새끼.”

……쯧.

남자는 그렇게 혀를 차며 다리를 꼬았다.

무척이나 같잖았다. 고개를 숙인 저 수행원의 모습도. 그리고 하룻강아지처럼 제멋대로 행동하는 4황자란 놈의 작태도.

“그래서? 그 대단한 첩보의 진위는 파악했겠지?”

“……예, 전하. 정말로 첩보대로 전선에 마약이 유통되고 있던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그렇다는 말이지.”

남자의 비릿한 미소가 짙어졌다.

이 상황은 마음에 들지 않으면서도, 무척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분명 4황자, 그놈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을 터다. 제아무리 놈이라 해도 엄중한 보안을 뚫고 누구도 모르게 마약을 유통할 수는 없었을 테니.”

“예, 아무래도…….”

“아바마마께서 그것을 묵인하셨겠지.”

그래.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은 거기에 있었다.

폐하께서는 어째서 그 무능한 놈에게 휘둘리고 계신단 말인가?

고작 황위 계승권의 끝자락에 있는 4황자 따위에게…… 그것도 마약이라는 리스크를 짊어진 상태에서……!

‘녀석이 시도한 일은 모조리 부작용만을 낳아 버렸거늘……!’

그럼에도 그 영문 모를 편애와 신임이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는 것이다.

콱!

남자의 주먹이 하얗게 질릴 정도로 거세게 쥐어졌다.

마약만으로도 벅차건만, 제국 외부의 상황 역시 더 없을 정도로 좋지 않았다.

에스테반은 비교적 최근에 있었던 무역 제재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을 비웃듯 아무런 타격도 입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오히려 신의 땅개들 따위에 빌붙으며 제국을 견제하려 들기도 했을뿐더러, 최근에는 전쟁이 심화된 틈을 타 야만족의 땅을 점령하기까지 했다.

하물며 아렌델은 어떠했던가?

기껏 그곳으로 분산될 야만족들은 놈들의 강수로 인해 갈 길을 잃어버렸고, 모조리 제국으로 몰려들기에 이르렀다.

그것도 모자라 무언가를 눈치챈 것인지…….

제국과의 대화에도 이전에 없었던 시큰둥한 태도로 일관할 뿐이다.

‘이 내가 나섰다면 상황은 진즉에 끝났을 것을……!’

그깟 한 손으로라도 짓누를 수 있는 두 땅덩어리 따위. 그딴 것에 휘둘리는 이 상황 자체도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그러니 지금 들어온 첩보는 무척이나 흡족했다.

“아바마마께서 마약과 관련된 사안이 드러났다는 사실을 알면 과연 어떻게 반응하실까?”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4황자에게 크게 경을 치실 것입니다.”

“그래, 이것은 놈의 무능함을 낱낱이 밝힐 수 있는 정보다.”

북부의 전선은 과한 마약 사용의 부작용 탓에 밑도 끝도 모르고 밀리는 상황이었으니까.

그리고 이번 일이 터짐으로써…… 지금까지 쌓아 온 수많은 실패와 부작용은, 그 근거 없는 믿음을 사라지게 만들 것이 분명했다.

“크흐흐.”

남자는 꼬았던 다리를 풀며 조소를 지었다.

그렇다면 그 갈 곳 잃은 신임과 편애가 사라진 뒤에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

“응당 내게 있었어야 할 신임이, 정상적으로 주어질 것이다.”

남자, 루이넬 델 카롯트.

……연방제국의 1황자인 그에게, 순리대로 기회가 올 거라는 말이었다.

1황자는 흡족하게 웃으며 물었다.

“이것을 보낸 놈은 누구지? 이런 사실을 자세히 알 정도라면 총사령관인 벨리알 공작 정도는 되어야 할 텐데?”

“신분을 밝히지는 않았습니다. 그저, 스스로를 까마귀라 칭하며 통신이 가능한 마법구를 남겼을 뿐입니다.”

“건방지군.”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1황자는, 일말의 불쾌함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기껍기까지 했다. 이런 유능한 자가 환심을 사려 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최소한 저런 무능한 놈들보다야 낫지.’

“뭐, 좋아. 까마귀든 공작이든, 내게 도움이 되기만 한다면 말이야.”

……통신구를 남겼다고 했던가?

정말 오랜만에 자신을 기쁘게 만들어 주었으니, 그 공을 치하해 주는 것이야말로 존엄한 좌에 앉은 이로써 행할 당연한 의무겠지.

“통신을 넣도록. 직접 그 까마귀란 놈과 대화를 나누어 보겠다.”

“예, 전하.”

1황자는 애써 자리의 앉은 채 무심함을 가장했다.

그러나 무척이나 기대가 되어 참을 수 없었다.

이다음에 까마귀가 물어다 줄 이득이 무엇인지를.

* * *

창밖을 바라보고 있던 나는 문득 아무도 없는 집무실 속에서 중얼거렸다.

“까마귀가 왔군.”

까마귀란 것은 결코 은유적인 말이 아니었다.

그러나 정말로 까마귀가 도착한 것 역시 아니다.

다른 누구에게는 은유적인 표현일지 몰라도, 그 정체를 이미 알고 있는 내게는 해당 사항이 없다는 뜻이었다.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섬뜩한 목소리와 창문에 비친 기괴한 겉모습.

검은 양복 위로 얼굴을 감싼 붕대가 무척이나 인상 깊은 사내였다.

……존 헤드윅.

놈은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던 것처럼 집무실 내에 존재하고 있었다.

물론 그 움직임을 눈치채지 못할 내가 아니었다.

“일전의 명령은 꽤 화려하게 이루어 냈더군.”

“그저 깔린 판 위에 편승했을 뿐입니다.”

존 헤드윅은 휘하의 암흑가를 동원하여 연방제국의 북부에 마약을 유통시켰다.

당연히 그 효과는 발군.

어찌나 확실하게 팔아넘겼는지, 이미 제국군에 퍼진 마약들은 놈들 전체를 좀먹고 있는 상태였다.

야만족의 땅을 점령하고 돌아온 뒤에도 그 여파가 남아 있을 정도였으니까.

“뭐, 그 모습을 보니 만족할 만큼 번 모양이군.”

“여부가 있겠습니까?”

녀석의 입에서 마차의 바퀴가 끼릭거리듯 기괴한 음성이 새어 나왔다.

만족할 뿐이랴? 공짜로 얻은 마약을 대량으로 팔아넘겼으니 모르긴 몰라도, 개처럼 기어도 불만이 없을 정도의 금액을 벌었으리라.

군말 없이 이곳을 찾아온 것만 보더라도 확실했다.

“이미 이야기를 들으셨겠지만, 드디어 놈들이 미끼를 물었습니다.”

“무시하기에는 너무도 달콤한 미끼였을 테지.”

나는 그제야 뒤를 돌아보며 녀석을 응시했다.

“정체도 모르는 인물에게 ‘직접’ 연락을 할 정도로 말이야.”

“그만큼이나 급했다는 뜻이 되겠지요.”

“그저 인정욕이 강한 바보라서 그럴 수도 있지.”

신뢰를 바탕으로 협력관계를 쌓아 나가든, 단지 이용하기 위한 의도였든.

결국 놈들이 우리가 건넨 정보를 신뢰하게 되었다는 사실만은 다르지 않았다.

“……그렇다면 친히 이용당해 주어야겠지.”

권력에 조바심을 내던 1황자가, 4황자를 물어뜯는 일을 지켜보면서 말이다.

‘나쁘지 않군.’

나는 책상 위에 놓여 있던 와인잔을 들며 천천히 기억을 음미했다.

이 흥미로운 작전이 처음 계획되었던, 그날의 기억을.

-이왕이면 거기에 하나 더 얹죠?

-무엇을 말이지?

-뭐, 놈들을 망치게 만들 계획 말입니다.

대충 떠오른 것이 있었다고 했던가?

당시의 조지는 현 연방제국의 후계 구도를 짚어 내며 설명했다.

-전하께서는 4황자가 차대의 황제가 될 거라고 말씀하셨지요.

-벌써 황제의 마음은 기울었을 터다.

-그렇다면 그 위의 황자들은 불만을 품고 있을 것이 분명합니다.

한쪽에만 편향된 신임.

……틀림없었다. 앞선 작전들이 모조리 실패했음에도 4황자를 밀어주는 황제를 보며, 다른 황자들이 불만을 느끼고 있음이.

-거기에 4황자의 주도하에 마약을 유통하는 현 상황을 이용하는 겁니다. 그것에 대한 정보를 다른 황자에게 흘리며, 놈의 입지를 좁히는 거죠.

-암흑가에게 맡길 마약의 유통 또한 놈들에게 뒤집어씌우자는 말이군.

-그 이후에는 뒤에서 천천히 싸움을 붙이면 됩니다.

기어코 흙탕물 싸움으로 번지도록.

그리하여 마침내 양쪽이 상처입고 모두 힘을 소모하도록.

그렇게 말이다.

-호오.

급조한 것치고는 나쁘지 않은 작전이었다.

아니, 비록 급조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나온 곳은 결국 ‘조지’의 머리였다.

적어도 그 간계만큼은 이미 완성되어 있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렇다면 그 정보를 흘릴 녀석은 정해져 있겠지.

-루이넬 델 카롯트.

일순 조지와 시선이 맞닿았다.

가장 권력욕이 심하면서도 지지 세력이 탄탄하고, 성격까지 개차반인 망나니.

작전의 목표로는 더할 나위 없이 어울렸다.

‘이제 놈에게 무슨 선물을 안겨다 줄까?’

다시 상념에서 벗어나.

나는 와인잔을 흔들며 미소를 지었다.

찰랑거리는 붉은 액체에 비친 눈은, 싸늘하게 웃고 있었다.

……그게 좋겠군.

나는 와인잔 옆에 있던 종이 위로 무언가를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그것을 존 헤드윅에게 건네며 지시를 내렸다.

“까마귀가 전해 줄 다음 선물이다.”

“그렇군요. 확인해 봐도 되겠습니까?”

“물론.”

내 허락이 떨어지자 녀석은 종이의 내용을 확인했다.

이윽고.

“크흐, 크흐흐흐.”

웃는지 우는지 모를 목소리로, 그렇게 숨을 내뱉었다.

“좋습니다. 그들에게는 좋은 선물이 되겠군요.”

스르륵-

“그럼, 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 말과 함께 존 헤드윅의 몸이 달빛의 그림자 속으로 사라지며 모습을 감추었다.

올 때와 마찬가지로 무척이나 요상한 움직임이었다.

나는 와인잔 속에 든 액체를 바라보다가, 그것을 천천히 비워 내기 시작했다.

‘좋은 선물이라…….’

정말로 그렇게 될 것이다.

적어도 1황자에게는, 무척이나 위협적이었을 소식일 테니까.

어느덧 구름에 가려졌던 달빛이 처연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 * *

치지지직-

“…….”

통신을 끝낸 1황자는 입을 다물었다.

내용의 진위를 따지듯 경직된 표정이었다.

신중함이라는 단어는 그에게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으나, 지금은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내가 들은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겠지?”

“아, 아무래도…….”

“라이덴 델 카롯트, 그놈이 비밀리에 병사를 육성하고 있었다고?”

4황자가 개인 사병을 육성하고 있다는 새로운 첩보.

그것도, 황제에게도 알리지 않은 숨겨진 병력이라 했다.

1황자는 수행원의 표정을 확인하며 얼굴 근육을 파르르 떨었다.

“……믿을 수가 없군.”

도무지 믿을 수 없었지만 무시하기도 어려웠다.

황자 개인이, 심지어 황제에게도 알리지 않고 병력을 육성할 이유는 하나밖에 없었으니까.

‘만에 하나 있을 사태에 대비했나?’

자신이 아닌 다른 황자가 황태자에 책봉되었을 경우.

……아니, 그런 미래가 오지 않도록 손을 써 두겠다는 뜻이었다.

‘이 건방진 새끼가……!’

1황자의 꽉 쥐어진 주먹이 하얗게 질렸다.

이미 머릿속에서는 녀석의 야망이 생생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것을 본 수행원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전하, 이번 정보는 조심스럽게 다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고작 한 번의 첩보만으로 믿기에는 너무도 중대한…….”

“알고 있으니까 닥쳐라.”

“…….”

수행원이 고개를 조아리며 한 발자국 물러섰다.

으르렁거리듯 답한 1황자는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녀석이 병력을 몰래 육성 중인 장소가 어디라고 했지?”

“남부의 파니르 숲이라 하였습니다.”

“그래, 남부의 숲.”

그렇게 되새기는 그의 눈은 다급하게 번뜩이고 있었다.

통신 너머로 들려오는 여유로운 목소리가, 알 수 없는 조급함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사람을 보내서 정보의 진위를 확인하도록. 놈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신속하게 움직여야 한다.”

이미 그 정보를 들은 순간, 그 진위를 확인해야겠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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