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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140화 (140/223)

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140화

악몽 (2)

“……그게 무슨 소립니까?”

2왕자, 알베도 에스테반.

시종일관 친근한 태도로 웃음이라는 가면을 뒤집어쓴 그였으나, 지금만큼은 그 평온한 모습을 유지할 수 없었다.

“들은 대로다.”

“말해 보십시오. 그게 무슨 소리냐고 물었습니다.”

“네 형에게 암살자를 보냈다고 말했다.”

“……그딴 더럽고 치졸한 방법이 당신이 원하던 결과였습니까?”

딱딱하게 굳은 알베도의 질문이 그의 외조부에게 쏘아 붙여졌다.

그런 알베도의 두 주먹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떨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 오만한 입에서 흘러나온 중후한 목소리는 알베도의 머리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 뿐이다.

“알베도 에스테반, 이렇게 될 것을 네놈이 몰랐다고 하지는 않겠지.”

“…….”

“더럽고 치졸한 방법? 이제 와서 도덕성과 정당함을 논하다니 어불성설이다.”

“…….”

윌리엄 공작의 이죽거림에도 알베도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사실 그도 알고 있었다. 이미 후계자 싸움이라는 진창에 발을 들인 순간부터 씻을 수 없는 오물을 온몸에 묻힌 것이나 다름없었으므로.

“지금의 녀석은 그 입지를 완벽하게 굳혀 놓은 상태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

“형제간의 우애 따위에 목을 매지 마라. 네놈에게 주어진 명령은, 네 형의 목을 물어뜯고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었으니까.”

“……돌아가겠습니다.”

알베도는 대답을 듣기도 전에 다급히 몸을 돌려 문을 빠져나가려 했다.

그러나 그 순간, 등 뒤에서 공작의 음성이 날아들었다.

“아쉽게도 녀석을 암살하라는 명령은 실패한 것 같더군.”

“…….”

……실패했다고?

자리에 우뚝 멎은 알베도의 고개가 천천히 돌아갔다.

“형님께서 건재하시다는 말입니까?”

“그래, 놈이 살아 있다는 것을 방금 전에 확인했다. 아쉽게도 말이지.”

후우-

윌리엄 공작은 손에 들린 담배를 깊게 태운 뒤에 턱 끝을 까닥였다.

그런 공작의 두 눈은 공허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멋대로 행동하는 것은 거기까지다. 자리에 앉아라, 알베도 에스테반.”

너무도 거만하고, 위압적인 행동이었다.

어쩌면 그 말 한마디가 남자의 오만한 일면을 모두 드러내는 것만 같았다.

“…….”

하지만 그럼에도 2왕자의 발은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눈앞에 똬리를 튼 오만에 기가 질릴 정도로 나약한 사내는 아니었으므로…….

오히려 곧 죽었으면 죽었지 ‘바람’이 꺾일 일은 없었다.

“……쯧, 건방지게 행동하기는.”

상석에 앉아 있던 공작의 입이 열린 것은 그다음이었다.

“분명 방심하지 말라고 일러두었거늘, 아무런 소란조차 일으키지 못한 것을 보면 손가락 하나 닿지 못한 모양이지.”

“암살자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패배자들의 말로 따위에 내가 관심을 가져야 할까.”

착-

공작은 턱을 괴고 있던 손을 뻗어, 품속에 있던 서류 봉투를 바닥으로 내던졌다.

봉투는 힘없이 밀려나더니, 곧 우두커니 서 있던 2왕자의 다리에 가로막혀 움직임을 멈추었다.

시선을 내리는 것으로 서류 봉투를 흘겨본 알베도는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은 채로 말했다.

“이게 뭡니까.”

“오늘, 네 이름으로 추진된 결의안이다. 본래 암살이 성공했다면 필요는 없었겠다만, 지금은 아닌 모양이군.”

……결의안.

이딴 거창한 것을 그가 작성했을 리는 없었다.

그렇다는 말은 눈앞의 저 남자가 벌인 짓이라는 뜻이었다.

알베도는 차가운 눈으로 그것을 집어 들었다.

“……!”

그리고 가장 먼저 보이는 단어는 ‘여론’과 ‘처벌’이었다.

무언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는지…….

이에 눈 끝을 파르르 떨며 서류 봉투의 끝을 뜯어낸 알베도는 곧 드러난 서류의 대목에 이를 악물었다.

“어째서입니까?”

……결의안의 발표는 내일.

2왕자의 이름을 뒤집어쓴 만큼, 어지간한 사태보다 빠른 회의 일정이 일정이었다.

공작은 비죽 입꼬리를 올리며 흡족하게 웃었다.

“지금이 아니면 더는 돌아올 기회가 없을 것이다. 이것은 네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명심해라.”

“…….”

네가 아니라 ‘내’게겠지.

결국 이 싸움에서 이득을 보는 것은 자신이 아니었으니까.

그렇게 역겨움을 떨쳐 내던 그 순간, 더러운 욕망을 발산하며 목을 옥죄여 왔던 목소리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명심하라.

-너는 내가 시키는 대로만 행동하면 될 것이다.

그리하면 네가 원하던 진정한 자유를 약속하마.

그렇게 악마의 목소리와 같던 세뇌는 정해진 순리를 망가뜨리고 악의 길을 걷기를 종용했다.

거부할 이유는 없었다.

그는 처음부터 순리에서 벗어난 실패작이었으니.

“…….”

알베도는 손에 쥔 서류가 구겨지는 것도 모르고 서 있었다.

“……이번이 마지막입니다. 이번 시도조차 무산되면 더 이상 왕좌에 욕심을 부리지 마십시오.”

“좋아, 똑똑하군.”

뚜벅- 뚜벅-

그렇게 대답조차 듣지 않은 채로 방을 빠져나가는 발걸음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그리고 공작 역시 이를 붙잡지 않았다.

그에게 주어진 용건은 거기까지가 끝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이상 왕좌에 욕심을 부리지 말라고?”

홀로 남은 윌리엄 공작은 중얼거렸다.

그러고는 이윽고, 자문자답하듯 허공에 정답을 내뱉었다.

“그럴 수는 없지.”

그런 공작의 표정은 무척이나 고양되어 있었고, 또한 짙은 욕망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오래 기다렸던 만큼이나 준비는 완벽했다.

암살이 실패한 일은 아쉬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수단 중 하나에 불과했다.

그에겐 아직 이번 결의안을 통한 비장의 한 수가 있었으니.

……그래. ‘그다음’에 있을 최후의 계획을 위해서.

“이대로는 더 힘들어질 뿐이다. 질질 끌 수는 없지…… 빨리 종지부를 찍어야 해.”

그것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던 정답과도 같았다.

***

덜컥-!

“왔군.”

“크, 큰일 났습니다……!”

길었던 밤이 끝나고 아침이 되자, 비도르 남작은 호들갑을 피우며 집무실로 들어왔다.

그러다 이내 무언가 이상한 것을 감지했는지 문 앞에 서성이며 코끝을 쫑긋거리기 시작했다.

“음? 이 냄새는…….”

“가만히 서 있지 말고 들어오도록.”

“아…… 예, 알겠습니다.”

찰나에 느껴진 비릿한 피 냄새에 남작의 얼굴이 굳어졌으나, 나와 조지의 태연한 모습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가왔다.

어느덧 희미하게 남은 그 향을 단지 착각이라고 치부한 모양이었다.

“아, 아니…… 이럴 때가 아니지…….”

남작은 그렇게 정신을 차리고는 무언가를 들어 다급하게 내게로 건넸다.

“2왕자파에서 기습적인 결의안을 발표했습니다. 그것은 오늘 아침에 수도 전역에 배부된 서면입니다.”

“그렇군.”

서면이라…….

암살까지 실패한 지금, 저들이 할 수 있는 공격에는 뭐가 있을까?

나는 흥미롭게 그것을 받아 들고 그 내용을 확인해 나갔다.

“……호오.”

그러고는 눈썹을 살짝 들어 올리며 감탄했다.

그 내용이 무척이나 재미있었던 까닭이었다.

“오호라, 국정 관리 자격의 파면을 요구하는군요.”

어느덧 등 뒤로 다가온 조지 역시도 턱을 쓰다듬으며 감탄사를 남겼다.

자격의 파면.

쉽게 말해, 사실상 왕족의 이름을 상실한다는 것.

놈들이 요구한 것은, 다름 아닌 ‘1왕자’의 실각이었다.

“그렇군.”

책상 위로 서면을 내려놓은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마치 타인의 일을 대하듯 무신경한 태도였다.

그러자 남작은 펄쩍 뛰며 상황의 심각성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저, 전하…… 이것은 ‘그렇군’이라는 말로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저쪽에서는 이제 더 이상 모습을 숨기지 않기로 한 것입니다!”

파격적인 만큼이나 잡음이 많았던 내 행보를 대놓고 공격하려 든다는 것.

그리고 ‘파면’이라는 초강수를 두며 여론을 움직이기 시작한 것.

그건 말 그대로 전면전을 벌이겠다는 뜻과도 같았다.

성공하면 왕위를 얻을 수 있을 것이고, 실패하면 스스로 자멸하게 되는…… 그런 전쟁을.

하지만 이미 이런 미래를 염두에 두었던 내게는 그저 일어나야 할 일이 일어난 것에 불과했다.

“애초에 놈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정해져 있었지. 그깟 결의안 따위 인제 와서 호들갑을 떨 만한 일은 아니다.”

“……전하.”

“뭐, 그렇다고는 해도 궁금하기는 하군. 과연 녀석들이 준비한 선물이 무엇인지 말이야.”

도대체 어떤 핑계를 들며 파면을 요구한 것일까?

대충 예상은 가지만 과연 어디까지 나왔을지가 흥미로웠다.

나는 일단은 설명해 보라는 듯 흥미롭게 턱 끝을 쓰다듬으며 눈짓했다.

한 번 정한 결정은 번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기에, 결국 남작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기 시작했다.

“후우…… 2왕자파에서 주장한 내용은, 이대로 전하께서 군주의 자리에 오르면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보다는 알베도 녀석이 군주의 자리에 더 어울린다는 주장이군.”

“그렇습니다.”

이후 남작이 설명한 내용은 대략 적으로 이랬다.

첫째, 군중들의 앞에서 무참히 살인을 저지르는 잔혹함.

둘째, 신하들과의 상의도 없이 국정의 일을 결정짓는 독단적인 행동.

마지막으로 셋째, 그 기회조차 똑바로 활용하지 못하는 무능력함.

……그런 것들로 미루어 보아서, 내가 그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했다는 것이었다.

‘반박할 가치조차 없군.’

나는 설명을 들은 뒤에 헛웃음을 지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리고 그런 내 뒤에서, 조지의 의아한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첫째랑 둘째는 대충 이해하겠는데 셋째는 뭐랍니까?”

“이해한다니…… 자네가 그것을 이해하면 안 되지 않은가…….”

“뭐, 아무튼요.”

“……크흠! 어쨌든 지금까지 보여 주었던 결과들이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선동하고 있다는 뜻일세.”

이를테면…… 쓸모없다고 알려진 갈데르드 평야를 보상으로 받은 것.

그리고 이후 신성제국과의 협의를 통해 연방제국이라는 존재를 완전히 등지게 된 것.

그 외에도 아직 결과가 뚜렷하게 나오지 않은 사항들을 통해 내가 무능하다 치부하며 선동한 것이다.

물론 현상을 본다면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겠지만, 그런 것을 일반 서민들이 알 리가 없었다.

심지어 대부분은 비밀리에 진행하기 위해 정보를 감추기도 했으니까.

즉, 부족한 2왕자파의 입지를 시민들의 지지로 채우겠다는 뜻이었다.

‘재미있군.’

백성을 속인다…….

윌리엄 공작다운 수작이었다. 그는 전생에서도 오만한 행태를 보이며 평민들을 개돼지로 보기로 유명한 자였으니.

그 탓에 아수스의 정략에 말려 시민의 지지가 떨어져서 실각했던 전생을 떠올리면, 지금 시민의 여론을 모아 나를 실각시키려는 작전을 생각했단 것이 무척이나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어차피 걸어온 싸움을 피할 생각은 없었다.

애초에 녀석들이 날뛰는 상황을 유도한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었으니.

“여론은 어떻게 되었지?”

“귀족들 사이에서는 쉬쉬하고 있는 분위기지만, 시민들은 이미 동요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렇군.”

가뜩이나 후계자 싸움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가운데.

1왕자가 범죄자들을 처형하는 것을 직접 눈으로 보았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뭐, 이조차도 계산 내지만.’

상식적으로 결의안 따위로 왕위를 결정짓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애초에 녀석들도 그것을 알고 있었겠지.

아마 이것은 시선을 돌리기 위한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이것이 놈들이 준비한 발악의 끝은 아닐 테니까.

아무튼 녀석들이 움직이기 시작한 이상 이제 가만 놔두지 않을 생각이다.

“아버님을 만나 뵈어야겠군.”

나는 여유롭게 자리에서 일어나며 중얼거렸다.

연기가 피어올랐으니, 슬슬 감추어진 굴속에서 튀어나온 쥐새끼들을 처리할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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