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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154화 (154/223)

회귀한 검왕은 폭군이 되기로 했다 154화

대륙회의 (2)

대륙회의가 주최되는 회의장.

이 드넓은 공간은 그 어떤 국가에도 속하지 않은 중립지대에 위치해 있다.

그리고 으레 대륙회의라는 말이 그렇듯.

대륙의 정세에 영향을 끼칠 수 있을 만큼의 중요한 사안들을 논하였기에,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겠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이곳 또한 권력에 놀아나는 무대가 된 지 오래였다.

-모두 착석하여 주십시오.

한 국가의 수작에 의해 개최된 대륙회의. 그리고 그 목적은 명백히 일국의 힘에 대한 억제.

허나, 그럼에도 이 상황에 딴지를 거는 인물은 아무도 없었다.

-이번 대륙회의는 에스테반에서 사용된 살상마법의 금제를 논하기 위해 개최되었습니다.

덤덤한 진행자의 말이 이어졌고, 그러기가 무섭게 회의장 가운데로 홀로그램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흠!”

“허어!”

에스테반의 수도 앞 평야에 새겨진 흉터.

즉, 미티어 스웜이 남기고 간 크레이터의 모습을 상세히 담은 자료 영상이었다.

회의장 곳곳에서 경악에 찬 신음이 터져 나왔다.

“제아무리 대마법사라 하더라도 정녕 마법으로 저런 것이 가능하다는 말인가?”

현대 마법전의 양상을 완전히 뒤집는 위력.

회의가 사직하기 전부터 이미 내용을 알고 있던 이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이야기로만 전해 들었을 뿐 실물을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러니 가감조차 없는 그 장면이 주는 충격은 더욱 거대했으리라.

“맙소사…….”

“궤도에서 빗나갔음에도 일만의 병력을 소멸시켰다고 했지.”

“만일 저것이 직격으로 충돌한다면…….”

회의에 참여한 각국의 중책들은 몸서리치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저 상상만으로도 몸이 떨려올 정도였다.

잠시 후, 영상이 사라지자 진행자는 짐짓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것은 해당 안건의 심각성을 검증하는 영상입니다. 보시다시피 그 파괴력은 두 눈으로 보기도 어려울 정도로 참혹한 수준입니다.

“크흠!”

-또한 이러한 마법이 무분별하게 전쟁에서 사용될 경우, 종국에는 모든 것이 파괴되고 문명은 형체조차 남지 않을 것입니다.

“마, 맞소!”

“저런 마법은 반드시 대륙법으로 금지하고 영구히 봉인해야 합니다!”

슬슬 긍정의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아니, 오히려 이제는 본인들이 직접 나서서 떠들어 대기에 이르렀다.

사전에 협의한 내용도 내용이지만, 직접 저 광경을 체감하게 되자 두려움에 질린 것이다.

‘뭐, 정확히는 그런 무기를 상대만 가지고 있는 것이 두려운 것일 테지만.’

그들로서는 저 폭거를 막을 수단이 도저히 상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내부의 열기가 점차 과열되기 시작하자, 진행자는 기다렸다는 듯이 시선을 돌렸다.

여유롭게 앉아 어깨를 으쓱일 뿐인 나에게로.

-하면, 그 주체인 에스테반 측에서는 이에 대해 어찌 생각하고 계십니까?

“어떻게 생각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겠지.”

나는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단박에 일축했다.

“그저 우스울 따름이다.”

“……!”

“에스테반에서는 금제의 지정을 허용하지 않는 것으로 하지.”

“뭐, 뭣이……!”

그것이 내가 내뱉은 결론이었다.

그러자 예상대로 당황하고 노한 반응들이 터져 나왔다.

“믿을 수가 없습니다!”

“에스테반에서는 저런 참혹한 마법을 정상적인 것이라 판단한다는 뜻입니까?!”

“하면, 정상적인 마법이라는 것은 누가 판단하는 것이지요?”

“헛!”

마탑주의 단호함 어린 시선이 노성을 토해 낸 이에 향했다.

“대, 대마법사?!”

갑작스러운 질문을 받은 타국의 귀족은 자신이 저 광경을 만들어 낸 대마법사에게 지목되었다는 사실에 뭇 당혹감을 드러냈다.

“그, 그야…… 대량 살상용으로 제작된 것으로 보이고…… 심지어 그 여파까지 어마어마하니…….”

“폐해가 크고 대량 살상이 가능한 마법은 비정상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되겠습니까?”

“그, 그렇소.”

“그렇다면 우선 파괴 속성의 기초인 ‘파이어’ 마법부터 금제하여야 옳겠군요.”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황당함에 할 말을 잃은 타국의 귀족이 입을 다물었다.

유성의 충돌을 논하는 상황에서 웬 파이어 마법이란 말인가?

마탑주는 너털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파이어 마법은 사용하기에 따라 수만의 사람도 해칠 수 있는 마법입니다. 산불 따위를 일으킨다면 그 피해 역시 파괴라는 이름에 못지않겠지요.”

“그것은 궤변이 아니오?!”

“아쉽지만 전혀 궤변이 아닙니다.”

화르륵-

전조도 없이 마탑주의 손가락에서 한 줄기의 화염이 피어올랐다.

마나가 움직이는 것을 눈치챌 새도 없었다. 당연히 주문이나 수식 따위도 없었다.

그저 처음부터 그곳에 있었던 것처럼 손가락에서부터 불꽃 하나가 생겨났을 뿐이다.

마탑주의 눈이 웃지 않게 된 것은, 그때부터였다.

“그리고 저는 그것을 증명해 낼 수 있지요.”

“…….”

“원한다면 수만의 군세를 불태울 만한 홍염을 이것만을 이용해 직접 보여 드리겠습니다.”

“…….”

대마법사의 호언장담만큼이나 두려운 것이 어디에 있을까?

은은하게 피어오른 불꽃의 열기와 달리, 회의장 내부의 공기는 고요하고 싸늘하게 식어 갔다.

결국 상황을 중재한 것은 마탑주 그 자신이었다.

“부적절한 예시가 아니었다는 점은 인정하겠습니다. 그러나 전쟁에서의 마법이란 결국 상대를 효율적으로 해칠 수 있는 수단에 불과합니다.”

“그, 그건…….”

“그리고 에스테반에서 찾은 것은 무고한 이들을 학살하는 무기가 아닌, 적을 상대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었을 뿐입니다.”

그래. 그뿐이었다.

네놈들이 에스테반을 적대하지만 않는다면 우려할 이유조차 없을 것이라고…….

마탑주는 그렇게 말하며 내 뒤로 물러섰다.

이를 확인한 진행자는 헛기침을 흘리더니 다시금 목소리를 증폭시켰다.

-크흠…… 그렇다면 혹 다른 의견이 있으신 분이 계십니까?

“…….”

침묵이 흘렀다. 곧장 반대 의견을 피력하기에는 금지의 명분이 애매했다.

게다가 덜컥 두려움이 더해진 것이다. 잘못 찍혔다간 설마 저 압도적인 힘이 자신에게 먼저 날아올지도 모르지 않는가.

미지란 것은 원래 있지도 않은 두려움을 더할 뿐이었다.

조금의 시간이 지나자 군중 사이에서의 웅성거림은 늘어 갔다.

그리고 그 틈을 타 녀석들은 또 다른 수작을 시작하였다.

“……애초에 단일마법으로 저런 파괴력을 야기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지 않소?”

“확실히.”

“그렇소, 그런 것이 가능했다면 이미 수많은 강대국 사이에서 비슷한 마법이 나왔을 것이오.”

“그렇다면 무언가 개입한 것이 분명하오!”

“무언가라면…….”

“그토록 난폭한 형식이 흑마법이 아니면 뭐겠소!”

“흐, 흑마법?!”

그 내용은 순식간에 퍼져 나갔고, 퍼져 있는 공포에 더해진 바람잡이 탓에 연방제국과 협의가 되어 있지 않았던 국가들 역시 이에 휩쓸렸다.

“역시 그렇게 나오는 건가.”

“뭐,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징글징글하네요.”

정작 나는 너무 뻔하게도 흘러가는 그 장면들에 한숨이 나오려 했지만 말이다.

진행자 역시 이 흐름을 놓치지 않고 눈을 번뜩였다.

-해당 마법이 흑마법과 관계가 있을 거라는 의혹이 나왔습니다. 그렇다면 에스테반 측에서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계십니까?

“정녕 떳떳하다면 수식을 공개해 보십시오!”

“그렇습니다! 당당하게 밝히지 못한다면 흑마법사들과 연관이 있을 줄로 알고…….”

“좋다.”

“……귀국의 동맹인 신성제국에. 뭐, 뭐요?!”

“바, 바, 방금 뭐라고 하셨……!”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한 이들이 눈을 부릅떴다.

뭐, 당연히 들은 것을 믿지 못할 수밖에.

방금 전의 대화에서 내뱉은 ‘좋다’는 의미는 흐름상으로 보나 뭐로 보나 수식 공개에 응하겠다는 뜻이었으니까.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뒤편에 서 있던 마탑주에게 손짓하며 여유롭게 다리를 꼬았다.

“분명 좋다고 말했다.”

“저, 그…… 정말로 수식을 공개하시겠다는…….”

“동기야 불순하다고 치더라도 일국의 대표가 된 이상 제기된 의혹을 넘어가서는 되겠나?”

“헙!”

“허어……!”

정말로 그것을 공개하겠단 말인가?!

모두의 경악이 향한 가운데 마탑주가 품속에서 두꺼운 책 하나를 꺼냈다.

그러고는 그것을 내 손 위로 건네며 고개를 숙였다.

나는 그것을 우아하게 받아 든 채로 슬쩍 흔들었다.

“원하는 대로 수식을 주지.”

꿀꺽-

저것이 바로 일만의 군세를 증발시킨 대마법이 적힌 책!

알 수 없는 열망에 사로잡힌 군중들의 핏발 선 눈이 번뜩였다.

이제 진행자의 손에 그것을 넘기기만 하면…….

“하지만 그대들은 뭘 줄 거지?”“……예?”

“이쪽에서도 수식을 공개했다면 오가는 것이 있어야 할 게 아닌가?”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당혹한 반문이 이어지고,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에스테반에서 공개하는 것은 천문학적인 가치를 지닌 전술 병기의 정보다. 산처럼 쌓인 금화를 제공하지는 못하더라도 적절한 대가 정도는 있어야 할 테지.”

“아, 아니, 그렇다고 해서 대가를 바라시는 것은…….”

“게다가 아무래도 오해가 있는 것 같군.”

쿵!

두꺼운 책이 책상 위를 강타했다.

나는 무심히 턱을 괸 채로 그것을 밀쳤고, 이윽고 한 권의 책이라 생각했던 그것 속에서 다섯 뭉치의 종이가 튀어나왔다.

어느덧 내 눈은 다섯 뭉치의 종이에 시선이 사로잡힌 군중을 향해 있었다.

“아쉽지만 모든 국가에 수식이 제공되는 것은 아니다.”

“……!”

“그렇다는 말은…….”

“한 뭉치에 수식 하나. 총 다섯 개다. 정당한 대가를 제시한 국가에게는 특별히 이것을 ‘제공’해 주지.”

“이런!”

당혹감과 함께 터져 나온 것은 분명 분노였다.

자신들을 가지고 놀고 있다는 수치심. 그리고 이 상황에 대한 못마땅함.

“가격은…… 그렇군, 필요한 쪽에서 먼저 제시하는 것으로 할까?”

“에스테반의 1왕자께서는 신성한 대륙회의의 장에서 무슨 짓을 하시는 것입니까!”

“보자 보자 하니까 이곳이……!”

“사, 사겠습니다!”

“뭣이?!”

그리고 그 소란 속에서 손을 든 것은 아까까지만 해도 누구보다 앞장서서 에스테반을 힐난하던 국가의 중 하나였다.

“매장량이 풍부한 금광 두 개로 부디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저, 저희가 지불할 수 있는 것은 그것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뭐, 나쁘지 않군.”

“……감사합니다.”

덜덜 떨리는 그 눈빛은 명백히 혼란스러웠다.

물론 그럼에도 자신이 무슨 행동을 했는지 이해하는 듯했다.

“이보게, 이게 무슨 짓인가!”

“약속은 어쩌고……!”

“어, 어쩔 수 없소!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인근 국가에 위협을 받고 있소! 상황은 알겠지만 부디 이번만큼은 부디 이해해 주시오!”

“이해하라니, 그게 지금 할 소리라고…….”

“우리도 사겠습니다! 금광 두 개에 버금가는 금을 지불하겠습니다!”

“큭!”

“우, 우리도!”

그렇게 한 명이 사겠다고 나서자, 기름에 불이 붙듯 열기는 순식간에 번져 나갔다.

일만의 군세를 단숨에 소멸시킬 수 있는 마법…… 그것만 있다면 그깟 금광이 문제겠는가? 저건, 그 존재만으로도 억제력이 될 수 있는 무가지보였다.

아마 그 가치를 모르는 이는 이런 곳에 들이지조차 못했을 것이다.

이미 계산이 끝난 것이다. 저것만 있다면 모두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그런 계산이.

하지만 상황을 관망하고 있던 나는 무엇을 하느냐는 듯 물었다.

“금광 두 개라니 무슨 소리지?”

“전하께서 분명 두 개 정도면 나쁘지 않으시다고…….”

“그것은 방금 전의 금액이다.”

“예?”

“아쉽게도 하나가 팔리는 바람에 수식은 이제 네 개밖에 남지 않았지.”

그리고 내 입술에 조소가 맺히기 시작했다.

“희소성이 더욱 높아졌으니 가치가 올라가야 하는 것이 정상 아닌가?”

“……!”

“그, 그런 말도 안 되는!”

회의장에 자리해 있던 귀족들이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그러나 그 속에 ‘계산’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할 내가 아니었다.

‘이번에 구매하지 못하면 다음 가격은 또 늘어날 테지.’

갈수록 수식을 구하는 방법은 요원해진다. 그리고 구매자가 늘어날수록 서로 간의 눈치싸움은 더욱 심화되리라.

그렇다면 이번 차례에 협의를 뒤엎는 국가는 어디가 될까?

이 상황에서 어느 국가가 먼저 나서서 에스테반의 발을 핥을 것인가?

“저희가 수식을 사도록 하지요.”

“호오.”

벌써 다음 구매자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들은 얼굴에 만연한 웃음기를 감추고 있는 아렌델이었다.

“어디 보자…… 저희는 금광 두 개에 철광 두 개. 거기에 최대 백 년까지 지속되는 무역 협상권. 이어서 최근 발견한 풍석까지 제공해 드리지요. 어떻습니까.”

“큭……!”

회의에 참석한 이들의 표정이 구겨지는 것을 바라보는 카라반 자이트는 무척이나 즐거워 보였다.

나의 의도를 이해하고 막대한 대가로 선수를 친 것은, 아마 나를 물밑에서나마 돕고자 했던 아렌델의 의지이리라.

“이제 세 개 남았군…… 그렇다면 다음은 누구지?”

“…….”

나는 기사들의 대련을 구경하는 것처럼 흥미진진한 기분이 되었다.

비록 검이 아닌 이권을 휘두르며 상처 대신 불신을 심어 주게 되겠지만.

……뭐, 그것도 썩 박진감 넘치는 광경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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