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147화
수도 공방전 (2)
나는 적들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리는 유성을 보며 무심한 듯 중얼거렸다.
“고대의 마법을 복원하라 했을 때부터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었지.”
고도(高度)로 발전했던 고대의 마법.
그렇다면 그들이 만들어 냈던 한계는 과연 어디까지일까?
그리고 에스테반에서는 그것을 얼마만큼이나 복원해 낼 수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저것은 마탑주가 내게 전해 주는 해답이자 첫 성과였다.
“과연…… 우주 공간의 혜성조차 이 대륙 위로 잡아 이끈다는 말인가.”
서로 잡아당기는 원소의 힘은 저 너머의 공간에 존재하는 것마저도 이곳으로 안내했다.
저 찬란하면서도 파멸적인 빛무리를 보자니 헛된 노력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 어느덧 공간을 찢고 다가온 마탑주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야만족의 땅에서 발견한 고대의 기록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렇군.”
그곳의 마법사들은 자신의 신념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각종 금기를 어겼다.
비인도적인 실험은 물론이고, 인류에게 금술로 지정된 마법들까지.
마력의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연구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연구한 미티어 스웜의 연구 역시 고대의 마법사들이 가장 경계하던 금기 중 하나였다.
“본디는 우주 너머에 있을 천체를 관측하기 위한 마법이었다 하더군요.”
“재미있군.”
그게 전쟁의 역사 속에서 대량 학살의 마법으로 변모했으니.
“그리고 인공 태양도 계획대로 잘 작동하고 있습니다.”
“보아하니 그런 거 같군. 수고했다.”
또한 우습게도 그들이 만든 인공 태양은 금지된 마법을 실행시키는 가장 커다란 매개체가 되어 주었다.
신성제국에게서 받아 온 ‘풍요의 잔’을 연구하며 성장시킨 숙련도로, 이곳에 강림한 태양의 마력을 최대한 증폭시켜 이 기적을 성공시킨 것이다.
“그럼에도 시간이 촉박했기에 모든 것을 복원하지는 못했습니다. 게다가 인공 태양에 가해진 부담이 심하여 한동안 사용하지 못할 것 같군요. 죄송합니다.”
“상관없다.”
나는 여유롭게 엘베른을 집어 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연구를 시작한 이후의 시간을 생각한다면 완전치 못한 것은 당연했다.
그것도 생각하지 못했을까.
하지만 보라, 적어도 지금.
저것이 어떤 효용을 만들어 내게 될지를.
저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를!
째깍-
시곗바늘이 흐르고.
째깍-
유성이 떨어져 내린다.
째깍-
이윽고 다음 초침이 움직였을 때는.
프스스스스!
콰과과과과과광!!
천지를 뒤흔드는 굉음이 울려 퍼지고 거대한 섬광이 일었다.
쩌저저적!
“허어억!”
“수, 숙여라!”
온몸으로 느껴지는 진동은 그 위력을 대변하듯 땅을 손쉽게 찢어 내며 다가왔고, 이윽고 이쪽의 돌로 만들어진 성벽까지 잔뜩 흔든 뒤에야 조금 멎는 듯했다.
하지만 그 여파는, 그것만으로도 성벽의 뒤에 숨어 있던 병사들의 몸이 충격으로 넘어졌다.
아직은 벌어져 있던 거리가 무색할 정도로 말이다.
“모, 모두 괜찮은가?!”
사태에 대비하여 몸을 낮추라는 명을 들었건만, 이토록 막강한 충격일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기사들은 황급히 내부를 수습하는 반면 먼지구름이 걷히는 외부의 상황을 지켜보았다.
“마, 맙소사!”
“저길 봐!”
……참사.
한참이 지난 뒤에 드러난 것은 그따위 말로밖에 설명할 길이 없었다.
반란군은 감당하지 못할 충격에 성히 움직이는 사람이 없었으며, 일부는 세상에서 지워진 듯 흔적조차 남기지 못하고 사라졌으니까.
다만 그 속을 평온하게 내려다보던 내 고개는 무심한 듯 끄덕여져 있을 뿐이다.
“죽은 것은, 절반…… 정도인가.”
기록대로였다면 저들이 전부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았을 테지만, 아직은 이 정도가 한계…….
아직은 조정이 미숙한 탓에 놈들의 군세를 정면으로 타격하지는 못한 것이다.
그러니 혹자에게는 두 눈을 의심케 만들 위력일지라 하더라도, 내게는 단지 썩 괜찮을 수준의 만족감이었다.
스릉-
“수고했다. 마나가 회복될 때까지 쉬고 있도록.”
“예, 전하.”
깜짝 선물로 놈들에게 안부를 전했으니, 이제는 본격적인 나의 전쟁이 시작될 차례이리라.
“감히 네놈들이 검을 들이민 상대가 누군지 깨닫게 해 주지.”
마침내, 이 시간대에도 검왕의 이름이 새겨질 순간이었다.
* * *
“…….”
눈앞에 펼쳐진 이 상황을 뭐라 설명하면 좋을까?
여유로웠던 오만함은 이제 그 자리에 없었다. 오직 두 눈을 부릅뜬 채로 드러난 참상에 경악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게…… 정녕 인간의 손으로 만들 수 있는 일이라고?”
정면이 아니었다. 아슬하게 비껴가 측면을 타격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저 거대한 크레이터의 영향력 안에는 더 이상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말 그대로 소멸.
그가 당당하게 자랑하던 이만의 군세가 단박에 절반 이상이 줄어들어 버린 것이었다.
물론 그 충격의 영향력 밖에 있던 그들이라 하더라도 어디 한 군데 성한 곳이 없었다.
땅은 뒤집히고 병력은 수습하기 어려울 정도로 혼란에 빠졌으며.
무엇보다도 심각한 것은 공포에 질린 탈영병이 속출하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아수라장이었다.
“이, 이이익……!”
그나마도 유성이 지휘부를 타격하지 않은 것에 감사해야 할까?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공작은 떨리는 손을 들었다.
그러곤 자리에 주저앉아 오줌을 지리는 마법사의 멱살을 잡아끌었다.
“너, 너…… 네놈이 설명해 보아라. 저놈이 대체 무슨 짓을 벌인 것이지?”
“으으…… 저, 저도 모르겠…….”
“그걸 마법사인 네놈이 모르면 누가 아냐는 말이다!”
콰직!
“컥!”
공작의 군화는 마법사의 안면을 뭉개고 짓밟았다.
피가 터져 나와 아수라장이 되어 버린 바닥에 흥건히 적셔졌다.
그럼에도 공작의 분노는 꺼지지 않았다.
“네놈이 상대방의 행동을 알아차렸다면 병력을 물리기까지 시간은 충분했을 터다! 한데 멍청하게 서 있기만 하다가 아까운 시간을 소비해?”
“큽…… 죄송합니다.”
“비싼 돈을 처먹는 마법사 주제에 역할조차 다하지 못하는 건가!”
“하, 하지만 대마법사의 마법을 어찌 제가…….”
마법사는 황급히 변명하며 몸을 일으키려 했다.
아니, 변명은 아니었다.
저것이 고대의 마법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을 리도 없었을뿐더러.
애초에 대마법사의 행동을 일개 마법사인 그가 읽을 수 있을 리 만무했으니까.
그러나 공작의 눈에서 불똥이 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오냐, 그렇다면 네놈은 적진에 대마법사가 있으니 무용지물이라는 소리렸다?”
“가, 각하?”
“그렇게 스스로의 용도를 피력한다면 이 내가 최대한 쓸모 있도록 만들어 주지.”
“대, 대체 무엇을…… 흐어어억!”
서걱!
후두둑-
공작의 자비 없는 칼날이 마법사의 목을 가르고 지나갔다.
그리고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온 핏물이 공작의 몸 위로 덧그려졌다.
오랜 기간, 공작가를 따르며 수행에 전념했던 마법사의 최후치고는 무척이나 애처로운 끝이었다.
스윽-
공작은 떨어져 내린 마법사의 머리통을 집어 들며 충혈된 눈으로 소리쳤다.
“각 부대의 기사들은 전열을 수습하고 전투를 준비하라! 감히 전장을 이탈하는 버러지들은 모조리 죽여 버려도 좋다!”
“며, 명을 받들겠습니다!”
“가, 각하의 명이 떨어졌다! 움직여라!”
……본보기.
혼란을 수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보다 강한 공포로 군중을 휘어잡는 것.
애초에 그에게 뒤란 존재하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무너져서는 안 되는 것이다.
핏물을 뒤집어쓴 채로 명령을 내리는 그 모습은 잔혹이라는 말이 무척이나 어울렸다.
툭-!
공작은 비로소 쓸모없어진 머리통을 바닥으로 내던지며.
서늘하게 발몽스 백작을 바라보았다.
“처음부터 시간은 우리의 편이 아니었다.”
“……그렇습니다.”
“상식적으로 이만한 힘을 사용했다면 더 이상의 활약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래.
놈들의 유일한 카드나 마찬가지였던 대마법사의 존재는 더 이상 이 전장 위에서 위협이 되지는 못하리라.
그렇다면…….
“무리해서라도, 얼마나 병력을 희생시켜서라도 성벽으로 다가가야만 한다.”
“알겠습니다.”
“놈의 마나가 회복되기 전에 끝을 보겠다.”
더 이상 처음의 여유는 없었다.
물러설 시간도 재정비를 마칠 시간도 없으니, 이곳에서 끝장을 봐야만 했다.
“……이 수모는 반드시 갚아 주겠다.”
전장 위에 번뜩이는 공작의 두 눈은 이미 악과 광기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 * *
적들이 성벽을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놈들이 온다!”
“위치로!”
타다다닷!
가공할 장면에 몸이 굳었던 것도 잠시.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되자 충격에 대비하여 성벽 아래에 몸을 숨기고 있던 병사들이 재빠르게 성벽 위로 뛰어 올라갔다.
그 거침없는 눈빛들에는 결연한 믿음이 존재했다.
“반란군들의 병력은 이미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두려워하지 마라! 우리의 뒤에는 무패의 1왕자 전하와 대마법사가 계신다!”
여태껏 그 누구도 본 적 없던 압도적인 광경.
그들이 목도한 장면은 그만큼이나 승리에 대한 신뢰를 심어 주었다.
위치로 이동한 병사들은 곧장 기사들의 명령에 따라 움직였다.
“궁병은 화살을 쏴라!”
“사다리를 들고 오는 놈들을 먼저 노려!”
“충!”
퓨퓨퓨퓩!
마치 떨어져 나온 유성의 조각처럼 하늘을 수놓는 화살들.
아직 적과의 거리가 제법 되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무척이나 이상한 명령이었다.
하지만,
퍼퍼퍼퍽!
“크악?!”
“큭!”
콰당탕!
“컥……! 이렇게 먼 거리에서 어떻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살은 목표물을 정확히 저격했다.
사다리의 엄호를 위해 거리를 재던 반란군의 궁병들이 당황할 정도였다.
그 비밀은 그들이 쓰는 활에 있었다.
“이게 바로 그 드워프들이 만든……!”
“설마 저토록 먼 거리까지도 화살이 닿을 줄이야.”
드워프제를 병사들에게 보급한 것은 처음이었기에 병사들은 그 비약적인 성능에 놀라워했다.
말로만 들었던 드워프제를 직접 겪어 보니 그 차이를 확연하게 깨달은 것이다.
그에 힘입어 계속해서 날아가는 화살.
수많은 병사가 쓰러졌으나, 그들은 결코 멈춰 서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도, 도망…… 커어어억!”
“뒤로 물러서는 녀석은 제일 먼저 벨 것이다! 돌진만이 살길이다! 길을 뚫어라!”
그들은 공포와 강요라는 이름으로 사지 속으로 밀려났기 때문이다.
“가까운 곳에 있는 병사들은 사다리를 들어라!”
“성벽에 다가가기만 해도 우리의 승리나 다름없다!”
거대한 사다리들은 다른 이들의 손에 이끌려 다시금 진격했고, 쓰러져 간 병사들은 후발대의 모습에 가려져 더는 보이지 않게 되어 버렸다.
전진한다.
동료의 시체를 밟고 다시 전진한다.
활을 쏘아 대던 병사들은 그 모습에 질려 하면서도 시위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에도 적들은 조금씩 계속해서 다가왔고, 마침내 성벽에 닿을 정도의 거리가 되었다.
그 순간이었다.
“저, 적들이 흩어지고 있습니다!”
“……뭐라?!”
성벽을 무너뜨릴 것처럼 다가오던 병력이 좌우로 찢어지며 포위하듯 그 진형을 바꾸었다.
정확히는 포위하는 것이 아니라 성문 방향의 병력을 모조리 비워 냈다.
처음부터 성문을 뚫는 것은 안중에도 없었다는 듯, 오로지 양옆의 성벽만을 노리는 것이다.
지휘하던 기사들은 당혹감을 내비쳤다.
“뭐, 뭐지?”
“성문을 노리지 않는다고?”
공성전은 성벽이라는 방어 수단을 가진 수성 측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한 구조였다.
그 이점을 가지고 있는 한, 적은 병력으로도 효율적인 방어가 가능한 것이다.
그러니 공성 측의 가장 기본 전략은 성벽과 성문을 동시에 공격하여 방어선을 함락하는 것이다.
하지만 저들은 성문을 완전히 버리고 성벽만을 택했다.
병력을 집중시킨다고 하기에는 숫자의 우위가 명백히 저들에게 있음에도.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는 전략을 택한 것이었다.
“이쪽에 대마법사가 있으니 성문을 파괴하는 것을 포기한 건가?”
가뜩이나 많았던 병력이 오히려 퍼졌다. 이쪽에서도 대응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소리였다.
어쩐지 말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베테랑 기사들은 손을 휘저으며 다급히 지시를 내렸다.
“성문을 지키던 병사들은 최소한의 병력만 남기고 성벽 위로 올라가라!”
“혼란을 야기하고 물량 공세에 집중할 생각인 모양이다! 다들 정신 바짝 차리고 총사령관인 1왕자 전하의 지시가 있기 전까지 성벽을 막아라!”
“그럴 필요 없다.”
“……헛!”
“……!”
그때, 분주하게 움직이는 기사들의 뒤로 누군가가 다가왔다.
그 특유의 여유로우면서도 서늘한 목소리.
기사들은 저도 모르게 몸을 흠칫 떨었고, 이내 뒤를 쳐다보며 천천히 입술을 떼었다.
“……1왕자 전하.”
“명령이다. 자리를 유지하고 있도록.”
“그, 그것이…….”
홀로.
그 누구의 보좌도 없이 걸어오는 그 남자는…… 이윽고 기사들을 지나쳐 걸어가며 말했다.
“놈들의 같잖은 전략 따위에 휘말릴 필요는 없다.”
“……아.”
기사들은 성문을 향해 걸어가는 1왕자의 뒷모습을 우두커니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적어도 이 상황에서만큼은 그러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기책은 약자나 쓰는 것이니 말이다.”
* * *
사다리가 걸리자 병사들은 불지옥에 떨어진 것처럼 다급하게 그 위를 올랐다.
마치 그러지 않으면 안 될 것처럼 목숨을 다하여 맹목적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그런 성벽의 전경을 바라보던 공작의 뒤로 누군가가 나타났다.
“각하, 이제 때가 되었습니다.”
“…….”
공작은 넌지시 시선을 돌려 남자를 바라보았다.
……왕실 제1 기사단장, 아놀드.
왕실을 수호하던 찬란한 은빛 갑옷은 이제 없었다.
오로지 욕망만을 위해 반역에 가담한 위정자만이 거기에 있을 뿐이다.
공작은 주머니 속에 든 신호탄을 매만지며 말했다.
“준비는.”
“슬슬 성문을 막기 위해 자리한 병력들이 분산되었을 것입니다. 신호가 떨어지면 내부의 기사들이 움직여 그곳을 점거하고, 병사들 사이에 숨어 있던 기사들이 재빠르게 다가가 내부로의 길을 열 것입니다.”
“그래.”
성문을 도외시한 것은 시선을 돌리기 위해서였다.
그곳을 노리지 않는다고 보이게끔 하여 방심하게 만들고, 분산시킨 적들을 기사들로 하여금 반응하지 못할 속도로 정리케 하는 것.
아마, 놈들로서는 철저하게 믿고 있던 도끼에 발등이 찍히는 것과도 다르지 않으리라.
“그렇다면 시간을 끌 필요는 없겠군. 슬슬 시작하지.”
“예.”
스윽-
공작은 손에 들려 나온 것을 쳐다보지도 않고 들어 올렸다.
머리 위로. 그리고, 약속대로 그것이 하늘을 향하도록.
저 방아쇠가 당겨지는 순간이 비로소 대업에 한 발자국 다가가는 순간이 되리라.
“……왕실의 역사는 오늘로써 끝이다.”
그리고 자신은 폭군으로부터 에스테반을 구원한 유일한 구원자가 될 것이다.
끼리릭.
……찰칵-
피유우우우웅!
“……헛?”
“……!”
신호탄이 솟아오르는 소리는 숨 가쁘게 돌아가는 전장 속에서도 유독 이질적인 소음이었다.
그래서일까?
활시위를 재던 병사들은 물론이고 사다리를 오르던 이들까지 순간적으로 고개를 돌려 그곳을 바라보았다.
바로, 신호탄의 아래에서 입꼬리를 비뚜름히 올린 채로 서 있는…… 윌리엄 공작에게로.
“자, 열려라.”
그리고 자신에게 약속된 왕위라는 영광을 가져다주어라.
그러기 위해서 자신은 제 ‘백성들’의 피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이곳으로 온 것이니까.
그렇게 신호탄을 든 공작의 손이 스르르 내려앉기 시작했고, 마침내 성문은 열리기 시작했다.
천천히.
그저 처음부터 정해져 있던 대로.
“음?”
하지만 이상한 일이었다.
“……저건 뭐지?”
성문의 안쪽으로 보여야 할 제1 기사단은 온데간데없고, 그곳에 서 있는 것은 오직 한 명의 남자뿐이었다.
전장이라는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검은색의 정복과 기이한 청록색 색상의 검을 든 남자.
마침내 그 익숙한 실루엣의 정체를 확인한 공작의 얼굴이 악귀처럼 일그러졌다.
“……1왕자.”
본디 왕실 수호 기사단이 있어야 할 장소는 오직 그 한 명만이 고고하게 서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