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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144화 (144/223)

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144화

반란 (1)

그 이변은 내려앉은 한밤중의 어둠 속에서 은밀하게, 또한 한편으로는 대담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에스테반의 현 왕실은 썩었다!”

그 속에서 울려 퍼진 공작의 선동이 병사들의 귓가에 날아가 박혔다.

에스테반의 왕실이 예비 폭군의 탄생을 두둔하고 있노라고.

이런 간단한 이치조차 분간하지 못하는 왕실의 미래에는 오직 절망만이 가득할 것이라고.

“그리고 멍청한 귀족들은 이를 잠자코 보고만 있을 뿐이지!”

챙-!

금빛의 롱소드가 길게 빼어지며 하늘을 향해 치켜세워졌다.

그것은 이 광경을 바라보고 있는 병사들에게 전하는 메시지이기도 했다.

“사리 분별조차 하지 못하는 폭군과 신하들의 아래에서 고통받고 싶은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쇠약해진 국력이 네 가족을 희롱하고 짓밟는 것을 두 눈으로 보고만 있을 것인가!”

“아닙니다!”

“그렇기에 나, 동부의 기둥이었던 윌리엄 공작은 검을 뽑아 들었다!”

정녕 자신의 행동이 오직 시민들을 구원해 주기 위함이라 말하는 것처럼.

혹은, 지금의 상황은 모두 상대가 자초한 일이라고 말하며.

“이 내가 2왕자와 시민들의 이름을 대신하여 에스테반의 정의를 바로잡겠다!”

그렇게 최면과도 같은 광기 속에서 스스로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것이다.

“와아아아!”

우레와 같은 군중의 환호가 쏟아졌고, 곳곳에서는 공작가를 상징하는 금빛 매의 기(旗)와 횃불이 하늘로 높이 솟아올랐다.

그 속에서 공작은 붉게 충혈된 눈을 번뜩였다.

“출전한다.”

“충!”

척-!

병사들의 손에 들린 병장기가 일제히 가슴팍으로 부딪쳤다.

바야흐로 내전의 서막을 알리는 광경이었다.

그리고 반란군의 소식이 왕실로 전달된 것은 새벽 무렵이었다.

* * *

끼익-

문의 경첩이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들려오고, 조지가 천천히 집무실의 내부로 들어왔다.

“방금 전에 긴급회의의 준비가 끝났다고 합니다.”

“그렇군.”

왕실에 동부의 소식이 전달된 이후로 이십 분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

고작 그사이에 회의의 준비가 끝난 것은 무척이나 이례적인 일이었다.

특히나 지금이 모두가 자는 한밤중이나 다름없는 시간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더더욱.

‘엉덩이가 무거운 그자들이 용케도 이리 빠르게 움직였군.’

물론 그만큼이나 이 상황이 심각하다는 뜻도 있을 테지.

윌리엄 공작의 휘하에 결성된 반란군이 지금 이 순간에도 수도로 진격하고 있었으니까.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드디어 올 것이 왔나.”

“정말로 궁지에 몰리자 반란을 일으켰군요.”

윌리엄 공작의 반란은 내게 있어서 급작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놈이 벌일 행동은 이미 모조리 예측하고 있었고, 이를 염두에 둔 채로 움직이기도 했으니.

“그래, 처음부터 뻔한 일이었다.”

……놈의 성격까지 생각하면 말이지.

그것은 회귀 전에도 마찬가지였다. 놈은 아수스가 버티고 있었음에도 끝까지 미련을 버리지 못했고, 이와 비슷한 행동을 일으키려했다.

알베도 녀석이 홀연히 사라진 뒤에야 비로소 그 야욕을 접었을 정도로 왕좌에 대한 욕망이 넘치는 인물이었다.

아마 그때도 지금처럼 작은 명분만 있었다면 얼마든지 반란을 일으키려 했으리라.

‘뭐, 어쨌거나 일관되어서 좋군.’

당연히 긍정적인 의미는 아니었다.

그저, 그 행동을 읽기가 수월해서 편하다는 뜻이었다. 덕분에 내가 계획한 바를 모두 이루어 낼 수 있을 테니까.

“지금쯤 그것이 정당한 행동이라고 자위하고 있을 테지.”

“모르는 일이죠.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수도 있잖습니까.”

“정말로 그럴지도 모르겠군.”

그러니 더욱 안타까울 뿐이었지만.

그런 시시콜콜한 대화는 집무실을 나서기 전까지 계속되었고, 이윽고 우리는 불안감 가득한 분위기의 왕성 복도를 지나서 회의실에 도착할 수 있었다.

끼이익-

“알렌 에스테반.”

“뭇 기사들의 이정표이자 에스테반 왕국을 이끄시는 국왕 전하께 인사드리옵니다.”

나는 예를 차린 뒤에 자리에 앉았다.

개인적인 회담과는 달리 이곳은 공적인 일을 수행하는 자리였다.

특히나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확실하게 공과 사를 구분해야 했다.

보는 시선이 있었으니까.

“먼저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습니까?”

“그렇다.”

“하지만 숫자가 조금 부족한 것 같군요.”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인원은 아버님과 나를 포함하여 다섯뿐이었다.

동부의 소식을 논하기 위해 온 국군 참모 한 명.

……그리고 왕실 제2 기사단장과 제3 기사단장까지.

기사의 나라인 에스테반에서는, 모든 병력의 통솔을 가장 명예로운 기사인 국왕이 조율하게 되어 있었다.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임명할 뿐, 따로 장군이나 총사령관을 두지는 않는다는 소리였다.

그렇다고는 해도 회의를 진행하기에 너무 적은 숫자인 것은 확실했다.

‘아직 나머지 귀족들이 도착하지 못한 것인가.’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그러자 아버님께서는 나를 지목하며 그 이유를 설명하였다.

“당연하다. 이 긴급회의는 오직 네 의견을 듣기 위해 마련된 자리니까.”

“그게 대체 무슨 말씀이십니까?”

예상치 못했던 답변. 조금은 당혹감이 들어 의문을 표하자, 아버님은 망설임 없이 말씀하셨다.

“두 번의 북부 원정으로 그 능력을 증명했으니, 네게 가장 먼저 의견을 묻겠다는 뜻이다.”

“…….”

“이 자리에 있는 이들 역시 그것을 수긍했다.”

“……그렇군요.”

앞선 전쟁들을 최소한의 피해만으로 이끌어 간 1왕자.

이런 시기이니 만큼 다른 이들의 의견을 천천히 듣는 한이 있더라도, 내 의견을 최우선적으로 생각하겠다 하신 것이다.

물론 이는 태양 기사단과 아르곤 기사단도 마찬가지였으리라.

그들에게 보여 준 내 능력은 이미 신뢰의 영역을 넘어섰을 테니까.

‘그것이 옳은 판단인 것은 말할 가치도 없겠지.’

나는 이 자리의 의의를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뭐, 이렇게 되면 나 역시도 ‘시간을 들여’ 따로 작전을 납득시킬 필요가 없을 테지.

“병력의 규모와 반란에 동조한 귀족들의 정확한 수는 어떻게 됩니까?”

“전하, 그것은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국군 참모가 그 질문을 받았다.

“현재 윌리엄 공작과 함께하는 것으로 밝혀진 귀족들은 발몽스 백작을 포함한 여섯입니다. 그리고 해당 영지들에서 종합 2만에 달하는 병력이 편제되어 진군해 오는 상황입니다.”

“2만. 고작 일곱 귀족의 아래에서 나왔다기에는 많은 숫자군.”

북부도 아닌 동부에서 그만한 병력이 나왔다는 말은 몰래 사병을 육성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역시나였다.

“한데 그것이 전부라고는 생각지는 않는데.”

“예, 그렇습니다. 하여 반란군이 숨겨 놓은 병력이 있는지를 추적하고 있습니다만, 마력 방해를 시도하는 것인지 동부와의 통신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고 있지 않습니다.”

“괜히 파발이란 것이 존재하는 게 아니겠지.”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통신의 방해는 전쟁의 가장 기초.

고위급 마법사가 아니라면 그 교란을 뚫고 통신을 보내는 일은 요원하리라.

뭐, 내가 물어본 ‘전부’가 숨겨 놓은 병력을 뜻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서 이제 어찌하면 좋을 거라 생각하느냐.”

아버님께서 가라앉은 목소리로 여쭈셨다.

그 모습에서 약간의 조급함이 엿보이는 것도 당연했다.

놈들은 지금도 수도를 향해 진군하고 있는 상황. 주변 영지에서 병력을 차출하든 뭘 하든 당장 움직임을 보여야만 했다.

하지만…….

“여유롭게 생각하시지요.”

“……여유?”

“반란군에 빠르게 대응해야 하는 이유를 생각해 보십시오.”

나는 여전히 여유로울 뿐이었다.

그런 내 의문스러운 대답에 도리어 아버님께서는 당혹감을 드러내셨다.

“지금은 천천히 대응해도 늦지 않는다는 소리더냐?”

“반란군이 무서운 이유는 그 세력이 빠르게 몸집을 불리기 때문입니다. 백성들의 성난 민심이 퍼져 나가는 것이지요.”

“…….”

“하지만 윌리엄 공작의 반란은 아닙니다.”

“확실히…….”

핍박받은 백성들이 봉기를 일으킨 것도 아니며, 하물며 민심 역시 일부만이 그들에게 동요하고 있을 뿐이다.

오로지 그 스스로만 옳다 생각할 뿐. 고작 개인적인 욕망에 지나지 않는다는 소리였다.

‘하물며 그 동요하는 민심조차도 왕실에 반감을 가진 것은 아니다.’

신성제국과의 무역을 통해 연방제국에 의존하던 생필품을 이전보다 더욱 값싼 가격에 제공받을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북부의 정복을 통해 국토를 늘린 것은 또 어떠했던가?

제아무리 미스릴에 관련된 소문이 아직 퍼지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것에 동조할 이들이 있을 리 없었다.

“즉, 이쪽에서는 얼마든지 좋을 대로 대응해도 된다는 뜻이겠지요.”

“하지만 놈들의 병력은 자그마치 2만이나 된다. 그만한 병력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인근 영지의 병력을 차출해야 하지. 놈들은 그것을 알고 기습적인 공격을…….”

“문제는 없습니다.”

“……문제가 없다?”

그리고 나는…… 비로소 생각했던 전략을 언급했다.

“그들이 수도의 인근까지 무사히 오도록 내버려 두십시오.”

“뭐, 뭐라?!”

“괜히 그 앞을 가로막았다가는 피해만이 늘어날 뿐입니다.”

내버려 두라니…….

그 말에는 아버님은 물론이고 이 자리에 있는 이들까지, 모두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호, 혹 수도 인근의 영지에서 병력을 차출하여 기다렸다가 전면전을 벌이자는 말씀이십니까? 하지만 그만한 병력을 차출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아니, 전투는 수도의 성벽을 끼고 하는 것으로 하지. 병력의 차출 역시 필요 없다.”

“그, 그 말씀은…….”

내 입꼬리가 짙게 올라갔다.

“공성전이다.”

“마,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수도의 성벽은 공성전을 하기에 알맞은 시설이 아닙니다!”

콰당-!

의자가 넘어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지만 그 순간이었다.

“……알렌 에스테반, 공성전을 하겠다는 말은 이해했다. 한데, 병력의 차출이 필요 없다는 말은 무슨 뜻이지?”

“국왕 전하……!”

“말 그대로입니다. 수비의 이점을 이용하면 수도에 상비 중인 병력만으로도 피해 없이 막아 낼 수 있을 것입니다.”

“다른 수가 있는 모양이지.”

“비슷하다고 하겠습니다.”

“……알겠다. 그렇다면 그렇게 하지.”

“구, 국왕 전하, 저 작전에 납득하시는 것입니까?”

가장 먼저 반발한 것은 내부 병력의 사정을 가장 잘 아는 국군 참모였다.

물론 그조차도 아버님의 굳건한 신뢰를 깨뜨릴 수는 없었다.

“잘못된 길로 나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확신한다. 그저 아들이라 신뢰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계속 승리했기 때문도 아니다. 내가 믿는 것은 저 눈.”

뚜렷한, 불타는 듯한 올곧은 눈이 내 눈동자와 마주친다.

“무언가에 확신이 찬 저 눈이다.”

나를 통해 무언가를 느끼신 거 같다. 그 신뢰에 나 역시 미소로 화답하였다.

“전하…….”

“알렌 에스테반, 그렇다면 반란군이 이곳에 오기 전에 해야 할 일은 뭐가 있지?”

“뭐, 그 역시도 간단합니다.”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이어 갔다.

“우선 내부부터 정리하는 것으로 하시지요.”

“내부라면…….”

“아무래도 놈들의 숨겨진 병력은 내부에 있는 것 같으니까요.”

“……!”

마지막으로 내 시선이 향한 곳은 유일하게 비어 있는 한 자리였다.

왕실 제1 기사단의 기사단장 아놀드.

……그가 있어야 할 의자의 너머로.

“아무래도 왕실 수호 기사단 전체가 왕실을 배반한 것 같군요.”

그것은 회귀 전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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