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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143화 (143/223)

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143화

악몽 (5)

청문회가 끝난 후, 2왕자파는 사실상 해체의 수순을 밟게 되었다.

정면으로 벌어진 정쟁에서 무참히 깨부숴지기도 했거니와 계승권으로 보나 업적으로 보나 그 무엇 하나도 1왕자를 넘어설 수 없었던 탓이다.

-더 이상 끌고 가봐야 의미가 없는 싸움이다.

-결격 사유라고 생각했던 것조차 꼬투리 잡기에 불과했지.

거기에 정작 2왕자파의 주축이었던 공작과 그 수하들이 모습을 감춘 것 역시도 한몫을 거들었다.

-내부의 혼란을 수습할 사람이 없으니 무너지는 것도 당연할 터.

애초에 계승권에서도 밀리던 2왕자가 귀족 세력을 가를 수 있던 것도 본연의 능력은 아니었다.

국왕의 친우이자 1왕자의 최대 지지 세력이었던 아수스를 그 본인이 죽였기 때문이었다.

2왕자파가 한 것은 사실상 그 틈을 노린 것뿐.

그렇기에 그들에게 남아 있던 기회 역시 1왕자의 결격 사유를 들먹이며 끌어내리는 최후의 한 수뿐이었다.

하지만 1왕자는 압도적인 공적들로 스스로 다음 왕좌에 성큼성큼 다가섰다.

허수아비처럼 공작의 뜻대로 움직이기만 하던 2왕자와는 달리, 스스로 그 자리를 굳건히 지켜 낸 것이다.

이쯤 되면 2왕자를 지지하던 귀족들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어린아이의 손목을 비트는 셈이지.

-처음부터 우리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던 거야.

두 세력이 왕위를 두고 겨루는 것이 단지 어른과 아이의 싸움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런 급변하는 정세 속에서도, 2왕자는 어느 때보다 해방된 기분을 누리고 있었다.

‘순리대로…… 인가.’

2왕자파는 그 남아 있던 이름마저 잃어버렸고 귀족들은 실망을 가득 안은 채로 해산하고 있었다.

마치 그것이 실패작에게 주어졌던 필연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고작 며칠 사이에 벌어진 일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할 정도로 빠른 변화였다.

하지만.

“상관없어.”

알베도는 속 시원하다는 듯이 가뿐히 중얼거렸다.

이로써 자신은 모든 책임을 다하고 물러서게 된 것이니까.

일국의 2왕자로서도.

……그리고 누군가의 아들로서도.

피식-

알베도의 입가에 맺힌 웃음은 처음으로 평온함을 띠었다.

제 어머니의 간절한 부탁을 떨쳐내지 못하고 진흙탕 싸움에 발을 들인 순간부터. 온전히 웃지 못했던 진실된 속마음이었다.

‘조만간 형님을 찾아뵈어야겠군.’

모든 것은 비로소 ‘순리’라는 흐름 위로 순항을 시작했다.

이제 형님의 앞을 가로막은 패배자는 사라지고, 에스테반은 또다시 일상을 되찾게 되리라.

단지, 알베도로서는 1왕자가 마지막 자비를 베풀어 주기를 바랄 뿐이었다.

나 자신의 비참한 퇴장으로 하여금.

……감히 왕좌에 눈독을 들인 제 어미를 가엾게 여겨 주기를.

“이렇게 몰래 만나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 되는 건가.”

알베도는 마차 밖으로 보이는 영지의 풍경에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렇게 마차는 조용하리만치 평온하게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자신을 불러낸, 제 외조부의 공작령으로.

“…….”

꾸욱-

알베도의 손에는 어느덧 소중하게 간직하던 펜던트가 쥐어져 있었다.

* * *

“……2왕자파가 무너지고 있다고 하더구나.”

“새삼스러울 것 없는 일입니다.”

청문회가 있던 이후로 일주일이 지난 시점.

나는 아버님의 호출을 받고 국왕의 집무실에 방문했다.

그 대화의 시작은 역시나 놈들에 관련된 것이었다.

“2왕자파는 모래 위에 세워진 고성과도 같았습니다. 처음부터 그 지지기반조차 불안정했던 2왕자파가 이를 버틸 리 없을 테지요.”

“모래 위의 고성…….”

아수스가 죽은 뒤에 급히 결성된 2왕자파.

그것이 생겨난 것은 시기상으로만 따져도 대략 1년하고도 반밖에 지나지 않았다.

중심이 되는 공작의 직속을 제외한다면 오랫동안 결속되어 왔던 것도 아니고 고작 이득만을 좇아 결성된 세력이, 지금까지의 위축에 더해진 청문회의 완패를 이겨낸다?

단언컨대 결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니 놈들로서도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

“시간이 지나면 더는 손 쓸 방도가 없을 거라고.”

……그렇게 다급하게 말이지요.

나는 작게 웃으며 뒷말을 이었다.

“뭐, 결과적으로는 그 기회조차 미스릴이라는 함정에 허망하게 쓰러졌으니 그 끝은 정해져 있던 것이나 다름없었을 것입니다.”

“……그렇군.”

미스릴의 존재는 무척이나 오랫동안 고대하던 함정이었다.

언젠가 나를 귀찮게 만드는 이들의 가슴팍으로 비집어 넣을 비수로써…….

당연히 때가 되었으니 그것을 사용하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겨울이 오기 전에 2왕자파를 반드시 정리해야 하기도 했고.’

비밀리에 감추어 두었던 미스릴의 존재는 예정대로 중요한 순간에 놈들의 세력을 찢는 결정적 수단이 되었다.

그때 아버님께서 조금은 망설이는 기색으로 입술을 움찔거리시더니, 마지못해 입을 열기 시작하셨다.

“……2왕자파에 속했던 이들은 어찌할 생각이냐?”

“예?”

“그들에게 주어진 권력의 구도를 바꾸겠느냐고 물은 것이다.”

“그것을 어째서 제게 물으시는 것입니까?”

조금은 황당하다는 듯 되물었다.

지금까지 국정에도 손을 대는 일도 있었고 귀족들을 직접 처벌한 일도 있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아버님의 권한을 대행한 일에 불과했다.

하지만 방금 전의 그 질문은 마치 내게 사사로운 철퇴조차 휘두를 수 있는 결정권이 있다는 듯한 말투가 아닌가?

그것에 의아해하자, 아버님의 표정이 결연하게 굳어지기 시작했다.

“알렌 에스테반, 나는 이번 일로 하여금 공식적으로 네게 왕태자의 자리를 임명하기로 결정했다.”

“……!”

“역시나 네게는 새삼스러운 일은 아닐 테지. 네가 이다음의 왕이 되는 것이다.”

“……왕태자의 자리 말입니까?”

그러나 이것만큼은 나조차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말 그대로 기울어진 현 후계의 구도는 물론이고 ‘1왕자’의 능력까지, 국왕의 이름으로 인정하겠다는 선포나 다름없었으니.

……아니.

그보다는 왕태자라는 자리 자체를 생각지 못했던 탓도 있었다.

‘과거에는 되지 못했던 왕태자의 자리에…… 내가 오르게 되는 건가?’

회귀 전.

아버님의 급작스러운 죽음 탓에, 1왕자였던 나는 얼떨결에 바로 왕위에 올라야만 했다.

물론 그것은 당시에도 정해져 있던 미래나 다름없었으나, 아버님께 이렇게 직접적으로 그 자리를 인정받은 적은 없었다.

단 한 번도.

하지만 이번 생에는 달랐다.

미래가 달라진 상황에서조차 얼마든지 왕좌에 오를 확신이 있었지만. 정작 생각지도 못했던 순간에 왕태자의 자리까지 인정받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사실은 그 어떤 때보다도 강한 확신을 불러일으켰다.

내 행보가.

에스테반을 보다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가고 있음을.

어쨌든 나는 떠오르는 감상을 애써 지워 내며 말했다.

“……그래서 제게 여쭤보시는 것이군요. 후계 싸움에서 패배한 이들을 어찌할 것인지.”

“지금까지 보아 온 네 성격이라면 방해가 될 만한 후환을 남겨 두지는 않을 것 같았다. 정식적으로 왕태자에 책봉된 이후라면 명분 역시 충분할 테니까.”

“틀린 말은 아닙니다.”

실제로 나는 그들을 성히 남겨 둘 생각은 없었다.

다른 어느 것은 제쳐 두더라도, 놈들이 급히 만들어진 2왕자파에 몸을 담갔던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소리였으니까.

‘이를테면 2왕자파에 숨어들었던 아수스의 잔당들처럼 말이지.’

쉽게 말하면 놈들 역시 켕기는 것이 있기에 나를 밀어내고자 했다는 거다.

그러니 소수의 주동자를 먼저 솎아내고, 나머지는 천천히 정리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때 나는아버님의 눈에서 엿보이는 일말의 불안감을 눈치챌 수 있었다.

“진의를 숨기고 계시는군요. 지금 아버님께서 진정으로 우려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아무래도 숨길 수 없었나. 다름이 아니다. 직접적으로 너와 맞붙었던 알베도 에스테반, 그 녀석에 관한 것이다.”

“알베도 녀석 말입니까?”

내 눈매가 찡그려지며 좁혀졌다.

혹 후계 싸움에서 밀려난 알베도를 내가 죽이기라도 하리라 생각하신 걸까?

충분히 있을 법한 짐작이었다. 대륙에서 심심치 않게 벌어지는 일이기도 했고.

‘……아니.’

그러나 무언가 알 수 없는 확신에 휩싸였다.

아버님께서 걱정하는 것은. 그따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리고 아마도 그건…….

“……지금은 그런 것을 따질 상황이 아닌 것 같군요.”

“그런가…….”

“아직 우리에게는 해결해야 하는 일이 남아 있습니다.”

연방제국의 일도.

……그리고 윌리엄 공작이 꾸미고 있는 ‘최후의 계획’ 역시도.

나는 자칫 말을 돌리는 것처럼 비추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말을 이어 갔다.

“그러니 왕태자 책봉 건 역시도 일이 마무리된 이후에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알았다. 네 생각이 그렇다면.”

“다음에 다시 들리겠습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그러고는 조금은 빨라진 발걸음으로 아버님의 집무실을 벗어났다.

“…….”

짐짓 여유로운 체했던 얼굴은.

집무실을 벗어난 순간부터 잔뜩 굳어져 있는 뒤였다.

* * *

같은 시각.

공작령에 자리한 저택에 들어선 알베도는 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똑똑-

“외조부님, 접니다.”

그러고는 이 뒤에 있을 일을 몇몇 개쯤 예상해 보았다.

일단은…… 술을 진탕 퍼마시고 인사불성이 되어 있을 수도 있다.

어쩌면 그 가득한 욕망에 못 이겨 모든 물건들을 깨부순 뒤일지도 몰랐고.

……당연히 그것은 가정일 뿐이다.

다만 자신이 생각하기에 가능성이 제일 높은 것은 그 방 안에서 분노에 휩싸인 찻잔이 날아드는 일이리라.

‘뭐, 오늘만큼은 피하지 않고 맞아 주지.’

그것으로 마지막 도리를 다할 수 있다면 피할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그 추측들이 모두 빗나가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찰나였다.

“들어와라.”

“…….”

흠칫-

문 너머에서 들려온 중후한 목소리.

그것은 왠지 모르게 알베도의 몸이 잘게 떨릴 정도로 차분했고, 또한 싸늘했다.

평소 제 외조부인 윌리엄 공작의 성격을 생각하면 무척이나 이상한 일이었다.

“…….”

끼이익-

그렇게 문은 말없이 열렸고.

이윽고 알베도의 눈에 들어온 것은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공작의 한 점 흐트러짐 없는 모습이었다.

“부르셨다지요.”

“그래.”

그 입에서는 예상했던 역정을 찾아볼 수조차 없었다.

끽-

이어서 의자가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윌리엄 공작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기다렸다는 듯이 창문가로 다가갔다.

이를 바라보던 알베도의 시선 역시 공작을 따라 움직였다.

“역시나 놈은 최후의 한 수를 숨겨 두고 있었다.”

“……예. 귀족들 대다수가 모르고 있던 것을 보면, 신성제국과의 협의와 마찬가지로 엄중한 보안으로 관리했을 것입니다.”

“그러니 나로서는 이해가 가질 않는군.”

나직이 창밖을 바라보던 공작의 눈동자가 뱀처럼 가늘게 찢어졌다.

“그것을 관리하던 것은 왕실이다. 알베도 에스테반, 네 녀석은 아무것도 듣지 못한 것이 맞느냐?”

“그런 중요한 사안을 정적(政敵)인 제게 알려 주겠습니까?”

“……그렇겠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타당했다.

그리고 이를 공작 역시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상관없는 일이다. 이미 최소한의 기반은 확보한 상태니까.”

“……예?”

윌리엄 공작은 겉옷을 벗으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동시에 알베도는 의아해했다.

대체 아까부터 왜 자꾸 저곳을 바라보고 있는 것인지.

‘……저 밖에 무언가 있나?’

게다가 아까 전부터 보이던 초연하고 의미심장한 모습이란…….

문득, 불안감을 느낀 알베도의 시선은 그것을 따라갔다.

“……!”

그리고 창밖에 보이는 그것을 보며 두 눈을 경악으로 부릅떴다.

날카롭게 벼려진 기세를 가다듬으며 서 있는 기사들.

그 뒤로 열기를 잠재우며 열을 맞춰 전진하는 수많은 병사의 무리.

“그, 그런…… 그럴 리가…….”

알베도는 뒤로 주춤 물러서며 몸을 떨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뭔지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흡족하게 웃고 있는 공작은 달랐다.

“아니, 이대로 폭군이 에스테반을 지배하게 만들 수는 없겠지.”

그래.

그것은 눈앞의 남자가 준비했던 최후의 수단이자 계획이었다.

처음부터 그에게 있어서 다른 것들은 모조리 미끼였다.

자신이 준비한 것들로 눈을 돌리게 하기 위한 과장된 연극.

“우리는 놈의 폭정을 막기 위해 출전할 것이다.”

어느덧 창가를 바라보는 눈은 붉게 충혈되어 욕망으로 번뜩이고 있었다.

“나를 따라와라. 알베도 에스테반.”

광기(狂氣).

그 뱀의 혀가 향한 곳은, 에스테반의 수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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