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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130화 (130/223)

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130화

감출 수 없는 균열 (2)

“아아아악!”

화르르륵!

“무슨 일이냐!”

“부, 불이야!”

울창한 수풀 사이로 그 누구도 모르게 잠들어 있던 주둔지.

어둠 속에서 시뻘건 불꽃에 휘감긴 화살 비가 쏟아지자, 내부에 숨어 있던 병사들이 동요하며 우왕좌왕했다.

당연히 불길은 순식간에 근처로 옮겨붙었고, 주둔지의 내부는 아비규환에 휩싸였다.

“적습이다!”

“어, 어서 불을 꺼!”

“불가능합니다!”

침착하게 대응하기에는 이미 혼란이 가득했다. 도무지 예측할 수 없던 일이었기에 대비조차 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하물며, 불길 너머로 드러난 상대는 척 보기에도 그 기세가 정련되어 있었다.

누가 보아도 고도로 훈련된 병력이라는 소리였다.

“제기랄……! 대체 누가…….”

갑작스러운 소란.

잠에 취해 있던 지휘관이 비몽사몽 걸어 나오며 황망하게 중얼거렸다.

뒤늦게 병사들을 통제해 보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적들은 이 주둔지의 존재를 알고 확실하게 준비해 온 것임이 분명했다.

이 습격은 우연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는 수 없지.’

지휘관은 마른 입속을 적시며 황급히 주변을 살폈다.

그러고는, 지나가던 수하에게 다급하게 손짓하며 소리쳤다.

“이봐! 말을 준비해라! 후문으로 빠져나가겠다!”

“예?! 그, 그러면 적들은 어찌하시고…….”

“그딴 것까지 내가 신경 써야 하느냐!”

“아, 알겠습니다!”

수하는 지휘관이 내지른 윽박에 재빨리 움직였다.

한편, 지휘관은 말을 찾기 위해 달려가는 수하를 보며 침울한 얼굴로 엄지손톱을 깨물었다.

“제기랄…….”

머릿속이 복잡했다.

당연히 목숨도 중요했지만, 이 상황 자체가 그에겐 치명적이었기 때문이다.

‘잘못하다간 가문 전체가 남아나질 않을 것이다.’

최소한 이 상황에 대해서라도 알려야만 한다.

무능한 인간은 ‘그분’께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비는 없었고, 하물며 일말의 기회조차 없었다.

그러니 ‘정보가 새어 나갔다는 사실’을 반드시 알려야만 했다. 죽음보다 더욱 끔찍한 지옥을 맛보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지휘관님! 말을 가지고 왔습니다!”

“……좋아!”

지휘관은 수하가 가지고 온 말에 오르며 다급하게 명령했다.

“배후를 들킬 수 있는 물건들을 모조리 처분해라. 나는 먼저 빠져나가 그분께 이 사실을 알리겠다.”

“알겠습니다.”

“이럇!”

히히히힝!

투두두두두-!

말은 채찍질이 가해지자, 곧바로 이 화마 속을 빠져나가기 위해 다리를 움직였다.

빠르게 움직이는 시야 사이로 스쳐 지나가는 아수라장의 풍경들.

지휘관은 고삐를 꽉 쥐면서도 소리를 지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뚫리잖아! 막으라고!”

어느덧 적군의 병력도 주둔지에 다다른 지 오래였다. 적어도 이 진지를 빠져나가기 전까지는 병사들이 시간을 끌어 줘야만 했다.

“최대한 시간을 벌란 말이다! 정 부족하면 몸을 던져서라도…… 크헉!”

히히히힝!

철푸덕!

“지, 지휘관님!”

순간, 날아온 화살에 몸이 꿰뚫린 말이 중심을 잃으며 쓰러졌고, 지휘관의 몸뚱어리도 허무하리만치 쉽게 바닥으로 내팽개쳐졌다.

“크윽…… 제기랄!”

이마에서 흐른 핏물이 시야를 가렸다.

그러나 지휘관은 바닥을 구르면서도 재빠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달리기 시작했다. 대체 어디에서 화살이 날아왔는지도 확인할 시간이 없었다. 그 어느 때보다 강한 집중력으로 낙마의 충격을 이겨 낸 것이다.

“어딜 가는 거지?”

“……!”

하지만 그런 지휘관의 앞을 누군가가 가로막았다.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지휘관은 놀란 가슴을 부여잡은 채로 고개를 돌렸고, 이내 목소리의 주인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오랜만이군.”

“너, 너는…….”

검은 정장에 금빛의 레이피어.

익숙한 사내였다. 고아한 세검을 다루는 중년의 검사는 제국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족속이었으므로.

“애, 앤드로 백작!”

제국의 다섯 손가락 안에 손꼽히는 검사, 앤드로 백작. 그 다른 이명은 1황자의 첫 번째 검이었다.

그를 직접 마주한 지금에야, 비로소 이 습격의 원인을 확인하게 된 것이다.

‘……1황자.’

당장 이 사실을 알려야 한다는 조급함과 함께 몸이 반대편으로 움직였다.

초인적인 정신력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것이 지휘관의 마지막이었다.

서걱-

“……커억.”

털썩-!

그렇게 시신은 바닥으로 허물어졌다.

낙마해 구르면서도 일어나 달렸던, 그 애처로운 발악에 비해 허무한 최후였다.

백작은 차갑게 시선을 내리깔며 그것을 바라보았다.

“……역시 그랬군.”

정확히는, 오랜만이라고 말했던 그 얼굴을 집중하여 주시했다.

“백작님, 내부의 적들을 모조리 섬멸했습니다.”

“수고했네.”

등 뒤로 다가온 수하들의 보고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말대로, 더 이상 살아 있는 적군은 보이지 않았다.

“병사들에게 진지 내부에서 증거가 될 만한 것을 찾아오라 시킬까요?”

“그럴 필요 없다. 이미 그 무엇보다 확실한 증거가 여기에 있으니.”

“증거라면…….”

이미 죽어 있는 지휘관의 시체. 그러나, 그 지휘관의 정체는 이미 익히 알고 있었다.

“4황자의 충복이다.”

* * *

“……역시.”

1황자는 수하가 보내온 연락을 들으며 주먹을 꽉 쥐었다.

부들거리는 몸에서 느껴지는 분노가 수행원들의 몸을 움츠러들게 만들 정도였다.

백작가의 병력을 보냈을 때만 하더라도 반신반의했던 것이 사실이다.

정말로 그곳에 4황자가 비밀리에 육성하던 병력이 있을까? 정체 모를 인간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 있을까?

명령을 내린 뒤에 냉정하게 생각해 보니 섣부른 행동이었다고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첩보는 맞아떨어졌다.

정말로 남부의 숲에는 비밀스럽게 숨겨진 진지가 있었고, 그 안에는 4황자의 충복과 함께 놈의 흔적이 발견되었다.

조금의 거짓도 섞여 있지 않은 진실이었던 것이다.

분노가 지나치면 오히려 냉정해진다고 했던가?

1황자는 차갑게 식은 목소리로 뇌까렸다.

“당장 통신 마법구를 가지고 와라.”

“저, 전하. 마법구는 어째서…….”

“당장 가지고 오라고 하지 않았느냐!”

쨍그랑!

“…….”

1황자가 던진 유리잔이 박살 나며 조각들이 허공으로 비산했다.

수행원들은 바닥에 머리가 닿을 정도로 깊이 고개를 조아렸다.

하지만 그 모습 또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당장 마법구를 가지고 와서 그 까마귀라는 놈과 통신을 연결하라.”

“전하…….”

“다시 말하지 않는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수행원들은 다급히 자리를 벗어났다.

그 꽁무니 빼듯 달아나는 모습들이 어찌나 우스운지.

1황자는 분노 속에서도 입술을 비척이며 그들을 비웃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정체 모를 인간이 저까짓 놈들 따위보다 도움이 되는 것 같군.”

빈말이 아니다.

어디에선가 나타난 까마귀 한 마리. 그는 자신에게 두 번의 선물을 내주며 길조의 역할을 독특히 해 주었다.

놈에게 말려오는 기분만을 느꼈던 지금까지와는 달리, 고작 두 번의 첩보였음에도 이미 상황이 뒤집힐 여지가 보이지 않는가.

그 오랜 기간 아무런 대책도 만들지 못했던 저깟 놈들 백 명보다 명백히 나은 존재였다.

하지만 그때, 남아 있던 한 수행원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전하. 무언가 예감이 좋지 않습니다.”

“무슨 뜻이지?”

“그 ‘까마귀’라는 인물에 관한 것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수행원은 신중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 갔다.

“그는 분명 4황자의 치부와도 같은 첩보들을 알려 주었습니다. 하지만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토록 중대한 사안들을 너무도 손쉽게 알아내고 공유하는 것이…….”

“놈에게 다른 의도가 있다?”

“명확히 그러합니다. 그게 아니라면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그가 알려 준 정보들은 4황자파에 깊숙이 관계된 내부자가 아니라면 알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들 역시 첩보가 들어오기 전까지는 도무지 짐작조차 하지 못했던 일들이 아닌가!

그런데 그런 것을 아무런 의도 없이 내준다?

그것도 내부자라 생각되는 인물이?

게다가 그가 요구한 금전은 정보의 가치에 비해 터무니없이 작은 액수였다.

그런 점들을 미루어 보아서는, 오히려 수상한 냄새만이 풍기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저는 오히려 그것이 함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도 1황자 전하를 이용하려는 간계가 틀림없습니다.”

“하.”

하지만 1황자는 얼굴을 찌푸리며 불쾌함을 드러냈다.

“도움이 되지 못할망정 전전긍긍하는 모습이 참으로 머저리 같군.”

“전하.”

“왜? 내게서 총애가 사라질까 봐 두렵기라도 하더냐?”

“…….”

수행원은 입을 다물고 침묵했다.

애석하게도 이미 1황자는 자신을 위해 두 번의 선물을 가져다준 ‘까마귀’를 온전히 신뢰하고 있었다.

그의 눈에는 저 적은 요구사항조차도 자신과 연을 만들기 위한 수단으로 보일 정도였으니.

얼굴도 신분도 모르는 인물을, 이번 사건으로 말미암아 맹목적으로 믿게 된 것이다.

“허튼소리는 용납하지 않겠다. 그따위 소리를 할 여력이 있다면 그 건방진 4황자를 압박할 방법이나 찾아내라.”

“…….”

“썩 꺼지도록.”

“……알겠습니다.”

그렇게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수행원까지 떠나갔다.

비로소 주변이 조용해지자, 1황자는 흡족하게 웃으며 행복한 상상을 이어 나갔다.

‘이 정보들로 놈을 압박해 나간다면, 분명 녀석도 힘을 잃고 추락하겠지.’

좋은 무기들을 얻었다. 그러니 이제 그것을 휘두를 차례였다.

그리고 그 전에, 그 까마귀라는 인물과 통신을 나누어야 할 필요가 있으리라.

“놈이라면 더 좋은 방도가 있을 수도 있으니까.”

1황자의 웃음이 짙어졌다.

그리고 그 웃음은 ‘까마귀’가 남기고 간 통신구가 도착하기 전까지 계속되었다.

……조금씩. 마음속 깊은 곳부터 천천히.

그렇게 점점 1황자는 이름도 신분도 모르는 남자에게 의존하고 있었다.

* * *

“성공적이었네요.”

“그렇군.”

“뭐, 이렇게 쉽게 풀릴 줄은 몰랐지만요.”

조지가 어깨를 으쓱이며 보고서를 내려놓았다.

녀석에게서 온 보고서였다. 1황자의 움직임과 황궁의 상황이 세세하게 적힌 물건.

그러나 나는 그것을 살펴 나가며 무심하게 말했다.

“이미 놈에게 그 정보를 건넸을 때부터 예정된 일이었다.”

“그렇습니까?”

“놈은 그 누구보다 4황자의 권력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스스로의 입지를 빼앗기고 있다는 두려움과 불확실함.

그것들은, 내가 건네준 4황자의 정보로 인해 해소되었으며. 또한 확실해졌다.

역시나 4황자가 야욕을 드러내고 있었다는 것이 말이다.

당연히 1황자로서는 활로를 찾은 기분이었으리라.

“그렇다고는 해도 아직 황제의 총애는 변하지 않았을 터다.”

“어떻게든 압박해 보려 해도 끄떡도 하지 않을 테죠.”

나는 조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수긍했다. 황제야말로 4황자의 무서움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일 테니까.

그렇다면 그 이후의 상황은 간단했다.

‘점점 상황은 격화되어 갈 것이다.’

이것은 자극과도 비슷했다.

처음에는 작은 자극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던 사람이, 시간이 지날수록 과격한 자극에도 적응하게 되는…….

설상가상으로 이 상황은 처음부터 큰 자극을 건넨 격이었다.

‘놈의 입장에서는 점점 거리낌이 없어지고 더 강한 첩보를 원하게 될 테지.’

1황자는 아른거리는 희망에 따라 움직인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이용하여 균열을 만들면 될 뿐.

당연히 한 번 생겨난 균열은 차차 그 몸집을 불려 나가며 심화된 갈등으로 빚어지리라.

말 그대로 바라던 상황이었다.

“하면 1황자에게 새로운 첩보를 건네주실 겁니까?”

“그래, 계속 작은 요구를 해 가면서 서서히 파고들어라.”

하지만 좋은 정보를 지금 넘겨줄 필요는 없다.

나는 느긋하게 녀석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이미 놈은 내 수중에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새로운 정보를 주지 않아도 예속이 유지될 거라면, 구태여 한정된 정보를 앞서 소모할 이유는 없다.

더 좋은 시기에, 더 좋은 방향으로 피어나기를 유도하면 된다.

그렇기 위해서는 잠시 뜸을 들일 필요가 있었다.

“우리는 그전까지 필요한 것을 이루어 나가면 될 뿐이지.”

내 시선이 책상 위에 놓여 있던 한 장의 서류에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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