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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148화 (148/223)

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148화

수도 공방전 (3)

“…….”

저벅- 저벅-

비명과 절규.

살의와 공포가 휘몰아치는 이곳에서도 저 멀리에 있는 1왕자의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마치 책상 하나를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이 대치하는 것처럼.

지금 이 장소에는 둘 외의 다른 이들은 보이지 않게 되어 버린 것이다. 적어도 공작이 생각하기에는 그랬다.

‘……놈이 어째서 저곳에 있는 것이지?’

그렇게 정신을 다잡은 공작의 얼굴은 무표정했으나. 이 상황을 이해하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가속되어 느려진 공간 속에서 단 수 초 만에 수만 가지의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갔다.

온갖 가능성을 재단하며 가장 합리적인 결론을 도출해 냈다.

“기다리던 사람이 아니라서 실망했나?”

놈이 계획을 알아차렸다.

‘……아니. 그럴 리가 없다.’

이 상황을 만들어 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고를 거쳐 왔던가?

놈들에게 들키는 일은 일어나서도, 결코 일어날 수도 없는 이야기였다.

공작은 애써 상황을 부정하며, 왕실 제1 기사단을 찾기 위해 성문의 안쪽으로 눈길을 던졌다.

하지만 발악에 가까운 부정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눈동자를 굴려 가며 찾고 있는 것은 이건가?”

툭-!

데구루루-

“……!”

제1 기사단의 부단장, 슬로터 테슬라.

놈의 핏기조차 남지 않은 머리통이, 바닥을 쓸쓸히 구르고 있었기에…….

1왕자는 대강 내던진 머리통을 보며 이죽거렸다.

“믿고 있던 구석이라 치기에는 아무 쓸모가 없었던 것 같군. 그렇지 않은가?”

“……나머지 기사들은.”

“모조리 죽였지. 한 놈도 남김없이.”

“…….”

아무렇지 않다는 듯 지껄이는 그 말에.

까드득-

‘아놀드…… 이 개새끼가…….’

공작의 입에서 살의 가득한 분노가 새어 나왔다.

대체 무엇을 어떻게 처리해야 일이 이딴 식으로 진행될 수 있단 말인가?

그 이상한 기운을 감지한 아놀드는 바닥에 납작 엎드리며 몸을 떨었다.

“가, 각하……! 저는 분명 조금의 증거조차 남기지 않았습니다! 저, 정말입니다!”

“말해 봐라. 그렇다면 놈이 이 사실을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그, 그건…….”

“그 일그러지는 표정들을 보니 정보를 감춘 보람이 느껴지는데.”

“……1왕자.”

그러자 공작의 표정은 또다시 악귀처럼 일그러졌다.

더러운 것이 묻었다는 듯 손을 털며 어깨를 으쓱이는 모습에, 더 이상 분노를 참지 못한 것이다.

그 순간이었다.

끼이익-

“……!”

1왕자의 뒤로 활짝 열려 있던 성문이 천천히 닫히기 시작했다.

그것을 확인한 공작의 표정이 급변했다.

‘성문을 닫는다고?’

아직 1왕자는 성벽의 안쪽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그럼에도 기다렸다는 듯 성문을 걸어 잠그는 그 모습은, 마치 1왕자를 전장의 밖으로 내던지는 것과도 같지 않은가?

그 누구의 보호도 받지 못하는 적진의 한복판으로…….

‘대체 무슨 짓이지? 설마 미끼인가?’

떨어진 유성에 막심한 피해를 입었다 하더라도 아직 이쪽의 남은 병력이 더 많다.

정신적으로 몰려 있을지라도 어떻게든 승기를 잡으면 될 일이다.

한데 어째서 저런 짓을?

설마 방금 그 유성처럼 다른 숨겨 놓은 수가 있단 말인가? 우리를 방심하게 한 뒤 일망타진하려고?

‘……대체 무슨 꿍꿍이지?’

머릿속이 혼란스러운 지금은 그렇게밖에 생각할 길이 없었다. 오히려 이 상황 자체가 함정인 것처럼 보일 뿐이다.

그러나 1왕자는 아랑곳하지 않으며 이곳을 향해 걸어올 뿐이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훤히 보이는군. 함정 따위는 없다.”

“……그 말을 믿으라는 말이냐?”

“믿지 않으면 어쩔 것이지?”

“…….”

이를 악다문 침묵에 1왕자가 가소롭다는 듯이 웃었다.

“무언가 착각하고 있는 것 같군. 겨우 이런 일에 함정을 쓸 거 같은가?”

“평정심이 깨어진 틈을 노리고 수단을 쓰리라는 것을 내가 모를 줄 아느냐!”

“아니, 네놈들에게는 그럴 가치조차 없다고 말한 것이다.”

“뭐라…….”

“애초에 내가 왜 이곳에 가만히 있을 거라고만 생각하고 있는 거지?”

“그게 무슨…….”

이번만큼은 공작도 상대에게 말리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할 정도로 당황했다.

“대체 그게 무슨 말이지? 설마 네가 검이라도 휘두르겠다고?”

“정답이다. 그것이 전투에서 이기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니까.”

“……미친 새끼.”

눈살을 찌푸렸다. 더는 상대할 가치조차 없었다.

이 일만의 병력 사이에 홀로 들어오겠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그를 놀리는 것이라고밖에는 생각되지 않은 것이다.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이것은 기회다.’

녀석을, 이 사건의 시발이 된 1왕자를 잡으면 메테오로 나락으로 치달은 사기를 다시 올릴 수 있다.

아니, 그것만으로 바로 이 전쟁을 끝낼 수 있다.

공작은 납작 엎드려 있던 아놀드에게 씹어 뱉듯 명령을 내렸다.

“숨어 있는 나머지 기사들을 모조리 움직여 저 건방진 놈을 처리하라.”

“예, 알겠습니다. 반드시 방심의 대가를 치르게 하겠습니다.”

스윽-

아놀드의 손이 몇 번 휘적여지고, 전장 내에 몰래 숨어 있던 그의 기사들이 수신호를 확인했다.

여기저기서 아티팩트를 발동하는 빛이 번쩍였다.

속도를 극한까지 끌어올릴 수 있도록 설계한 보조계열 아티팩트들이었다.

“……함정 따위가 있더라도 반응조차 못할 것이다.”

공작의 입술이 비뚜름히 올라갔다.

최상의 속도와 최상의 기습.

목적은 달라졌지만, 최후까지 준비해 두었던 작전이다.

사방에서 들어오는 저 공격들을 고작 소드 엑스퍼트 수준이라 알려진 1왕자가 막아 낼 가능성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리라.

“잘 가라. 건방진 에스테반의 왕자여.”

그리고 스물에 가까운 기사들이 재빠르게 1왕자를 향해 쇄도했다.

“죽어라!”

“흐읍!”

순간적으로 터져 나온 본신의 힘보다도 수배나 빠른 움직임.

오러에 번뜩이는 검들이 1왕자와 충돌하는 순간, 작은 폭음과 먼지바람이 일었다.

콰과과광!

안 봐도 뻔한 최후였다.

그렇게 공작은 조소 가득한 얼굴을 드러내며 그곳에 형체도 없이 남아 있을 1왕자의 모습을 찾기 위해 먼지바람 속을 주시했다.

하지만.

“열아홉. 숫자는 정확하군.”

“……!”

그곳에서 흘러나오는 것은 오직 1왕자의 평온한 목소리뿐이었다.

이윽고 믿지 못할 눈으로 먼지바람이 사라진 곳을 바라보자, 그곳에는 핏빛의 불꽃과 같은 강렬한 빛이 어둠 속에서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 그건…….”

공작은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서며 말을 더듬었다.

돌부리에 발을 헛디뎌 발목에 시큰한 통증이 아른거렸지만 그것을 느낄 새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고오오오-

“소, 소드마스터?”

오러 블레이드.

1왕자의 검 위에서 솟구치고 있는 저 살의는 오로지 경지의 끝을 걷고 있는 이들만이 사용할 수 있는 초인의 비기(祕器)였기 때문이다.

“마, 말도 안 돼…….”

그럴 리가 없었다.

이 상황은 무언가 이상하고도 한참이나 잘못되었다.

저것을 무슨 수로 1왕자가 사용하고 있단 말인가? 무언가 현혹을 위해 만들어진 눈속임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말도 안 되는 거라고 되뇌는 것도 잠시였다.

이윽고 붉은 불꽃이 검과 함께 땅으로 가라앉았을 때는 이미 절반으로 찢어진 기사들의 시신만이 널브러져 있었으므로.

공작은 더 이상 몸을 움직일 수도 없었다. 전신이 두려움에 사로잡혀 버린 것이다.

그때 1왕자가 나직이 말을 꺼냈다.

“궁금하지 않은가?”

“무, 무슨…….”

“내가 네 녀석의 목을 베는 것이 먼저일지. 아니면 네 바람대로 수도의 성벽이 무너지는 것이 먼저일지 말이야.”

“……!”

공작은 그제야 1왕자가 했던 말들을 다시금 떠올릴 수 있었다.

자신이 나서는 것이 전투에서 이기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라는 그 말.

……그리고 함정을 파 놓을 가치도 없었다는 그 말까지.

“너, 너……!”

정말로 1왕자에게는 그럴 이유가 없었다.

그저 정면으로 진격하고 그 힘에 대비하지 못한 적장의 목을 수확하면 그만이었다.

……그래.

그것이 이 전쟁을 가장 적은 피해로 가장 간단하게 이길 수 있는 방법이었으니까.

“조금이라도 발악해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허억……!”

두 사람의 사뭇 다른 시선이 전장 위로 교차했다.

공포와 경외. 그와 대비되는 평온함과 여유.

혹은 즐거움.

“그렇지 않으면 이 순간을 기다려 온 내가 심심해하지 않겠느냐?”

처음부터 이길 수 없던 싸움.

자신이 그저 거대한 판 위에서 놀아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 * *

대마법사와 소드마스터의 차이는 극명하면서도 간단했다.

한쪽은 백병전에 약하고, 한쪽은 강하다.

그 가공할 만한 속도로 다가오는 칼날은 지금만큼은 대마법사의 존재보다도 절대적으로 두려운 것이었다.

“마, 막아! 막으란 말이다!”

병력을 지휘해야 한다는 마음 따위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오직 태초의 본능만이 그를 움직이게 하고 있었다. 공작은 마부를 재촉하는 동시에 발악하듯 소리쳤다.

“아놀드! 네놈의 실책을 이 자리에서 만회해라!”

“가, 각하! 그게 무슨…….”

“놈의 움직임을 막으란 말이다!”

그것은 비단 제1 기사단장에게만 해당하는 명령이 아니었다.

하지만 공작가의 기사는 물론이고 병사들까지 그 누구도 머뭇거릴지언정 움직이는 이는 없었다.

1왕자가 소드마스터였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은 공작 혼자만이 아니었으므로.

살 가능성이 0%에 수렴하는 것과 0%인 것. 그 둘의 차이는 그만큼이나 거대했던 것이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비릿한 미소를 흘렸다.

“시작이군.”

그리고 맹수는 뒤쫓는다.

느긋한 발걸음을 여유롭게 내디딘다.

하지만 그 결과는 정반대였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고 눈으로 좇기에 어려울 정도로 빨랐다.

미티어 스웜의 영향으로 박살이 나 버린 마차는 애석하게도 공작의 발이 되어 주지는 못한 모양이다.

“으아아악!”

“흐아악!”

“혀, 협공해라! 어떻게든 빈틈을 만들면 인간인 이상 몸속에 검이 들어갈 것이다!”

놀라운 정신력으로 죽음의 공포를 이겨 낸 기사들이 앞을 가로막고 포위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서 병사들이 검을 치켜세우고 달려들었다.

그러나 빈틈, 그런 것이 다른 누구도 아닌 내게 있을 리 없었다.

그 누구도 아닌 소드마스터다.

사실상 전장의 명맥이 사라진 대마법사와 달리, 현대에도 끝없이 우러러보는 전장의 지배자.

심지어 나는 그 이상이었다.

회귀 전에 수없이 겪었던 전쟁 속에서 검술과 오러의 응용법은 끊임없이 발전해 왔다.

말 그대로 숨을 들이켜듯이 검을 휘둘렀고, 내뱉듯 오러를 사용했다.

그 자체가 일상이었다.

우우우웅!

서걱-

“꺽!”

“커헉!”

단 일격.

앞을 가로막았던 이들은 여지없이 죽음을 맞이했다.

핏빛의 오러는 내세워진 검은 물론 갑옷까지 모조리 찢어 낸 채로 생명마저 무참히 앗아 갔다.

하지만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죽어 버린 쪽은 차라리 나았다.

“끄아아악!”

“사, 살려 줘!”

“마, 막을 수가 없어!”

오러의 범위 밖에 있던 이들은 검풍의 영향으로 살가죽이 걸레처럼 헝클어졌다.

단 한 번…… 그저 검을 한 번 휘두른 것만으로도 일백에 가까운 숫자가 죽거나 전투 불능이 되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나설 수 있는 자는 없었다

아니…….

“머, 멈춰라!”

“호오.”

한 명은 있는 거 같군.

덜덜 떨고 있는 다리를 부여잡으며 나타난 것은 아놀드였다.

나는 발걸음을 멈추고 놈을 바라보았다.

“오랜만이군, 제1 기사단장 아놀드. 안부를 나눌 사이는 되지 못할 것 같다만.”

“이 새끼가 어디서 허세를……!”

“허세라고?”

나름 기대를 했건만, 그건 명백히 기대에서 벗어난 행동이었다.

공포에 미쳐 버린 것일까? 이 상황에 와서도 그런 말을 한다고?

이 광경들을 지켜보고도?

의아한 듯 눈썹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녀석은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검을 부여잡으며 소리쳤다.

“펴, 평생을 검에 매진한 나는 알고 있다! 검술의 극의라는 것은 고작 스물하나의 나이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게 네 헛된 자신감의 원천이었나?”

“아니라고는 말하지 못하겠지! 비록 성년이 되기 전에 검기를 익혔던 네놈이라 하더라도, 불과 몇 년 사이에 소드마스터가 되는 일은 불가능할 테니까!”

“그렇군.”

그의 얼굴에서 보이는 것은 두려움과 공포뿐만이 아니었다.

분노, 그리고…… 열등감.

평생 검의 끝을 보지 못한 이의 발악이었다.

극한의 상황에 몰려 현실을 부정하고 강박에 사로잡힌 것인가?

재미있네.

“역사에 남은 최연소 소드마스터조차도 서른의 나이였다! 네놈이 그게 가능할 리가 없어!”

인간이 어디까지 추해질 수 있는지.

“부, 분명 대마법사의 마법을 등에 업은 것이겠지.”

그 추악한 부정을 지켜보는 내 눈은 점차 가라앉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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