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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136화 (136/223)

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136화

학살 (3)

순간, 작은 섬광이 일었다.

1왕자의 검 끝에서부터 일어난 현상이었고, 그것은 허공에 궤적을 남기는 해성처럼 긴 꼬리를 그렸다.

“……!”

그리고 대기가 폭발하듯 궤적에서부터 붉은 섬광이 일었다.

그것은 윌포드가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말 그대로 파멸의 전조였다.

쿠구구구구-!

“흐, 흐어억……!”

대지에서부터 느껴지기 시작하는 미약한 진동. 그것은 곧 솜털이 쭈뼛 설 정도로 무시무시한 굉음이 되었다.

그와 동시에 떨리던 윌포드의 다리가 힘을 잃고 주저앉았다.

귀가 먹먹해졌다.

적어도 그것이 이 진동 탓만은 아니라고, 그렇게 생각할 뿐이었다.

“마, 말도 안 돼…….”

슈우욱-

콰과과과광-!

어느덧 푸르른 자태를 자아내던 산은 더 이상 없었다.

대지에 상흔을 남긴 붉은 파도. 그것은 산을 찢어 놓은 것도 모자라 그 흔적조차 지워 버리겠다는 듯 연신 짓쳐 들었다.

그 결과 남은 것은 무너져 내리고 있는 대지와 나무들뿐이었다.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산 하나가…… 한 인간의 손길에 따라 붕괴하고 사라지는 것이다.

‘……이것이 정말로 인간이 펼치기에 가능한 신위란 말인가?’

마탑주의 각성(覺醒).

그 이후로 더 이상 놀랄 것이 없다고 생각했던 윌포드였으나, 이 비이상적인 상황이 보여 주는 충격은 더욱 어마어마했다.

적어도 그가 알기에 고작 검 한 자루로 이런 광경을 자아낼 수 있는 것은 없었으니까.

……그것이 설령 인간을 초월했다는 소드마스터일지라도.

그렇게 황망하게 산이 있던 장소를 바라보던 윌포드의 귓가로, 평온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방어막을 펼치라고 했을 텐데.”

“……아.”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산이 무너진 자리에서는 어마어마한 흙먼지와 함께 잔해들이 떠밀려 내려오는 상황이었다. 그 평온한 목소리가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로.

결국 윌포드는 아득한 의식을 따라서 반사적으로 마력을 움직였다.

콰과과과과-!

그리고 직후, 다가온 흙더미가 방어막 위를 뒤덮었다.

* * *

블라도 자작은 들려오는 소식들을 들으며 입술을 비척거렸다.

“불안감의 원인은 그것이었군.”

국무회의에서의 참상. 그리고 고작 수십여 분 차이로 사로잡힌 두 귀족.

아마도 왕실에서는 자신들의 움직임을 처음부터 감시하고 있었으리라. 그리고 이목이 거기에 쏠렸다고 생각하게끔 만든 뒤에 만남을 유도했을 테지.

그가 느끼던 불안감은 다름 아닌 감시로부터 비롯되었다는 뜻이었다.

“……멍청하기는.”

의자에 앉은 블라도 자작의 몸이 여유롭게 뒤로 기울어졌다.

그러게, 이상을 감지했을 때 따라왔으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그들은 단지 그것을 기우라 취급하고…… 그저 하루를 사는 망아지처럼 현재를 즐기기에만 급급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니 별다른 반항조차 하지 못하고 사로잡혔겠지.

“아니, 덕분에 내가 무사한 것이려나.”

녀석들을 체포하고 뒷정리를 하느라 자신이 도망칠 시간이 생긴 것도 사실이었으니 오히려 감사해야겠군.

물론 그들이 사로잡혔다 하더라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어차피 이 자택의 위치를 아는 것은 아수스 백작님뿐 이었으니까.”

결국, 탈출한 그 자신만이 최후의 승리자로 남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아까 못다 한 와인을 즐기며 미소를 지은 순간이었다.

“실례하겠습니다.”

끼이익-

그가 머물던 방으로 수행원이 들어왔다. 그것도 그가 고대하던 소식을 들고 말이다.

“자작님, 방금 전에 안내자께서 도착하였습니다.”

“흠!”

……그렇단 말이지?

블라도 자작의 입술이 호선을 그렸다.

“통신을 보낸 지도 얼마 되지 않았거늘, 그쪽에서도 이 사태의 심각성을 알고 계신 모양이지.”

“그렇습니다. 지금 자택의 입구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바로 가 보지.”

블라도 자작은 황급히 와인잔을 내려놓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복잡하게 이어진 복도를 따라, ‘그들’이 기다리고 있는 장소로 나아갔다.

“헛……!”

하지만 저 멀리 보이는 이를 보자, 깊은 경악이 튀어나오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아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자신을 찾아온 이가 예상보다 거물이었던 까닭이다.

일순 자작의 몸이 깍듯하게 기울었다.

“수, 수호의 검, 칼로스 후작 각하를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몸집만큼이나 거대한 방패와 중갑옷.

……그리고 미동조차 없는 초월자의 시선.

그는, 연방제국을 이끄는 소드마스터 중 한 명이었다.

‘젠장…….’

어느덧 바닥을 내려다보던 블라도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그 깊이 없는 시선을 마주한 것만으로도 그렇게 되었다.

‘어째서 저런 사람이 이곳에…….’

고작 사람 한 명을 빼내는 것치고는 너무도 낭비가 아닌가?

게다가 지금의 블라도 자작은 도움을 받는 입장이었다. 그것도 예정에도 없는 민폐를 끼치는.

그런 자작의 머리 위로 무겁고도 싸늘한 음성이 내려앉았다.

“이곳은 마지막까지 보안이 유지되어야 하는 장소다. 추적이 있을 줄 알면서도 기어코 찾아오다니, 제정신이 아니군.”

“죄, 죄송합니다. 하지만 제아무리 1왕자라 해도 이곳을 찾을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않았기에…….”

“이미 그딴 안일한 생각 탓에 통로 하나를 잃었다. 하물며 이곳은 4황자께서 공을 들이신 장소지. 네놈이 관리하던 곳이라 해서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생각했느냐?”

‘……통로 하나를 잃었다고?’

자작은 더욱 깊이 고개를 숙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마 소드마스터인 그가 직접 찾아온 이유는 그 때문인 것 같았다.

물론, 이후에 그가 한 말도 허투루 흘러 넘기지 않았다.

“4황자께서 저를 받아 주시는 것이 얼마나 큰 리스크를 지는 일인지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놈들이 알아차린 이상 방도가 없었습니다.”

“알고 있다.”

칼로스 후작은 혀를 차며 답하였다.

그도 잘 알고 있는 탓이다.

그런 일이 있었음에도 블라도 자작에게 안내인을 보낸 것은 그가 이곳을 열심히 관리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으니까.

안 그래도 안팎으로 어수선한 상황. 아주 작은 틈이라도 놓치기엔 아쉬웠기 때문에.

칼로스 후작은 천천히. 그러면서도 경고하듯 낮게 으르렁거렸다.

“4황자께서 네게 자비를 베푸셨지만 경거망동하게 행동하게 두지는 않겠다.”

“여, 여부가 있겠습니까.”

“카롯트의 땅에서 평생을 모습을 감추고 살아가라. 그것이 4황자께서 명하시는 마지막 자비다.”

이에, 숙여 있던 자작의 고개가 들려졌다.

“그렇다면 이곳에 남은 병력은…….”

“그딴 것을 물을 자격이 있나?”

“죄, 죄송합니다.”

식은땀이 콧잔등을 타고 흘러내리는 것이 느껴졌다.

두려움이 몸을 지배하는 단계에 이른 것이다.

“짐을 챙겨서 나오도록. 제국으로 향하는 통로까지 직접 안내해 주지.”

“가, 감사합니다!”

그렇게 자작은 감읍하듯 고개를 조아리며 몸을 돌렸다.

물론, 자신이 살아남을 수 있던 이유에 4황자가 기르던 병력이 몰살당했다는 사정이 있다는 사실을 그가 알 리는 없었다.

즉, 쓸모가 있으니 마지막에야 특혜를 베푼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이었다.

“……!”

천천히 굳어지기 시작한 후작의 얼굴.

그는 재빠르게 움직여 자작의 목덜미를 붙잡고, 방패를 치켜들었다.

그리고.

콰과과과광!

“커억!”

굉음과 함께 어마어마한 충격이 날아들었다.

그것이 블라도 자작이 기절하기 전에 확인한 마지막 상황이었다.

* * *

길었던 것처럼 짧았던 시간이 지나가고.

무너져 내린 충격으로 쓸려온 잔해들은 어느덧 방어막을 빗겨 흘러간 뒤였다.

그렇게 흙먼지들이 비로소 가라앉을 때 즈음이 돼서야 나는 흡족하게 입을 열었다.

“역시 마법사를 데리고 오기를 잘했군.”

“……허억, 허억.”

이 정도 난리 통이었다면, 모르긴 몰라도 옷이 더러워지는 수준으로 끝나지는 않았을 테지.

흙먼지를 마시는 것은 익숙하지만 구태여 그것을 뒤집어쓰고 싶지는 않았다.

‘뭐, 남작이 길길이 날뛸 것이 분명하니까.’

나는 주저앉아 숨을 들이쉬는 부탑주에게 말했다.

“방어막을 해제해라.”

“아, 알겠습니다.”

우우웅-!

돔의 형태로 남아 있던 마력이 천천히 모습을 감추었다.

그제야 비로소 온전한 시야 사이로 무너진 산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가장 처음 나온 것은 비웃음이었다.

“재미있군.”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이 무너져 버린 산.

그리고 그 안에서, 개미굴처럼 엉켜 있는 건축물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형태가 성치 않았지만, 최소한 그것이 인공적으로 지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보지 못할 리는 없었다.

윌포드는 그것을 보며 펄쩍 뛰었다.

“저, 저건……!”

반대로 내 입술은 비뚤게 올라가고 있었다.

“아수스의 비밀 저택이다.”

“……!”

흔적이 땅속으로 꺼진 것 같다고 말했던가?

정말로 땅속으로 꺼졌으니 지금까지 발견할 수 있을 리 없었겠지.

“어쩐지 기감에 잡히는 것이 없더라니.”

“마, 말도 안 되는…… 어찌 땅속에 저런 것을……!”

“개미굴. 뭐, 그치들에게 어울리는 서식지군.”

나는 그 경악에 아랑곳하지 않고 여유롭게 그것을 구경했다.

산사태와 함께 쓸려온 대량의 철제 파편과 시체들. 육성 중이던 병력이 모조리 깔려 죽은 모양이었다.

그 모습을 보니 생각나는 것이 있어, 어깨를 으쓱였다.

“밀입국 통로를 만든 것과 같은 기술이군.”

마법사를 이용한 시공.

아마, 저것도 비슷한 방법으로 만들어진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이 ‘비밀 저택’ 역시도 오롯이 연방제국이 관여했다는 뜻이겠지.

그나저나…….

‘이 정도로 휩쓸렸다면 원하는 것을 찾기는 어렵겠네.’

나는 피식 웃으며 괜히 쓸려온 흙더미들을 검집으로 뒤적였다.

제법 떨어진 이곳은 그나마 나은 편이었다.

아마 저 앞쪽은, 수십 미터의 흙이 깔려 있는 상태겠지.

아쉽지만 조만간 아버님께 고고학자들을 불러달라 해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전에.

“이곳에서 대기하고 있어라.”

“예?”

“섣불리 모습을 드러내지 말도록.”

나는 그 뒷말도 듣지 않은 채로 땅을 박찼다.

그리고 어느덧 부탑주의 모습이 까마득히 보일 정도까지 움직였을까?

저 멀리서, 흙더미 사이를 파헤치고 튀어 오르는 한 인영을 마주했다.

“……크윽!”

“호오, 제법이군. 거기에서 빠져나오다니.”

순간적으로 낯익은 기운이 강하게 느껴지기에 찾아왔건만, 정말로 그곳에서 튀어나온 상대는 내게 낯익은 인물이었다.

뭐, 조금은 놀랍다고 해야 할지…….

“연방제국의 칼로스 후작이군.”

“이, 1왕자……!”

녀석의 상태는 썩 좋지 못했다.

우그러져 있는 갑옷에 눌려 전신이 피범벅인 녀석은 간신히 살아남아 있었으니.

세워진 방패와 중 갑옷 사이로 드러난 눈은 경악하고 있었다.

어쩌면 이 상황을 아직도 이해하지 못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산 하나가, 폭파하듯 징조도 없이 무너져 버렸으니까.

‘……그건 그렇고, 이곳에서 놈을 만날 줄은 몰랐는데.’

연방제국의 소드마스터.

녀석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잘 알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녀석과는 이미 전쟁에서 맞붙어 본 전적이 있었으니까.

그때도 지금처럼 수호의 검이라고 불렸던가? 확실히 그 이명답게 방패를 쓰는 솜씨가 제법이었던 기억이 있다.

‘이곳에 있는 것을 보면 근처에 통로가 있었던 모양이군.’

그렇게 입술을 끌어올리고 있던 나는 문득 녀석의 방패 옆에 들린 인물을 보며 눈을 빛냈다.

“블라도 자작?”

놀랍게도, 그 시체처럼 꿈틀거리는 모습은 영락없이 블라도 자작이었다.

……그것도. 내가 찾고 있었던.

“녀석을 살린 건가?”

“……크윽!”

“호오, 이건 좀 의외의 수확인데.”

내 입꼬리가 더욱 길게 휘었다.

다른 이유는 아니었다.

덕분에 놈의 시체를 찾아낼 고고학자들을 불러낼 필요가 없어졌기에.

챙-!

“1왕자! 네놈이 이곳에 어떻게!”

그사이, 정신을 차린 칼로스 후작이 롱소드를 뽑아 들며 경계하듯 소리쳤다.

이 일을 벌인 이가 나라는 것은 가정조차 하지 않은 듯한 모습.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녀석은 내게서 아무런 기운도 느끼지 못했을 테니까.

……마치, 더 높은 등위의 마법사의 마력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하지만 그럼에도 내 등장에 명백히 경계하고 있다.

꼴에 마스터라는 건가? 감각적으로 내게 무언가 위압을 느끼는 모양이다.

이건 녀석이 뛰어난 것이라 해야 할까, 아니면 뜻밖의 수확에 무의식적으로 기운을 감추지 못한 나의 부덕으로 봐야 할까.

‘아무렴 상관없겠지.’

결과는 마찬가지일 테니.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태연하게 말했다.

“일개 후작 따위가 타국의 왕자에게 하는 것치고는 말투가 건방지군. 제국의 법도는 야만족의 것을 따르나?”

“타국의 왕자? 이 상황에서 그딴 것을 따지다니! 제정신이 아니군!”

“……뭐, 확실히.”

이미 연방제국의 소드마스터가 에스테반의 땅에서 발견된 상태였다.

그것도 도망자인 블라도 자작을 데리고. 그렇다면 이미 대화는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마침 잘 됐구나. 무슨 짓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주변에 느껴지는 기감은 없는 듯하군. 네놈만 죽인다면!”

우우우웅-!

녀석의 깊게 가라앉은 눈빛 사이로 푸른색의 빛무리가 터져 나왔다.

소드마스터의 전유물, 오러 블레이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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