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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135화 (135/223)

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135화

학살 (2)

“……추적을 중지하라는 말씀이십니까?”

명령을 전달받은 상급 기사는 숙였던 고개를 흠칫 들어 올렸다.

문득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인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단장님, 지금 제가 제대로 들은 것이 맞다면 블라도 자작의 추적을…….”

“제대로 들은 것이 맞네.”

“…….”

하지만 지시를 전달한 기사단장 에드워드는 단호하게 그 의문을 일축했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는 목소리였기에 기사의 표정이 당혹감에 휩싸인 것은 당연했다.

“대, 대체 어째서입니까? 지금은 신성제국보다 세작들의 처리를 우선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지금 아르곤 기사단이 쫓고 있는 자는 아수스의 내란 모의에 협력했던 귀족이었다. 그것도 최측근이라고 판단되는 인물이다.

그런데 대뜸 그런 중대 범죄자의 추격을 멈추라니…….

그 순간, 마주한 기사단장 에드워드의 눈이 시퍼렇게 번뜩였다.

“상부의 지시다.”

“상부의 지시라면…… 1왕자께서 직접 명령을 내리신 것입니까?”

“자세한 것은 알려 줄 수 없다. 지금은 일단 추적에 나선 단원들을 물리고 본부로 귀환하도록.”

“아……! 옙, 알겠습니다.”

기사는 다급히 표정을 감추며 지시를 받아들였다.

석연치 않은 상황이었지만 일개 기사인 그가 어쩌겠는가?

다만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뒤 돌아 나오는 길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뿐이었다.

‘현재로서 기사단에 지시를 내릴 만한 사람이 1왕자 전하 외에 있었던가?’

……그런데 직접 그 손으로 배신자들을 처단함으로써.

다른 누구보다 협력자 축출에 앞장섰던 1왕자가.

어느 범죄자도 아니고 내란 모의에 연루된 블라도 자작의 추격을 중지시켰단 말인가?

‘설마 전투가 벌어질 것을 우려하신 건가?’

그게 아니라면 국왕 전하께서 직접 움직이신 것일지도.

‘……에이.’

기사는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휙휙 지워 가며 발걸음을 옮겼다.

결국 일개 기사인 자신이 고민해 봐야 나올 정답은 아니라고 생각했던 탓이다.

그 순간, 그런 기사의 모습을 주시하던 에드워드의 눈이 깊어졌다.

-놈이 아수스의 비밀 저택에 숨었을 테니 쫓을 필요는 없다.

-전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어차피 기사들의 추적술로는 발견할 수 없다는 뜻이다.

……비밀 저택,

그 존재도 생소했으나 찾을 수 없을 거라는 말은 더더욱 그랬다.

대체 그것이 뭐길래?

고작 저택이라는 것이 뭐기에 아르곤 기사단의 눈을 피해 갈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것일까?

다만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 1왕자는 추가적인 지시를 내릴 뿐이었다.

-놈을 처리하는 것은 내가 직접 하지. 아르곤 기사단은 관련자 색출에 집중하도록.

-명을 받들겠습니다.

-형은 예정대로 집행하겠다. 한 놈도 놓치지 말도록.

그렇게 망설임 없이 떠나가는 1왕자의 뒷모습은…… 아직도 눈에 그린 것처럼 생생했다.

물론 1왕자의 말대로 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은 처음부터 하지 않았다.

“예정대로…… 인가.”

에드워드는 천천히 시선을 돌려 벽면에 걸린 달력을 바라보았다.

어느덧 부쩍 다가온 이 주일 뒤의 밤.

“……수도에 피 바람이 불겠군.”

그것은 연루된 귀족 가의 일원들이 처형당하기로 정해진 시각이었다.

당연히 본보기가 될 블라도 자작 역시 마찬가지였다.

***

똑똑-

“들어와라.”

나는 문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로 말했다.

집무실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는 평상시에 듣던 것과 달랐다.

두드리는 힘이나 각도, 혹은 간격 따위의 그 미묘한 차이들이 감각적으로 느껴진다는 말이었다.

물론 그 뒤에 있을 남자의 정체는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끼이익-

“호출을 받고 왔습니다. 1왕자 전하,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로브에 수 놓인 은빛 자수. 그리고 익숙한 중년의 목소리.

집무실로 들어온 것은, 다름 아닌 마탑의 부탑주 윌포드였다.

그런데 호출을 받고 왔다고 했던가?

탁-!

나는 들고 있던 만년필을 내려놓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어째서 자네가 왔지? 나는 분명 방어 계열에 능한 마법사를 보내라 했던 것 같은데.”

“전하께서 마법사를 필요로 하시는데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겠습니까? 비록 방어 계열을 전공한 것은 아니오나, 가디언 급의 마력이라면 여느 마법사들보다 도움이 될 것입니다.”

“호오, 그래?”

제법 훌륭한 자신감이었다.

그리고 나를 위한다는 생각 역시 제법이었고.

‘뭐, 확실히 등위가 높은 마력이라면 조금 더 쓸모가 있겠지.’

그러나 괜히 방어 계열이라 못 박은 것이 아니다.

마법의 진정한 효용 가치를 논하기에는 숙련도 역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었으므로.

그런데도 이곳까지 왔다는 말은 분명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소리겠지.

“방어막을 펼쳐라.”

“……예?”

슈우욱-!

“허억!”

말이 끝나기 무섭게 오른손에서부터 발사된 암기는 찢어지는 듯한 파공음을 내며 윌포드의 머리께로 날아들었다.

윌포드는 그것을 감지하자마자 서둘러 마력을 움직였고, 놀란 숨소리와 함께 펼쳐진 방어막은 다행히 날아든 그것을 막아 내는 데에 성공했다.

챙!

콰직-!

“마, 막았다……!”

윌포드는 저도 모르게 외쳤다.

머리에서 5센티미터 남짓 떨어진 위치로 발사되었기에 반응하지 못했더라도 다칠 일은 없었겠으나, 무언가 알 수 없는 성취감 따위를 느낀 것이다.

하지만 그런 윌포드의 눈동자가 데굴데굴 움직인 순간, 그는 숨을 들이쉬며 경악했다.

“마, 맙소사!”

순식간에 발사된 그것이 마력으로 이루어진 장벽을 반쯤 부서트렸던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서 형태를 지탱하던 가디언 급 등위의 마력까지 흩어 냈다.

하기야 그 속도로 날아들었는데 방어막이 멀쩡할까?

우우우웅-

결국 힘을 잃어버린 방어막은 천천히 허공으로 사라지며, 미약한 마력의 파동만을 남기고 모습을 감췄다.

그리고 그 뒤에 땅바닥으로 툭 떨어져 내린 것은,

“만년필…….”

아무런 기운조차 느껴지지 않는 만년필.

……고작 하나였다.

나는 암기를 투척했던 손으로 턱을 괴며, 무심하게 입을 열었다.

“평소에도 방어 마법의 숙련도를 쌓아 놓은 모양이지. 제법이군.”

“가, 감사합니다…… 아니, 그보다 이건…….”

“방어막의 강도를 테스트했다.”

“……아.”

“뭐, 그 정도면 충분하겠군.”

반대편 손이 짧게 까닥여졌다.

그러자 윌포드는 칭찬이 기쁜 것인지 상황이 이해되지 않은 것인지 모를 표정을 지으며 만년필을 주워 들고 다가왔다.

그는 그 와중에도 만년필이 망가지지 않은 것이 놀라웠는지 그것을 연신 살폈다.

그런 그의 시선은 이윽고 책상 위로 향했고, 두 눈에는 자연히 그 내용이 들어왔다.

“아, 이번 국무회의와 관련된 서류군요. 이것을 처리하고 계셨습니까?”

국무회의에서 있었던 일은 당연히 마탑으로도 퍼졌다.

신성제국과의 협력이라든지, 이후에 있었던 참상이라든지.

이제는 소식이 퍼지지 않은 곳이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새삼 윌포드의 눈에 존경심이 담겼다.

“대단하십니다. 이번에는 다섯 명이나 되는 세작들을 잡아내셨다지요? 그 소식을 듣고 마탑주께서도 기뻐하셨습니다.”

“기뻐했다?”

“예, 아무래도 크롬웰의 건은 조용히 묻혀 버렸으니까요.”

“그렇군.”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그 말을 받았다.

마탑의 지식을 지켜 낼 수 있었다는 위대한 업적.

그러나 그것은 자칫 혼란을 초래할 수도 있었다. 즉, 세상으로 드러낼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그러니 이번에야말로 공공연히 드러낼 수 있었다는 점에 기뻐했을 테지.

“뭐, 마침 잘 되었군.”

“어떤 것이 말씀이십니까?”

“마법사를 호출한 것은 도망친 세작을 찾기 위해서였으니까.”

상황을 설명할 필요는 없어졌군.

나는 그렇게 뒷말을 이으며 윌포드가 가지고 온 만년필을 받아 들었다.

“서류의 처리가 끝나면 곧장 출발하겠다. 대기하고 있도록.”

“아아, 알겠습니다…… 음?”

윌포드는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다음, 문득 이상함을 깨닫고 말 꼬리를 높였다.

“도망친 세작이라면…… 블라도 자작을 일컫는 것이겠지요?”

“음.”

“하면 방어 계열에 능한 자를 찾으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분명 말했을 텐데. 놈을 찾기 위해서라고.”

“…….”

도망친 세작과 방어 마법이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객관적인 연관성을 찾지 못한 부탑주의 눈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물론, 이미 정해진 사항을 친절히 설명해 줄 내가 아니었다.

‘직접 보면 알게 될 테니까.’

사각- 사각-

“…….”

그렇게 집무실 내부에는 펜촉이 마찰하는 소리만이 울릴 뿐이었다.

***

연방제국과 맞닿은 에스테반의 극동부.

그것을 가르는 대표적인 장소는 천혜의 산맥이라 불리는 거대 산맥, 실 타프 그란데였다.

하지만 동부의 지형에는 천혜의 산맥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바리케이드를 설치해 둔 것처럼, 여기저기로 솟아오른 산과 언덕 그리고 숲들이 그곳을 틀어막고 있던 것이다.

“아름다운 산이군요.”

나는 윌포드의 감탄에 말없이 마차에서 내리며 정복을 털어 냈다.

이미 추위가 모두 지나간 후에 피어난 신록들. 그것들은 다가온 여름의 향기로 푸르게 반짝이고 있었다.

‘익숙한 풍경이군.’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며 답지 않은 감상을 남겼다.

20년. 아니, 이제는 19년 후의 미래였던가?

다만 내 뇌리에 남은 마지막 장면은 불에 타들어 가고 있는 숲의 전경이었지만.

약소국과 제국의 전쟁.

이용할 수 있는 것이라면 모조리 이용해야 했기에 숲 전체를 불태우는 일도 빈번했다.

그 과정에서 에스테반이 피해를 입는 일도 있었으나, 덕분에 전략과 전술의 중요성을 깨달을 수 있었다는 점은 소득이 있었다 할 수 있겠지.

‘실제로 놈들의 공세를 주춤하게 만들 수 있던 것은 사실이니까.’

스윽-

나는 상념을 멈추고 마부에게 손짓했다.

기다리고 있으라는 신호였다.

이윽고 앞장서서 길을 오르고 있으려니, 윌포드가 따라붙으며 물었다.

“전하, 정말로 이런 곳에 아수스의 비밀 저택이 있는 것입니까?”

“그래.”

한때는 국왕의 친우이자 내 후견인을 자처했던 아수스 백작.

놈이 에스테반을 전복시키기 위해 안배해 놓은 것들은, 이미 20여 년 전인 지금부터 곳곳에 자리를 잡은 상태였다.

장기적으로 국왕에게 독을 먹이기 위한 내통자부터 시작해서 비밀리에 모아 두던 재물들까지.

천천히 그 뿌리에서부터 에스테반을 좀먹고 있던 것이었다.

하지만 아직 그 행방을 찾지 못한 것들이 있었다.

바로, 놈이 만들어 놓은 비밀 저택과 몰래 육성 중이던 병력.

그것만큼은 그 누구도 발견해 내지 못했고, 그것은 아수스가 죽은 이후로 일 년이 훌쩍 지난 지금에도 마찬가지였다.

땅으로 꺼진 것인지, 도통 그 흔적조차 나오지 않은 것이다.

“확실히 국경지대 인근이니 인적이 드문 장소이기는 하지요. 그렇다고는 해도 발각되지 않을 장소는 아닌 것 같은데…….”

마력으로 시야를 확인한 윌포드의 의문이었다.

결국 저택이라는 것은 눈에 보이는 것이었으므로.

“혹 마력으로 자택의 모습을 감추고 있는 것입니까?”

“왜 그렇게 생각했지?”

“이 산은 인공 구조물이 가려지기에 너무도 작은 장소이니까요.”

“그렇군.”

확실히…… 나무들이 울창하게 자랐다고는 해도 저택이란 것을 가리기에는 역부족한 크기긴 했다.

문득 그의 눈매가 차분하게 좁혀지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제 감각에는 마력의 이상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짐짓 심각해 보이기까지 하는 표정이었다.

마력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탓이다.

“전하, 가디언 급을 초월하는 마력이 이곳을 감싸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지금도 엘더급 이상의 마법사가 상주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걱정하지 마라. 이곳에 환영 따위는 존재하지 않으니까.”

“그, 그렇습니까?”

그는 자신의 짐작이 틀렸다는 것에 머쓱하면서도 안도하는 눈치였다.

뭐, 도움이 될 여지가 남았다는 점이 다행으로 여겨졌나 보지.

더욱 강력한 마력의 힘 앞에서 그 자신은 태양 앞의 반딧불이보다 못한 수준이 될 테니까.

그렇게 윌포드의 우려를 잠재우던 내 발걸음이 멈춘 것은 바로 다음 순간이었다.

“마차와의 거리도 충분하니 이쯤이면 되겠군.”

“음? 저택을 습격하시는 것이 아니었습니까?”

“우선은 그것을 찾아야겠지.”

“…….”

윌포드에게서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를 의문이 비추어졌다.

하지만 나는 입술을 비틀며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집요한 추적에도 걸리지 않는 비밀 저택과 병력이라.”

회귀 전, 최후의 최후까지 찾아내기 위해 발버둥 쳤던 아수스의 흔적이 있었다.

놈이 배국을 했다는 보다 확실한 증거. 그리고 그것이 숨겨져 있던 장소.

우습게도 이곳은 죽기 전의 내가 마지막으로 찾던 장소이자, 앞서 발견한 모든 증거와 흔적들이 가리키던 위치였다.

아마도 이곳을 특정하기 위해 수년간을 뒤지고 다녔던가?

‘뭐, 고작 일 년 따위의 시간으로는 발견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겠지.’

아무리 노력해도 연방제국의 지원으로 만들어진 비밀 저택을 일 년 안에 발견하는 것은 무리라는 뜻이었다.

그 땅으로 꺼진 듯한 흔적조차도 말이다.

물론 마지막이 되서 흔적을 발견한 나조차도 비밀 저택의 존재를 직접 확인해 본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미 나는 확신하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녀석이 급히 반란을 일으킨 것도 이 때문이었을 테지.’

흔적을 발견하자마자 찾아온 반란. 녀석은 자신의 뒤를 밟아온 것에 부담을 느끼고 서두른 것이 분명했다.

왜냐하면 그 행동들은 수십 년간 보아온 그간 녀석의 행보와 평이하게 달랐기에.

그 초조한 행동은 이곳을 특정한 내 짐작이 맞았다는 소리기도 했다.

‘그렇다면 간단하지.’

스릉-

검집에서 흘러나오는 엘베른이 스산한 소리를 자아냈다.

“방어막을 펼쳐라.”

이곳이기에 쓸 수 있는 원초적인 방법을 사용할 생각이었다.

“모조리 부셔 버릴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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