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153화
대륙회의 (1)
북부 대륙.
그곳에는 여명이 무한하게 반복되는 공간이 있었다.
지상으로 붙들린 한때의 마나는 시간을 역행하듯 같은 구간만을 반복했고, 무한히 피어오르는 호박빛의 여명은 이미 그곳의 정체성이나 다름없었다.
불가사의의 땅, 혹은 지식의 도시라고 불리는 이곳. 마법사들의 왕국, 마기아의 수도였다.
그리고 그런 수도의 최심부.
지지직-
우주처럼 펼쳐진 공간 속으로 한 남자의 ‘형상’이 흐릿하게 나타났다.
형상은 자연스러운 발걸음으로 그곳을 거닐더니 이내 누군가를 발견하고는 미소를 지었다.
-들으셨습니까? 곧 대륙회의가 열린다고 합니다.
“…….”
미동도 없이 책을 읽고 있던 노인은 시선을 올려, 형상을 바라보았다.
당연히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이 공간 전체가 곧 노인의 정신을 실체화시킨 하나의 세계였으니까.
“그것은 에스테반에서 발현된 ‘대마법’과 관련된 것입니까?”
-예, 그 짐작대로입니다.
“그렇다면 에스테반에서 탄생했다는 대마법사가 직접 모습을 드러낼 가능성이 높겠군요.”
-대륙회의의 안건으로까지 회부 된 이상, 아마도 그렇게 될 것입니다.
탁-
그제야 노인은 책을 소리 나게 덮으며 그것을 놓아 버리듯 허공으로 밀어냈다.
그러자 그것은 곧 빛으로 변해 우주 공간을 장식하는 하나의 별이 되었다.
이 공간 속에 무한히 빛나는 별들은 모두 노인이 가진 지식의 폭을 증명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 모습을 확인한 ‘형상’은 짓궂은 말투로 물었다.
-어떻게 생각하고 계십니까? 이 상황에 대해서.
“말씀하신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에스테반에서 발현된 대마법을 제재하려는 움직임에 대해서 말입니다.
국가마다 숨기고 있는 힘은 존재했고, 당연히 그것을 공식적으로 금지시켰던 적은 없었다.
그건 말 그대로 어느 한 국가의 힘을 대륙 차원에서 억제하겠다는 뜻이었으니까.
그러니 이 상황은 무척이나 이례적인 것.
하지만 분명 저 ‘형상’의 의도는 그런 시시콜콜한 수작에 관해 묻는 것이 아니었으리라.
“……전하께서는 소인이 그 자리에 참석하기를 바라고 계십니까?”
-이야기가 그렇게 들렸다면 다행이군요.
형상…… 전하라고 불린 그것은 웃었다.
-이번 대륙회의에서 오가는 내용은 정치질 따위에서 그치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마 어떻게 해서든 해당 마법에 대한 정보를 밝혀내고자 할 테지요.
“그러니 저를 찾아오셨군요. 마법의 수식을 알아낼 수 있도록.”
-어차피 이미 그쪽에도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계시지 않으셨습니까?
“…….”
우우웅-
형상의 손짓에 따라 방금까지 노인이 읽고 있던 ‘책’이 반응했다.
그러자 그것은 이전처럼 실체를 가지고 형상의 손에 붙들렸다.
손수 표지를 확인해 보자, 비로소 읽고 있던 것의 정체가 드러났다.
……천체의 이끌림과 마법의 상관관계.
형상의 어깨가 으쓱여졌다.
-대륙회의의 시작은 지금으로부터 열흘 뒤의 일입니다. 폐하께서도 이번 일에는 큰 관심을 보이고 계시니, 부디 그대가 참석해 주었으면 좋겠군요.
“……그렇군요.”
-아마 그 자리가 도움이 됐으면 되었지, 지루하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스륵-
형상의 손아귀로부터 한 장의 서신이 건네졌다.
대륙회의에 참석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는 초대장이었다.
-그럼, 열흘 뒤에 뵙는 것으로 하지요.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대의 능력이라면 충분히 수식을 알아내는 것도 가능할 것입니다.
지지직-
올 때와 마찬가지로 형상은 작은 소음만을 남기고 사라졌다.
그리고 그 마지막에 남기고 간 말은 메아리처럼 허공을 맴돌 뿐이다.
-로드 헤임달.
* * *
“키야, 어마어마하네요.”
조지는 눈앞으로 펼쳐진 방대한 회의장을 보며 감탄사를 날렸다.
족히 수십 미터는 넘어 보이는 높이. 그리고 그 모두를 화려하게 장식하는 대리석과 보석.
그야말로 대륙의 중대사를 논하는 자리에 어울린다는 말밖에는 나오지 않았다.
물론, 그것이 멋진 경관을 보았다는 감상에서 나온 감탄사는 아니었으리라.
“팔천…… 아니, 팔천이백 정도…….”
“음? 이보게, 그건 무슨 소리인가?”
“뭐긴요. 지리적인 요소나 외형을 고려한 시세죠.”
“허허, 그렇군.”
마탑주는 털털하게 웃으며 턱을 쓰다듬었다.
그러면서 보는 눈이 있다고 감탄하는 것이 아무리 생각해도 정상은 아니었다.
제아무리 크롬웰의 일로 콩깍지가 단단히 씌었다지만…… 당최 저 조지를 향한 무한한 긍정은 어디에서 나오는지 모르겠다.
“시답잖은 소리들은 그만하고 따라오도록.”
“허허, 알겠습니다. 전하.”
나는 그렇게 말하며 앞장서서 건물의 내부로 들어갔다.
내부는 밖에서 보는 것보다 더욱 화려했는데, 어찌나 넓은지 길이 거의 미로와도 흡사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곳을 방문한 게 처음이 아니었던 만큼 나는 능숙한 걸음걸이로 회의장을 향해 걸어갔다.
그러자 조지의 눈초리에 의심이 가득했다.
“……근데 이거 제대로 가고 있는 거 맞습니까?”
마땅한 안내인도 없다. 하물며 따라온 두 사람이 회의에 참석해 본 경험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 상황에서 거리낌 없이 움직이고 있니, 모르긴 몰라도 길을 헤매고 있다 생각했을 터.
“시끄럽다.”
“…….”
하지만 그런 헛소리에 친절하게 답할 내가 아니었다.
그렇게 나는 녀석의 질문을 무시한 채로 발걸음을 옮겼고, 어느덧 건물의 가장 안쪽에 위치한 회의장은 점차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때였다.
“1왕자 전하.”
뒤에서부터 다가온 누군가가 나를 불렀고, 나는 그 낯설지 않은 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역시 대마법사까지 함께 오셨군요. 정말 오랜만입니다.”
“예.”
친근하고 우호적인 태도로 내게로 다가오는 이.
……바로, 내 지시 덕분에 멸망을 피할 수 있었던 아렌델의 왕세자였다.
나는 작게 눈썹을 들어 올리다가 입을 열었다.
“한데, 왕세자께서는 직접 회의에 참석하셨군요.”
“이번 사태의 경중을 생각해서라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왕세자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옆을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이전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깔끔한 모습을 하고 있는 카라반 자이트가 있었다.
왕세자의 표정이 조금은 굳어졌다.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이번 회의는 연방제국의 술수로 개최되었습니다.”
“예, 알고 있습니다.”
“분명 놈들로서는 이번 기회에 조금이라도 이득을 보기 위해 여론을 움직이는 방향을 생각하고 있을 테지요. 실제로 동부의 국가들에 접근하여 마법의 사용을 금지하자는 움직임을 보였습니다.”
“그렇습니까?”
나는 의외의 말에 어깨를 으쓱였다.
동부의 국가들에게 접근했다는 것이 아닌, 아렌델이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점에서 놀랐다.
“그 정보를 어떻게 알았습니까? 놈들은 에스테반과의 접점을 만든 아렌델을 경계하고 있을 텐데요.”
“본래라면 그랬어야 할 테지만, 전하께서 도움을 주신 덕에 자이트 공작이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해결?”
그쪽에서도 무언가 일이 있었다는 뜻인가?
이전보다 훨씬 정제된 분위기의 카라반 자이트를 바라보자, 그는 목례를 마치며 대신 설명했다.
“그 전에 먼저 여쭙고 싶습니다. 아렌델의 동부를 가로막던 재앙을 없애 주신 것은 전하께서 하신 일이 맞으십니까?”
“그렇다고 한다면.”
부정도 긍정도 아닌 말.
하지만 카라반 자이트의 눈에 놀라움이 일렁였다.
심증으로만 남아 있던 것을 확신했으니, 그때의 경악이 되살아났던 것이다.
물론 그것도 잠시였다.
“덕분에 아렌델은 연방제국과 동부를 연결하는 역할을 하면서 놈들의 정보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호오.”
“그리고 그 교류와 내부 사정은 철저하게 아렌델의 통제하에 있는 상태이지요.”
“그렇군.”
연방제국 본인이 아닌 타국에게서 얻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중립을 표방하는 과정에서 추가적인 이점을 수확하고 있었다는 말이기도 했고.
‘제법인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녀석을 바라보았다.
그런 상황은 떠올리기는 쉽지만, 국가 대 국가의 일이니만큼 뜻대로 통제하는 일은 어려웠다.
하지만 카라반 자이트는 그것을 해내고 있었다.
가만히 앉아서 연방제국 내부의 사정을 꿰뚫고, 놈들을 감시하고 있는 것이었다.
설명이 끝나자 왕세자가 말했다.
“그렇게 알아낸 정보를 통해 저들의 목적을 알아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움직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에스테반의 편을 들어 주기 위해서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러면서 왕세자는 일부 동부 국가들의 여론도 자신이 움직일 수 있다며, 큰 힘이 될 수 있을 거라 말했다.
말 그대로 반대 여론을 강조시키면, 놈들도 힘을 쓸 수 없을 거라는 뜻이다.
그러나.
“그럴 필요 없습니다.”
“……예?”
나는 고저 없는 목소리로 대꾸하며 부정했다.
그러고는 당황한 왕세자를 지나쳐 걸어가며 말을 이었다.
“도움은 고맙지만 아렌델은 이번에도 철저하게 중립을 표방하십시오.”
“예?”
“아니, 오히려.”
이 순간을 위해 직접 달려온 것은 나름대로 놀라운 일이었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조금 더 두 국가의 절대적인 화합을 감추고 마지막까지 숨겨 놓아야 했다.
게다가…….
“찬성하셔도 괜찮겠군요.”
“그, 그게 무슨…….”
나는 곧 시작될 회의를 생각하며 한없이 조소에 가까운 웃음을 지었다.
카라반 자이트.
아마, 저 남자라면 이 말의 뜻을 이해할 수 있을 테지.
이 순간은 나 역시도 기다려 왔던 것이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 * *
마침내 회의의 시작을 5분 앞둔 시간.
거대한 회의장은 하나의 대강당을 방불케 했다.
하지만 수많은 국가의 중책들과 그 수행원이 모이는 자리이니만큼, 그마저도 좁아 보이는 기분이 들었다.
에스테반의 일행은 개중에서도 유별나게 적은 인원으로 시선을 모았다.
“참 나, 꼭 철창 속의 사자가 된 기분이네.”
조지는 그렇게 말하더니 1왕자와 마탑주를 번갈아 가며 쳐다보았다.
아마 인원이 적은 탓도 있겠지만, 진짜 이유는 이 두 사람을 보기 위함이었으리라.
이번 회의의 주인공이자 대륙의 다섯 번째 대마법사인 로드 엘레이드.
……그리고, 스물한 살이라는 믿기지 않을 나이에 소드마스터에 오른 왕족.
어느 쪽도 경악하리만치 두려운 재능과 성취를 보여 주고 있으니, 모든 시선이 집중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스윽-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난 조지는 설렁설렁 회의장 내부를 걸어 다녔다.
그러자 원체 작았던 존재감은 거의 없을 정도가 되었고, 덕분에 타국의 대화를 엿듣기는 더 수월해졌다.
“저들이 바로 에스테반의…….”
“고작 일 년 새에 경지에 오른 인간이 둘이나 탄생했다니…… 참으로 믿기지 않는군.”
“일개 왕국의 전력치고는 너무도 막강하지 않은가?”
그 시기와 경계심 가득한 대화.
회의장을 한 바퀴 돌아본 조지가 어깨를 으쓱였다.
“……나 정도면 사자는 아니고 원숭이쯤 되려나.”
특히나 1왕자에 대한 시기는 여간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무려 일국의 왕자면서도 경지에 오른 초인.
하물며, 대륙의 긴 역사 속에서도 갱신된 적이 드문 최연소 기록의 단위 자체를 바꾸며 우뚝 두각을 드러낸 소드마스터.
아마 당분간…… 아니, 영원히 깰 수 없을지도 모르는 기록이었다.
그 누구라도 한 번쯤은 시기할 법하니 그 위상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안 봐도 뻔했다.
치직-
그때, 마법이 시전되는 소리가 회의장에 울려 퍼졌고, 이내 회의 진행자의 목소리가 울렸다.
-곧 대륙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에스테반만을 노린 회의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