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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142화 (142/223)

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142화

악몽 (4)

“지질학 협회?”

“……그런 것도 있었나?”

대전의 내부가 일순 어수선해졌다.

지질학이라는 것은 귀족들에게 무척이나 생소한 것이었다.

정확히 따지면 귀족뿐만이 아니었다. 평범한 삶을 영유하는 이들에겐 지질학이라는 이름 자체가 생소함 그 자체였으니까.

“조용.”

나는 손을 휘젓는 것으로 귀족들을 닥치게 만들며, 그 ‘직원’이라는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지질학 협회가 하는 일은 무엇이지?”

“농토의 개발과 분석 업무를 주력으로 하고 있긴 해도, 기본적으로는 토양 성분을 대조하고 연구하는 일을 전문으로 하고 있습니다.”

“흠……!”

“농토의 개발과 분석이라니…….”

일부 귀족들이 눈을 찌푸렸다.

반대로 새턴 자작은 기회라도 잡은 듯 눈을 번뜩이며 이죽거렸다.

“전하께서는 드워프들이 자리한 그 땅에 농사라도 지으실 생각이십니까?”

농토로의 개발.

그것은 앞선 무용론에 힘을 실어 주는 말과도 다르지 않았다.

‘쓸모’라고 포장하기에는 너무도 무가치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 순간,

“분명히 닥치고 있으라고 말했을 터인데.”

“…….”

내 입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옴과 동시에 대전 내부의 온도가 싸늘하게 식어가기 시작했다.

당연히 착각은 아니었다.

귀족들은 잘못 들은 것인지 스스로를 의심하며 눈을 커다랗게 떴고, 새턴 자작은 무형의 기운이 온몸을 짓누르는 것을 느끼며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타인의 행동조차 강제할 수 있을 정도로 응집된 살기였으니…….

고오오-

꿀꺽.

어느덧 침을 삼키는 소리조차 느껴질 정도로 조용해진 대전의 내부.

방금까지만 해도 사냥감이라고 생각하는 상대에게 완전히 짓눌려 버린 것이다.

귀족들에게 허튼 행동을 하면 안 된다는 ‘경각심’을 심어 준 나는, 그 정적에 흡족함을 느끼며 다시금 협회의 직원을 바라보았다.

직원은 삽시간에 조용해진 내부를 의아한 듯 둘러보다가 황급히 고개를 조아렸다.

“중요한 것은 농토 따위가 아니겠지. 토양의 성분을 대조하고 연구한다고 했던가?”

“그, 그렇습니다.”

“그 말은 대조군만 있다면 그 땅에 내재한 무언가를 밝혀낼 수 있다는 말과도 같지. 그리고…… 마침 내가 그쪽에 의뢰했던 물건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만.”

스윽-

내 손가락이 짧게 까닥여졌다.

“그것을 귀족들이 모두 볼 수 있게끔 보여 주도록.”

“예, 알겠습니다.”

촤륵-

협회 직원은 가방 속에서 ‘어떤 것’ 하나를 꺼내서 펼쳐 들었다.

그것은 당연히 두 토양의 성분을 대조한 결과가 같음을 증명하는 공식 문서.

꽤 오래전 아버님께 보였던 것과 같은 물건이었다.

당연히 먼 발치에서 바라보는 귀족들로서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 도리는 없었다.

그러나.

“확대하도록.”

“명을 받들겠습니다.”

마법사의 힘이 있다면 달랐다.

우우우웅-

이윽고 허공에 나타난 그것에 모든 시선이 집중되고……

그 문서를 귀족들이 읽어 내리는 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정확히는 그것을 읽었다고 해야 할지.

곧장 눈길을 사로잡는 문장 하나만을 이해하는 것으로 충분했으리라.

“……대조군과 똑같은 광산의 존재가 그 땅에 있다?”

“이것이 무엇인지는 그대들이 자세히 알 필요 없다. 다만, 이것이 갈데르드 평야의 쓸모를 증명한다는 그 자체만 기억하면 될 뿐이지.”

그래.

엄중한 보안 속에 감추어진 그곳에서 모종의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사실.

적어도 그 증거를 이곳에서 보인 것으로 충분하리라.

그 순간.

대전의 문이 열리고, 그곳에서 무언가를 실은 수레가 나타났다.

“아, 아니 저것들은!”

막대한 양의 청록색 주괴.

조명 빛을 반사하고 있는 그 모습은 마치 천상의 위를 노니는 것처럼 영롱했고, 또한 찬란했다.

그렇기에 우습게도 귀족들은 그 한눈에 들어올 정도로 특이한 광채를 알아보는 데까지 오랜 시간을 소요했다.

어쩌면 한 번에 이렇게 많은 양을 본 것은 처음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었으리라.

“……미스릴?”

눈을 씻고 다시 확인해도 그것은 미스릴이었다.

그것도 수십…… 아니, 족히 수백 개는 넘는 듯한 정제된 주괴.

“……맙소사.”

그제야 귀족들은 아득해지는 정신을 바로잡고 비로소 공개했던 대조군과 ‘광산’이라는 것의 존재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그곳에…… 갈데르드 평야에 미스릴 광산이 있었다고…….”

인간이 너무 놀라면 오히려 몸이 굳는다는 말이 있다.

지금이 딱 그런 상황이었다.

그것을 바라보는 누구도 이 상황 속에서 몸을 움직일 수 없었으니까.

그리고 나는, 다가온 수레 속의 물건을 여유로이 매만지며 입을 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그대들이 말하는 무용론은 의미가 없어진 것 같군.”

“…….”

“그래, 갈데르드 평야에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던 미스릴 광산이 있었다. 그리고 그간 왕실에서는 드워프들을 통해 정제된 미스릴을 공급받고 있었지.”

“……미스릴 광산이라고?”

“그런 일이…… 가능할 리가…….”

귀족들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특히나 2왕자파 귀족들의 표정은 가관이었다.

본인이 보고 있는 것을 믿지 못하는 눈치.

그 땅의 쓸모를 논하며 공격하려 했던 자신들의 행동이 모조리 무용지물이 되어 버렸던 탓이다.

아니, 오히려 역으로 되돌아온 격.

‘뭐, 애초에 미스릴 광산의 존재 자체가 경악스러운 탓도 있겠지.’

공격이고 나발이고.

적어도 지금만큼은 그런 것조차 깨닫지 못할 정도로 놀라고 있을 테니까.

그때, 간신히 정신을 차린 1왕자파의 귀족 중 한 명이 입을 열었다.

“저, 전하께서는 처음부터 미스릴 광산이 그곳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습니까?”

“신이 아닌 이상에야 구경조차 해 보지 못한 타국의 땅에 광산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리 없겠지.”

“그렇다면 저것은…….”

“드워프들이 발견해 낸 것이다.”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진실 속에 교묘하게 감춘 거짓말이었다.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고 하면 연방제국에게 명분을 주는 셈이었으니까.

이미 협회의 직원과는 말을 맞춰 두었다.

“그, 그렇다면 결과론적인 이득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새턴 자작의 발악과도 같은 비명이 튀어나왔다.

내 시선이 그곳으로 향하자, 녀석은 팔을 휘저어 가며 열렬하게 말을 이었다.

“만일 그곳에서 우연히 미스릴 광산이 발견되지 않았다면 그 땅은 여전히 쓸모가 없는 채로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미스릴 광산의 일은 순전히 운이 따라 준 것이다?”

“그렇습니다! 전하의 결정이 독단적이었다는 문제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렇군.”

쓸모없다고 생각했던 그 땅이 사실은 금화를 퍼담는 땅이었다.

그러니 이제는 꼬투리라도 잡겠다는 뜻인가?

도무지 물러날 곳 없는 이 상황에서조차 발악할 건더기를 찾은 것을 보면…… 뭐, 나름대로 머리는 굴러가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래서 뭐가 어쨌다는 말이지?”

“…….”

“내 결정이 미스릴 광산을 낳았고 드워프들의 기술력을 이용하여 완벽한 품질의 정제 미스릴을 만들어 냈다.”

“그, 그건…….”

결과론 따위의 허울 좋은 단어는 위정자들이 이용하기 좋게끔 만든 단어일 뿐.

오물을 덧칠하더라도 그 위대한 업적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오롯이 내 손으로 이루어 낸 결과물이지.”

……그래. 그것은 결과물이었다.

에스테반의 미래를 부강하게 만들고.

또한 다른 국가에는 없을 ‘경쟁력’을 가지게 해 줄 결과물.

“적어도 그 영광에 과정 따위는 중요하지 않을 테지.”

구차한 과정 따위가 패배자의 말로를 정당화하고 위로해 주지는 않을 것이므로.

나는 새턴 자작을 바라보며 마지막 충고를 남겼다.

“명심하는 게 좋을 것이다. 모든 영광은 결과만이 증명하고 남으리라는 사실을.”

“…….”

“더 할 말이 없다면 다음 안건으로 넘어가지.”

품속의 회중시계를 바라보는 내 눈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아무래도, 그대들이 준비한 것이 많은 듯해 보이니까.”

* * *

준비했던 회심의 공격이 도리어 1왕자 측의 영광을 돋보이게 만들었던 만큼.

이후의 청문회는 진행되는 둥 마는 둥 지루하게 넘어갔다.

어차피 나머지는 사실을 교묘하게 부풀린 과장에 불과했으니까, 녀석들로서도 더 이상 공격에 열의를 담지 못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남은 것은 2왕자파의 자멸이었다.

뚜벅 뚜벅-

“…….”

나는 귀족들이 실의와 미스릴에 정신이 팔린 틈을 타 조용히 대전을 빠져나왔다.

어느덧 창밖에는 적막과 어둠이 내려앉은 뒤였다.

하지만 그런 내 뒤를, 누군가가 따라붙는 것이 느껴졌다.

“할 말이라도 있나, 윌리엄 공작.”

“뒤를 보지도 않으시고 이 늙은이를 알아보시다니…… 이거, 많이 놀랍습니다.”

나는 몸을 돌려 뒤따라온 남자를 바라보았다.

2왕자의 숙부이자 2왕자파의 중심.

그리고 알베도의 뒤에서 감히 왕좌를 노리는 승냥이.

……그런 윌리엄 공작의 모습은 창문 틈의 달빛 속에서 얼핏 감추어져 있었다.

“전하, 기억하십니까? 이렇게 둘이 대화를 나누는 것은 오 년 만의 일입니다.”

“몰랐군.”

“그러실 수밖에요. 오 년도 전의 일을 구태여 기억하고 있을 사람은 없습니다.”

……무언가 그 움직임에 주목하지 않는 이상은 말이지.

그 욕망이 똬리를 틀고 있는 속내가 훤히 드러났다. 놈 역시 숨길 생각은 하지 않았고.

그러나 나는 내색하지 않은 채로 입을 열었다.

“용건은.”

“허허, 오늘은 그저 얼굴을 뵙고자 전하를 찾아뵌 것뿐입니다.”

“그렇군.”

순간, 작은 살의가 꿈틀거리며 손끝을 움직이게 만들었다. 무심코 손을 뻗으려 했던 것이었다.

물론 그것도 잠시였다.

이곳에서 녀석을 죽인다면 아수스나 여느 귀족들을 죽인 것과는 차원이 다른 파장을 불러일으키게 되리라.

게다가 일부러 녀석들을 ‘움직이도록’ 유도한 일조차 무용지물이 되겠지.

‘명분은 늘 내게 있어야 한다.’

……그래야.

내 앞길을 가로막는 이들을 베어 내더라도 거침없이 권좌에 오를 수 있을 테니까.

그러니 녀석을 죽이는 것은 이다음의 일이었다.

나는 다시금 몸을 돌려 녀석을 등졌다.

“용건이 없다면 이만 돌아가지.”

“예, 알겠습니다. 바쁜 걸음을 멈추게 해서 죄송하군요.”

당연히 그 이상의 대화는 필요 없었으리라.

……

뚜벅 뚜벅-

그렇게 떠나가는 1왕자가 더는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쯤.

윌리엄 공작의 표정이 악귀처럼 일그러졌다.

“……그래, 역시 마지막까지 숨기는 것이 있었군.”

미스릴 광산.

아마 2왕자파가 움직이지 않았더라면 영원히 밝히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짐작건대 아수스가 죽은 이후로 보여 준 1왕자의 모습을 생각하면 확실했다.

당연히 드워프가 발견했다던 핑계조차도 거짓일 가능성이 농후하리라.

“모든 영광은 결과만이 증명할 뿐이라고.”

참으로 좋은 말이었다.

심금을 울리고, 또한 가슴 깊은 곳에 남는 말이었다.

정말로 그 자신을 놀라게 만들었을 정도로.

“……하지만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 있는 것 같군.”

영광이라는 빛은 결국 언젠가는 꺼지기 마련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그 뒤로 또다시 무수한 영광의 역사가 흐르리라는 사실을.

까드득-

공작의 입술 사이로 비릿한 핏방울이 맺혀 떨어지기 시작했다.

“낮의 찬란한 태양 볕이 드는 것은 잠시일 뿐이다.”

언젠가는 어두운 밤과 함께 달빛이라는 악몽이 찾아드리라.

에스테반에도.

……그리고, 이 왕성에도.

자신은 곧 이 땅의 정의를 바로잡고, 에스테반에 새로운 영광을 가져다줄 사람이었으니까.

“……결국 최후의 수단을 쓸 수밖에 없게 만드는군.”

더는 돌이킬 수 없었다.

이 뒤숭숭한 민심마저 자신에게서 등을 돌리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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