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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141화 (141/223)

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141화

악몽 (3)

활기찬 수도의 거리는 기묘한 분위기로 뒤덮여 있었다.

삭막해진 공기. 피부를 타고 흐르는 일촉즉발의 긴장감.

촤륵-

“…….”

문득, 그곳을 걷던 남자의 구두로 길거리에 나뒹구는 서면 한 장이 채였다.

검은 양복을 입은 사내는 그것을 한참이나 내려다보다 자세를 낮추어 집어 들고는 입꼬리를 끌어당겼다.

“여론전이라…….”

수도 전역에 뿌려진 호외는 이제 누구라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널리 퍼진 뒤였다.

그래서 백성들의 의견도 분분해졌다.

그간 왕자의 활약을 생각하며 보류하는 부류, 매국 행위를 한 이들을 생각하며 격하게 반응하는 부류, 그리고 여론에 휩싸이는 부류까지.

그렇기에 무척이나 혼란스러운 정국이다.

저들의 지지를 등에 업는다는 전략이 ‘절반’ 정도는 성공한 셈이었다.

……아니.

“어쩌면 절반이 아니라 전부라고 할 수도 있겠지.”

남자는 다시금 발을 떼며 서면을 아무렇게나 날려 보냈다.

이내 바람을 타고 날아간 그것은, 그 누구의 무관심 속에서 더러워진 수도의 바닥 한편을 장식하는 쓰레기가 될 뿐이다.

그 순간 남자의 뒤로 검은 로브의 인영이 그림자처럼 은밀하게 다가왔다.

“두고 보셔도 되겠습니까?”

“무슨 소리지?”

“1왕자는 좋은 사업 파트너입니다. 이대로 그가 무너진다면 저희에게도 좋지 않은 것이…….”

“무너져? 그 남자가?”

크흐흐흐.

기괴한 웃음소리가 회색빛의 거리와 어우러져 스산함을 이끌어 냈다.

그리고.

“말도 안 되는 소리.”

……일축이었다.

그것은 남자가 지금까지 보인 적 없던 ‘확고한’ 태도였고.

어찌 그렇게 생각하는 걸까?

검은 로브의 인영은 의아한 듯 남자를 바라보았다.

계속해서 의미심장한 모습으로 웃던 남자는 발걸음을 멈춘 채로 페도라(Fedora)의 챙을 바짝 잡아당겼다.

“확실히…… 최후를 상정한 만큼이나 효과적인 방법이었지. 2왕자파의 움직임을 알고 있어도 여론의 변화는 막을 수 없을 테니까.”

결과론적인 이야기이긴 해도 실제로 여론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지 않은가?

전적인 신뢰를 받던 그의 이미지가 깨진 것만으로도 대성공이었다.

신성제국과 아수스의 일로 정신이 없었을 1왕자를 공격하기에 가장 적합한 수법이었으리라.

다만…….

“애초에 그 1왕자가 호락호락하게 무너질 리가 없다.”

남자는 1왕자의 서늘한 눈빛을 잊을 수 없었다.

고고한 한 마리의 맹수.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는 스스로도 알지 못했으나, 이런 상황이라 한들 눈 하나 깜빡할 사람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이 상황도 유도했으리라는 얼토당토않은 믿음이 생길 정도다.

결국 진정한 맹수의 앞에서는 매서운 들개조차도 한낱 승냥이에 불과하니까.

‘뭐, 우리의 힘을 사용하면 이깟 여론쯤은 가볍게 뒤집을 수 있겠지만…….’

적어도 자신이 생각하는 1왕자는 그것을 달갑게 여기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이 판도조차 자신이 주도하고, 원하는 만큼 깨뜨리겠지.

……언젠가 자신들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두고 봐도 좋을 것이다.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되겠군.”

뚜벅- 뚜벅-

“…….”

재차 이어진 발걸음은 의문만을 남겼고, 그렇게 한적한 거리를 거니는 두 인영은 침묵으로 일관할 뿐이었다.

사내의 검은 양복 사이로 희미한 빛이 흘러나온 것은 그 순간이었다.

“……그건.”

“양반은 못 되는군.”

품에서 나온 것은 통신용 마법구였다.

그리고 그 화려한 마나의 빛에, 모자의 챙 사이로 그늘져 있던 남자의 얼굴이 드러났다.

“그가 또 어떤 먹잇감을 던져 줄까.”

충혈된 눈을 제외하고 모든 부위를 감싼 붕대.

“이번에도 돈이 되었으면 좋겠는데.”

1왕자의 손짓에 또다시 음지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사실을 2왕자파가 알 수 있을 리는 없었다.

* * *

에스테반의 왕실은 혼란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냈고, 1왕자를 지탄하는 목소리는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었다.

“1왕자를 청문회에 세워야 하오! 그를 언제까지고 두고 볼 수만은 없소!”

“옳소! 그 폭거는 에스테반에 커다란 흉이 될 것이오!”

연신 울려 퍼지는 귀족들의 외침.

거기에 동조하는 귀족들 역시 날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었다.

오죽했으면 여론을 의식한 1왕자파의 귀족들이 역으로 숨죽여 사태를 관망하고 있었을까.

“어떻게 안 되겠소?”

“이대로면 시민들도 동조하여 일어나게 될 것이오.”

“그렇다고 해도 그딴 헛소리에 어찌 반박해야 한단 말이오? 이미 드러난 업적조차 무시하고 있는 마당에…….”

“다른 방법이 필요할 것 같소. 얼토당토않은 선동에 대응한다 한들 이미 시민들은 불안을 느끼고 있으니.”

1왕자파의 귀족들은 불안감을 토로했다.

물론 이렇게 상의하는 일 역시도 우스웠다. 드워프를 데려오고 북부 야만족의 땅을 일부 점령하는 등의 업적들을 남긴 1왕자를 지탄하는 것 자체가.

하지만 때로는 진실 그 자체가 불편한 법.

반대급부로 드러난 일부 여파를 부풀리는 일은, 무척이나 효율적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최근 공식 석상에도 모습을 드러내고 계시지 않으시니…….”

결국 그 상황에서 1왕자파의 귀족들이 선택한 것은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직접 상의하는 것이었다.

다름 아닌.

“그를 찾아가 봐야겠소.”

“그라면…….”

“비도르 남작이오.”

귀족들의 굳은 얼굴이 끄덕여졌다.

1왕자의 최측근이자 수족인 그라면, 이 상황에 대한 1왕자의 생각과 그 해결법을 함께 논의할 수 있으리라.

고작 남작급 귀족에게 상황을 맡겨야 하는 이 상황이 짐짓 우스울 수 있었으나 그것은 현 상황에서 논외였다.

……그러나.

“뭐라?! 아무런 상의도 없이 돌려보냈다는 말이오?”

“그렇소.”

비도르 남작은 괜찮을 거라는 말만을 반복하며 귀족들을 돌려보냈다.

하다못해 직접 1왕자를 만나 뵙게 해 달라는 부탁조차 들어주지 않은 것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2왕자파는 움직이고 있거늘…….”

“어떠한 대응조차 보여 주지 않으시는 것인가……!”

그렇게 1왕자파의 귀족들이 불안감에 질려 있던 그때였다.

“그, 급보요!”

“급보?”

“1왕자 전하께서 드디어 목소리를 내셨다고 하오! 왕실의 공표요!”

“왕실의 공표라고!”

“오오……! 드디어!”

1왕자가 움직였다.

그것도 개인이 목소리를 낸 것이 아닌 왕실의 이름을 빌렸다는 것.

그 말인즉, 이 사안을 단순한 해프닝이 아닌 후계자 정쟁의 일환으로 받아들이겠다는 말과도 다르지 않았다.

말 그대로 칼을 뽑아 들은 것이다.

“전하께서는 뭐라고 하셨소?!”

“어디 한번 봅시다!”

귀족들은 앞다투어 공표의 내용을 확인해 나갔다.

그리고 동시에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

“이건…….”

그래.

공표된 내용은 2왕자파가 내세운 결의안에 저항하지 않는.

-직접 청문회의 자리에서 혼란을 바로잡겠다.

……그저 그 운명에 순응하는.

그런 자리를 만들겠다는 내용뿐이던 것이었다.

귀족들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 시점에서 저들의 요구를 들어주다니…… 무언가 힘이 빠지는 공표구려.”

그렇게 허탈함과 실망을 느끼기도 잠시.

한 귀족이 발표된 내용에서 무언가 이상한 글귀를 발견했다.

“음? 그런데 이것은 대체 무슨 뜻이오?”

“글쎄…….”

-수도에 상주 중인 귀족들은 반드시 청문회에 참여할 것.

무언가 기묘한, 언뜻 의미심장한 내용이었다.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필참이라는 말을 언급하는가?

“일단 참여해 봅시다. 지금까지 보여 주셨던 전하의 모습이라면 무언가 생각이 있지 않으시겠소?”

“……알겠소.”

그렇게 1왕자파의 귀족들은 의아해하면서도 참여를 결정했다.

필참이라는 이례적인 언급도 그러했지만, 이 상황 자체가 기이하게 흘러간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눈치챈 것이다.

마치, 그곳에서 무슨 일이 터질 것만 같은 것처럼…….

또한 청문회에 관한 사실은 2왕자파에게도 전해진 지 오래였다.

“됐다!”

“1왕자를 청문회의 자리까지 세우는 데에 성공했군!”

귀족들은 환호했다.

청문회라는 자리는 결코 가볍지 아니한 것.

그곳에 서는 입장이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명성에 흠집을 내는 데에 성공했다는 증거였다.

이렇게 순순히 요구에 응한 것은 이해가 가질 않았지만 말이다.

“……뭐, 여론의 질타를 변호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겠지.”

“그렇다고 해서 해결이 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결의안의 내용 중 대부분은 과장된 것이었기에 어떻게든 해명할 수 있다고 해도,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은 분명 있었다.

이를테면…… 갈데르드 평야에 관련된 것.

“우리는 계획대로 그 부분을 집중적으로 노린다.”

2왕자파의 작전은 처음부터 거기에 있었다.

해명할 수 있는 부분은 원하는 대로 하게 내버려 두고, 해명 불가능한 부분을 집중적으로 노려 이미지를 실추시킨다.

어차피 여론은 부정적인 것만을 기억할 테니까.

“청문회의 개최는 4일 뒤라…….”

귀족들은 몸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끼며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정말로 기대되는군.”

무조건 걸릴 수밖에 없는 함정.

결국 그 하찮은 평야의 쓸모를 입증할 방법은 놈에게 존재하지 않으리라.

* * *

4일이라는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큰 소란이 진행되고 있는 탓일까? 엄숙한 분위기의 대전은 오늘따라 유난히 침묵만이 감돌았다.

……뭐, 그보다는 양측 모두 말을 아끼고 있다는 말이 옳겠지만.

“핀잔을 늘어놓던 귀족들이 꽤 보이지 않는군.”

나는 청문회에 참석한 귀족들의 면면을 살피며 무심하게 말을 내뱉었다.

내가 말하는 그것이 ‘2왕자파’의 귀족들을 칭한다는 사실을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이 모를 리는 없었다.

“급히 움직이느라 바쁜가 보지.”

“…….”

“크흠!”

간혹 드문드문 튀어나오는 것은 청문회에 참여한 2왕자파의 귀족들에게서 나오는 소리였다.

비록 원하는 대로 청문회를 열기는 했다만, 그들은 조금이라도 유리하게 여론을 움직이기 위해서 아직도 선동을 이어 가고 있었다.

다만, 그중에서도 의외의 얼굴이 보이는 것은 내 착각이 아니었으리라.

‘윌리엄 공작.’

……이 모든 사태의 시초.

그 노쇠한 얼굴을 보는 것은 얼마 만일까? 과거의 찬란한 금빛 기개는 하얗게 빛바래졌고, 얼굴은 욕망으로 주름졌다.

오랫동안 공식적인 자리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거늘 오늘만큼은 친히 모습을 드러낸 모양이다.

‘내 일그러진 표정을 보고 싶었나?’

나는 조용히 나를 바라보고 있는 남자와 시선을 마주하며 한참을 서 있었다.

무척이나 질긴 시선. 그 기대감이 내게도 선명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그렇게 되도록 만들어 줄 수는 없겠지.

쿵 쿵-!

“조용히 하도록.”

아버님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귀족들의 몸이 움츠러들었다.

“그대들의 요청으로 1왕자, 알렌 에스테반의 국정 운영 자격에 관한 청문회가 열렸다.”

중요한 안건답게 이 안건을 담당한 것은 아버님이셨다.

결코 공적인 자리에서 사적인 감정을 담지 않으시기로 유명하신 분.

“가장 먼저, 이 안건을 제기한 귀족들의 의견을 들어 보도록 하지.”

그리고 그제야 윌리엄 공작의 얼굴에 옅은 조소가 어렸다.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크흠! 남부의 샐턴 자작입니다.”

“발언하도록.”

“친애하는 국왕 전하, 전하께서는 작년, 이 자리에서 있었던 연방제국 측 사절단과의 대화를 기억하십니까?”

기억하다마다.

아버님의 고개가 작게 끄덕여졌다.

“아수스와의 관계를 부정하는 연방제국 측으로부터 갈데르드 평야를 받아 온 그때를 묻는 것이라면 기억하고 있다.”

“예, 그러시다면 그 땅을 받았을 때의 여론 역시 알고 계시겠지요.”

“음.”

어째서 그런 것을 받아오냐는 여론이 절반.

나머지 절반은 연방제국의 땅을 받는 것으로 심기를 건드리면 안 된다는 여론이었다.

즉, 긍정적인 측면은 없었다는 뜻이다.

2왕자파의 샐턴 자작이 입꼬리를 끌어당기며 말을 이어 갔다.

“많은 사람이 알고 있듯, 그 땅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습니다. 기껏해야 지금은 드워프들의 보금자리로써 사용되고 있을 뿐이지요.”

“그러니까, 자네의 말은 그것이 1왕자의 독단적인 행동이었고 하물며 국익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겠군.”

“그렇습니다.”

그러면서 자작은 사전에 제출했던 증거들을 언급하며 그 땅의 ‘쓸모’를 강조했다.

“앞서 제출한 내용들을 참고하시면, 그 20킬로미터 남짓의 땅은 아무런 가치가 없는 수준에 지나지 않습니다. 최소한 농사를 짓고 열매를 따는 등의 쓸모조차도 드워프들에게 땅을 빌려준 이상 큰 의미는 없을 테지요.”

“흐음.”

“이런 지역을 받는다는 큰일을 ‘독단’으로 진행하는 선택을 하신 분을, 저희가 어떻게 믿고 국정 운영을 할 수 있겠습니까.”

“…….”

“크흠!”

이미 1왕자파의 귀족들은 질문을 예상이라도 했던 듯 불편한 표정만을 짓고 있었다.

반박을 하고 싶어도 도무지 저 말을 반박할 도리가 없던 것이다.

그들로서도 당시의 일은 통쾌하긴 했지만 분명 호오가 갈렸기 때문이다.

“……그대들의 주장은 잘 알겠다. 이것이 그대들이 말하는 알렌 에스테반의 무능함을 증거하는 것이겠지.”

“그렇습니다.”

2왕자파의 귀족들은 당당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이었다.

“알렌 에스테반. 이에 할 말이라도 있느냐?”

아버님의 시선이 내게로 향했고, 이내 나는 입을 열어나가기 시작했다.

“저들이 문제 삼는 것은 결국 그 땅이 쓸모가 없었다는 것이겠지요.”

“그렇다.”

“하지만 그 땅은 엄연히 쓸모가 있는 장소입니다.”

……쓸모가 있다?

2왕자파의 귀족들은 가소롭다는 듯 코웃음을 흘렸다.

“기껏해야 드워프들에게 빌려주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단 말씀이십니까?”

무척이나 날카로운 악의가 담긴 질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그것을 무시했고 이어서 아버님께 허락을 구하듯 말했다.

“그것을 증명할 증인을 데리고 왔습니다. 그를 이 자리에 들여보내도 되겠습니까?”

“증인이라…….”

이는 앞선 청문회의 시작 전에 제출했던 내용 중 하나였다. 거부할 이유는 없었다.

“그렇게 하도록.”

끼이익-

아버님은 망설임 없이 허가를 내리셨고, 이내 대전의 문이 열리며 한 남자가 걸어들어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귀족들의 얼굴에는 의문이 가득했다.

“음?”

“저게 대체 누구지?”

소심한 걸음걸이.

그리고 연신 주변의 눈치를 살피는 태도.

남자는 이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극히 평범한 ‘평민’이었다.

“자기소개를 하도록.”

“예, 아, 알겠습니다, 전하.”

이윽고 증인석에 당당하게 선 남자는 더 없을 정도로 깊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아, 안녕하십니까? 저는 에스테반의 지질학 협회에서 나온 직원입니다.”

“……무슨 협회?”

마침내 귀족들의 의문은 더욱 깊어졌다.

오히려 황당함 그 자체를 느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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