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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131화 (131/223)

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131화

압박 (1)

“전하, 북부에서는 평안하셨습니까?”

발테르 후작이 집무실에 방문했다. 얼마 전 내게로 도착한 서류 때문이었는데, 역시나 들어서자마자 틀에 박힌 듯한 진부한 인사를 건넸다.

문제는 이것이 처음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나는 턱을 괸 채로 시큰둥하게 답했다.

“만나는 이들마다 평안 따위를 묻더군. 그 인사도 유행인가?”

“허허, 그만큼이나 전하의 안위를 걱정하였다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시답잖은 소리군.”

그렇게 일축하며 입술을 비뚜름히 올렸다.

내 안부를 묻는 이들은 어디에나 있었다. 비록 그것이 회귀 전이었더라도.

하지만 그런 놈들이라고 다를 바는 없었다.

결정적일 때는 나를 배신했으며, 가슴팍이 꿰뚫린 내 모습을 보며 조소를 흘렸다.

그러니 그 안부 인사가 단지 가식에 불과하리라는 사실쯤은, 누구보다 잘 알았다.

“정녕 놈들이 나를 걱정했더라면 북부의 정벌에 한 손을 거들었을 터다. 그것조차 어렵다면 하다못해 물자라도 지원했을 테지.”

“허어…….”

“상황이나 보고하도록.”

“……알겠습니다.”

발테르 후작은 내 단호한 생각에 당황하더니, 이내 정신을 차리고 운을 떼기 시작했다.

“이미 전하께도 서신이 도착했을 터나, 신성제국 측에서 마침내 직접적인 협정의 체결을 언급하였습니다.”

더 이상 차일피일 시간을 미루지 말라는 독촉.

즉, 협력 관계의 공표와 무역을 어서 진행하자는 말이었다.

“가만히 기다리고 있으려니 애가 타는 모양이지.”

“아무래도 그런 것 같습니다.”

이미 앞선 치료사제의 파견으로 그들의 의사까지 표명했음에도 별다른 진척이 없는 것을 참을 수 없는 모양이었다.

물론 그 내용을 듣던 나는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결국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우는소리 하는 꼴이지만 말이야.”

“……크흠.”

신성제국이라는 존재가 애걸복걸 하는 광경은 결코 흔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신성제국의 감추어진 비밀과 미스릴이라는 두 가지 목줄을 다른 누구도 아닌 이쪽, 에스테반이 쥐고 있었으므로.

녀석들로서도 그저 떼를 쓸 수밖에 없겠지. 이해는 가는 상황이다.

“뭐, 그렇다고는 해도 슬슬 협정을 맺을 시기가 다가오기는 했지.”

“아, 드디어 때가 온 것입니까?”

“마침 상황이 달아오르기 시작했거든.”

“음?”

나는 바로 이전에 있었던 계획들을 상기하며 웃었다.

저도 모르게 재미있다는 감정이 흘러나왔는지, 발테르 후작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이 보였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자세히 묻지는 않았다.

“흐음…… 우선 전하의 의중은 알겠습니다. 국왕 전하께서도 우려하셨던 사안이니만큼 신속하게 처리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음.”

“하면, 협의의 체결은 언제쯤으로 예상하고 계십니까?”

“협의의 체결이라.”

“늦어지면 그들의 불만이 생길 테고, 앞당기자니 당장 준비가 된 것이 없잖습니까?”

그들에게 무엇을 주고 무엇을 받아와야 할지. 국익을 따져 가며 철저히 검토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한데 협의에 관련된 전권을 가진 내가 아직까지 아무런 제스처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기에 당장 준비된 게 없다고 느끼기 충분했겠지.

물론 그건 발테르 후작의 생각일 뿐이다.

이미 모든 준비는 마쳐 있었으니.

“소식을 전한 신성제국의 사자는 어디에 있지?”

“당분간 성녀와 함께 이곳에 머물 예정이라고 합니다.”

“귀찮게 시간을 미룰 필요는 없을 터. 당장 오늘 안에 협의를 끝내도록 하겠다.”

“……예?!”

쿠당-!

후작이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는 바람에 작은 소란이 일었다.

그러나 그것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놀란 상태였다.

“저, 전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리도 갑작스러운 일정이라면 검토는 어찌하시려고…….”

“이미 대략적인 내용에 관한 검토는 끝났을 텐데?”

놈들에게 신성철을 주고, 우리는 치료사제를 비롯한 지원과 생필품들을 받아 온다.

“이미 무엇을 받아 올지는 정해 놨다. 그러니 불필요한 일 따위에 시간을 낭비할 생각은 없다.”

“전하……!”

미래를 알고 있는. 그리고 이 모든 일을 설계해 둔 내게는 이미 계획이 있었다.

구태여 번거롭게 행동하지 않아도 최선의 선택지는 정해져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협의의 조율은 국가의 중대사입니다. 하다못해 재무부와 함께 고려할 시간을 가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딴 것은 누가 정하는 거지?”

“그, 그건, 국왕 전하께서…….”

“아니.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나다.”

나는 발테르 후작을 바라보았다. 너무도 무표정해서, 언뜻 싸늘하게까지 보이는 표정이었다.

“전권은 내게 있지. 이 상황에서 재무부는 내 뜻대로 움직이는 도구일 뿐이다.”

“하지만…….”

“더 이상 이 문제에 왈가왈부하지 말도록.”

“…….”

그렇게 일축했다.

내게는 그 우려조차 낭비에 불과했으니.

결국 발테르 후작은 백기를 드는 수밖에 없었다.

“후우,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전하께서 원하시는 협의의 내용만이라도 말씀해 주십시오.”

“이야기가 빨라서 좋군.”

내 눈이 호선을 그리며 휘어졌다.

* * *

어느덧 후작이 떠나간 집무실의 풍경.

조지는 황당하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근데 그렇게 쉽게 결정해도 되는 겁니까?”

“안 될 건 뭐가 있지?”

“아니 뭐, 간단히 말해서 보통은 절차라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이미 아버님께서 전권을 맡기신 일이다. 절차 따위는 무의미할 뿐이다.”

나는 머리를 긁적이는 조지에게 답하며 시간을 확인했다.

슬슬 신성제국 측에 의사를 전달하러 간 사용인이 도착했을 터.

잠시 후면 양국의 이해관계가 오갈 본격적인 협의가 시작되리라.

스륵-

나는 작성이 끝난 서류를 정리하며 녀석에게 말했다.

“그 뒤로 ‘까마귀’에게서 온 연락은?”

“없습니다. 어련히 잘하고 있겠죠, 뭐.”

대강 넘어가는 것 같았지만 그 말이 맞았다.

연락이 온다는 말은 문제가 생겼다는 뜻이고, 애초에 문제가 생길 리도 없었으니.

하지만 용건은 따로 있었다.

“까마귀에게 1황자로 하여금 4황자의 움직임을 주시하게 하라고 전하도록.”

“신성제국과의 협정 때문입니까?”

“양국의 협정이 공표되면 놈이 가장 먼저 움직임을 보일 터다.”

가뜩이나 혼란스러운 연방제국 황실의 상황.

놈은 지금 그 어느 때보다 거슬리는 감각을 느끼고 있을 거다.

그런 와중에 외부에서 일이 터진다면 반응하지 않을 수 없겠지.

‘단순한 추측과 공표는 그 궤를 달리하니까.’

나는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떠올리며 흥미롭게 웃었다.

그것을 본 조지 역시 마찬가지로 따라 웃었다.

“내부와 외부가 동시에 극성이니 압박감이 많이 들 겁니다.”

“그래.”

하물며 한참 공세에 들어간 1황자가 이 일을 놓칠 리도 없을 터.

정말로 알맞은 시기에, 폭탄과도 같은 사건이 터져 버린 것이다.

욕심으로 가득한 이리들이 서로를 향해 이빨을 겨누는 꼴은 나름 지켜볼 만한 가치가 있는 유희일 것이다.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는군.’

그 순간이었다.

똑똑-

집무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고, 조지는 어깨를 으쓱이며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소식을 전하러 갔던 사용인이 온 모양인데요?”

“아니. 남작이다.”

“남작님이요?”

조지가 의아한 듯 문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문으로 들어온 것은, 정말로 비도르 남작이었다.

“진짜네?”

“전하, 말씀하신 것을 가지고 왔습니다.”

“이리 가지고 오도록.”

남작은 어깨를 으쓱이고 있는 조지를 지나서 다가왔다.

그러고는 들고 있던 것들을 책상 위로 내려놓았다.

우르르- 소리를 내며 책상 위로 쏟아진 그것을, 조지가 고개를 내빼며 쳐다보았다.

“……그건 뭡니까?”

“닥쳐올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수단이다.”

“뭐요?”

“정확히는 앞으로도 에스테반에 도움이 될 녀석이기도 하지.”

“…….”

뜬구름 잡는 그 말에 조지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하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로 그것을 집어 들며, 만족하듯 턱을 쓰다듬었다.

“찾기 어려운 물건이었을 텐데 잘도 가져왔군.”

그렇다면 이제 준비는 끝난 셈이었다.

* * *

두 세력이 바라보는 구도로 배치되어 있는 회의실의 책상.

양국의 비밀스러운 대화가 오갈 이곳에, 언젠가의 ‘그때’와 같은 이들이 앉아 있었다.

“다시금 인사드리옵니다. 로에나의 교황 성하를 대신하여 이 자리에 온 가르덴 대사제입니다.”

“아, 안녕하세요…….”

가르덴 대사제.

……그리고 성녀 유리엘.

정확히 그때 마주 보던 그 구도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다만, 내게 이번 일에 관한 전권을 맡겨 주신 아버님께서는 참석하지 않으셨다.

“에스테반의 국왕 전하께서도 역시 나를 대리자로 내세우셨다. 그러나 이 자리는 명백히 두 국가의 뜻을 내세운 대리자들이 함께하는 자리인 바, 발언에 주의를 기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명심하겠습니다.”

나는 대사제를 바라보며 말했다.

물론 그렇다고는 해도 이 자리는 어디까지나 ‘확인’에 불과한 자리다.

이미 두 국가 사이의 관계는 동맹국이나 다름없었고, 앞선 치료사제의 파견으로 이를 굳건히 하였으니…… 말 그대로 앞으로의 세부적인 것만을 조정하는 단계라는 뜻이었다.

“먼저, 성국은 두 국가의 무역이 조금이라도 빠르게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음.”

“하여, 미리 내부적인 회의를 거쳐 양국이 만족할 수 있는 방안들을 마련해 놓았습니다.”

마른 입술을 적시던 가르덴 대사제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는 품속에서 여러 장으로 된 서류들을 꺼내더니, 망설임 없이 내게로 건넸다.

“당초 에스테반이 요구했던 사항은 크게 세 가지였습니다.”

첫째, 치료사제의 파견.

둘째, 연방제국에 의존하던 생필품의 무역.

마지막으로 셋째…….

‘연방제국으로 이어지는 에스테반 동부 전선의 보강 지원.’

거기에서 첫 번째 요구사항은 이루어진 지 오래였다.

두 번째 역시 무역을 전면 허가하겠다는 이야기가 오갔으니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세 번째는?

연방제국과의 전쟁에 대비하는 지원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질 것인가?

‘기대되는군.’

나는 시선을 아래로 내리는 것만으로 서류를 확인했다.

거기에는 당연히, 예의 요구사항에 대한 신성제국의 답변이 담겨 있었다.

“호오, 과연…….”

그리고, 그것을 읽어 나가는 내 눈이 드물게 놀라움으로 뜨여졌다.

“에스테반의 동부 전선으로 성물을 지원하겠다?”

“그렇습니다. 그것이 성국의 뜻입니다.”

가르덴 대사제는 굳은 표정으로 확답했다.

성물.

정제된 미스릴에 고도의 ‘신성력’을 채워 넣어 만드는 물건으로써, 신의 은총을 상징하는 신성제국의 국보들을 뜻하는 단어였다.

성물은 그 자체로도 하나의 신앙을 나타내기도 했으나, 여기서 그것을 지원한다는 말은 의미를 달리했다.

그 안에 담긴 고도의 신성력을, 온전히 지원한다는 말과도 같았으니까.

“성물의 힘으로 말미암아 에스테반의 동부 전선은 적들의 침범을 불허할 것입니다. 치료사제들의 힘은 더욱 막강해질 것이고, 흩뿌려진 축복은 병사들로 하여금 천상의 용기를 불러일으킬 것입니다.”

“확실히 나쁘지 않은 이야기군.”

성물, 그 존재 하나만으로도 대사제의 말대로 될 가능성이 컸다.

나 역시도 놀란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그러나 그것만으로 나를 만족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그것은 오산이었다.

“앞선 조건에 내용을 추가하지.”

순간, 대사제의 눈썹이 당혹감으로 크게 요동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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