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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134화 (134/223)

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134화

학살 (1)

“…….”

스윽-

금속이 부드러운 천에 스치는 소음은 내가 좋아하는 것이기도 했다.

무구를 손질할 수 있다는 것은 결국 전투에서 살아남았다는 뜻이었고, 그다음 전투가 기다리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으니.

반복되는 전투. 그리고 전투. 또다시 전투…….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마침내 참혹한 살상의 현장뿐.

어쩌면 그런 점을 미루어 본다면.

나는 아수스가 말했던 대로 전쟁에 미친 폭군이었을지도 몰랐다.

귀족들의 흔들리는 눈동자에 비친 내 모습은…… 정말로 폭군이라고 부르기에 충분했으니까.

“…….”

대전에 도열한 귀족들은 조용히 몸을 떨었다.

또한 고개를 깊이 조아리고 맞닿은 시선을 피해 내려고 애썼다.

그러나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함께 친목을 다지던 귀족이.

아니, 바로 몇 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옆에서 살아 숨 쉬던 인간이 죽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태연하게 사람을 죽인 왕자가 피 묻은 검을 소매로 닦아 내고 있는 장면을 본 적은?

그것은 원초적인 공포였다.

언제든지 그 칼날이 자신을 향할 수 있다는 두려움. 그리고 아무런 감흥도 느끼지 않는 1왕자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오싹함.

한 번은 우연일지 모르나 그것이 두 번 반복되면 우연이 아니다.

저 핏물을 뒤집어쓰고도 태연한 모습을 보면 확신할 수 있었다.

아수스를 무참히 베어 냈던 1왕자의 행동은 결코 우발적인 행동이 아니었다.

“치워라.”

“그, 그게…… 아, 알겠습니다.”

오싹-

차갑게 내려앉은 명령.

하얗게 질린 표정의 기사들이 시체를 치우기 시작했다.

나는 얼추 닦인 엘베른을 검집으로 집어넣으며 몸을 돌렸다.

“국왕 전하, 소인은 이만 물러가 보겠습니다.”

“……그러도록 하라.”

뚜벅- 뚜벅-

대전의 길을 따라 걸어 나가는 족적이 선명하게 남았다.

그러나 귀족들은 고개를 숙이고 있느라 그것을 보지 못했다.

“배신자에게는 변명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끝은 죽음뿐이다.”

“…….”

“이것이 그대들에게도 경고가 되었기를 바라지.”

그것이 내가 내리는 최후의 통첩이었다.

단지 유약할 뿐이라 생각했던 1왕자의 진정한 본모습은.

망설임 없이 배신자들을 처단하는 사신의 모습일 것이라고.

* * *

“……어쨌든 이대로만 가면 1왕자 그놈이 실각하게 될 것은 정해진 미래라는 말이겠지.”

“크흐흐.”

툭-

데구루루-

테이블 위로 놓여 있던 와인병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그러나 그 자리에 있던 이들은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인사불성이 된 상태였다.

이어진 여유가 길어졌던 탓이다.

“……커흠! 그런데 블라도 자작은 언질도 없이 어디로 간 것이오?”

“음? 블라도 자작이 어디로 갔냐니…….”

그 속에서 누군가가 다른 한 명을 찾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엔가 사라진 블라도 자작.

마지막으로 그가 있던 자리는 어느새 차게 식어 있는 채였다.

그제야 나머지 한 명도 그의 부재를 깨달았다.

“화장실에 간 것이 아니겠소?”

“그렇다기에는 이미 삼십 분도 전에 밖으로 나가지 않았소?”

“음? 벌써 그렇게 되었던가…….”

맞은편의 귀족은 그렇게 말하며 턱을 쓰다듬었다.

하지만 기억을 되짚어 봐도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애초에 그가 자리를 비운 사실도 모르고 있던 상태였으니까.

“굳이 이 좋은 때에 흥을 깨다니…….”

“크흠!”

결국 처음 이야기를 꺼낸 귀족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문밖을 쳐다보며 소리쳤다.

“이봐! 거기 있느냐!”

“예, 고르바 자작님.”

철컥-

“부르셨습니까?”

호출을 듣고 나타난 것은 그를 수행하기 위해 남아 있던 기사였다. 고르바 자작이라 불린 귀족은 그 모습을 보며 물었다.

“블라도는 어디로 갔지?”

“블라도 자작님 말씀이십니까?”

“그래.”

“그분께서는 아까 자택 밖으로 나가셨습니다.”

……자택 밖?

먼저 돌아간다는 이야기도 없었거늘, 이 상황에 밖으로 나갈 일이 무어가 있단 말인가?

기사의 말을 들은 두 귀족은 미간을 좁혔다.

“어디로 간다는 전언은 없었느냐?”

“예, 그렇습니다.”

“쯧, 그런 것은 진즉에 물어봤어야 하는 게 아니냐?”

“……죄송합니다. 지금 바로 아랫것들을 시켜 알아보겠습니다.”

“쓸모없는 놈. 필요 없으니 썩 꺼져라.”

“알겠습니다.”

고르바 자작은 귀찮다는 듯 손을 휘적거렸다.

아무 말도 없이 저택 밖으로 나갔다면, 무언가 급한 일이라도 있었다는 뜻이리라.

어차피 돌아오지도 않을 테니 알아봐야 의미는 없었다.

“블라도 자작은 놔두고 우리끼리 즐기는 것으로 하지.”

“크흐흐, 아쉽게 되었소. 오늘처럼 여유가 넘치는 날은 찾아보기 어려울 텐데.”

잠시 끊겼던 흥을 돋우기라도 하듯 두 귀족은 다시금 와인잔을 들어 올려 맞부딪쳤다.

그 말대로 무척이나 여유로운 휴식을 보내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철컥-!

“그, 급보입니다!”

나갔던 기사가 다급하게 들어오며 외쳤다.

두 귀족의 짜증 가득한 시선이 기사에게로 향했으나, 애석하게도 기사는 그것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국무회의에 참석하셨던 리벨 남작님과 아이작 남작님께서 참수당하셨다 합니다!”

“……뭐라?!”

아무도 모르게 다가온 사신의 낫이.

이미 목덜미 아래로 드리웠기 때문이었다.

* * *

“이거, 거하게 한 번 저지르셨네요. 어디 공포 정치라도 하려는 겁니까?”

발 빠른 말이 천 리를 간다고 했던가?

고작 한 시간이 지나지 않았건만, 국무회의 도중에 벌어진 즉결 처형에 관한 소문은 벌써 왕궁 전체에 퍼진 뒤였다.

덕분에 집무실 밖에는 벌레 기어가는 소리조차 들려오지 않았다. 일 년도 전에 있었던 ‘그때’의 공포가 되살아 난 것이다.

‘오히려 그때보다 심각하다고 봐야겠지.’

이번에는 무려 귀족들이 보고 있는 국무회의 도중에 일어난 참사였으니까.

그러나 타인이 나를 어떻게 여기는지는 내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따위 평판 따위가 에스테반의 미래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었으므로.

나는 조지의 이죽거림을 흘려넘기며 물었다.

“파악하라고 했던 나머지 놈들의 행적은?”

“마지막으로 확인된 곳은 인근 영지의 자택인데, 함께 모여서 술을 마시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군.”

나머지 잔당들 역시 놓아 줄 생각이 없었다.

에스테반을 위해서라도. 그리고 내 사사로운 복수를 위해서라도.

“이미 아르곤 기사단이 움직였으니 곧 소식이 도착할 겁니다.”

“그들에게 소식이 도착하면 즉각 알리도록.”

“그러죠, 뭐.”

나는 그렇게 지시한 뒤,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서류들을 확인해 나가기 시작했다.

귀족들을 베어 냈던 그 일이 일어난 직후라고는.

……그리고 두려움에 질려 있는 왕실 내부의 분위기와는 상상할 수 없는 초연함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똑똑-

“접니다.”

“들어와라.”

마침내 제3 기사단에서 보고가 들어왔다.

“일단 국무회의에서 있었던 일을 전해 듣고 도망가는 두 놈을 잡았다고 합니다.”

“두 놈?”

“일단 보고 받은 내용으로는 그렇습니다.”

……셋 모두를 잡은 것이 아니라는 건가?

나는 서류에서 시선을 떼고 녀석을 바라보았다.

“파악하기로는 나머지 세 놈의 행적이 동일했을 텐데 어째서 하나를 놓쳤지?”

“그걸 제가 알겠습니까?”

녀석 역시 알쏭달쏭한 듯 머리를 긁적이더니, 안경을 치켜올리며 말했다.

“다만 아르곤 기사단이 발견했을 때는 이미 한 놈이 도망간 뒤였다고 합니다.”

“소식이 전해지기 전에 눈치를 챘다는 말이군.”

“무언가 안 좋은 기색을 느끼고 미리 몸을 내뺀 모양입니다.”

눈치도 빠르지.

나는 어깨를 여유롭게 으쓱이며 말했다.

“그렇다면 도망친 놈은 블라도 자작이겠군.”

“어…… 음? 그건 어떻게 알았습니까?”

“뻔한 일이다.”

그토록 날카로운 감과 머리라면, 아수스를 직접적으로 돕던 그놈이 아니고서야 말이 되지 않았으니까.

오히려 나머지 둘은 잔챙이라고 부르기도 아까울 수준이었다.

뭐, 덕분에 조금은 더 귀찮아지겠군.

‘……아니, 재미있어졌다고 해야 할까?’

끼익-!

의자의 경첩이 삐걱이는 소리와 함께 나는 입꼬리를 올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놈들은 지금 어디에 있지?”

“왕궁의 지하감옥으로 이송되었습니다. 일단은 국가 전복을 유도한 세력이니까요.”

“그렇군.”

왕궁의 지하감옥이라.

그곳은 결코 빠져나올 수 없는 지옥과도 같은 장소였다.

놈들의 최후로는 퍽 잘 어울리는 묫자리겠지.

“미리 확보해 두었던 아수스와의 협력 증거들을 아르곤 기사단에 가지고 가도록. 나는 놈들을 보러 가겠다.”

“……예, 뭐. 알겠습니다.”

조지는 그렇게 귀찮은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이며 문으로 걸어갔다.

그러다가 문득 뒤를 돌아보며 질문을 던졌다.

“그다음에는 아르곤 기사단에게 블라도 자작을 쫓으라고 명령할까요?”

“그럴 필요 없다.”

“암요.”

단호한 음성.

조지는 어깨를 으쓱이는 것으로 답을 대신하고, 먼저 집무실을 나섰다.

나 역시도 여유롭게 움직이며 그 뒤를 따를 뿐이다.

지하감옥으로 가는 길은 말 그대로 거칠 것이 없었다.

“어, 어서 오십시오 1왕자 전하.”

이미 아버님께 나를 안내하라는 명령을 받은 것인지 아니면 그저 나를 두려워한 것인지.

입구를 지키는 경비들이 재빠르게 자리를 비켜 주었기 때문이다.

제아무리 왕족이라 해도 함부로 출입을 허가하지 않는 이곳의 보안을 생각하면 꽤 재미있는 상황이라 할 수 있었다.

저벅- 저벅-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두운 공간.

그렇게 감옥의 최하층까지 도착하는 동안, 나는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그리운 얼굴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다, 당신은…….”

“1왕자!”

“오랜만이군.”

경악과도 비슷한 비명들이 감옥 내부에서 터져 나왔다.

어둑한 조명이더라도 그것에 비친 찬란한 은발과 핏빛의 눈은 구분할 수 있던 모양이다.

어디 보자…….

“고르바 백작과. 아 실례, 고르바 자작과 그런트 자작.”

……그래.

내게는 무척이나 그리운 얼굴들이었다.

잠시나마 그 찰나의 순간마저 잊지 않았을 정도로.

나는 손에 든 랜턴을 바닥으로 내려놓으며 작은 미소를 머금었다.

“두려움에 수척해진 얼굴이 옛 기억을 떠오르게 만드는군. 보다 늙어 보이니 십구 년의 세월이 부쩍 가까워진 기분이야.”

“저, 전하, 이게 대체 무슨 일입니까? 저희가 아수스와 협력하던 세작이라니…….”

“저희는 아무것도 모르는 일입니다! 이곳에 잡혀 온 것은 너무도 억울합니다!”

철컹!

녀석들은 대뜸 쇠창살을 붙들고 흐느끼듯 애원하기 시작했다.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 발뺌부터 하고 나설 심산인가 보다.

……시시하기는.

뭐, 그 모습은 조금 안타까웠다.

물론 연민 따위의 감정은 아니었다.

“그런데 조금 더 진부하지 않은 핑곗거리는 없는 건가? 기대와는 다르게 벌써부터 지루해지려고 하는군.”

“피, 핑계가 아닙니다! 저희는 정녕…….”

“아무것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습니다! 애초에 저희는 아수스 백작과 일말의 연도 없었습니다!”

“그래?”

나는 비집고 나오려는 조소를 참아 내며 팔짱을 꼈다.

그 모습이 짐짓 고민을 하는 것처럼 보였기에 놈들이 반색하기도 했으나…….

‘뭐, 당연히 겉으로 보이는 연은 없었겠지.’

애석하게도 그럴 일은 없었다.

내게는 회귀 전의 지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수스가 죽은 시점에서 녀석에게 가담했던 귀족은 모두 일곱.”

“그, 그게 무슨…….”

“앞서 죽은 오노레오 자작과 크롬웰. 그리고 국무회의에 참석했던 두 귀족과 자네들. 마지막이 블라도 자작이 되겠군.”

“……!”

고저 없이 내뱉어지는 문장들.

어둠 속에서 언뜻 비추어지는 그들의 눈은 경악에 휩싸였다.

‘대, 대체 어떻게……!’

모른다고 잡아뗀다? 그렇다기에는 너무도 정확한 언급이었다.

하물며 이곳에 잡혀 오지 않은 블라도 자작까지 언급했다는 말은…….

‘정말로 드러나지 않은 관계까지 모조리 알고 있다는 거다!’

심장이 내려앉는 듯한 충격.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할 말을 잃은 채로 몸을 떨고 있는 그들을 내려다보며 차갑게 말을 이어 갔다.

“차라리 발악이라도 해 주지 않겠나? 그래서야 잔뜩 기대하고 온 내가 섭섭하지 않겠나?”

“으어어…….”

“가령 은닉해 왔던 재산들을 돌려 줄 테니 목숨만이라도 살려 달라는 것도 나쁘진 않겠군.”

“제, 제가! 블라도 자작의 위치를 알고 있습니다!”

그때 어둠 사이로도 느껴질 정도로 새하얗게 질려 있던 고르바 자작이 소리쳤다.

단지 조금의 여지만 주었을 뿐인데도 곧장 동료를 팔겠다고 외친 것이다.

그러나 나는 싱긋 웃으며 그 희망을 짓밟았다.

“나도 알아.”

“……예?”

“아수스가 숨겨 놓은 비밀 저택으로 도망쳤겠지.”

“……!”

다만 놈들과 관련된 것.

그 어떤 사소한 사항이라도 모조리 내 기억 속에 남아 있었다.

그럴 수밖에.

최후의 배신은 그만큼이나 나를 난도질했고, 성격마저 송두리째 바꿔 버릴 정도로 간악했으니까.

그러니 회귀 전에 짧게 스쳐 지나갔던 정보 또한 잊을 리가 없었다.

“그게 끝인가?”

“끄, 끝이라니…….”

“최후에 할 수 있는 발악마저 그것이 끝이냐고 물었다.”

그 순간, 옅은 바람에 휘감긴 등불이 순간적으로 몸집을 키우며 주변을 밝혔다.

그제야 그들에게도 내 얼굴이 보이기 시작했다.

싸늘한 조소를 지으며 그들을 내려다보는 내 얼굴이.

“이, 이놈!”

“처음부터 우리를 살려 줄 생각이 없었구나!”

녀석들은 목청이 터져라 소리쳤다.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당연한 이야기를 하는군.”

“머, 멍청한 놈! 그래도 되겠느냐! 우리를 죽이면 평생 블라도를 찾아낼 수 없을 텐데!”

“비밀 저택의 정보를 어디선가 주워 들었나 보군! 하더라도 그곳을 찾아가는 일은 불가능할 것이다!”

“호오, 이제는 그렇게 나오려는 건가.”

타협이 불가능하면 협박으로 나서겠다는 뜻이다.

확실히, 살의가 있는 상대에게 선처를 구걸하는 것보다야 효과적인 방법이라 하겠다.

하지만 그것이 내게도 통하리라 생각했다면 오산이었다.

“평소라면 더욱 즐겁게 놀아 줬을 테지만 아쉽게도 시간이 없군.”

“……뭐?”

“신성제국의 일로 바빠질 것 같아서 말이야.”

끼이익-

“……!”

“뭐, 뭘 하려는…….”

소름 끼치는 소음과 함께 철장의 문이 열리자, 놈들은 구속구에 묶인 다리를 질질 끌며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반대로 허리춤으로 손을 가져가는 내 입술은 비뚤게 올라가고 있었다.

“도망치는 것을 보면 뭘 하려는지는 이미 알고 있는 것 같군.”

“후, 후회할…….”

“애석하게도 후회 따위는 이미 충분히 겪었지.”

그러니 이곳에서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는 않았다.

고작 이까짓 놈들을 베어 내는 것 따위에 말이다.

“아직 네놈들을 제외하더라도 쳐 죽여야 할 것들이 한가득 남아 있거든.”

스릉-

뽑아 나온 검신의 그림자가 흔들리는 등불에 비추어져 춤추었다.

아니, 정확히는 그렇게 보였을 뿐이다.

이미 녀석들의 목을 베어 낸 칼날은 검집 속으로 모습을 감추고 있었으니까.

“……뭐, 비밀 저택이라.”

나는 그렇게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감옥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그 뒤로, 뜨거운 핏물이 바닥을 잔뜩 적시고 있었다.

다만 개의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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