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152화
책임 (3)
챙그랑! 촤르륵-
허망하게 튕겨 나간 단검.
그리고 그와 함께 떨어져 내린 펜던트 하나.
찢어진 손아귀에서 피가 새어 나왔다.
그러나 녀석은 그것을 눈치채지도 못한 것처럼 우두커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일말의 생기조차 찾아볼 수 없는 죽은 눈이었다.
“…….”
그렇게 잠깐의 침묵이 흐르고,
“이게 뭘 하는 짓이지?”
처음으로 뱉은 말은 그것이었다.
하지만 고저 없이 싸늘한 목소리는 그 감정을 도무지 읽어 낼 수 없었다.
녀석이 보기에도. 나 자신이 느끼기에도.
그리고 그제야 녀석의 눈에 초점이란 것이 생기기 시작했다.
“……아, 역시 타이밍이 안 좋았나.”
“내 질문에 답해라. 뭘 하는 짓이냐고 물었다.”
“그건 제가 하고 싶은 말인뎁쇼, 형님?”
스르륵-
녀석이 비척비척 몸을 일으키자, 헝클어져 있던 옷자락이 바닥에 스치며 낮은 소음을 자아냈다.
외투조차 대충 걸쳐 놓은 것인지 몸을 움직이기 무섭게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어쩐지 느낌이 좋지 않더라니.”
다만 그렇게 중얼거리며 자세를 바로잡은 알베도는……
이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웃음을 뒤집어쓰며 머리를 긁적였다.
“유일한 왕위 계승자인 형님께서 이런 누추한 곳에는 웬일이랍니까?”
“…….”
“아, 혹시 상황을 이 지경까지 만든 못난 동생이 보고 싶어서 오셨답니까?”
입꼬리의 근육이 경련하듯 히죽 웃는다.
하지만 추스르지 못한 그 옷가지처럼 동요로 떨리는 눈동자는 차마 진정될 기미가 없었다.
녀석을 바라보는 핏빛의 눈동자가 한없이 심연으로 가라앉는다.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나.”
“그렇게 표현할 정도로 거창한 건 아니올시다. 애초에 날파리 같은 생명 하나 사라지는 것이…….”
“이유가 뭐지.”
“…….”
녀석의 말을 잘라 내고, 추궁하듯 물었다.
영문 모를 한기가 감옥의 내부를 장악하며 공기를 경직시켰다.
그러는 가운데 녀석은 변명이랍시고 무언가를 떠올렸는지 지껄이기 시작했다.
“뭐, 비참하게 대중들의 앞에서 처형당하느니 명예로운 죽음을 맞으려 했습니다. 이래 봬도 그중에는 나를 믿었던 사람도 있을 텐데, 꼴사나운 모습은 좀 그렇지 않겠수?”
녀석은 그렇게 말하면서 몸을 숙이더니, 떨어진 펜던트를 회수하려 했다.
……하지만 이내 손끝을 멈칫했다.
“줍지 않는 건가.”
“…….”
아니, 무언가에 막힌 듯 더 이상 나아가지 않는 모양새였다.
그것이 자신의 것이 아니다 라고 말하는 것처럼, ‘줍는 행위’ 자체를 망설이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녀석은 끝내 펜던트를 줍지 않았다.
그런 알베도의 행동이 평소와 같이 변한 것은 순식간이었다.
“한데 제 의문은 안 풀어 주시렵니까? 굳이 시간을 버려 가면서 이런 곳까지 올 이유는 없어 보이는데.”
“다시 말하지 않는다. 이유가 뭐지.”
“하, 참. 역시 형님은 못 속이겠다니까.”
알베도의 어깨가 으쓱여졌다.
그리고 이번에 내뱉은 핑계는 결코 거짓은 아니었다.
“죽을 사람은 죽더라도 살 사람은 살아야 하지 않겠수? 이왕이면 죽는 쪽이 희생하는 편이 좋은 그림이지.”
“모든 것을 네놈의 책임으로 돌리려 했군. 더 문제가 생기기 전에 선수를 치려고 했나.”
“기왕이면 숭고한 희생이라 해 주쇼.”
농담 같은 지껄임이었으나 얼마나 중대한 결심이었을지 알았다.
고작 인간 주제에 남을 위해 모든 것을 짊어지고 간다는 것은, 말마따나 숭고한 것이었으니까.
……그러나.
“그것이 네놈이 생각한 정답이었나?”
“예, 그렇수다.”
“그렇다면 잘못 생각했군.”
“……뭐요?”
“고작 죽음 따위로 이 상황에서 빠져나가려는 빈약한 상상력이 우습다는 뜻이다.”
녀석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반대로 나는 표정 하나 바뀌지 않은 채로 말을 이어 갔다.
“공작과 어미를 제어해 내지 못한 이 상황에 네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나?”
“…….”
“하지만 정말로 이 모든 상황의 시발점이 자신의 존재 그 자체였다고 생각했다면, 네놈은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앞장서서 움직였어야만 했다.”
“그건…….”
“도망치기보다는 누구보다 앞장서서 변호하고, 누구보다 왕실을 위해 기여하는 모습을 보여, 남겨질 억울한 귀족들을 위해 움직여야만 했다는 뜻이다.”
“…….”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은 죽음은 그저 핑계와 도망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은 마음속으로 아니라고 부정해 왔을 뿐, 알베도 역시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누구보다도 여실하게 말이다.
“흐흐, 도망이라…… 뭐, 썩 나쁘지 않은 표현입니다.”
그래.
2왕자파의 이름 아래에서 시작된 이 참극으로부터.
그 모든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점에서는 정녕 도망과도 마찬가지였으리라.
끼이익-
그렇게 마침내 육중한 감옥의 철문이 열렸다.
복도로부터 쏟아져 들어오는 희미한 빛, 알베도는 당황한 채로 손을 들어 눈을 가렸다.
나는 그것을 등진 채로 입을 열기 시작했다.
“정녕 그 책임을 다하려거든, 끝까지 살아남아서 증명하라.”
“그게 무슨……. 설마 나를 풀어 주겠다는 말입니까?”
“그래.”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갔다.
“누구보다 가까운 곳에서 참회하고 뉘우치며, 나를 도우면서 평생을 살아가라.”
“하, 하지만 나는 반란군의 지주나 다름없었던 인물인데…….”
“그딴 것이 무슨 상관이지? 내가 하겠다는 것에 반대하는 자가 있을 것 같으냐?”
“…….”
“이미 아버님께서도 허락하신 일이다.”
“……!”
알베도의 눈이 믿을 수 없다는 듯 크게 뜨여졌다.
나는 가로막은 문으로부터 한 발자국 비켜나며 녀석에게 종용했다.
짊어지게 된 책임으로부터 도망치지 말라고. 스스로 이 자리에 들어왔던 것처럼, 스스로 부정을 깨어 내고 나가라고.
그럼에도 떨리는 그 몸이 머뭇거리는 것은 아마도 끝끝내 감추고 있던 진실 탓이리라.
“무엇을 망설이고 있지?”
“…….”
“아직도 그깟 부정한 핏줄 따위가 마음에 걸리는 것이냐?”
“……!”
부정한 핏줄.
……그 자신의 치부와도 같았던 비밀.
그것을 언급한 순간, 녀석의 몸은 눈에 보일 정도로 선명하게 떨려왔다.
“그, 그걸 어떻게 알고…….”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했나.”
나는 낮게 읊조리는 것으로 답했다.
당연히 알고 있었다. 녀석이 아버님의 핏줄을 이어받지 않았다는 것쯤은.
이는 회귀 전부터 이미 알고 있던 것이었고, 그렇기에 겉으로도 드러내지 않았던 진실이었다.
……끝내 감추고픈 치부.
녀석이 그것을 어떤 심정으로 숨겨 왔을지 알고 있었으므로.
하지만.
“아버님 역시도 이미 알고 계시더군.”
놀랍게도 그 사실을 눈치챈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오히려 회귀 전의 내가 알게 된 시점보다 훨씬 이른 시간이었다.
그리고 아버님께서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알베도를 비호했다.
마치 친자식을 아끼고 걱정하는 것처럼, 처벌을 유예하기를 망설이지 않았던 것이었다.
스륵-
나는 바닥에 떨어진 녀석의 펜던트를 주워 들었다.
닳을 대로 닳은 펜던트에는 오직 왕실의 문양만이 음각되어 있었다.
나는 그것을 건네며 나직이 말했다.
“네 것이다.”
“…….”
“너는 한순간도 왕실의 일원이 아니었던 적이 없었다.”
한순간도 아버님의 아들이 아니었던 적이 없었고.
또한 내 동생이 아니었던 적이 없었다.
알베도 에스테반이라는 이름 하나로 그 자격은 충분했다.
“아버님께서 찾으시더군. 늦기 전에 찾아가 뵙도록.”
스윽-
그 말을 끝으로 몸을 돌려 감옥을 나섰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철저하게 단속해야 할 감옥의 문은 여전히 닫히지 않은 채였다.
* * *
윌리엄 공작과 사라 왕비를 포함한 반란의 주동자들이 처형당했다.
하지만 무슨 일인지 본래라면 수도의 광장에서 목을 매달았어야 할 형의 집행은 비공개의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돌연 아버님께서 그러한 지시를 내리신 탓이었다.
그러나 그 대신 시신은 잿더미도 남지 않을 정도로 불태워져 세상에서 완전히 지워졌다.
또한 놈들의 재산과 영토는 왕실로 반환되어 직할령이 된 지 오래다.
공작의 반란으로 인해 생겨났던 크고 작은 흔적들이 점차 정상의 모습으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근데 반란군에 속했던 병력들은 어찌할 겁니까?”
조지가 서류들을 검토하다 말고 물었다.
포로로 잡힌 병력의 수는 무려 9천에 달했는데, 자의로든 타의로든 그곳에 속했던 이상 아무런 처벌도 없이 넘어갈 수는 없었다.
이에 나는 생각하고 있었던 것을 언급했다.
“그들은 동부 국경지대 성벽 증축 공사의 노동력으로 강제 동원될 것이다.”
“연방제국과의 전쟁을 대비해서네요.”
“그렇게 되겠지.”
놈들의 대비도 점차 이루어지고 있을 테니, 이쪽에서도 움직임을 보이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첫 번째는 내부의 위험 요소를 사전에 제거하는 것. 그다음이 놈들의 침입을 원천 차단하는 것이었다.
“전쟁이라는 것은 결국 땅을 병들게 만든다.”
그러니 나는 회귀 전처럼 놈들의 공격을 허용할 생각은 없었다.
연방제국이 이 땅을 짓밟는 일 따위는 내가 버티고 있는 한 결코 일어나지 않으리라.
“뭐, 그런 것치고는 거하게 저질렀지만요.”
조지는 어깨를 으쓱이며 중얼거렸다.
아직도 유성의 피해를 복구하는 작업은 시작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노동자들조차 복구 작업의 착수에는 고개를 내저었으니, 아마도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그나저나 다음 일정에 관해서 말입니다만…….”
“뭐지?”
“일단은 대륙회의에 참석해야 같은데요.”
“대륙회의?”
툭-
나는 서류를 작성하던 손을 멈추며 눈매를 좁혔다.
“이유는.”
“반란군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사용한 마법이 대륙회의의 안건으로 회부 되었나 봅니다.”
“그렇군.”
대륙회의.
비정기적으로 열리는 그 대규모의 회의는 대륙의 중대사를 논하기 위해 각 국가의 중책들을 모아놓고 행동 방침을 논하는 자리였다.
‘이를테면 회귀 전에 힘을 모아 야만족의 기세를 꺾으려 했던 것처럼 말이지.’
……그리고 이번 안건은 다름아닌 마탑주가 사용한 고대의 마법에 관한 것.
입장문을 보내왔음에도 이쪽에서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자, 직접 움직이기로 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아무런 언질도 없이 대륙회의를 개최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그것도 내부의 혼란을 수습하는 과정에 있는 에스테반을 조준하였다면 더욱.
당연히 그 이유는 간단했다.
“뭐, 별다른 이유가 있겠습니까? 놈들이 수작을 부리고 있는 거죠.”
“가소롭군.”
내 입꼬리가 비틀어졌다.
느닷없는 그 회의는 분명 연방제국의 입김으로 벌어진 것이다.
주변국을 압박하며 입장문을 보내왔던 것처럼 관련 기관들을 압박하며 이러한 자리를 만들었다는 뜻이다.
말 그대로, 가소롭기 짝이 없는 일이다.
“이런 시기에 중책을 불러내고 혼란을 야기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효과가 있을 거라 생각했나 보군.”
“어쩌면 마법의 수식 따위를 요구할지도 모릅니다만.”
“그러겠지.”
아마도, 이 살상마법의 존재가 ‘부정한’ 것일지도 모른다며 모든 정보를 공개하라 요구할 가능성이 컸다.
신성제국과의 협력관계가 성사된 에스테반을 흑마법사와 엮는 것…….
그것이 가장 효율적인 공격의 방법이었으니까.
“정보 공개에 응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마법의 사용을 제지할 수 있는 명분을 얻을 테고, 이쪽에서 공개한다면 오히려 놈들에게는 좋은 일이라 생각하고 있을 터.”
“뭐, 명료하네요. 귀찮게 되겠는데요?”
“아니. 그렇지만도 않은 모양이군.”
“예?”
나는 여유롭게 어깨를 으쓱였다.
“대륙회의의 시작은?”
“십일 뒤의 정오입니다.”
일정조차 대비하지 못하도록 막아 놓은 건가?
뭐, 하지만 정말로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쪽에서 원한다면 나 역시도 공격에 응해줄 생각이 있으니까.
“놈들의 뜻대로 되게 할 수는 없겠지.”
회귀 이후의 첫 대륙회의는, 의외로 즐거울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