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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138화 (138/223)

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138화

학살 (5)

에스테반과 신성제국의 동맹.

두 국가의 협력 선언은 대륙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다만, 그 대부분은 긍정적이라고 할 수만은 없는 것이었다.

-에스테반과 신성제국이?

-대체 그 동맹이 신성제국에 무슨 의미가 있지?

-신성제국으로서는 아무 이득도 얻을 것이 없지 않은가?

에스테반이 야만족의 땅을 짓밟고 점령지를 세운 지금.

종종 그 이름이 화두에 오르기는 했지만, 그리하더라도 신성제국이라는 이름이 주는 위용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신성제국은 대륙의 두 열강 중 하나라고 불리는 대제국.

그리고 에스테반은 두 열강 사이에 끼어 있는 약소국.

그런 두 국가가 동맹하고 지원을 이어 간다는 말은, 어느 한쪽에게 지나치게 불공정한 외교였음이 분명했으니까.

하지만 내부의 사정을 꿰뚫고 있다면, 그 동맹의 진의를 이해할 수 있으리라.

혹자에게는 체재의 평안과 욕구의 충족을. 또한 혹자에게는 좋을 대로 이용할 수 있는 수단을.

그렇게 화합이라는 이름 아래에 감추어진 사정은 보다 더 은밀했고 필시 양국 모두에게 천문학적인 이득을 가져다줄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이는 유지되고 있던 열강 구도의 균형이 틀어지기 시작했다는 말과도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화두에 오르는 일이 있노라면, 그것은 ‘1왕자’라는 사람이 벌인 사태들에 관련된 이야기였다.

신성제국의 사절단 앞에서 일어난 즉결처분.

……그리고 수도에서 벌어진 잔혹한 학살과 그 전말까지.

“우스운 일이지.”

나는 여유롭게 어깨를 으쓱이며 운을 떼었다.

“고작 범죄자들을 죽인 것으로 이리도 시끄러우니 말이야.”

모든 일은 필요에 의해서 진행되고 있다. 국무회의에서 있던 일부터 놈들을 처형한 일까지.

심지어 지금 일희일비하는 귀족들의 여론 또한 계획한 일 중 하나였다.

이렇게 들쑤셔 놓아야 개미집에서 2왕자파의 무리들이 튀어나올 테니까.

그런 내 앞에는 어느새 싸늘하게 식어 버린 찻잔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이다.

“비밀 저택의 처리는 어떻게 되었지?”

“기사단이 산사태로 가장하고 인근을 통제하고 있습니다.”

“무난한 핑계군.”

실제로 내부에 있던 병력은 충격에 휩쓸려 모조리 죽어 버렸으니까.

뭐, 완전히 거짓말은 아니라는 소리다.

“그래서? 놈이 어떻게 에스테반의 땅까지 숨어들었는지는 확인했나?”

나는 시선을 돌려 정면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아르곤 기사단의 수장인 에드워드가 보고를 이어 갔다.

“예, 전하. 무너진 비밀 저택의 주변에서 에스테반으로 침입할 수 있는 통로를 발견하였습니다. 찾아낸 주변의 흔적들을 모조리 조사하고 있습니다만, 다행히 아직까지는 칼로스 후작 외에 드나든 인물은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드나든 인물이 없다는 말이지…….”

“그렇습니다.”

……역시 그런 거군.

통로는 세작들이 비밀리에 침투하기 위한 밀입국책이다.

그런데 그런 장소에 아무도 드나든 흔적이 없다는 말은…….

“그 통로는 놈이 따로 안배해 둔 비밀 무기였다는 뜻이겠지.”

“예, 아무래도 그런 것으로 보입니다.”

입술을 쓰다듬던 손 사이로 오만한 미소가 흘러나왔다.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도록 엄중한 보안을 기한 통로.

이는 세작들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공간이었으리라.

최후의 최후에 이르러 에스테반의 숨통을 압박할 비수를 숨겨 두고 있던 것이었다.

아마 우리와의 회담에서 산맥을 넘겨주면서 더욱 숨겨온 비장의 술책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래, 너무 조용히 넘겨준다 싶긴 했다.

“아마 4황자와 황제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존재를 몰랐을 가능성이 크겠지.”

앞으로 만들어질 통로의 위치까지 모조리 꿰고 있는 나조차도 모른 것을 보아서는 확실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런 것이 발각당하다니…….

“이쯤 되면 놈의 반응이 궁금해지는데?”

씨익-

우스움을 논하던 여유는 어느덧 차가운 비웃음이 되었다.

비밀 저택과 통로의 존재를 들킨 것도 모자라서 아끼던 소드마스터까지 잃었으니, 그 가면 뒤에서 무슨 표정을 짓고 있을지가 너무도 궁금했다.

‘특히나 지금처럼 입지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후작급 귀족의 부재는 악재 중의 악재라고 할 수 있겠지.’

하물며 자국도 아닌 에스테반의 땅에서 죽은 것은 또 어떠할까?

소드마스터가 타국에서 발견된 이유를 설명할 수나 있을까?

아마 칼로스 후작은 영원히 시체조차 찾지 못하고 행방불명으로 남아, 강제로 세상에서 잊히리라.

소드마스터라는 생전의 가치는 더 이상 아무런 의미도 가지지 못했다.

끼이익-

그렇게 보고가 끝난 뒤에 에드워드가 돌아가고,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조지가 들어왔다.

“정말로 공표하지 않을 겁니까?”

“무엇을 말이지?”

“칼로스 후작의 존재 말입니다.”

소드마스터는 대마법사와 마찬가지로 전투의 승패를 좌우하는 ‘전략 병기’나 다름없었다.

그런 인물이 에스테반 내부에 침입했으니, 그것이 공표되는 순간 연방제국은 단숨에 세간의 지탄을 받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놈들이 그 사실을 곧장 인정할 리는 없겠지. 오히려 녀석들은 그 사실을 부정하며 대의가 자신들에게 있음을 선포할 것이다.”

“에스테반에서 함정으로 꾀어내어 자국의 소드마스터를 해쳤다…… 뭐, 대충 이런 식으로요?”

“그래. 그쪽에서 움직였다는 증거도 없으니 몰아가는 것은 쉬운 일이겠지.”

하물며 그것이 거짓으로 꾸며진 대의라 하더라도 충분했다.

어떻게든 상대를 압박할 ‘정당한’ 핑곗거리가 생기는 셈이었으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턱을 괴었다.

“우리가 신성제국과의 외교에서 이득을 보는 것은, 아직 에스테반이 연방제국과 ‘적대적’ 관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 전쟁이 벌어진다면 우리가 신성제국에 기대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는 뜻이군요.”

“우리는 어디까지나 신성제국에 양보하는 입장이어야만 한다.”

적어도 먼저 문제로 삼을 만한 일을 만들면 안 된다는 소리였다.

그래야 이 아슬아슬한 균형에서 에스테반이 우위를 점할 테니까.

“절대적인 힘이 생기기 전까지는 현상을 유지하도록 하지.”

“뭐, 일단은 무슨 느낌인지 알겠습니다.”

……그래.

그전까지는 이 미묘한 관계를 유지하면 될 뿐이다.

신성제국을 좋을 대로 이용하는 것도.

그리고 연방제국의 힘을 깎아 나가며 복수의 칼날을 가는 것도.

신성제국에게는 이쪽의 압도적인 입지를 보여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러니 우리는 당분간 그의 존재조차 모르는 모습을 보일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터다.”

그제야 나는 비로소 식은 찻잔을 들어 올렸다.

머지않아 이 모든 것은 우리의 좋은 패가 될 것이다.

* * *

“이쪽으로 오십쇼.”

남자의 안내를 따라 움직인 가르덴 대사제는 이윽고 왕궁의 비밀창고에 다다랐다.

그리고…….

“확인해 보시죠.”

“…….”

대사제는 멍하니 손을 뻗어 눈앞에 있는 것을 어루만졌다.

이 땅에 와서 놀란 것이 벌써 몇 번째일까?

하지만 눈앞에 보이는 이것은 단연 이전의 것들과 비교조차 불가능한 것이었다.

‘……신성철.’

마치 유리처럼 가볍고 속이 훤히 비쳐 보일 정도의 투명함.

그리고 모순되게도 그 어떤 광물보다도 단단한 경도.

너무도 완벽한 품질이었다.

대사제의 위(位)에 있는 그조차도 이 정도의 품질을 본 적은 거의 없었다.

그리고 그런 신성철을 제련해 둔 주괴가 수십 개…… 아니, 수백 개는 우스울 정도로 쌓여 있었다.

심지어 하나같이 그 품질이 일정하게 유지되고 있었다는 점은 가히 경악할 만하리라.

‘필시 이 땅을 떠나 도망간 드워프들의 솜씨가 분명하군.’

대사제는 절로 신중한 표정이 되어 그것들을 살펴 나갔다.

그렇게 한동안 왕궁의 창고 내부는 침묵이 감돌았다.

“……!”

하지만 그때, 신성철 주괴 하나를 어루만지던 대사제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굳었다.

에스테반이라는 땅에 갑작스레 발견된 신성철 광산과 드워프의 관계.

무의식적으로 떠올린 그것이 너무도 공교로웠던 탓이다.

‘드워프로 하여금 미스릴을 정제하게 만드는 것…….’

과연 그것이 우연이라고 치부할 수 있단 말인가?

우연이라기에는 너무도 기가 막힌 운명이었다.

하나도 모자라 둘 모두를 우연히 발견할 가능성은 0%에 수렴했으니.

순간 그의 머릿속에 말도 안되는 가정이 스쳤다.

……그렇다면 혹시 1왕자는 이 상황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닐까?

대사제의 표정이 더욱 진지하게 굳어졌다.

그러나 이윽고 고개를 내저으며 스스로의 생각을 부정했다.

미스릴 광산의 존재를 깨닫고 그것을 정제할 드워프들을 임의로 구출해 오는 일과.

반대로 드워프들을 구출한 뒤, 그들을 활용할 수 있게끔 미스릴 광산을 발견하는 일.

그 어느 쪽도 노렸다고 하기에는 도리어 불가능한 일이었으므로.

한데 자신은 어찌 그 사실을 알면서도.

이것이 설계의 산물이라는 허튼 생각을 떠올린 것일까?

‘……후, 그간 너무 심하게 시달린 모양이군.’

그 의문의 끝은 결국 떠오른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워 내는 것이었다.

그렇게 대사제가 신성철을 내려놓는 것을 본 남자가 입을 열었다.

“보면 알겠지만 이미 정제가 끝난 겁니다. 수량은 협의 내용에 따라 신성제국으로 보내질 거고요.”

“그렇소?”

“오늘 신성제국 측의 사절단이 떠나고 나면 무역의 절차가 진행될 겁니다.”

“알겠소.”

그렇게 반사적으로 대답한 대사제의 시선이 천천히, 눈앞의 남자에게 향했다.

……조지 헤그메스.

성국으로 귀환하기 전까지 사절단의 안내를 맡은 인물이자, 아직은 숨겨진 1왕자의 최측근.

파악하기로는 그가 1왕자의 보좌관인 비도르 남작보다 계획에 관여하는 것이 많았다.

혹시 그라면 무언가를 알고 있지 않을까?

그 순간, 시선을 느낀 조지가 눈매를 좁히며 물었다.

“또 궁금한 거라도 있습니까?”

“……혹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신성철 광산의 발견 시기가 어찌 되는지 물어도 되겠소?”

“발견이요?”

다소 갑작스러울 수 있는 질문이었다.

하지만 다행히 상대는 별다른 의심 없이 궁금증을 해소해 주었다.

“뭐, 이미 협의가 체결된 상태니 안 될 건 없습니다만. 발견은 작년 여름이 지날 즈음입니다.”

“드워프를 발견한 이후라는 뜻이오?”

“드워프들에게는 광맥의 기운을 감지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뭐, 대충 운이 좋았다는 뜻이겠죠.”

“……그렇군.”

광맥의 기운을 감지할 수 있는 능력이라…….

그 범위가 한정되어 있다지만 확실히 그런 능력이 있더랬다.

그것으로 발견했다고 하면, 역시 자신이 과민하게 반응한 것이 분명했다.

“알려 줘서 고맙소.”

“뭘요.”

대사제의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이다.

말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드워프를 구출해 낸 것은 어디까지나 우연의 일치였고, 단지 그 기록이 결론이었다.

그럼에도 그것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것은, 다만 1왕자가 지금까지 보였던 행동들이 경악으로 비추어진 탓이리라.

……잠시만, 지금까지 보였던 행동들이라고?

“……!”

그 순간 문득 그렇게 생각한 머릿속으로 놓치고 있던 무언가가 스쳐 갔다.

무척이나 간과하고 있던 사실과 같은 것들이…….

그 사실을 깨달은 대사제의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드워프들은 분명 갈데르드 평야라 불리는 땅에 머물고 있었지.’

드워프들은 그 땅에서 나온 적이 없었다.

한동안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어 있었으니 다른 움직임을 보일 수는 없었으리라.

그런 상황에서 드워프들이 광산을 발견했다고 하면, 필시 그곳이 미스릴 광산이 존재하는 장소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 평야는…….

‘에스테반의 1왕자가 연방제국에서 받아 낸 땅이었을 터인데…….’

이유를 알 수 없는 오싹함이 온몸을 관통했다.

그렇게 가르덴 대사제는 자신의 하얗게 바랜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줄도 모르고 멍하니 서 있었다.

그렇기에 미처 확인할 수 없었다.

그 뒤에서, 1왕자의 최측근인 조지 헤그메스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을.

* * *

그리고 같은 시각.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오랜만이군요.”

“…….”

나는 집무실을 방문한 성녀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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