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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133화 (133/223)

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133화

압박 (3)

“……!”

흠칫!

고작 문이 잠기는 소리. 그것은 일상생활 속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소음 중 하나였다.

그러나 대전에 도열한 귀족들은 알 수 없는 섬뜩함을 느꼈다.

바로 이전에 숨 막힐 듯한 침묵이 있던 탓인지.

……그게 아니면 웃고 있는 내 모습에서 이상함을 느낀 탓인지.

“왜들 그리 놀라는 것이지?”

나는 그렇게 어깨를 으쓱이며 농담조로 말했다. 그러면서 천천히, 대전의 길을 걸어갔다.

뚜벅- 뚜벅-

“…….”

발걸음 소리가 울릴 때마다 분위기는 점차 고조되었고 이윽고 왕좌의 아래에 다다랐을 때는 모든 이들의 시선이 집중된 채였다.

그것은 머나먼 위에서 나를 내려 보시는 아버님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버님께서는 마찬가지로 마주한 시선을 굳게 빛내고 계셨다.

회의를 이끌라는 무언의 허가였다.

“국왕 전하, 발언을 허가해 주시겠습니까?”

그 순간 정적을 뚫고 한 젊은 귀족이 말했다.

허나 기대와는 달리 그에 대한 대답은 내게서 나왔다.

“말하도록.”

“……감사합니다.”

그 너무도 자연스러운 허락에 잠시 당황하던 귀족은 잠시 헛기침을 하곤 말을 이어 갔다.

“이번 국무회의가 1왕자 전하의 제안으로 개회되었다는 것은 알겠습니다. 한데 어찌하여 신성제국의 대사제와 성녀께서도 이곳에 계시는 것입니까?”

“좋은 질문이군.”

……켈리아 백작. 중도파라고 불리는 중립 세력의 대표였던가?

그의 질문은 이 국무회의의 주제를 꿰뚫는 발언이었다.

이에 망설임 없이 답했다.

“간단한 일이다. 이번 국무회의에서 신성제국의 메시지를 전달할 이들이 필요했기 때문이지.”

“신성제국의 메시지라면…….”

“그 전에.”

나는 짧게 말을 끊으며 입꼬리를 비뚜름히 올렸다.

“자세한 이야기는 본인들에게 직접 듣는 것이 좋을 것 같군.”

“…….”

그 시선은 어느덧 대사제에게 향해 있었다.

시선을 받은 대사제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앞으로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꿀꺽.

귀족들은 그 모습을 보며 침을 삼켰다.

그 입에서 나올 말과 영향력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드디어 양국 간의 관계 개선을 공식적으로 발표하려는 것인가?’

작년 가을에 있었던 신성제국 측 사절의 방문.

그 이후 아무런 움직임이 없더니, 대뜸 치료사제를 파견하기에 이르렀다.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이다. 그 때문에 에스테반이 떠들썩했었으니.

그렇다면 저들이 발표할 내용은 정해져 있었다.

마침내 별다른 접점이 없던 양국의 외교가 정상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그 어마어마한 소식이!

그러나,

“성국의 성하께서는 에스테반의 과감한 결단에 찬사를 보내신바, 두 국가 사이의 평화와 동맹 협정이 오랫동안 지속되기를 원하셨습니다.”

“……!”

“뭐, 뭐라……!”

“펴, 평화와 동맹의 협정이라고!”

대사제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그들의 생각과는 전혀 달랐다.

약소국인 에스테반과 대 신성제국의 동맹.

단지 관계를 개선하고 협력하는 데에서 그친 것이 아닌, 두 국가가 평화의 협정을 맺은 것이다.

심지어.

“애초에 에스테반은 로에나를 국교로 지정한 것도 아니거늘……!”

자신의 종교를 믿지 않은 이상, 절대 동맹국을 늘리지 않기로 유명한 신성제국에서 먼저 움직였다고?

귀족들은 어마어마한 충격 속에서 입을 다물지 못했고, 나는 그 모습들을 바라보며 흡족하게 웃었다.

“그렇군.”

그것은 이 회의의 주제이자 대륙의 세력 구도가 움직이기 시작하는, 첫 번째 발자국이었다.

* * *

같은 시각.

일단의 무리가 어두운 조명 아래에서 와인을 마시고 있었다.

세 명의 귀족이었다.

“이런 차분함도 오랜만이군.”

“그러게나 말이오.”

한 귀족이 혼잣말과도 같은 말에 호응하며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와인잔을 흔드는 그 모습이 여유롭게까지 보였으나, 그들의 내막을 아는 사람이 있다면 그 광경을 보고도 믿지 못할 것이리라.

그들은…… 아수스를 도와 연방제국의 협력하던 에스테반의 세작들이었으니까.

“벌써 일 년 하고도 수개월이 지났던가? 시간이 참 빠르군.”

한 귀족이 와인을 음미하며 중얼거렸다.

처음 아수스가 죽었을 때만 하더라도 불안감에 떨고 있던 그들이었으나, 이제는 제법 안정을 되찾은 것처럼 보였다.

오히려 요즈음에는 이렇듯 여유를 느끼기도 했다.

“이 정도 시간이 지났으면 사실상 색출이 불가능한 것이나 다름없지.”

“멍청하게 행동하지만 않는다면 처음부터 걸릴 일도 없었을 것을.”

아수스와의 협력을 발각당한 이후 자살한 오노레오 자작. 그리고 행방불명된 연구소장 크롬웰.

뭐, 보나 마나 쥐도 새도 모르게 당했을 테지.

하지만 그들과는 다르게 이곳에 있는 귀족들은 무척이나 조심스럽게 움직여 왔다.

가까운 귀족들조차 아수스와 그들의 접점을 모르고 있을 정도로.

“암, 그러니 1왕자도 망아지처럼 경거망동하게 행동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아예 이야기조차 나오지 않는 것을 보면 꽁무니조차 찾지 못한 것이 분명하지.”

“흐흐흐.”

시간이 오래 지나기도 했거니, 인제 와서 그들이 세작이라는 사실을 밝혀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심지어 그들은 2왕자파에 활로를 찾기 위해 가담하여 숨어 있기까지 했다.

1왕자가 이상을 느낄 낌새조차 드러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오늘이 국무회의라고 했던가?”

“그렇소. 분명 신성제국에 관한 이야기를 언급하겠지.”

“큭, 무던히도 애쓰는군.”

와인잔을 비워 낸 뒤에 흘러나온 웃음은 명백한 조소였다.

그래 봐야 헛된 움직임일 뿐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무런 의미도 없어지게 될 몸부림.

마침내 2왕자파 쪽에서도 슬슬 준비가 끝나고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하지만 윌리엄. 그자의 계획이 반드시 성공하리라는 보장은 없소.”

“……블라도 자작.”

그때, 한 귀족이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아수스의 오른팔이자 그와 함께 비밀 저택을 관리했던 블라도 자작이었다.

“충분히 시간이 지났다 하더라도 방심은 금물이오. 혹시 모르니 상황을 확인해 두는 것이 좋지 않겠소?”

한껏 신중해진 그의 눈빛.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1왕자의 일거수일투족과 상황을 감시하자는 뜻이었다.

그러니 맞은편의 귀족은 손을 휙휙 내저으며 걱정하지 말라는 듯 말했다.

“이미 리벨 남작과 아이작 남작이 국무회의에 참석했소. 그들이 어떤 내용이 오갔는지 알아 올 것이오.”

“그들도 이곳에 오기로 했소?”

“국무회의가 끝나는 대로 오기로 했지.”

“그렇군.”

블라도 자작은 납득하듯 고개를 주억였다.

하지만 무언가 그 속에는 석연찮은 감정 같은 것이 남아 있었다.

‘……뭐지, 이 불안감은?’

무언가, 오늘따라 유독 깊어진 예민함은 불안감만을 남기고 있었다.

어쩌면 아수스가 죽은 뒤에 느껴지던 긴박함과도 비슷하다고 스스로 생각할 정도로.

“그러니 오늘은 걱정하지 말고 여유를 즐기는 것이 어떻겠소?”

“뭐, 이목이 집중되어 아무도 모르게 움직일 수 있는 상황은 흔치 않으니 말이오.”

“……알겠소.”

그렇게 블라도 자작은 이 상황을 억지로 수긍하려 애썼다.

다만 그 자신도 이해하지 못할 현상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 * *

“도, 동맹!”

“그것이 정녕 사실입니까!”

두 국가 사이에서 비밀리에 오가던 이야기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동맹 협정이라는 사실에 귀족들은 놀랐다.

……아니, 기절하기 직전일 정도로 경악했다.

“다른 어느 곳도 아니고 신성제국과의 동맹이라니?!”

그도 그럴 것이 상대는 신성제국이었다. 대륙이라는 넓은 땅에서 연방제국을 제외하고는 적수가 없는 고고한 패자(霸者).

대체 그들이 무슨 이유로 에스테반 따위와 동맹관계를 맺는단 말인가?

“시끄럽군.”

“……헙.”

그때, 낮게 흘러나온 내 목소리에 귀족들이 입을 다물었다.

너무도 싸늘한 목소리가 몸을 절로 굳게 만든 것이다.

나는 비로소 저들의 소란이 사라진 뒤에야 입을 열기 시작했다.

“신성제국의 교황께서 보내 주신 뜻은 잘 들었다. 나 역시도 양국의 평화가 오랫동안 지속되기를 바라지.”

“바라시는 대로 될 것입니다.”

“이후에 이쪽에서도 사절단을 보내는 것으로 하겠다.”

“예, 성국의 사제들도 감사해 마지않을 것입니다.”

“마, 맙소사…….”

정말로 두 국가 사이에 맺어진 동맹을 인정하는 듯한 대화.

귀족들은 그제야 이 믿지 못할 상황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아직까지도 꿈속에 있는 기분일 테지만 말이지.

나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로 시선을 돌렸다.

“본론부터 들어가지. 발테르 후작, 먼저 이후에 개시될 무역과 관련된 내용들을 읊도록.”

“예, 전하.”

내 손짓이 이어지자, 발테르 후작은 곧장 설명을 시작했다.

“먼저, 신성제국에서는 식량을 포함한 생필품을 아무런 제한 없이 수출하겠다 하였습니다. 자세한 목록은 추후에 자세히 공표될 것이오나, 수출에 의존하던 생필품 전반이 대상이라는 점과 지금보다 더욱 낮은 가격으로 거래될 거라는 사실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무역에 의존하던 생필품 전반을 더욱 낮은 가격에 제공한다니…….”

“제한이 없다는 말은…… 설마 세율 또한 없다는 말인가……!”

웅성웅성-

장내에 또다시 소란이 일었다.

말도 안 되는 특혜다.

애초에 그것들을 신성제국에서 수입해 온다는 말이 어떤 의미를 지녔는지 잘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그 외의 지원은?”

“신성제국에서는 두 개의 성물을 지원하고 동부의 국경지대를 보강하는 등, 동맹국에 대한 예우를 확고히 하겠다 결정하였습니다.”

“뭐, 뭣이……!”

동부의 국경지대를 강화한다? 다른 어느 곳도 아니고?

그것은 명백히 연방제국을 배척하겠다는 말이었다. 예의 무역부터 시작해서 그 지원 내용까지, 완전히 적으로 돌리겠다고 대놓고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뜻이다.

“대체 어떻게…….”

귀족들은 턱이 빠질 새랴 멍하니 중얼거렸다.

특히나 일부 귀족들의 표정은 더더욱 가관이었다. 아예 사색에 질린 듯한 모습을 하고 있었으니…….

나는 그 모습들을 즐겁게 감상한 뒤에 입을 열었다.

“이는 일차적인 협의에 지나지 않는 내용이다. 두 국가의 외교가 동맹관계로 접어들었으니 이후에도 추가적인 사안이 오갈 수 있을 것이다.”

“명심하겠습니다.”

“자,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그 순간, 귀족들 사이에서 누군가가 외쳤다.

2왕자파의 한 귀족이었다.

“뭐지?”

시선을 그쪽으로 던지자, 그는 경악을 감추며 말했다.

“믿을 수 없습니다! 이리도 급작스럽게 신성제국과 동맹을 맺고 무역을 시작한다니요?”

“무엇이 문제지?”

“이것이 미치는 외교적 파장이 가볍지 아니할 것입니다. 정녕 이 내용들은 국왕 전하와도 이야기가 된 것입니까?”

“그렇다.”

“그, 그게 무슨……!”

모두의 이목이 아버님께로 집중되었다.

어째서 그런 것을 허가했냐는 듯 당혹스러운 시선들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아버님께서는 굳은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연방제국은 앞선 국왕 암살과 내란 미수를 부정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자들이 벌인 일이라는 진실은 숨길 수 없네.”

“그건……!”

“그들은 웃는 낯 아래에서 발톱을 숨기고 있다. 실제로 이미 그들은 원자재 수입을 제한하는 등 온갖 핑계를 대며 마수를 뻗어 오고 있지.”

쿵!

일순 아버님의 검집이 바닥을 강하게 두드렸다.

그 날 선 기백에 귀족들이 움찔하며 몸을 움츠렸다.

“언제까지 그들에게 의존했다가는 같은 일이 벌어질 터. 그러니 이 선택은 에스테반에게 반드시 필요한 결정이 될 것이다.”

“전하…….”

나라를 전복하려 한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차고 넘치는 이유였다.

귀족들은 숙연하게 입을 다물었고, 소란스러웠던 장내는 어느덧 침묵이 감돌았다.

그 속에서.

짝- 짝- 짝-

내 박수 소리만이 선명하게 울릴 뿐이다.

“무, 무슨…….”

귀족들은 기겁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박수는 이어졌다.

“실로 과감한 결단입니다. 아마도 후대에 길이 남을 선택이겠지요.”

……후대에 남는다.

무척이나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그리고 나는 양팔을 활짝 펼치며 미소를 지었다. 무척이나 섬뜩하게 보일 정도로 차가운 미소였다.

“국왕 전하, 그렇다면 우리는 동맹국이 된 신성제국에 각오를 비추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각오.”

“감히 에스테반의 숨어 들은 연방제국의 쥐새끼들을 처리하는 것으로 말이지요.”

“그렇겠지.”

“……!”

“……!”

그 순간, 사색에 질려 있던 두 귀족의 몸이 움찔거렸다.

하지만 그들이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내 시선이 그쪽에 다다른 뒤였다.

“아마도 모르고 있으리라 생각했겠지.”

“…….”

“나와 에스테반을 우습게 여기고, 감히 언제든지 제 손으로 주무를 수 있으리라 생각했겠지.”

“…….”

“하지만 오해는 하지 말아 주었으면 좋겠군.”

스릉-

“……!”

청록색의 칼날이 검집에 스치는 소리에 팔뚝에 우수수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그것이 다가올 때까지 그 영겁의 시간 같은 찰나 속에서 두 귀족은 떠올렸다.

그 칼날이 이윽고 자신들의 몸을 꿰뚫고 지나리라는 사실을.

“내가 네놈들을 진즉에 처리하지 않았던 것은.”

서걱-

“단지 이때를 기다렸을 뿐이라는 사실을.”

촤아아악-!

리벨 남작. 그리고 아이작 남작.

두 귀족의 목이 하늘을 날았고, 그 대미를 장식하듯 핏물이 바닥을 적셨다.

“……헙.”

이를 지켜보던 귀족들은 충격에 말을 잇지 못했다.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그가 아수스 백작을 어떻게 했는지는.

하지만 직접 눈앞에서 보는 것과는 다를 수밖에 없었다.

1왕자가. 그것도 국무회의가 진행되는 도중에 살인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으므로.

“마, 맙소사…….”

누군가가 그렇게 중얼거리기 전까지는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착각 속에 있었다.

그것은 지금까지 보았던 어떤 광경보다도 충격적이고, 잔혹했다.

……그리고.

“어떻습니까?”

어느덧 침묵은 칼날을 목에 들이민 것처럼 살벌하게 변모했다.

숨 쉬는 소리도. 침을 넘기는 소리도 선명하게 들릴 정도로.

단지 나와 아버님의 차디찬 시선은, 한 곳으로 향해 있을 뿐이었다.

“이 연극은 정녕 신성제국의 마음에 들었습니까?”

그것은 신성제국에 보내는 메시지이자, 그에게 보내는 내 선물이기도 했다.

라이덴 델 카롯트.

연방제국의 4황자에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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