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137화
학살 (4)
조금은 황당한 기분이 되는 것을 느꼈다.
그따위 성치 않은 몸으로 무얼 하겠다는 말일까?
“나를 죽이겠다고?”
“감히 이 나를 앞에 두고도 허세를 부리다니……!”
칼로스 후작은 붉게 충혈된 눈으로 외쳤다.
“대화로 시간을 끌려는 심산이겠지만 이 정도 거리라면 호위가 도착하기 전에 수백 번은 베어 낼 수 있을 터다!”
스윽-
금방이라도 쏘아지려는 듯, 자세를 낮추고 검과 방패를 치켜든 꼴은 살기가 등등했다.
그 오러 블레이드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주변의 기감은 완벽히 훑어 두었다…… 이건가?
어깨를 으쓱해 보이자, 놈은 입속에 가득한 핏물과 흙을 씹어 뱉었다.
“폭약 따위로 기습적인 공격을 감행한 것은 칭찬하지! 하지만 감히 생존자가 있으리라고 생각지 못하고 혼자 이곳으로 온 것이, 네놈의 패착이다!”
“그렇군 확실히 생각지 못한 상황이었지.”
“이곳의 위치를 들킨 실책을 네놈의 목으로 무마하겠다!”
더 이상 시간을 끌지 않겠다는 것처럼.
놈의 신영이 흐릿하게 변하며 파란 섬광과 함께 내 눈앞으로 당도했다.
짙은 부상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범주를 초월한 신위답게 무척이나 빠른 속도였다.
챙-!
“……!”
그러나 그것은 가엾은 몸짓에 불과했다.
녀석이 휘두른 섬광은 원하는 목적을 이뤄 낼 수 없었다.
내가 단지 여유롭게 검을 들어 올리는 것만으로도 그것을 막아 냈기 때문이다.
“무, 무슨……!”
처음에는 그저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소드마스터의 오러는 결코 베어 내지 못할 것이 없었고, 지금까지 자신의 검이 가로막힌다는 현상을 겪어 본 적도 없었을 테니까.
명백히 방금의 상황은 그의 상식에서 빗나간…… 기이한 상황이던 것이었다.
하지만 겨우 그게 끝이 아니었다. 그다음 사태를 파악했을 때는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우웅─
“그, 그 오러는 대체…….”
“무언가 착각하고 있는 것이 있군.”
푸른빛의 정의와 핏빛의 살의가 교차하고 있는 두 검.
그곳의 너머로 보이는 내 얼굴은.
“……소드마스터?”
“나는 단지 네놈 ‘ 따위가’ 나를 죽일 수 있겠느냐고 물은 것뿐이었다.”
……무척이나 가소롭다는 듯 태연하게 웃고 있었을 테니까.
“……!”
챙-!
놈은 다급히 마찰하는 검을 밀어내며 뒤로 물러섰다.
그 여파로 상처가 터져 나가는 광경이 연출되었지만, 그것을 신경 쓸 겨를은 없는 듯했다.
“화, 환상…… 아니…… 이 힘은 정말로…….”
고작 스물한 살의 나이.
무예의 ‘극의’를 깨닫기에는 불가능한 나이였다. 단지 어렵다는 말로 포장할 것이 아니라, 시간이 허락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눈앞에 있는 상대는 대체 뭐란 말인가?
대체 어떻게 오러 블레이드를 사용하고, 그것도 모자라서 자신의 검을 이토록 가볍게 막아 낼 수 있단 말인가?
“대, 대체 어떻게 네 녀석이 소드마스터의 경지에…….”
“그 모습을 보니 연방제국에서는 아직도 내 경지를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군.”
“마, 말하라! 대체 무슨 사술을 쓴 것이냐!”
“뭐, 알려 주기 어려운 일은 아니지.”
그 의문에 나는 한껏 비웃듯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그러고는 친절하게 그 뜻을 전달했다.
“그런데 곧 죽을 이에게 설명해 봐야 의미는 없을 것 같군.”
“……네놈!”
팟-!
슈우우욱-
자신이 본 것이 착각이라 말하고 싶은 것일까?
칼로스 후작은 가진 힘을 끌어올리며 또다시 땅을 박찼다.
“이번 공격은 감히 막아 낼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녀석이 이번에 휘두른 것은 검이 아닌 방패였다.
녀석이 들고 있는 방패와 ‘수호의 검’이라는 이명은 헛된 것이 아니었으니, 검과 방패를 자유자재로 사용하여 상대를 몰아치는 녀석의 주특기가 그 손에서 그대로 피로되었다.
실제로 오러가 가득 담긴 방패로 순식간에 적을 후려치는 ‘배쉬’는, 숱한 전장 속에서도 그 위력을 뽐냈었다.
그 기술에 죽은 기사가 대체 얼마나 많았던가.
그 어마어마한 파괴력은 물론이고 속도까지 결코 당해 낼 자가 없던 것이다.
……하지만.
챙!!
“뻔한 공격이군.”
“크윽!”
나는 그것을 가볍게 비껴치며 녀석의 자세를 흐트러뜨렸다.
그것은 마치 어린아이의 손목을 비트는 것처럼 간단하고, 또한 익숙한 모습이었다.
슈우욱!
“제기랄!”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짓쳐 든 칼날이 녀석의 목을 노리고 휘어져 들어갔다.
그 상황에서 녀석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무리하게 방패를 들어 급소를 방어하는 것뿐이었다.
초인의 불가사의한 신체 능력은 같은 마스터급 상대에게 통하지 않았으니까.
챙!
콰직-!
“호오.”
결국 무리한 충격을 입은 방패는 급소 대신에 그 명줄을 다하고 망가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충격으로 인해 상처에서 터져 나온 핏물이 안개처럼 번졌다.
칼로스 후작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네놈!”
“뭐, 상처를 입었다고 해도 맹수라는 말이군.”
“대체 그 사술의 정체는 무엇이냐! 방패를 쳐 낸 것은 어떻게 한 것이지!”
“사술이라…….”
지금까지 그의 방패 공격을 맞고도 멀쩡히 버틴 이는 없었다. 그리고 진심이 담긴 공격에 살아난 이가 있을 리 만무했다.
극의 경지에 이른 실력이라는 것은 그런 말이었으니까.
하지만 그것을 마치 예상하듯 간단히 쳐 냈다.
스물한 살의 나이에 오러 블레이드를 사용한 것도 그렇고, 결코 정상적인 실력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웠던 것이었다.
이해는 간다. 나라고 해도 쉽게 믿을 순 없을 테니.
허나.
“자기가 할 수 없다고 사술이라니…… 우습군.”
저건 그저 현실도피에 불과하다.
“뭣?”
“네 경지가 낮음을 생각지 않는 걸 보면 역시 반쪽에 불과한 것인가?”
“감히!”
정작 나는 이 일련의 상황들에 재미를 느끼고 있었다.
정확히는, 놈의 존재가 내 지루함과 만족감을 달래 주고 있었다.
마스터급의 적을 상대하는 것은 정말로 오랜만이었으니까.
“어딘가에는 항상 궁금증이 있었지. 내 새로운 힘은 마스터급을 상대로 얼마만큼이나 통할지.”
“……뭐라고?”
“그리고 상대를 얼마나 쉽게 죽일 수 있을지 말이야.”
“…….”
칼로스 후작의 얼굴이 굳었다.
점차 새어 나오는 끈적한 살의를…….
그리고 그 강대한 오러의 힘을 온몸으로 직접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래, 그것은 마치.
‘……실험용 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덕분에 고맙군.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게 되었으니.”
“무…… 무슨…….”
“뭐, 죽기 직전인 것이 아쉽지만 소드마스터라면 저 정도의 상처에도 충분히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겠지.”
후우우우우우웅!
그렇게 마침내.
마법 각인에 내재 된 바람의 원소와 오러가 만나며 핏빛의 돌풍을 만들어 냈다.
그것이 검을 감싸고 있는 모습은 무척이나 경이로웠고, 또한 놈이 지금껏 알지 못하던 위협이었다.
나는 그것을 여유롭게 들어 올리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부디 그 잘난 방어력이 이것을 막을 수 있었으면 좋겠군.”
“……!”
“고작 한 번의 실험으로 끝내기는 아쉽거든.”
……그리고 그것이 휘둘러졌다.
쿠구구구구궁!
“크아아악!”
작은 돌풍은 순식간에 몸집을 키우고 이내 칼날의 폭풍처럼 녀석을 찢어발기기 시작했다.
베어 내고 폭파하며 녀석의 몸을 하이에나처럼 사정없이 난도질했다.
그 속에서,
우우웅!
순간적으로 푸른빛의 오러가 번쩍 일어나며 최후의 반격을 노렸지만 소용은 없었다.
단지 그것은 반사적인 움직임이었을 뿐. 그 처연한 몸뚱어리는 이미 의식은 사라진 뒤였다.
마치 파도 속으로 사라지는 성냥불처럼 너무나 미약했으니.
“끝이군.”
스릉-
나는 쏘아진 검을 갈무리하며 중얼거렸다.
……죽음.
그것이 녀석에게 남아 있는 마지막 추악한 기억이었다.
수호의 검이라는 영광스러운 이름과 어울리지 않는 싱거운 최후였다.
그 이후에는 생전의 명예까지 짓밟히겠지.
“영광으로 알도록. 내게 두 차례나 죽은 것은 네 녀석이 최초다.”
그래, 회귀 전의 전쟁에서도 녀석은 내 손에 죽었다.
지금처럼 반항조차 하지 못하고 허무하게 찢어져 나갔지.
‘뭐,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나조차도 예상 밖이었지만 말이야.’
나는 피식 웃으며 몸을 돌렸다.
자, 그러면…….
“우리는 아직 볼일이 남지 않았던가?”
“히이익!”
어마어마한 충격 덕분에 정신을 차린 블라도 자작은 어느덧 바닥을 기고 있었다.
그것도 모자라 녀석의 바지춤은 그 공포를 대변하듯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사, 살려…….”
“살려 달라고?”
“부디…….”
“하지만 그래서야 재미가 없겠지.”
“무, 무슨…….”
나는 그 모습을 무표정하게 쳐다본 뒤에, 고저 없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 갔다.
“차라리 저 속에서 죽지 않았던 것을 후회하게 만들어 주겠다.”
그렇게 말하는 내 입술은, 어느덧 짙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 * *
수도의 광장.
태양이 저물기 직전인 그곳에는 수많은 횃불과 인파들이 자리했다.
그들은 오늘의 축제를 즐기기 위해서 구경을 온 이들이었다.
웅성 웅성-
인파의 소란은 천천히 늘어 갔고, 그에 맞춰 광장의 인파 역시 늘어만 갔다.
때가 무르익었다는 소리였다.
“끌고 가라.”
“충!”
“읍읍……!”
블라도 자작의 몸이 기사들에게 이끌려 허무하게 끌려간다.
몸을 비틀며 버티려는 반항은 헛되었다.
왕실 기사들의 힘을 녀석이 이겨 낼 수 있을 리 없을뿐더러, 그 고문의 상처 가득한 몸뚱어리로 하는 반항이 거칠 리는 없었으니까.
결국 녀석은 광장의 중앙에 무릎 꿇려진 뒤에야 비로소 조용해졌다.
“…….”
그렇게 주인공이 무대 위로 등장하자,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잦아졌다.
어쩌면 그것은 이후에 벌어질 일을 예상한 묵념일지도 몰랐다.
“블라도 자작! 아수스 백작과 함께 반란을 모의하고 타국에 협력하기로 한 죄를 물어, 왕국 법률에 따라 사형에 처한다!”
“허어!”
“크흠……!”
공개처형.
귀족이라 불리던 이들에게 가장 불명예스러운 형벌이자, 반란을 꾀한 배신자들에게 알맞은 최후였다.
그 순간 무릎을 꿇고 있는 녀석의 몸이 잠잠하게 가라앉는 것이 보였다.
재갈은 물론이고 온몸을 포박당한 상태였으니, 숨을 멎는 것으로 자살을 시도하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보며 조소를 지었다.
“강제로 멈추게 하도록.”
“알겠습니다.”
퍽!
“읍, 으으읍!”
범죄자에게는 인권도 명예도 없다.
녀석은 기사에게 배를 무자비하게 걷어차이자, 무의식적으로 숨을 헐떡였다.
“네놈에게는 자살조차 허락되지 않는다.”
“큽…….”
그래.
복수를 이어가는 것은 어디까지나 ‘내 손’이어야만 한다.
하지만 이것은 오늘의 ‘메인디쉬’였다.
그 전에, 먼저 입맛을 돋울 애피타이저가 필요하리라.
나는 손을 휘젓는 것으로 명령을 대신했다.
“올라가라!”
“늦장 부리는 놈은 이 자리에서 죽여 주마!”
그러자 포승줄에 묶인 무리들이 줄줄이 무대 위로 걸어 들어왔다.
앞서 내게 죽음을 맞이한 네 귀족과 블라도 자작의 식솔들이었다.
녀석들 역시 이곳에서 사형을 당할 운명이었다.
“잘 보아 둬라. 녀석들의 미래는 곧 네 녀석의 미래와도 같으니.”
“읍…… 으읍!”
스윽.
나는 검을 뽑아 들고 녀석들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 죽음을 앞둔 낯빛들이 어찌나 우습던지…….
“이 또한 영광으로 알도록.”
본래라면 이름 모를 기사들에게 참수를 당해야 마땅하건만, 특별히 오늘만큼은 내 손으로 형을 집행하기로 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편이 본보기에 좋으니까.
서걱- 서걱-
일정한 음률에 따라 목이 잘려 나가는 귀족들.
그때마다 광기에 휩싸인 광장 내부는 열렬한 환희로 가득 찼다.
그럴수록 그 광경을 강제로 바라보는 블라도 자작의 얼굴은 잿빛으로 변해 갔다.
스윽-
그렇게 바닥에 핏물이 흥건해지고.
마침내 태양이 거의 저물어 붉은빛으로 하늘이 물들 무렵.
드디어 녀석의 차례가 다가왔다.
“네 녀석만 남았군.”
“…….”
위로 치켜 올라간 그 표독스러운 눈빛.
이제는 반항조차 하지 않는 것인가?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하여, 나는 녀석의 입을 막고 있는 재갈을 풀어 주었다.
“유언은?”
“……이게 끝일 거라고 생각하지 마라.”
“새삼 당연한 소리를 하는군.”
내 입꼬리가 올라갔다.
내가 죽인 것은 어디까지나 ‘현시점’에서 아수스에게 협력하던 이들이었다.
하지만 회귀 전…… 그러니까 내가 죽기 직전에 놈의 뒤편에 서 있던 귀족들은 아직 한 무더기나 남아 있었다.
내 복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소리였다.
“뭐, 네놈이 말하는 뒷배는 들으나 마나 연방제국과 4황자겠지만 말이야.”
녀석의 말대로다.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이것은 아직 복수의 첫 단계에 지나지 않았고 그 이후로도 죽음은 계속해서 이어지리라.
……단 한 놈도.
나를 욕보인 이들이 이 땅에 남지 않을 때까지.
그것은 연방제국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수스에게 안부를 전해 주도록. 네 녀석이 아홉 번째다.”
서걱-
이 잔혹한 학살극의 끝은, 새로운 복수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