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139화
악몽 (1)
나는 손수 차를 우려낸 뒤에, 그녀에게 건넸다.
언젠가의 ‘그날’과 같은 구도. 그리고 같은 행동이었다.
그녀가 자신의 앞으로 밀어진 찻잔에 손가락조차 가져다 대지 않는 것 역시도.
“화전민 마을에서 뵈었던 이후로 처음이었던가요?”
성녀가 왕궁에서 지내던 그간, 대화라고 할 만한 것은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같은 장소에서 지낸다 하더라도 두 사람 사이의 접점이 없었던 탓이다.
그러니 이 대화도 어색한 침묵만큼이나 오랜 시간만이었다.
……그리고 아마 두 사람의 대화도 오늘이 마지막이리라.
“오늘, 사절단과 함께 본국으로 돌아가신다고 들었습니다.”
“네.”
“스스로 생각하시던 답은 찾아내셨습니까?”
나는 마음에도 없던 질문을 던지며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이 땅에 남은 이유.
즉, 드워프라는 존재에 대한 검증이 끝났느냐고 물은 것이다.
그러자 성녀는 머뭇거리는 것처럼 입술을 오므리더니,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요.”
“그렇군요.”
절로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이 느껴졌다.
내 생각에는 그녀가 거짓말에 능숙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대답을 마친 지금에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미세하게 입술을 떨고 있었으니까.
“신성제국의 교황께서 이 정도면 충분하다 하시던가요?”
“……!”
순간, 살짝 내리깔아져 있던 성녀의 고개가 휙 들렸다.
“……알고 계셨나요?”
그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에서는 정곡을 찔린 사람의 그것이 훤히 드러나 있었다.
“당연한 말씀을 하시는군요. 고작 드워프들의 사상을 검증하는 일 따위로 신성제국의 성녀를 이곳에 둘 이유는 없으니까요.”
“아…….”
당연히 이곳에 남기 위해 둘러댔던 앞선 이유는 핑계일 뿐이었다.
그것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애초에 정말로 그들을 검증하고자 했다면, 구태여 왕궁에 있지는 않았을 테니까.
‘그렇다면 남은 이유는 한 가지.’
그들의 비밀을 쥐고 있는 에스테반이라는 땅을 감시하기 위해서.
또는 드워프가 아닌 ‘나’라는 사람을 검증하기 위해.
그리고 만약 성녀에게 그런 것을 부탁할 만한 사람이 있다면…….
‘……아마도 교황이 유일하겠지.’
그녀의 자유분방한 성격 뒤에 교묘하게 가려낸 수법이었으리라.
뭐, 애초에 그녀는 첩자의 일을 할 만한 인재는 아니었으니 별다를 건 없었지만.
나는 다리를 꼬며 여유롭게 입을 열었다.
“그렇기에 저는 성녀님께 질문을 드렸습니다.”
“……스스로 생각하던 답을 찾았느냐, 라고.”
“예, 그렇습니다.”
그래.
그것은 화전민 마을에서 있었던 질문의 연장선이었다.
처음부터 그따위 거짓된 사정 따위, 내 안중에는 없던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여쭙겠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처음으로 두 시선이 정면으로 얽혀 들었다.
“성녀님께서 내리신 답은 허물밖에 남지 않은 권세가 우선입니까? 아니라면 놈들의 야욕을 꺾는 것이 우선입니까?”
“…….”
짧은 침묵이 흘렀다.
마침내, 질문의 끝에서 닫혀 있던 성녀의 입이 열리기 시작했다.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알 것 같아요. 전하께서 하신 그 질문의 의미를.”
“그렇습니까?”
“전하께서는 성국이 잘못된 선택을 내렸을 때, 제게 그것을 막아 달라고 말씀하신 것이지요?”
“호오, 어찌 그렇게 생각하셨습니까?”
나는 짐짓 정답을 알 수 없을 듯한 말투로 되물었다.
어쩌면 어린아이에게 방향을 알려 주는 듯 어르는 것처럼 들리기도 했다.
그러자 성녀는 혼란스러운 듯, 그럼에도 확고하게 생각을 정리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 갔다.
“지금 성국의 적은 연방제국과 전하께서 말씀하신 강경파예요. 실제로 그들이 행동에 나섰다는 것을 직접 보기도 했으니까요.”
“화전민 마을에 수작을 부린 것은 시작에 불과할 테지요.”
“……하지만 저는 알아요. 성국의 대사제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
그들은 철저하게 이익에 의해 움직이는 집단이었다.
신을 믿는 사제들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그리고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것은 그곳에서 자라고 많은 것들을 보아 온 성녀이리라.
“아마 그들은 강경파의 일보다 도망친 온건파들을 잡는 것이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커요. 정작 그들은 전하께서 말씀하신 대로 조용히 여생을 살기를 원할 텐데 말이죠.”
“예, 정답입니다.”
나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며 그 말이 정답이라고 말해 주었다.
그것이 더욱 쉽고 많은 영광을 누리게 해 주니까.
이익으로 모든 일을 재단하기에, 정작 중요한 사실들을 놓치게 된다는 소리였다.
실제로 미래 신성제국의 그런 오판 탓에 강경파의 세력은 날로 커져 연방제국의 큰 힘이 되어 주었다.
설상가상으로 놈들에 의해 드러난 ‘진실’은 이어지던 토벌의 대의조차 잃게 만들었지.
이에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것은 당연히 신성제국이었다.
아니, 신성‘연방’이라 해야 할까?
‘물론 그것 역시도 녀석들의 업보에 불과하지만.’
결국 죄 없는 마법사들을 악마의 하수인으로 몰아간 처음의 행동이 모든 시초였으니까.
그렇다고는 해도 회귀 전의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온건파가 강경파에 합류하게 되는 순간부터 그 피해는 고스란히 전쟁으로 드러나게 될 테니까.
“그것을 이해하셨다면 충분합니다. 적어도 그 질문의 답이 정해졌다는 뜻이니까요.”
“……그 전에, 전하께 여쭙고 싶은 것이 있어요.”
“말씀하십시오.”
일전에 미뤄 두었던 신성제국의 ‘비밀’을 물을 것일까?
그게 아니라면 강경파의 정체를 물을 것인가.
나는 속으로 성녀가 내던질 질문을 예측하며 눈을 빛냈다.
그러나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은 내 예상과 전혀 상반된 것이었다.
“꼭 전하께서 그들을 베어 내셨어야만 했나요?”
“그들이라면…… 반란에 연루된 귀족의 식솔들을 말하는 것입니까?”
“네.”
그렇게 말하는 성녀의 표정은 무척이나 단호해 보였다.
……그렇군 이것만큼은 교황이 아닌 성녀의 의지로 묻는 건가?
나는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참으며 말했다.
“그들은 반드시 제 손으로 베어 냈어야 하는 이들이었습니다. 그뿐입니다.”
“…….”
“그것이 저의 바람, 그리고 의무였기 때문입니다.”
단지 그것뿐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성녀의 고개는 작게 끄덕여졌다.
“전하께서 말씀하신 것들은 잘 새겨 둘게요. 성국이 또다시 실수를 범하지 않도록…….”
“잘 생각하셨습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언제나 우선순위를 생각하십시오. 눈앞의 욕망만 좇았다가는 언젠가 큰 화를 입게 될 것입니다.”
“……욕망.”
“그럼 언젠가, 다시 뵐 날을 기다리지요.”
그것이 내가 그녀에게 주는 마지막 조언이었다.
정확히는, 그 뒤에 있을 교황에게 주는 충고였다.
* * *
끼이익-
“왔군.”
긴 침묵이 이어진 끝에 집무실로 찾아온 것은 조지였다.
조지는 책상 위에 올려진 찻잔 두 개를 말없이 응시하다가, 내 쪽으로 다가왔다.
“신성제국의 사절단은?”
“방금 돌아갔습니다. 성녀도 함께요.”
“그렇군.”
그들은 곧 신성제국에 도착해, 이곳에서 느낀 점들을 진지하게 논의할 것이다.
가르덴 대사제도. 그리고 성녀 역시도.
그리고 그것은 곧 저들로 하여금 나라는 존재가 각인되게끔 만들어 주는 장치가 될 터였다.
에스테반에는, 이 모든 상황을 설계한 내가 존재하고 있다고…….
“뭐, 제아무리 방해꾼들이 날뛰어 봤자 소용이 없다는 뜻이겠지.”
툭-
나는 마치 장난을 치는 것처럼 가볍게 찻잔을 손가락으로 밀었다.
그러자 잔이 책상 아래로 굴러떨어지며 그 속에 담긴 액체가 흥건하게 쏟아졌다.
그 순간이었다.
스으윽-
놀랍게도 액체가 닿은 책상과 바닥의 카펫이 검은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누가 봐도 그 액체는 찻물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나와 조지의 눈은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
“찻잎을 가지고 왔다던 시녀장의 조사는 어떻게 되었지?”
“이미 2주 전에 시녀의 일을 그만두고 왕궁을 떠난 것으로 처리되어 있었습니다. 실제로 고향에서 여유를 즐기고 있었고요.”
“그 말은 누군가가 내부에서 정보를 교란했거나…….”
“마법으로 시녀장의 모습을 사칭했다는 셈이 되겠죠.”
그렇게 뒷말을 가로챈 조지가 씨익 웃었다.
“뭐, 어쨌거나 2왕자파의 소행인 것은 틀림없지만요.”
부식독.
명백한 독이지만 이것을 먹는다고 해서 사람이 죽을 리는 없었다. 카펫이 녹아내리지 않는 것을 보면 확실했다.
다만, 내부의 장기가 상하는 것만은 막을 수 없으리라.
‘1왕자와 대화를 나누던 성녀가 다치는 수준.’
……딱 그 정도의 치명상.
그것이 아마 녀석들이 바라 마지않던 ‘해프닝’의 수준이었겠지.
그래야만 큰 파문을 일으키고도 간신히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을 테니까.
‘그것을 문제 삼는 것으로 내 입지에 흠집을 내려 했나.’
유치하면서도 썩 발칙한 발상이었다.
이젠 남은 것이 없기에 이렇게까지밖에 못하는 상황에.
절로, 웃음이 나올 정도로 말이다.
“어쨌거나 독을 사용한다는 계략이 통하지 않았으니, 그 뒤에 할 일은 뻔하겠군.”
“그렇겠죠.”
사실상 정치로는 어떻게 할 수 없다는 패배 선언이었다.
그렇게 말하는 내 기감 속으로, 은밀한 기척들이 감지되기 시작했다.
숫자는 다섯.
모두 최소한 오러를 능숙히 다룰 수 있을 정도의 실력자였다.
나는 넘어뜨리지 않은 다른 한 잔을 어루만지며 천천히 입꼬리를 올렸다.
“마침내 움직이기 시작했나.”
……윌리엄 공작.
“슬슬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지. 나가 있도록.”
“치우기 어렵게만 하지 마십쇼.”
끼이익-
조지는 그렇게 군말 없이 자리에서 벗어났다.
아무래도, 오늘 왕궁의 밤은 평소보다도 길어질 것 같았다.
* * *
“놈의 수하가 떠났다.”
집무실 창문의 안쪽이 간신히 비칠 정도의 거리.
다섯 명의 암살자들은 복면 속에 가려진 눈을 번뜩이며 자세를 낮췄다.
어찌나 은밀했던지 그들이 있는 장소를 지나는 기사들조차 눈치채지 못할 정도였다.
“그렇다면 주변에 있는 인물은?”
“없다. 한 명도.”
왕궁에서 왕족을 암살하는 일은 무척이나 큰 리스크를 동반한다.
게다가 그 상대에게 정적이 있는 상황이라면 배후를 지목하기도 쉬운 법.
그러니 가장 쉬운 암살 방법은 그 어떤 목격자도 남기지 않고 시체를 회수하는 것이었다.
말 그대로 행방불명이 되는 것이다.
‘……나쁘지 않군.’
그런 의미에서라면, 지금 이 상황은 가장 적기라고 할 수 있었다.
1왕자는 곧 죽을 운명도 모르고 여유롭게 앉아 있을 뿐이었으니.
스윽-
슥-
암살자들은 수신호를 교환했다.
그러고는 천천히 어둠을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습격의 신호였다.
“…….”
샤샤샥-
그렇게 순식간에 집무실 창문과의 거리를 좁히는 암살자들의 눈은 어느덧 욕망으로 번뜩이고 있었다.
‘선수금 1억 골드. 그리고 암살에 성공하면 추가적으로 1억 골드를 준다고 했던가?’
‘확실히 천문학적인 금액이다. 영지 하나를 사고도 남을 정도로……!’
‘하지만 이래서야 예상보다 더욱 수월하겠군.’
일 년 전에 암살을 시도했던 길드의 살수들은 전멸했다고 들었다.
그러니 절대로 방심하지 말라는 충고까지 들었지.
그러나 그것은 뒷골목 암살 길드 따위의 잔챙이였기에 벌어진 실수였다.
반대로 자신들은 전원이 ‘고위 엑스퍼트’급으로 구성된 대륙 최강의 용병 살수 집단이었으니까.
‘그깟 놈들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라는 뜻이지.’
그 증거로 1왕자란 녀석은 창문 앞까지 도착한 자신들의 존재를 아직까지도 눈치채지 못했다.
이미 실력부터가 압도적으로 차이가 난 것이다.
‘돌입한다.’
작게 열린 창문의 틈 사이로 성인 남성 다섯의 몸이 물 흐르듯 통과했다.
마치 그림자와 같은 움직임이었다.
이윽고 목표물을 향해 비수를 꽂는 움직임은 미세한 소음조차 만들어 내지 않았다.
‘죽어라!’
푹!
비수의 끝이 녀석의 몸통을 파고들었다.
그렇게 뿌리까지 관통한 비수가 뽑혀 나온 순간까지도 집무실 내부에는 어떠한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어떠한 증거조차 남기지 않은 암살이 성공한 것이다.
‘……!’
그러나 이상했다.
응당 느껴졌어야 할 피부의 감촉은 온데간데없고, 마치 허공을 휘적거리듯 어떠한 저항도 느껴지지 않았다.
무척이나 기이한 예감에 눈을 감았다 뜬 순간, 어느덧 눈앞에 있던 1왕자의 모습은 사라진 뒤였다.
서걱-
……그리고 동시에 암살자들의 목이 하늘을 날았다.
그런 그들의 의식이 남아 있기 전에 마지막으로 본 광경은, 연기처럼 나타나고 있는 1왕자의 모습과 그의 입술이 내뱉고 있는 말뿐이었다.
“오래 기다렸군.”
그가 기다려 온 것은, 2왕자파가 본격적으로 움직이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