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146화
수도 공방전 (1)
“대마법사인가…….”
“그렇습니다.”
공작은 좁혀 있던 눈으로 성벽의 위쪽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입술을 비뚜름히 올리며 혓바닥을 날름거렸다.
그래.
“……마탑주 엘레이드.”
에스테반의 대마법사는 한 명뿐이었다.
그렇다면 저 자그마하게 보이는 마법사의 인영은 필시 대마법사가 되었다는 마탑주가 분명하리라.
대마법사의 존재를 발견한 이들이 침을 꿀꺽 삼키며 경계심을 드러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평안한 표정으로 감정하듯 바라보았다.
큰 걱정은 없어 보였다.
“대마법사의 참전은 예상하던 바였다.”
“예, 공작 각하.”
여유롭게 맞장구치는 발몽스 백작의 눈이 길게 찢어졌다.
“그저 상정하던 범위 내에 있는 일일 뿐입니다.”
대마법사를 수식하는 말은 무척이나 많았으나 전략 병기라는 만큼이나 잘 어울리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았다.
광범위하게 쏟아지는 공격. 그리고 전황을 뒤집는 궁극의 마법들.
이미 먼 예전부터 역사 속 대마법사의 존재는 공포의 대상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개인. 겨우 한 명으로는 이 전황을 뒤집을 수는 없겠지요.”
그것이 고작 수백 수천이 아닌 수만의 군세라면 말이 다를 것이다.
마법사들의 광범위한 공격은 분명 대단했으나, 기껏해야 전장의 일부를 감당하는 정도.
다중 스펠을 행한다 해도 과연 얼마나 쓸 수 있을까.
심지어 사람이 보유하고 있는 마나의 총량도 정해져 있기에 무한정히 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런 대군이 동시에 달려든다면 틈은 날 수밖에 없고, 한번 틈이 나면 끝이다.
그렇기에 현대 전술에서 마법사의 역할이란 병사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보다는 건물이나 성벽의 파괴를 보조하거나, 전투 중 변수를 막기 위해서 서로 간의 영향력을 겨루면서 ‘마법’이 쏘아지지 못하게 만드는 것에 더 집중되어 있었다.
……그것이 현대 마법사가 지닌 태생적인 한계.
마나라는 절대적인 대가가 존재하는 한 그 영향력은 한정될 수밖에 없었다.
하물며 마법의 가치가 연구에만 쏠려 있는, 별다른 마법 전단(戰團)조차 전무한 에스테반에서.
마법사 ‘한 명’의 존재는 그리 대단하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
“기껏 해 봐야 조금 더 강한 마법사가 추가되었을 뿐이겠지.”
애초에 전설로 전해져 오는 혼돈의 시대 이후, 대마법사가 전장에 서는 경우가 없었다.
그들이 그렇게 효용이 좋았다면 어째서 대마법사들이 모든 전쟁에 동원되지 않았겠는가.
그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전장을 쓸어보았다.
예상치 못한 일에 주춤대긴 했으나, 문제가 될 것은 없다는 뜻이었다.
‘오히려 유일하게 우려했던 카드가 손쉽게 드러난 격이다.’
이쪽에서는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 병사들을 더 넓게 배치하고, 정예 기사들이 빠르게 파고들 수 있게 전진시키면 충분할 터다.
병력을 통솔하던 공작의 손이 들어 올려졌다.
“좋아, 우리는 후방에서 주변 영지의 병력이 들이닥치기 전에 승부를 본다. 대마법사라는 이름에 기죽지 말아라, 이쪽에서도 방해 술식을 전개해서 최대한 발목을 잡으면 된다. 정석대로만 하면 쉽게 이길 수 있다.”
“알겠습니다.”
“진격한다.”
둥둥!
둥!
“진격하라!”
“와아아아!”
“진격의 명령이 떨어졌다!”
재차 진격의 북소리가 울려 퍼지고, 자리를 지키고 있던 병사들은 그제야 하나둘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신감에 넘친 지휘도 그러했지만 실제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니 두려워할 것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그리고 그런 윌리엄 공작은 아직 병력이 드러나지 않은 성벽을 보며 입꼬리를 끌어당겼다.
“수도 성벽의 약점은 수비 시설이 미약하다는 점에 있지.”
주요 외부 거점들에 방어력이 집중된 에스테반의 구조.
당연히 그 약점은 파악하고 있었다. 그러니 작전 역시 준비되어 있었다.
“……저 거대한 성문만 열 수 있다면 놈들은 속수무책으로 밀려날 것이다.”
공작은 주머니 속에 든 것을 어루만지며 중얼거렸다.
준비된 신호탄은 한 발.
그것이 발사되는 순간 내부에 감추어져 있던 기사들이 혼란을 일으키고.
자신들은 그저 손쉽게 성문을 장악하면 될 뿐이리라.
하지만 그런 순간까지도.
공작의 뒤에 있던 마법사는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대마법사의 존재를 이토록 가볍게 여기신단 말인가…….’
비록 소드마스터에 비하자면 전장에 제대로 나타난 적은 없다지만, 대놓고 대마법사를 무시하는 공작의 처사에 같은 마법사인 그는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심지어 대마법사란 족속들은 인간을 초월한 초월자.
인간의 신위를 벗어났다는 의미를 마법사도, 검사도 아닌 공작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불안했다. 왠지 모르는 마력의 술렁거림이 그 불안감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었다.
‘아무 일도 없었으면 좋겠거늘…….’
그는 애써 마음을 다잡으며 명대로 다른 이들과 함께 방해 술식을 준비하였다.
개인적인 사감은 사감.
우선 공작의 말대로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할 차례였다.
부디.
그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 * *
고오오오-
전운이 감도는 수도의 성벽은 무척이나 고요하다.
병장기가 스치는 거친 쇳소리만이 귓가에 스칠 뿐이고, 병사들의 분주한 움직임은 곧 다가올 전투를 의식한 듯 긴장감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런 성벽의 위.
모두가 우러러 쳐다보는 그곳의 분위기만은 달랐다.
“그렇군.”
마치 가까운 정원으로 마실이라도 나온 듯.
여유롭게 성벽 위를 거니는 발걸음은 가벼웠고, 시시각각 다가오는 적들의 움직임은 한낱 감흥조차 주지 못했다.
“죽을 장소도 모르고 달려드는 것은 불나방과도 다르지 않구나.”
화르륵-
그 순간, 마탑주의 손으로부터 불꽃과 같은 푸른빛의 마나가 솟아올랐다.
불꽃은 이내 제멋대로 타오르더니 하나의 형체를 이루고 허공 위로 아로새겨졌다.
촤아아아아악!
허공을 질주하는 불꽃은 그대로 공중에 여러 기형학적인 문양을 남기며 점점 더 번져 나간다.
천천히.
보석 따위를 세공하듯 아주 세밀한 감각으로.
이윽고 그것은 현 대륙의 누구도 알지 못하는 형태를 완성 시키고 말았다.
촤르르르르륵!
겹치고, 겹치고, 겹치며.
여러 차원을 아우르듯, 왜곡됨의 연속 속에서 드러난 것은 미지의 마법진이었다.
그 마법진은 이윽고 증폭해서 자신의 몸을 불리기 시작했다.
“…….”
거대한 경외 속에 잠식당하는 기분이 바로 이런 것일까?
마치 온 세상의 마나가 오직 한 명만을 위해 존재한다 말하는 것처럼.
그 손짓에 따라 세상이 요동치고 온 전역의 마나가 뒤틀렸다.
천지를 뒤흔드는 힘.
그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던 마법사들은 몸을 떨며 전율했다.
“아, 아아…….”
“이것이…… 대마법사…….”
마구 퍼져 나가는 마력은 개인이 뿜어냈다고 여길 수 없을 정도로 방대했고, 광폭했다.
이미 눈에 닿는 모든 장소는 남자의 권역 아래에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이제, 진정한 ‘로드’의 힘은 다가온 적들에게도 선명하게 보이리라.
온 공간을 장악하고 대자연조차 스스로의 영역으로 만든 초월자의 신위가 느껴지겠지.
“대마법의 힘을 우습게 알고 덤비다니, 우스운 일이군.”
그저 현대 마법전의 양상만을 생각했다면 큰 착각이다.
모르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죄였다.
쿠구구구구-!
우우우우웅!
마침내 공간을 찢고 허공으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인공 태양.
북방에 남아 있던 태양이, 미리 안배해 두었던 차원의 통로를 타고 순식간에 성벽 위에 내려앉았다.
그 모습에 광기에 휩싸인 듯 닥쳐오던 공작의 병졸들이 놀라는 모습이 이곳에서도 선명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다.
그 미지(未知)의 아래에서.
“감히 전하의 뜻에 반하고 에스테반에 혼란을 가져온 죗값을 치르게 해 주마.”
그의 손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하고 입에서는 낯선 언어들이 쏘아지기 시작했다.
점점 더 증폭하기 시작하는 마력.
그리고 그럴수록 인공 태양에서 흘러나오던 마력은 더더욱 거세게 분출되며 마탑주의 전신을 감싸기 시작했다.
엄청난 밀도의 마나에 의해 그의 전신이 서서히 공중으로 떠오른다.
그렇게.
……일륜의 무한한 힘을 빌린 대마법사는, 기어코 또다른 수식을 끝맺음했다.
그 순간 세상이 멈춘다.
휘이이이이잉!
그리고 사방의 마력이 순식간에 한곳으로 빨려들기 시작했다.
마치 아귀처럼 빨아들인 마력은 이윽고 일 점에 모이더니, 압축되어 찬란한 빛이 되었다.
“잘 가라.”
하늘이 열린다.
그리고 절망이 떨어진다.
역사의 한편에도 남지 않은 먼 고대의 마법.
그 사라졌던 전설이, 이곳에서 부활했노라 선포한 것이다.
***
우우우우웅!
“……이, 이럴 수가.”
세상을 이루는 원소.
마나를 잃어버린 세상은 어느덧 무채색이었다.
그것을 가능케 한 것이 있다면, 유일하게 남자의 손에서 빛나고 있는 저 일 점의 마법진 뿐이리라.
“이건…… 말도 안 돼…….”
더 이상 마법이 아니더라도 이변을 눈치채기에는 충분했다.
경외와 두려움으로 질린 이만의 병사들이 동시에 발걸음을 멈추었을 정도였으니까.
공작은 경악으로 눈을 부릅뜬 채로 마법사를 닦달했다.
“저, 저것이 무엇이냐? 대체 이 불길한 현상은 뭐지?”
“저, 저것은 아마도 이론에서 말하는 블랙아웃 현상입니다.”
“이 새끼가…… 그러니까 그게 무어냐고 묻지 않았느냐!”
지휘관은 절대로 동요를 드러내서는 안 된다.
작게는 본인의 평정심을 잃을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나아가서는 부대 전체의 사기를 좌우하게 될 테니까.
하지만 지금만큼은 어쩔 수 없었다.
뱀과 같은 노련함으로 정치판을 뒤흔들었던 공작조차도 평생 겪어 보지 못한 이 상황에서는 놀랄 수밖에 없던 것이다.
그러자 마법사는 눈을 깜빡거리는 것도 잊은 채로 설명했다.
“보, 본디 원소라는 것은 서로 잡아당기는 힘이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 한 곳에서 비정상적으로 강한 힘이 생성되면, 세상을 구성하던 원소들이 그 일 점에 응집하며 빛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뭐라?!”
“보, 보통이면 작은 실험병 레벨에서나 간신히 일으킬 수 있는 현상인데…….”
“그러니까 간단히 말하란 말이다!”
“컥!”
목을 조르는 공작의 억센 손에 마법사는 숨을 쉬지 못해 컥컥댈 뿐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현상은 지속되고 있었다.
마치 검은 잉크를 뿌리듯 섬뜩한 무채색의 대기가 사방으로 퍼진다.
아니, 빨려 들어간다.
온 세상의 빛이, 저 작은 마법진 속으로.
그리고 한 번의 반짝임 뒤, 엄청난 바람이 사방으로 불어 재끼며 세상은 다시금 원래의 색을 되찾았다.
하지만 방금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목을 졸린 마법사가 하늘의 어딘가를 가리키고 있다는 사실.
거의 직각으로 뻗어진 그 팔…… 그러니까, 그들의 머리 위였다.
스윽-
이윽고 공작의 시선이 마법사가 가리킨 방향으로 향했다.
그런 그곳에는…….
“……별똥별?”
하늘을 수놓으며 가로지르고 있는 하나의 별똥별이 보였다.
이미 태양이 떠오른 지 오래였건만, 별똥별은 그 자태를 드러내며 하늘을 유영하고 있었다.
이것까지만 보면 그다지 이상할 것이 없었으나, 조금의 시간이 지나자 공작은 그것이 비스듬히 떨어져 내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니, 착각이었다.
그 비스듬히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했던 유성은 그저 바닥을 향해 낙하하고 있을 뿐이었다.
대여섯 개의 작은 꼬리들을 뒤로 늘어뜨린 채로.
다만, 그것들이 자신들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번에야말로 착각이 아니었으리라.
“……맙소사.”
미티어 스웜.
마탑주가 첫 번째로 복원하는 데에 성공한 고대의 마법이자, 오로지 광범위의 학살만을 위해 만들어졌던 전략 마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