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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151화 (151/223)

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151화

책임 (2)

왕실과 귀족 세력은 가깝지만 우습게도 먼 사이였다.

서로 간의 이득을 대변하기 위해 때로는 협력하면서도, 그 뒤로는 권력이라는 이름의 줄다리기를 반복하는 것이다.

그러니 작금의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왕실이 행할 수 있는 선택지는 두 가지가 있었다.

귀족들을 달래기 위해서 한 발자국 물러서 주느냐.

……그게 아니라면 그들을 휘어잡고 왕실의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하느냐.

그리고 1왕자, 알렌 에스테반이 선택한 것은 명백히 후자였다.

“뭐, 뭐라고……!”

“전수 조사라니?! 그게 무슨…….”

2왕자파에 이름을 올렸었던 귀족들은 들려온 소식을 믿지 못하고 두 눈을 부릅떴다.

“이, 이럴 수가…… 정녕 올 것이 왔다는 말인가……!”

전수조사.

이번 사태와 관련된 모든 것들을 조사하고 연루된 이들을 색출하겠다는 것…….

뜻만을 생각한다면, 반란이 일어난 직후 당연히 있을 법한 일이다.

하지만 그 냉철한 1왕자가 과연 반란에 연루된 이들만을 조사하기 위해 이것을 꾸몄을까?

이미 주동자가 누구인지 명명백백 밝혀진 이 상황에서?

당연히 놈들에게 협력했다는 조금의 증거만 있더라도 곧장 응징의 대상이 되어 버릴 것이다.

……그래. 그 극히 ‘조금’의 증거.

이를테면 경중과 관계없이 2왕자파에 가담‘했었다’는 증거 정도로도 말이다.

그러니 이번 전수조사는 말할 필요도 없이 귀족들을 압박하겠다는 뜻이었다.

정확히는 ‘2왕자파’였던 귀족들 모두에게 이번 기회에 목줄을 채우겠다는 뜻과도 다르지 않았던 것이었다.

때문에 그들은 발등에 불똥이라도 떨어진 것마냥 두려움에 질렸다.

“큰일이오! 이대로라면 애꿎은 우리까지 화를 입을 거 같은데…….”

“나, 나는 그저 공작과 연을 만들기 위해서 2왕자파에 이름만 올렸을 뿐인데.”

“정신 차리시오! 그러니까 대책을 논해야 한다 말하지 않았소!”

“하, 하지만 그러면 이 상황을 대체 어찌 모면한단 말이오!”

체념하고 현실에 순응하는 이.

두려움 속에서 벌벌 떠는 것 외에는 하지 못하는 이.

혹은, 조금이라도 상황을 바꿔 보기 위해 노력하는 이.

그러나 그 어떤 부류라고 하더라도 머릿속으로는 이미 알고 있었다.

공작의 반란군을 손쉽게 제압하고 차기의 왕으로 우뚝 솟은 1왕자는 긴 역사 속의 그 어떤 왕보다도 막강한 권력을 손에 쥐게 되리라는 사실을.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그 흐름 속에서 발버둥 치는 것뿐이라는 잔혹한 현실을…….

촤륵-

왕실에서 내려온 공문을 힘껏 손에 쥔 한 귀족이, 떨리는 다리를 부여잡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내가 한번 말해 보겠소.”

“무, 무슨……?”

왕위 다툼과 세력의 대립은 이권이 존재하는 한 당연한 것이었고, 패배자의 말로가 어떤지 역시 알고 있다.

하지만 가만히 앉아서 모든 것을 잃어버릴 수는 없었다.

“직접 1왕자 전하께 이번 전수조사의 재검토를 간청하고 오겠다는 말이오.”

“이, 이보시오! 괜한 부스럼을 만들지 말고…….”

“그렇소! 하물며 상대는 그 1왕자요!”

“아니. 가만히 있다가 죽으나 무릎 꿇고 빌다 죽으나 마찬가지요. 그러니까 조금이라도 발버둥 치겠소.”

“이, 이런……!”

휙!

다급하게 몸을 돌린 귀족이 마차에 올라탔다.

다른 이들이 말릴 새도 없을 정도로 재빠른 행동력이었다.

그렇게 곧장 왕궁으로 향한 귀족은 때마침 1왕자의 집무실에서 나오는 사람을 발견할 수 있었다.

‘1왕자가 부른 사람인가?’

처음 보는 형태의 로브를 입고 있는 중년의 마법사였다.

그 수 놓인 형형색색의 플래티넘 무늬가, 마치 왕족이 입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의…….

그 모습이 어쩐지 위화감이 들었으나 지금은 그것을 따질 겨를이 없었다.

귀족은 잘 되었다 싶은 마음에 마법사에게 다가가며 물었다.

“이보시오, 말씀 좀 여쭙겠소. 지금 안에 1왕자 전하가 계시오?”

“……음?”

“부디 알려 주시오. 내 꼭 전하를 봬야 할 일이 있소.”

그 질문에 이상하리만치 당황하던 마법사는 이내 허탈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허허, 알현의 신청은 되어 있는가?”

“그건 아니오만…….”

“그렇다면 먼저 사용인들에게 찾아가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네.”

“그, 그런…….”

귀족의 표정이 절망으로 무너졌다.

그 순간만큼은 상대방의 자연스러운 하대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였다.

그만큼 다급했다는 증거였다.

“너무 급한 일이라 그런데, 혹 그대가 전하께 기별을 넣어 주면 안 되겠소? 내 한 번만 부탁 드리오.”

“허허.”

“무례한 부탁인 것은 알지만 우리에게는 시간이 없소. 그러니…….”

“아, 아니, 마탑주님?!”

그때 저 멀리서 걸어오던 누군가가 놀란 기색을 보이며 외쳤다.

“어찌 기별도 없이 이곳까지 오셨습니까?”

“아, 비도르 남작.”

1왕자의 최측근 비도르 남작이었다. 그 스치듯 흘러간 대화에 귀족의 눈이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리기 시작했다.

‘마, 마탑주라니…….’

그러고는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마법사의 행색을 다시 한번 살폈다.

지금 보니…… 그 플래티넘의 화려한 자수도 그러했지만, 옷감조차 고급스럽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분명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그가 아는 마탑주라 함은 노년의 하얗게 센 얼굴이지, 저런 중년의 얼굴이 아니었으니까.

……그러니 제발 지금의 상황이 자신의 착각이기를 간절히 빌며.

귀족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외, 외람된 말씀이지만 혹 대마법사 님이셨습니까?”

“허허, 그러네.”

‘제, 제기랄!’

순간, 귀족의 콧잔등을 타고 식은땀이 떨어져 내렸다.

자신이 무례한 부탁을 지껄이던 상대가 왕국의 유일한 대마법사…… 그것도, 공작의 반란군에게 일격만으로 괴멸에 가까운 피해를 줬던 남자였으므로.

‘어, 어째서 이런 일이…… 마탑주는 노년의 사내가 아니었던가?!’

그러고는 저 모습을 알아보지 못한 자신을 탓하며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그는 모르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마탑주는 대마법사가 된 이후로 연구와 교육 탓에 외부로의 출입을 자제했고, 간혹 세간에 모습을 드러낼 때는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애초에 젊은 마탑주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는 이들도 소수에 불과하니 시간을 거스른 모습을 알아챌 수나 있겠는가?

하물며 그 화려한 로브마저도 기존 마탑의 형식과 달리 드워프가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것이었으니…….

“오실 것이라면 기별이라도 주셨다면 좋았을 것을…… 음? 방금 전의 그 귀족은 어디로 갔습니까?”

“급한 일이라도 있었던지 황급히 자리를 떴다네.”

“……그렇습니까?”

남작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신이 느끼지도 못했을 정도로 재빠른 움직임이었던 탓이다.

……뭐, 아무렴 어떠랴.

“한데, 용건이 끝나고 돌아가시는 길이셨습니까?”

“그렇다네.”

“오늘은 어떤 일로 찾아오셨는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남작은 그렇게 1왕자를 찾아온 이유를 물었고.

“아무래도 주변국에서 이번 반란군의 소식을 들은 모양일세.”

“소식이라면…….”

“부활한 고대의 살상마법과 관련된 것이지.”

“……아.”

마탑주는 그 용건을 밝히며 미소를 지었다.

다만.

그 온화한 얼굴에 기이하리만치 피어오른 가소로움을 끝끝내 남작은 이해할 수 없었다.

* * *

단 일격에 수천수만의 군세를 소멸시키는 살상마법. 그리고 전장을 지배하는 소드마스터의 출현.

그 정보는 주변국에 빠르게 퍼져 나갔다.

반란의 뒷정리가 아직 완전히 정리되지 않았음에도 말이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 존재만으로도 전쟁의 양상이 바뀌는 전략 전술 병기가 한 번에 두 개나 나타난 상황에서. 하물며 그중 하나는 역사가 다시 기록된 이래로 처음 나타난 고대의 마법이었으니까.

……어쩌면 그런 그들이 입을 모아 우려를 보내온 것은 당연한 일이리라.

-비록 내란을 진압하는 과정이라 해도 일만의 군세를 소멸시킨 비대칭 마법의 사용은 도의적이지 않은바.

-이후의 평화와 안전을 도모하기 위하여, 국제회의를 통해 해당 마법의 금제(禁制) 지정을 논하였으면 좋겠습니다.

피식.

오늘 아침, 왕실로 도착한 한 장의 입장문.

나는 입꼬리를 끌어당기며 비웃었다.

“그러니까, 도무지 상대가 안 될 것 같으니 쓰지 말라는 말을 돌려서 하는군.”

우스워서 참을 수가 없었다.

베껴 내기에는 불가능한 일이고 설상가상으로 상대조차 되지 않으니, 차라리 그것을 봉인하자는 그 의도가.

물론 이해는 간다.

빗나갔음에도 그만한 피해를 줬으니, 행여나 그것이 자신들을 향할까 두려움에 질리는 것은 당연했으니까.

“하지만 그럴 수는 없지.”

재고할 가치조차 없다는 듯, 그것을 쓰레기통으로 내던진다.

그러고는 입을 모아 그것을 보내왔던 국가들의 목록을 기억해 낸다.

그럴수록 도리어 입술에 자리한 조소는 짙어졌다.

“연방제국의 지시가 있었나.”

저들이 직접 그것을 금지시키자고 말하는 것은 불가능할 터니 차라리 주변국을 시켜서 이번 일을 꾸몄다는 뜻이었다.

뻔하다면 뻔한 일이었다.

……그러나 주변국의 압박 따위는 처음부터 안중에도 없었다.

‘이것은 에스테반만이 가진 최강의 무기다.’

그 어떠한 나라도 따라 할 수 없고…… 비록 알고도 대비하지 못하는 세상에 하나뿐인 무기.

그러니 개들은 그저 짖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물론 놈들이 발버둥 쳐도 달라질 것은 없다.

이미 에스테반은, 그 누구의 압박에도 굴하지 않을 힘을 얻게 된 것이다.

“다음에는 무슨 핑계를 댈지 기대하도록 하지.”

그런 내 시선이 집무실의 문밖으로 향했다.

자신을 향해 읍소하러 온 귀족의 기척은 이미 왕궁을 떠난 지 오래였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것은 단 하나뿐.

“알베도.”

패배한 2왕자파의 심장을 취하러 갈 시간이었다.

* * *

절망이라는 것은 불시에 찾아와 자신을 닥쳤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아마, 그것이 마지막이라며 자신을 돌려보냈던 제 외조부의 모습을 지켜보기 전부터 틀어진 지 오래였으리라.

그렇다는 말은 처음부터 모든 것이 잘못되고 있었다는 말이었다.

“…….”

공작가의 저택에서 홀연히 모습을 감추었던 알베도는 어느 순간 왕궁에 있었다.

반란이 시작되었음에도 제 발로 왕궁에 걸어 들어왔다.

당연히 그는 즉시 감옥에 구금당했고, 제 어미인 사라 왕비와 마찬가지로 조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문득 그것이 회의감이 들어 알베도는 쓸쓸하게 웃었다.

“이것이 순리였나.”

영광된 자리를 찬탈하기 위해 진흙탕에 발을 들인 것은 아니었다.

전력을 다해 부딪혔음에도 제 형이 왕위에 오른다면, 비로소 그를 압박하던 욕망의 고리가 끊어질 것이라고.

……그리하면 자신은 꿈에 그리던 자유를 되찾고, 모든 일은 순리대로 마무리된다.

그것만을 바랬을 뿐이었다.

그래서 조금씩 조절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최대한 자신을 지지하는 이들이 늘지 않도록, 오히려 줄며 포기하도록.

하지만 그것조차 ‘실패작’에게는 욕심이었던 걸까?

결국 맞이한 결말은 파멸이었다.

기어코 군세를 일으킨 외조부. 마지막까지도 왕궁 내부에서 그것을 이끌던 어머니.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나 자신까지.

“하, 하하하…….”

그 허무한 결말에 실성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보다는, 고작 자신과 외조부를 믿고 따라왔다는 이유만으로 고통받을 귀족들이 가여웠다.

“…….”

하지만 미칠 듯이 터져 나오던 웃음은 이내 멎었다.

이 상황을 모두 해결할, 가장 간단한 방법이 남아 있었기에.

“……처음부터 이랬어야 했던 건가.”

모든 책임을 자신이 짊어짐으로써 남겨진 이들의 죄업이 참작될 수 있다면.

그래, 썩 어울리는 결말이었다.

이것이 그가 바라던 순리라면 거스를 생각도 없었다.

예정대로 반란군의 얼굴이었던 자신은 공적이 되고 끝끝내 지키고자 했던 어미와 함께 모든 것은 마무리되리라.

그것으로 한때는 제 형이었던 남자의 앞길을 막지 않을 수 있다면.

“이로써 모든 매듭은 완성된다.”

이 순간만큼은 그에게 처음으로 강렬한 열망이 일었다.

알베도는 기계적으로 팔을 움직여, 품속에 숨겨 두었던 것을 꺼냈다.

마지막까지 자신과 함께한 왕실의 펜던트.

……그리고 예기가 흐르는 단검 하나.

그리도 자유롭고 싶었던 왕자는 죽음으로써 자유를 얻게 될 것이다.

“부디 이것으로 반란의 책임을 다하였다고 생각하여 주시오, 형님.”

쑤우욱!

역수로 쥔 그것이 심장으로 치닫는다.

헝클어진 왕실의 예복을 꿰뚫고 다음을 향해 나아간다.

챙그랑!

그리고 그 순간, 작은 불똥과 함께 손아귀가 찢어지며 아릿한 고통이 피어올랐다.

“…….”

알베도는 멍하니 날아간 단검을 바라보았고, 이내 그것을 쳐 낸 남자를 바라보았다.

“……형님.”

그 무섭도록 시린 눈빛이 자신이 향하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응시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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